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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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재학중인 학교 후배와 잠깐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다른 전공의 졸업반과 마찬가지로 MBA 졸업을 앞둔 사람들의 고민도 취업이다. 미국 취업을 생각하는 그 후배에게 몇가지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실 내가 줄 수 있는 소소한 팁 정도는 이미 그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별 말이 필요 없었다. 밥이라도 사주려고 했는데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다음번에 아틀란타에 올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맛있는 밥을 사주마 하면서 그를 보냈다.

한국에서 자라서 교육을 받은 토종 된장남이 미국 현지 취업 기회를 잡는 일은 흔치않다. 한국과 미국의 게임의 법칙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특히 문과 계열은 취업시장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물론 영어로 native와)과 프로페셔널한 태도(미국 기업문화에 맞는), job과 industry에 대한 열정 등으로 승부를 봐야하는데 문화와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크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년의 내가 생각났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어짐을 경험했었다. 졸업을 1주일 앞두고서야 job offer를 받았고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었다. 당시 나는 가족 기숙사에 있었는데, 규정상 졸업 후 한달안에 짐을 빼야 했다. Job도 없었고 미국에 가족/친구도 없는데, 그동안 늘려놓은 세간살이들과 부양가족을 데리고서 어디로 이사해야 할 지 답이 없었다. 미국에 가져온 얼마 안되는 돈은 학비로 거의 썼기에 당장 생계도 고민해봐야 할 판이었다.

세상에는 매일 생계의 위협을 마주하며 사는 분들도 많다. 이정도의 경험은 그분들에 비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개인적으로 내가 하고 싶고, 해야한다고 믿었던 일을 하려고 하면서 맞닥드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많을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때에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확실해야만 버틸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선택의 무게를 부양 가족들에게도 지워야 할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몇가지 없다는 것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낮아지는 시간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job을 구했으니 나름 해피엔딩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는 곳간을 늘일 걱정을 하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누가복음 12장 13-21절)이다. 20대 때 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것은 물질 만을 추구하는 삶과의 결별이다. 한때 그러한 삶이 선교사가 된다던가 full time social worker가 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면에서 세상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소위 ‘사역’의 길을 말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를 기독교 사역자/선교사/사회 봉사로 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폭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은 물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과 똑같이 밥먹고, 가족들 부양하며, 애쓰며 땀흘리며 산다. 거친 세상에서 아둥바둥 사는 모습이 별로 다를 리는 없다. 그러나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같은 행위를 해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진지한 그리스도 인은 물질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부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만약 부가 따라 온다면 그것은 본질이 아니고 덤 같은 것이다.

다만, 진지한 그리스도 인은 물질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재능을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는데에만 쏟는 사람들에 비해서 힘든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그어 주는 것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여기 전문을 옮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속히 오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용서해 주소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현대인의 성경, 마태복음 6장 9-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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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이 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처음 부분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하고 두번째 부분에서는 사람의 일에 대해 말한다. 바로 두번째 주제로 전환할 때 처음 나오는 언급은 ‘일용할 양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기도문은 산상수훈 중에 나오는 기도문이다. 따라서 이 전환을 산상수훈의 큰 주제인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과 연결해서 생각해보았을 때 의미가 남다르다. 예수님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생계에 대한 염려에 대해 기도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주기도문에 이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새는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새를 기르신다. 너희는 새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중략)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마태복음 6장 26-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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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하자. 내가 선택한 길들이 숭고한 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럴 깜냥도 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하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면 부자가 된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읽었다면 선입관 또는 기분 탓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이 너무 거대하게 들려서 왠지 그 대가(?)가 엄청난 부나 편안함을 보장할 것 같은 생각이 든것이 아닐까 싶다. 예수님은 필요한 딱 그 정도를 주시고, 굶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나의 경우는 낙담을 경험했을 때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말이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분들, 그리고 지금도 일용할 양식을 위해 매일 힘쓰는 분들에게 예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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