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번역/출간되었다. 그는 돈이 돈을 버는 속도(r)가 경제 성장률(g)보다 빠르다고 이야기 했고, 잘사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될 뿐이라는 주장을 통계적/실증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가 던진 화두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아주 시의 적절해보인다.
나의 짧은 인생 경험으로 보건데, 있는 집 사람들은 대체로 착하다. 예의바르고 교양이 있다. 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 시절에 만나본 있는 집 자제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세상에 찌든 느낌이 없다고 해야하나.
같은 맥락에서 사회지도층들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인간적으로 좋은 분일 가능성이 높다. 삼성에 일할 적에 먼발치에서 이재용씨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예의바르고 교양있는 사람이었다. 듣기로는 정몽준씨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유한 동네 아저씨라고 한다. (돈이 좀 있으신 동네 아저씨라서 그렇지…ㅎㅎ) 돈이 있으면 구질구질하게 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일까?
구질구질하게 산다는건 무엇일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시절. (크리스찬이니까 주안에서라는 단서를 달긴 했더랬다.) 그시절 나에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은 죄였다.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 미래는 내가 개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어찌 그리 만만하기만 할까. 몇번 깨져보면 그래도 아쉬운건 몇푼 되지 않는 통장잔고, 한국에서의 학벌, 나이가 몇개인데 하는 자존심 같은 것이다. 남자라는게 어찌보면 한줌밖에 안되는 가진 것으로 호기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되면 그 방식이 조금 세련될 뿐이지…
쉽게 돈을 벌면 구질구질하지 않게 살 수 있을까? 쉽게 돈버는 일 치고 떳떳한 일이 없다. 남의 등쳐먹고 사는게 가장 쉽게 돈버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감옥에 가 마땅한 일.
30대/40대가 되면 사회의 일원이 되고 책임을 지고 살아야하는 입장에 서게된다. 사람들이 큰 돈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살까? 오히려 대부분은 작은 일 때문에 구질구질해진다. 회사에 몇년 더 있었다는 것, 나이 몇살 더 먹었다는 것,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 등등… 뭐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움켜잡는 길이 구질구질하지만 편하게 살아가는 법이다. 누가 처음부터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겠냐마는 나이 먹고보면 별 수 없는게 사람인지라 젊은 시절의 활력은 모두 저만치 가버리고 조금이나마 편하게 살고 싶어진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우리 아버지는 아들을 구질구질하게 살게 하고 싶지 않으셨다. 딱히 넉넉한 적은 없이 살았던 우리가족. 그래도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해본 기억은 없다. 내가 중학교 다닐 즈음, 아버지께서 소득이 없어 고생하셨다. 그래도 부모님은 그것 때문에 내게 부담을 지우신 적은 없었고, 어떻게 가계가 굴러 갔던 것 같다. 내게 조금이라도 유한 부분이 있다면 아버지의 희생 때문이었으리라.
아직은 활력이 남아있는 30대 중반이다. 젊게 사는 것은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해야만 할 일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구질구질하지 살지 않기를 바라며 젊음을 바치셨는데, 아들이 나이가 들었다고 구질구질하게 살아서는 안될 일이다.
내가 조금 구질구질하게 살다면, 그래서 재산이 조금 더 쌓인다면, 나의 자식은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조금의 도움이 될런지도… 그러나 그것은 나를 사랑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배반이고, 자식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편해지려고 한다면 나는 한없이 구질구질한 사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읽은 ‘노인과 바다’의 한구절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I told the boy I was a strange old man,” he said. “Now is when I must prove it.” The thousand times that he had proved it meant nothing. Now he was proving it again. Each time was a new time and he never thought about the past when he was doing it.
“내가 이상한 노인이라고 그 애한테도 말했지.” 그는 말했다. “이제 그걸 증명해 보일 때야.”과거에 이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을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그걸 다시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