기계의 얼굴을 한 사람들

요새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대시보드(dashboard) 구축이다. 대시보드는 일종의 표준화된 레포트를 말한다. 어제 잠깐 동료들과 식사를 하면서 아무리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해도 왜 대시보드에 에러가 발생할까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첫번째 이유는 자꾸 바뀌는 환경이다. 대부분 시스템/대시보드는 다른 시스템과 연결되어있다. 시간이 흐르면 처음 설계할 때와는 환경이 달라지고 링크들이 깨지게 마련이다. 두번째 이유는 사람이다.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동일한 담당자라도 바뀌는 환경을 새심하게 신경쓰지 않으면 프로세스가 엉켜서 에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회사일이라는 게 시간이 흐를 수록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시스템이 복잡해질 수록 일은 점점 분업화되고 서로 책임과 업무의 구간을 명확히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 점점 파악하기 힘들어 지고, 점점 아무 생각없이 메뉴얼대로 일을 하게 된다. 금전출납 계원은 생각없이 영수증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은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에 무감각해지고 그저 정해진 프로세스대로 기계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효율적/과학적/객관적인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일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되면 일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재미가 없고 그저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매일 하는 일에서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고 일의 의미나 가치는 사라져 버린다. 가치나 의미 같은 것은 계량화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뒤로 밀려날 뿐이다.

모던타임즈

(Image Source: 영화 ‘Modern Times’ (1936))

찰리 채플린은 20세기 초에 기계의 부속으로 변해버린 인간의 비극을 그린 영화를 발표했었다. 영화 모던타임즈는 채플린이 사회주의자라고 매도 당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그는 자의반/타의반으로 미국에서 추방당한다. 당시 그는 블루칼라의 기계화를 그림으로 그려냈지만, 21세기의 지금에 와서는 화이트 칼라 역시 그저 기계 부속품에 지나지 않게 된 것 같다.

현대 문명이 이루워낸 놀라운 성과는 모든 것을 객관화하고 계량화 할 것을 강요한다. 과학의 눈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모든 사물의 가치는 사라진다. 내 어릴적 낙서가 적혀 있던 공책은 과학의 눈으로 볼때 종이와 잉크에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유명인이 되지 않는 한…) 남녀의 사랑과 결혼은 과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서로의 필요와 의무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는 생일 조차도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태어나는 것 조차 의미가 없고, 세포의 분열 활동에 지나지 않는데 우연히 정해진 하루를 매년 축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나의 몸은 세포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가치나 의미가 사라질 때 사람들은 기계가 된다. 우리는 세월호의 선장을 통해 그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그는 매일 그가 운전하는 배에 화물을 실은 것과 아이들을 실은 것에 의미의 차이를 부여하지 않는다. 세월호의 담당 관리들도 그러했고 관련한 관료들도 그러했다. 메뉴얼을 그대로 보고 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줄이려고 어떠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나는 다른가? 나 또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사는가? 기계적으로 메뉴얼을 따라 살지 않는가? 나에게 주어진 일은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요즈음 읽고 있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 때문인지… 세월호 사건 때문인지… 아니면 요새 내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일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머리속을 맴도는 질문은 비슷하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같은자리에서 질문을 모양만 바꾸어 가며 하고 있다.

그럴 때 나를 잠깐씩 현실 세계로 끌어 당기는 것은 딸아이와 마눌님이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나에게는 해독인 것인가? 이또한 계량화 될 수 없는 가치 같은 것이다. 오늘 아이하고 더 즐겁게 놀아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 덧 (2015년 11월 11일) : 이 글의 주제를 한단어로 요약하면 디지털 테일러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테일러리즘 관련하여서는 최근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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