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Swam to Escape Syria. Now She’ll Swim in Rio – NYT

잊고 있었는데, 올림픽이 코앞이다.

어제 재미있게 읽은 기사가 있어 공유한다. 시리아 난민 Mardini 이야기. 그녀는 시리아를 탈출할 때 지중해를 수영했고, 이제 리우에서 수영을 할 것이다.

리우올림픽에는 난민팀이 따로 구성된다고 한다. 시리아, 남수단, 콩고, 에디오피아 난민들이 그 대상. Mardini는 이번에 난민팀으로 출전한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시리아는 중동에서는 비교적 평화로운 국가였다. 그리고 Mardini는 수영밖에 모르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2011년 전쟁이 나고, 이어 2012년 그녀가 사는 Daraya에 대학살이 벌어진다.

가디언 기사: Syria’s worst massacre: Daraya death till reaches 400

그녀 가족은 망명을 결심하고, 지중해를 건너기로 한다. 배를 구했다. 6명 정원 구명보트에 20명이 탔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엔진이 죽어버렸다. 배에서 유일하게 수영을 할 줄 아는 그녀와 동생이 세시간 반동안 지중해를 수영해서 터키와 그리스 경찰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원래는 수영이 가능한 다른 두 청년이 더 있었는데, 포기하고 배를 떠났다고.) 그녀는 수영 선수라 수영하다 죽는구나 싶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 도착한 그녀는 같이 훈련했던 친구가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소식에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refugee team이 되어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것.

그녀의 인터뷰 중에 인상깊었던 부분을 옮겨본다. 시리아에 있을 때, 친구들과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들 세계에서 대부분의 일상은 평소와 다를바 없었다. “우리는 전쟁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어요. 짜증나거든요. 처음에는 모두들 전쟁 이야기를 했죠. 나중에는 아무도 그 얘기를 안했어요. 대신에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죽을테면 죽으라지. 나는 그냥 내 삶을 살꺼야. 난 그냥 친구들하고 노는 게 좋아.”

전쟁 중에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시리아 내전도 이미 6년 째이다. 최근에 본 9분 짜리 PBS 동영상이 하나 생각났는데, 아울러 링크를 걸어둔다.

World’s largest Syrian refugee camp has developed its own economy (PBS, 6월 18일자)

동영상은 요르단에 설치된 시리아 난민 캠프 이야기다. 전쟁이 오래 갈줄 몰랐기에 임시(?)로 난민 캠프가 설치되었는데, 지금은 8만명의 시리아인이 거주하는 일종의 소도시가 되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도시의 기본 기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빵굽는 사람, 이발사, 학교들이 생겼고, 소규모 경제활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한국도 피난민들이 모여서 부산에 깡통시장이 생기고 국제시장이 커지지 않았던가. 전쟁통에도 평범한 사람들은 어찌저찌 살아가지 싶다. Mardini에게는 수영이 그 평범한 삶 중 하나였으리라.

반총장과 UN의 쇠퇴

한 블로거께서 UN 사무총장에 대해서 잘 정리해 둔 내용이 있길래 스크랩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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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사무총장에 대한 한국언론 기사를 접할 때마다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한국인이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자랑스러워 하면서 정작 UN이 어떤 일을 하는지, 국제 정세는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반총장이 한국 정치와 연결되고 나서야 외신의 평가를 (본인의 정견에 맞추어서) 옮기기에 바쁜 모습을 보면 무척 허탈해 진다. 그나마도 부정확한 정보와 카더라가 대부분이다.

블로거 쥔장께서 링크 글에 UN 사무총장이라는 주제를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으로 정리해 주셨다. 재미있게 읽었기에 공유한다.

리우 올림픽과 샤라포바

샤라포바가 도핑파문으로 2년간 출장 정지를 받았다. 테니스 팬들에게는 아쉽겠지만, 올해 리우에서는 샤라포바의 강한 샷과 괴성은 없을 듯.

두달 앞으로 다가온 리우 올림픽은 여러모로 우려가 되는데, 대표적으로 도핑문제가 큰 이슈가 될 듯 하다. 특히 러시아 육상쪽은 너나 할 것 없이 도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뉴욕타임즈는 지난달부터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 체육계는 NYT에 소송을 진행 중이다.) 러시아 도핑은 몇몇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주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한다. 말이 많았던 2014년 소치. 심지어는 소변 샘플 바꿔치기 까지 했다고.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상당수의 메달리스트들도 해당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다고 하니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How Far Is Europe Swinging to the Right? (NYT)

이번주 초에 있었던 오스트리아 선거 이후, 유럽의 우경화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아 졌다. NYT에 그래프로 깔끔하게 요약해 준 기사가 있어 공유한다. (한눈에 들어오는 차트가 아름답지 않습니까. 맞아요, 저 그래프 성애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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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간발의 차이로 선거에서 진 Austrian Freedom Party (image source: 해당기사)

Among Koreans, Giving Death Your Best Face (NYT)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한석규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기억해 주기 원하는 자기 모습을 남겨 둔다는 행위가 낯설었다.

독거노인 영정사진을 찍어 드리는 봉사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분들이 경건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묘한 느낌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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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기사에 공감한다.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해두는 일은 지극히 한국적인 풍습이다. 영정사진에는 지금의 나의 모습, 내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다른 이에게 기억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동시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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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미교포가 한인 교회를 순회하며, 영정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진들을 찬찬히 보았다. 사진에 타국 생활에서 오는 고단한 세월의 흔적, 자식 손주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소망,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짠하다.

미디어가 과학을 소비하는 법, 그리고 그 폐해

“Science is by its nature imperfect, but it is hugely important.”

블로그에서도 몇번을 언급했지만, 나는 John Oliver쇼의 애청자이다. 지난 주말 방송은 그중에서도 베스트로 꼽을만 했다. Vox에서 지난 주 에피소드를 소개하길래 공유한다.

John Oliver exposes how the media turns scientific studies into “morning show gossip” (Vox, 5월 9일자)

존 올리버도 언급하지만, 오늘날 미디어가 과학을 소비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가십 위주이다. 이를테면, 커피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든가, 방귀가 암예방에 도움이 된다든가 등등…

미디어의 가십위주 과학 소비는 대중의 인식 속에 과학을 흥미거리로 전락시켰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뉴스를 듣다보면 도대체 커피가, 포도주가, hug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자기 편한대로 끌어다가 믿어버리면 된다.

이는 대중이 유사과학을 맹신하게 하는 부작용마저 만들고 있다. ‘기후 변화는 거짓이다’나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 같은 터무니 없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학적으로는 유의성이 약한) 이야기가 최근 힘을 얻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명제는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 거짓이라는 과학적 공감대 scientific consensus가 형성되어 있는 바이다.

“No! No, no, no, no, no, no, no, no! In science, you don’t just get to cherry-pick the parts that what you were going to do anyway. That’s religion. You’re thinking of religion.”

다시한번 깊이 공감하게 되는 John Oliver 이야기.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대중은 ‘섹시’한 결론만을 듣고 싶어하지만, 과학은 느리게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되어 가는 과정과 방법론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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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태 뒷이야기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뒷이야기가 아닌 시작이야기.

“기이한 질환, 2006년 시작된 공포… 공기 중 떠다니는 그 무엇이 문제였다” (경향신문, 2013년 7월 26일)

캡처

의학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이 분들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봄철 괴질로 불리는 폐질환에 이유도 모르고 사람들이 죽었을테다.

세상은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돌아간다.

+ 덧: 참고로 이 기사는 3년전에 쓰여졌다. 이미 사실이 밝혀지고도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 까지 삼년이 걸렸다.

A Shocking Way (Really) to Break Bad Habits

Pavlok이라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어제 일자 NYT기사.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한 기계라는 데, 원리는 간단하다. 설탕섭취, 흡연, 손톱 물어뜯기등의 행동을 할 때마다 따끔한 전기 충격을 손목에다 가한다. 이름은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따왔다고. (그런데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벌주는게 아니고 밥주는 거였는데…)

창업자는 페이스북 중독을 고치려고 사람을 샀는데, 그 사람이 페북을 열 때마다 따귀를 때렸다고 한다. (헐…) 그 경험을 활용해서 아예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만들었다고.

음욕이 일때마다, 허벅지를 바늘로 찔렀다는 청상과부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3시절 졸릴 때마다 샤프로 손톱 밑을 찔렀다는 어떤 선배의 전설이 생각나기도 하고.

아. 또 생각나는 이야기. 어렸을 때, 티비에서 ‘금연주식회사’라는 영화를 봤다. 나중에 찾아보니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담배를 끊으려고 어떤 회사에 의뢰를 했는데, 첫번째 실패 때는 부인을 전기 토스트 시키고 (죽지는 않을 정도로만), 두번째는 딸을, 세번째는 부인을 강간(!), 네번째는 의뢰인의 생명을 가져간다는 무시무시한 계약을 하게된다. 그 영화가 인상 깊어서 며칠 동안 고양이 이미지가 머리 속을 둥둥 떠다녔다. (왜 고양이인지는 영화를 보면 안다. 참고로 ‘금연주식회사’는 첫번째 에피소드고 영화 제목은 캣츠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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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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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드류 배리모어의 아이 모습은 보너스)

글쎄다, 제품이 엽기적이어서 엽기적인 이야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우리나라에 수험생 잠깨우기 용도로 팔면 장사가 잘 될런지도. ㅠㅠ

Listen Carefully for Hints of the Next Global Recession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교수의 NYT 기고문.

공황의 심리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칼럼에 따르면 1929년 대공황도 불황을 예측하는 한 페이퍼에서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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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해당 페이퍼 링크

전문가들은 뉴노말, 불평등, 세계화, 자동화 같은 우울한 이야기들을 입모아 이야기 하고, 모두 다 합리적인 이야기이지만, 결국 그 전망들이 실현되는 것은, 실러 교수의 말대로, 인간의 상상력 human imagination에 달린 일이 아닐까 한다.

시장통의 갑남을녀가 경제계에서 이뤄지는 모든 논의를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지만, 결국 그 전망은 정치인에게/주식시장에/유가에/유통업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갑남을녀도 체감하는 경기가 되는 게 아닌가.

+덧: 오늘 따라 잡담이 많다. 빨리 퇴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