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오늘 글은 제가 기억에 남기고자 썼지만, 100% 저의 입장에서 씌여진 글이기에 미화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실은 아이와 놀기 귀찮아하는 게으른 아버지 입니다.
딸아이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아이 엄마가 모른척 넘어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왜?’라는 질문이 머리속을 맴돌지만, 지금 누가 답해줄리 없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면서 차근차근 달래는 것. 아내를 마트에 보내고 내가 아는 방법을 시도해본다. 첫번째 시도. ‘엄마 없는 데 뭐 맛난거 먹으러 갈까? 빵집 어때?’ 고개를 절래 흔든다. 실패. 배가 고프지 않거나 사먹으러 갈 기운이 없나 부다. 두번째 시도. ‘좋아하는 노래 틀어줄까?’ 아이는 고개를 흔들면서 소리낸다. ‘으~음’ 노래도 듣기 싫은가부다. 세번째 시도. ‘그럼 아빠가 옛날 얘기 해줄까?’ 그제야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옛날 이야기래봐야 별거 없는데 즉석에서 만들어 허접한 이야기 들려주니 귀를 기울인다. 마음이 풀어졌는지 조금 있다가는 원숭이 소리 들려준다면서 끽끽거리며 장난을 걸어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보니 아이 엄마가 오고 아이의 마음은 완전히 풀어져있다.
딸아이는 눈물이 많다. 처음에는 떼쓰는 아이로 키우기 싫었기에 아이의 울음에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온종일 에너지를 쏟아낸 날은 저녁 즈음이 되면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그럴 때 아이는 주저 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짐짓 모른척도 해보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울음의 원인을 묻는다. “너무 마음이 안좋아.” 양치가 하기 싫다고 말했다거나 자러 들어가기 싫다고 말했으면 훈계라도 했으렸만 마음이 안좋다고 한다. 그래 늦게까지 잠을 안재우고 지금에서야 잘 준비를 시키는 부모 탓이다. 아직 여섯살이니 그만한 버틸 힘이 없겠지. 일곱살이 되면 달라지리라. 번쩍 들쳐 앉고서 양치를 하러 간다.
딱히 떼를 쓰는 아이는 아니다.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도 몇번 말해보고 안된다 싶으면 거기서 그만이다. 좋아하는 초컬릿이나 캔디가 앞에 있어도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면 두번 묻지 않는다. 아이 답지 않게 절제 못하는 모습이 있으나 나이를 생각했을 때 딱 눈감아 줄 정도 이다. 오히려 절제하지 못하는 건 아비가 더 심하다. 딸은 절제 하지 못하는 아비의 모습을 볼 때 또다른 어미가 되어 한마디씩 던지곤 한다. “자세 바로하고 밥먹어.” “아이패드 그만해.” “운동 좀해.” 다 맞는 말이다.
그나저나 왜 울었을까? 배가 고팠던 걸까? 세상에는 두종류의 아이가 있다. 배가고프면 난리가 나는 아이, 밥을 하루 종일 굶겨도 떠서 입에 넣어 주어야 그제야 먹는 아이. 가은이는 전자에 속하고 나는 어렸을 때 후자에 속하는 아이였다.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지만, 아까 빵집을 제안했을 때 거절했다. 이건 답일 수 없다.
엄마와 다투었거나, 존심 상하는 일이 있었던 것 일까? 가능하다. 이 아이는 눈물이 많은 아이지만 동시에 자존심이 몹시 강한 아이이다. 말을 더듬더듬 하던 돌이 갓지났을 무렵에도 부모가 뭐라하면 입술을 꼭 깨물고 억지로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이 엄마는 딸에게 잘못을 시인하는 법을 가르키려고 노력했다. 이제 잘못을 시인할 줄 알지만, 그 안에 가득한 자존심은 여전하다.
아이가 잠들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아내에게 무심한 듯 물어본다. “아까 낮에는 왜 그랬던 거야?” “뭐?” “울었던거.” “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고 뭔데?” “거울을 봤는데, 갑자기 자기 볼하고 눈이 예전하고 다른 것 같다고… 자기가 변해가는 것 같아서 슬퍼졌데.”
그러고 보면 딸아이는 몇달전에 비해서 젖살이 빠져서 볼이 헬쭉해졌으며, 눈이 더 커졌다. 어른에게 나이가 먹음은 주름하나 더 생기고,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매일 매일이 다르다. 작년에 아빠의 허리띠가 눈높이였다. 지금은 아이의 눈은 내 배꼽과 같은 높이이다. 매년 달라지는 눈높이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대부분은 그러한 변화를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받아들일 텐데 이 녀석은 아쉬움으로 느낀다.
“여보도 어렸을 때 그랬데?” “뭘?” “감성적인거…” “아 나도 어린 시절생각하면서 운적이 있데.” “여보 닮았구나?” “그치만 저정도는 아니었지 싶어.”
역시나 생소하다. 아이가 감수성이 풍부한 것은 감사할 일이다. 세상이 쉽지 않은데 그러한 감수성을 가지고 사는게 쉽지 않을 것 같아 그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