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gnet
셋째날 점심은 seafood로 결정했다. 휴양지에서 먹는 외식은 비싸고 맛이 없기가 쉽지만 바닷가에서 seafood를 포기하자니 왠지 아쉬웠다. 가기로 한 곳은 이름만 들어도 냄새가 날 것 같은 Stinky’s라는 곳이었다.
다행히 냄새가 나는 곳은 아니었지만 서빙을 하는 금발의 여자가 피로에 찌들어 보였다. crab cake, grilled grouper, fried shrimp를 주문하는 동안 한번도 웃음을 짓지 않는다. 무표정한 그녀가 딱 한번 웃음을 지었는데, 우리가 beignet을 주문할 때였다. 그녀의 웃음은 ‘그래 촌놈들. 이제야 제대로 메뉴를 골랐군.’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image source: flickr)
beignet은 New Orleans 음식인데, 쉽게 말하면 밀가루 덩어리를 도너츠 처럼 튀기고서 파우더 슈거를 입힌 디져트이다. 프랑스 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New Orleans가 프랑스 이주민과 관련이 깊은 도시라서 그렇다. 내가 느끼기에는 뭐든지 튀기고 달게 만들어서 몸에 나쁘게 하는 미국 스타일 음식일 뿐이었다. 뭐 경험삼아 먹어볼 만은 하다.
석양의 결혼식
숙소로 돌아오니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다. 오늘 이 호텔에서 7개의 결혼식이 있다고 한다. 호텔이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있는 것은 백사장 때문이다. 정확히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서 결혼식이 진행된다. 백사장에서 치루는 석양의 결혼식이라. 로맨틱하게 여겨질 법하긴 하다.
옆에서 힐끔 본 바로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결혼식이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모래 덩어리가 되기 쉽상이다. 하객들의 의자에도 모래가 가득하다. 그래서 인가 보다. 서약을 마친 후에 사진 몇장 찍고서 모두들 성급히 자리를 뜬다. 사진으로는 몹시 낭만적이다. 나중에 신랑신부가 앨범을 들춰보면 석양이 기억에 남을까 아니면 어설픔이 기억에 남을까.
아이폰 지문인증
해가 지고서 숙소로 들어왔다. 사흘째이니 그만큼 추억도 쌓였다. 아내와 나는 핸드폰에 모인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딴일을 하는 사이에 딸아이가 나의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삐죽거린다.
아이의 불만은 아이폰의 지문인식 잠금기능이었다. “불공평해. 엄마 핸드폰은 잠금 설정이 되어 있지 않은데, 아빠 핸드폰은 잠겨 있어. 그러면 엄마는 아빠 핸드폰을 볼 수 없고 아빠만 엄마 핸드폰을 쓸 수 있잖아.”
전형적인 딸내미 화법이다. 자기가 아빠 핸드폰을 쓸 수 없다는 불만을 돌려서 말하고 있다. 아이는 말을 트기 시작한 네다섯 살 때도 돌려 말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내가 초콜렛을 먹는데,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잊었다고 하자. 아이는 살며시 옆에 와서 귀에다가 입을 대고서 속삭인다. “나도 초콜렛 좋아하는데.”
나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특히 여자 사람 말의 미묘한 뉘앙스는 절대 알아채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딸아이가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 그래서 딸이 구사하는 여자 나라 언어를 독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여자나라 말 입문과정이라고 할까.
고민 끝에 아이도 아이폰 잠금해제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설정 메뉴로 가서 지문 추가 등록 버튼을 눌렀다. 아이가 핸드폰에 엄지 손가락을 수차례 붙였다가 띠었다가를 반복했다.
‘Registered.’ 아이가 아이폰을 접수하는 순간이다. 딸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딸램은 테스트까지 해본다. 아이폰을 옆에 두었다가 자동으로 잠길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서 엄지를 척 올려 놓는다. 마지막으로 자기 지문이 통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깔깔 웃는다.
<목차>
데스틴 여행기 – 첫째날 (2) : 알라바마와 플로리다, 목화와 야자수
데스틴 여행기 – 셋째날 : 석양의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