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는데, 김영하 팟케스트를 통하였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일상의 어떤 사건을 다루는 소설의 섬세함은 나에게 충분한 호감을 주었다.
이를테면 마지막에 헤더가 로버트의 방에 있다가 바깥의 학생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던지. 남자친구인 콜린과 처음으로 관계를 갖는 장면이라던지.
침대 옆에 누워서 딴짓을 하던 아내도 어느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다. 아내의 감상은 나와 사뭇 다르다. 소설이 붙들고 있는 기억의 한 자락이 아내의 무엇인가를 건드린 듯하다. 그러한 경험은 소설을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든다.
여자의 심리를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가 남자라니. 아내는 잘 믿지 못했다. 일상의 디테일을 포착하여 글을 썼으니 필시 경험이 창작 동인이 되었을 텐데.
<대성당>을 읽을 때. 레이먼드 카버가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으나, 카버의 이야기는 절대로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되지 않는다.
차이는 아마 시점이 아닐까 싶다. 포터의 소설은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데, 그 차분한 절제가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기억의 쪼가리가 읽는 사람의 기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건조한 문장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소설의 이야기와 내 기억이 일치하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책을 사서 표제작 외에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내 기억과도 맞춰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