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log: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말과 글

작년 이맘 때 쓴 글.
페북이 알려줘서 다시 읽어봤다. 재공유한다.

Isaac의 생각저장 창고

말과 글은 그사람의 지적인 수준을 드러낸다. 5년 전인가 서울에서 지하철에 탔을 때 였다. 한 이쁘장하게 생긴 처자가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그 처자가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이 좀 신기했다. 그처자는 ‘대박’이라는 단어 만을 사용하여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대박~’, ‘대~에~박’, ‘대!박!’, ‘왠일이니?’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잘 쓰는 말이 있다. ‘Oh my God!’와 ‘you know’이다. 나도 처음에는 미국 사람스러운 감탄사를 적절하게 섟어주는 것이 영어를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내다보니 이런 표현을 많이 사용하면 오히려 없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아이도 그랬고 나도 그렇고 언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슬랭이나 욕을 먼저 배운 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쓰고 나면 네이티브에 가까워 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처음 우리말 욕을 배웠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왠지 표현을 속 시원하게 한 것 같았다. 자극적인 표현은 내 속에 진실함이 없기 때문에 자꾸 생기는 것이다.

나는 꾸밈말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꾸밈말(부사,형용사)은 더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말을 할 때에 꾸밈말을 필요이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표현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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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

이번주에 회사에 제레미 리프킨 아저씨가 오신다고…  가볼 생각이다.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평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 하는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학문적인 엄밀성이나 과학적인 토대는 다소 약하지 않은가 싶다.

물론 감히 나 같은 평범한 이가 이렇게 툭 던저서 평가할 만큼의 레벨도 아니고, 통찰력과 박학다식하심으로 유명한 분이시니… 사실은 은근히 기대 중이다. (저자 친필 사인 책을 받을 수 있다고… ㅋㅋ)

오지만디아스와 시편 89편

자연과 인간 문명의 허망함에 대해서 언급한 김에. (이전 포스트)

article에 언급된 영시를 찾아보았다. 일부를 인용한다.

Ozymandias by Percy Bysshe Shelley (1792-1822)

(앞부분 생략)

And on the pedestal these words appear:
아래 받침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kings: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 왕이다.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내 위업을 보라, 그대들이여, 그리고 절망하라!”

Nothing beside remains: round the decay
그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Of that colossal wreck, boundless and bare,
그 거상의 잔해 주변에는 끝없이 텅 빈,

The lone and level sands stretch far away.
외롭고 평평한 사막이 멀리 뻗쳐 있다.

오지만디아스는 람세스 2세의 그리스식 이름이다.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파라오로 추정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집트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에 위대했던 한 왕의 조각상에는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라고 써있었다고. 그 웅장한 조각상이 사막위에 버려진 모습은 시인의 마음에 어떤 감흥을 일으켰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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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아울러서 생각나는 성경구절이 있어서 같이 인용해둔다.

내 생명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는 모든 인생을 정말 허무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자가 어디 있으며 무덤에 들어가지 않을 자가 어디 있습니까? (현대인의 성경, 시편 89:47-48)

그리고 참고로 시의 저자 퍼시 셸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남편이다.

산티아고, 네루다가 살던 곳

여행 중에 유명인이 살았던 집을 방문하면 실망하기 일 수 이다. 가끔 기념품 코너에서 쓸만한 물건이라도 건지면 다행이다.

NYT travel section에 따르면 네루다의 집들은 가볼만 한 듯하다. (In Chile, Where Pablo Neruda Lived and Loved, NYT 2015년 12월 16일자) 시인이었던 그는 로맨틱한 시도 썼던 것으로 아는데, 집을 아담하게 꾸미고서 아내(들)에게 사랑을 표현했다고. 입구부터 연인을 향한 애정이 가득하다. 아치문 주위에 그려진 새와 포도나무 장식. 그는 타고난 로맨티스트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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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에는 친구이자 민중화가인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의 남편)에게 받은 선물 장식을 비롯 그가 세계 곳곳에서 사모은 집기들이 있다고 한다.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면 집안 구석구석에서 집주인의 섬세한 취향을 발견할 수가 있다. 언제가 될런지 모르지만, 칠레 산티아고에 방문하면 꼭 들려야 할 장소로 네루다 생가를 선정해 두었다.

아쉽게도 나는 시와는 별로 안친한 편이라,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면서 민중문학의 히어로인 네루다는 이름만 들어보았다. 그나마 그에 대한 지식은 그를 모델로한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그리고 영화 <일포스티노>가 전부이다. 생각난 김에 오늘 밤에는 <일포스티노>를 보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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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후략)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옮김) – 시가 내게로 왔어

The Day Jobs That Inspired Famous Authors

유명한 작가들의 직업 (전업 작가가 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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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https://www.adzuna.co.uk/blog/2015/11/23/the-day-jobs-that-inspired-famous-authors/)

Fifty-Seven과 미국의 교정 시스템

이번주에 읽은 단편. 역시 뉴요커에 전문이 공개되어 있다.

Fifty-Seven by Rachel Kushner 11월 30일자 New Yo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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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뉴요커 해당 소설)

소설의 문체가 낯설었다. 주인공이 되내이는 생각과 단어들이 파편이 되어 튀어나온다. 랩, 아니면 하드락을 듣는 것 같다.

도입부를 옮겨본다.

They dropped him from I.R.C. so early the sky was black. He walked until he found himself stranded on the median of a freeway entrance, cars streaming toward him with their blinding lights, like a video game where the enemies come right at you, motherfuckers just keep coming straight at you one after the other, bam bam bam.

나는 소설의 도입부를 읽을 때 조금 긴장한다. 그건 소개팅에 나가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전까지의 긴장감 같은 거다. 그런데 Rachel Kushner (소설의 저자)는 처음부터 나에게 총을 쏘아 댄다. Bam bam bam.

소설은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당일 skid row 밑바닥 인생인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 후반부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주인공의 교도소 생활 이다.

감옥 이야기는 인기있는 소재임이 틀림없다. 감옥 관련 영상물이 연상된다. 친절한 금자씨, Orange is the new black, Oz 등등…

창작의 세계 보다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다음은 인구 10만명당 교도소 수감자 수 비교 차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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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Santacroce님 포스트 재인용)

미국의 형법은 강력한 처벌을 원칙으로 한다. 그만큼 감옥 수용자의 숫자도 어마마 하다. 경범죄로 잡혀들어간 이들이 그안에서 돌다가 중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삶에는 관성 같은 것이 있어서 잘못 굴러가다 한번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또한, 미국 교도소는 죄수들의 문제에 대해 방임이 원칙이다. 방임 아래서 새로운 범죄 사회가 탄생 한다. 감옥 내 갱단이 있고, 인종 갈등이 있으며, 성폭행과 잔혹행위가 만연한다. 주정부 예산 문제로 교정 시스템의 정상화는 답이 없어 보인다.

가끔 한국에도 미국식의 강력한 처벌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나는 죄를 지은 만큼만 벌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죄를 지은 만큼의 벌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Three-strike lawMandatory Minimum Sentence (주로 마약 사범들) 같은 가혹한 형법 규정들은 논란이 되곤 한다. 이를 테면 20불을 훔친 범죄자가 삼진룰 (Three-strike law)에 걸리면 종신형이 선고될 수 있다. 21세기 장발장이다.

어쨌든 단편 이야기를 다시 하자. 주인공은 무자비한 범죄자이다. 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서 사제 무기를 만들어 또 사람을 ‘조진다’. IQ 57의 길거리 인생 주인공의 삶에는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를 방치하고 격리한 세상도 그에게 무심하다. 다만 펠리칸 pelicans 만이 교도소에 입소하는 그를 반길 뿐이다.

뉴욕타임스 선정 2015년 10 best books

The 10 Best Books of 2015 (12월 3일자,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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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NYT 해당기사)

논픽션 부분에서 눈에 띄는 책이 몇 권 있었다.

Between the World and Me

오바마가 휴가지에서 읽었다고 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책.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슬픔의 감정을 잔잔하게 풀어간다고 들었다. 작가가 아들에게 남기는 말을 옮긴다. “We’d summoned you out of ourselves, and you were not given a vote. If only for that reason, you deserve all the protection we could muster.”

Empire of Cotton: A Global History

석유가 20세기를, 설탕이 18세기를 대표한다고 하면 19세기는 면화로 대표된다. 면화에 얽힌 역사는 필연적으로 노예제도와 연결이 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내가 사는 조지아주는 면화의 역사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라, 더 흥미가 간다.

One of Us: The Story of Anders Breivik and the Massacre in Norway

2011년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를 다룬 르포타쥬. 어린이를 포함 77명을 살해한 아네르스 브레이비크는 여권운동 혐오와 무슬림 추방을 말했다. 유사한 비극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진행중이다.

The Gospel According to Garcia by Ariel Dorfman

이번 주 읽은 단편. 잊기 전에 남기는 메모.

뉴요커에 전문이 실려 있다.

The Gospel According to Garcia by Ariel Dorf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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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뉴요커 수록 소설 이미지)

짧은 단편이지만, 다양한 은유로 읽힐 여지를 남긴다. 예전에 고현정이 나왔던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칠레 출신 망명자인 작가의 배경 때문인지 파시즘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이 었던 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가르시아’에 대한 궁금증이다. 끝까지 왜 그가 사라졌는지 밝히지 않는다. 미스터리는 이야기를 읽게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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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는데, 김영하 팟케스트를 통하였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일상의 어떤 사건을 다루는 소설의 섬세함은 나에게 충분한 호감을 주었다.

이를테면 마지막에 헤더가 로버트의 방에 있다가 바깥의 학생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던지. 남자친구인 콜린과 처음으로 관계를 갖는 장면이라던지.

침대 옆에 누워서 딴짓을 하던 아내도 어느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다. 아내의 감상은 나와 사뭇 다르다. 소설이 붙들고 있는 기억의 한 자락이 아내의 무엇인가를 건드린 듯하다. 그러한 경험은 소설을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든다.

여자의 심리를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가 남자라니. 아내는 잘 믿지 못했다. 일상의 디테일을 포착하여 글을 썼으니 필시 경험이 창작 동인이 되었을 텐데.

<대성당>을 읽을 때. 레이먼드 카버가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으나, 카버의 이야기는 절대로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되지 않는다.

차이는 아마 시점이 아닐까 싶다. 포터의 소설은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데, 그 차분한 절제가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기억의 쪼가리가 읽는 사람의 기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건조한 문장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소설의 이야기와 내 기억이 일치하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책을 사서 표제작 외에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내 기억과도 맞춰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