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캐릭터가 당신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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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찰리 브라운 이야기를 한 김에 하나더.

영화를 보고서 딸아이에게 뭐가 가장 재미있었는가 물었다. “스누피!” 주저함이 없다.

생각해보면 찰리 브라운에서 주인공인 찰리의 인기가 스누피를 넘어선 적이 한번도 없다. 재미난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리는 강아지가 인기의 중심이다.

하지만… 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찰리에게 시선이 가 있었다. 불운은 언제나 그녀석만 따라 다니더라. 그리고 풋내기 짝사랑 하던 소녀. 해도해도 안되는 일들. (학창시절 나는 운동에 젬병이었기에 공감도 쉬웠다.)

같은 영화를 봐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점이나 공감하는 캐릭터는 다르게 마련이다. 주로는 그 공감하는 캐릭터가 자신을 말해준다. 이를테면 요즘 딸아이는 스누피다. 가끔 스누피 처럼 말썽을 부리는 딸아이가 버겁다.

누가 둘리를 보고서 공감이 느껴지면 아이, 고길동에 공감이 느껴지면 어른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Peanuts Movie

어제 Peanuts Movie를 봤다. 2015년 버전 찰리브라운이다.

그 김에 오늘은 딸램이랑 같이 찰리브라운, 스누피 그림을 그려보았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부모팬들의 추억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 게다가 1960년대 미국문화코드가 있어서, (다이얼 전화기, 타자기 등등…) 미국판 만화버전 ‘응답하라 60년대’ 같은 느낌이다. 찰리브라운이 팬시 캐릭터로만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흥행할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

미국 만화는 전통적으로 히어로물이 많다. 반면 여기서는 주인공이 실패를 거듭하는 찰리이다. 그렇다고 실패를 조롱의 요소로 사용하는 부류의 미드 루저 코믹물은 아니고, 아주 착한 영화이다.

잔잔해서 몰입하는데에 시간이 좀 걸린다. 잠이 들 정도는 아니다. 나는 심지어 마지막에 찰리가 실패(?)하고 뒷모습을 보이는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래도 나는 쓸쓸한 뒷모습에 약한가 싶다.

‘It isn’t nice’ sung by Judy Collins

(가사 번역)

거리를 가로막고 시위하는 것은 좋지 않죠
감옥에 가는 것도 좋지 않아요
주장을 펴는 더 점잖은 방법이 있긴 하죠
하지만 그런 점잖은 방법들은 언제나 먹히지 않아요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거듭거듭 말해요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거나
주저앉아 농성하는 일이 좋지는 않아요
멋진 호텔이나 가게 앞에서
자유를 달라고 악을 쓰는 일도 그래요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거듭거듭 말해요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

협상을 하려고 해봤죠
법에 따라 1인 시위도 해 봤어요
그런데 상대방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아예 눈과 귀가 닫혀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같이 좋지 않은 일을 해요
얼음장 같은 인간과 상대하려니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

저쪽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가요
등 뒤에서 총질을 하는 것은 어떤가요
당신은 그게 좋지 않다고 말한 적 있나요
지금처럼 당당하게 나서서 말했나요
그저 쥐새끼처럼 닥치고 있었잖아요
이제 우리보고 좋지 않다고 말하는 거에요?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

거리를 가로막고 시위하는 것은 좋지 않죠
감옥에 가는 것도 좋지 않아요
주장을 펴는 더 점잖은 방법이 있긴 하죠
하지만 그런 점잖은 방법들은 언제나 먹히지 않아요
좋지 않아, 좋지 않아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거듭거듭 말해요
네네 당신의 사려깊은 조언 감사해요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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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Jane Eyre(2011)’를 보고서

지난달 이사를 마치고 영화를 세편 보았다. 이번 이사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단했기 때문에 위로가 필요했다. 아내와 함께 여성 취향의 영화로 세편 보았다. 제인에어(Jane Eyre(2011)), 와일드(Wild), 이너프 세드(Enough Said). 잊기 전에 시간 나는대로 하나씩 짧게 감상을 남길 생각이다. 오늘은 Jane Eyr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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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같이 볼만한 영화를 고를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로맨스 영화이다. 그 중에서 아내가 고등학교 때 즐겨 읽었다는 제인에어를 골라봤다. 브론테 자매의 소설은 언젠가 읽어 봐야지 하면서도 손에 잘 안갔다. 영화로 책읽기를 대신하려는 얄팍한 생각도 있었다.

요크셔와 브론테 자매

영국 리즈(Leeds)에서 버스로 1시간 반 정도 이동하면 하워스(Haworth)라는 시골 동네가 나온다. 2003년 봄에 이 동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브론테 자매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감흥이 크지 않았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 요크셔 사투리
– 영국 외딴 촌동네 풍경
– 10분 정도 올라가는 언덕길
– 기념품 가게들
– 브론테 자매 박물관
– 그리고 황량한 들판 (moor) 이다.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딱히 남겨둔게 없다. 요크셔 지방은 지금이나 그때나 척박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황량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브론테 자매가 쓴 소설 ‘폭풍의 언덕’은 을씨년 스럽다. 소설을 읽고서 을씨년 스런 언덕이 떠오른다면 그게 딱 하워스이다.

제인에어가 로체스터가를 뛰쳐나오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때 제인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황량한 풍광은 제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하다. 멀리서 잡은 카메라의 시선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어디서 갑자기 귀신이 나와도 자연스러울 분위기. 카메라의 시선 때문인지 제인은 쫓기는 것 처럼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에서 탈출을 시도 했던 것일까.

고딕소설

고딕 소설은 쉽게 말하면 호러와 로맨스가 결합된 장르의 소설이다. 여기서 고딕은 중세의 건축 양식을 말하는 그 고딕이다.

중세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호러와 잘 어울린다. 무너져가는 저택과 성. 그리고 몰락한 귀족. 고1 때 에드가 앨런포의 ‘어셔가의 몰락’을 읽었는데, 이게 가장 대표적인 고딕소설이라고 한다. 유령이 나오지도 않고 잔인한 묘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으시시 하다. 소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친여자, 관, 유전병, 가문의 비밀은 고딕 소설이 즐겨 다루는 소재이다. 브론테 자매가 살았던 시대는 고딕소설이 가장 인기가 있었을 때였다.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점 중에 하나는 실내 장면에서 인공조명을 쓰지 않았던 것인데, 이렇게 하니까 더 음침하게 느껴진다. 어두운 분위기는 우울했던 그 시절 여성들의 상황과 왠지 묘하게 어울린다.

소설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

뛰어난 작가는 독자를 소설 속의 장소와 시간으로 인도한다. 비록 그 시대와 환경을 경험해 보지 못했어도, 소설을 읽는 동안은 내가 그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샬롯 브론테는 탁월한 작가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나의 경우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다보니) 당시의 영국 귀족 사회의 분위기, 그 안에서의 여성의 입장이 그대로 다가온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제인의 행동이나 반응이 답답해 보일런지 모르겠으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여성상이었을 것이다.

(참고: 19세기 영국 여성에 대한 이야기)

소설을 읽는 방법 중 하나는 ‘이럴 때 나라면 어찌 했을까’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나는 여자도 아니고 그 시대에 영국을 경험해 본 사람도 아니지만, 영화보는 내내 ‘내가 제인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딸이 없었고 미혼이라면, 여성의 삶 / 가정 생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고, ‘제인에어’에 공감하고 느끼는 바가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고전이라는 것은 경험이 쌓여가며, 나이를 먹어가며 다시 읽는 책인가 싶다.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그렇게 희망적이진 않다. 책 몇 권 읽는다고 달라지는 사람이 더 이상하다. 그런 경험이 있다고 누군가 반론을 제기한다면, 나는 책의 힘이 라기 보다는, 책을 읽은 사람의 힘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책은 들을 만한 귀가 있는 사람에게만 말을 한다.

잘 씌여진 책은 독자에게 말을 한다. 책을 통해서 나와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쓰여진 책을 읽는 일은 의미가 있다.

기타 등등

제인에어는 청소년 시절 아내의 인생의 책 중에 하나이다. 아내는 워낙 책을 잘 알고 있어서 인지 영화에는 좀 실망했다. 우선 제인의 고아원 시절의 이야기가 생략되었고, 스토리가 더 단순하다고 하다. 뭐 영화와 소설이 같을 수가 없으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것 말고도, 아내는 주연배우의 외모에 실망했다고 한다. 책에 그려진 모습과 딱맞는 배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제인이 이럴리 없어…’ 같은 느낌은 받지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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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을 한국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드라마가 있다.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는 우리들에게 많은 장면을 남겼다. 대표적인 장면은 철조망을 넘어서 최대치와 여옥이 나누는 키스장면.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를 기점으로 티비 드라마에서 키스 장면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여명의 눈동자는 당시 중학생이던 나에게 과하게 자극적인 드라마였다. 우선, 드라마가 정신대라는 소재를 다룬 방식은 피끓는 청소년이었던 나에게 성적인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또, 최대치는 살아있는 뱀을 뜯었고, 일본 군인과 싸우면서 칼에 찔려서 실명의 위기에 처했다. 그뿐인가, 제주 4.3과 빨치산 이야기는 공산당이 괴물이다라는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여명의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았던 이유는 자극이 아니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물들과 그들의 사랑이었다. 여명의 눈동자의 세계관은 이후 김종학 사단이 만든 ‘모래시계’에도 이어진다. 드라마의 인물들과 그들의 사랑 방식은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었다. 나의 이상형은 채시라 누님과 고현정 누님이었다.

사랑은 시대의 소용돌이를 뚫고서 비극적으로 피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지고지순해야 했으며,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나만을 바라보아야 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역사의 장난질 속에서 징그럽게 살아남으려 했던 대치/태수가 되기도 했었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려 했던 박상원이 되기도 하였다. 90년대를 수놓았던 김종학의 드라마들은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었다.

얼마전 친구가 페북에서 여명의 눈동자를 언급했다. 추억이 실타래처럼 딸려오길래 몇자 남겨본다.

(뱀발)

그런데, 이상하게 이 드라마를 생각할 때 기억나는 아주 사소한 장면이 있다. 제주 4.3의 와중이었던가 아니면 지리산에서 였던가. 한 공산주의자와 최대치가 나누는 대화이다. 그 공산주의자는 산을 오르는 와중에 이런 대사를 친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죠? 이데올로기 때문에 동족끼리 서로 이렇게 죽이니.” 아마도 그는 작중화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당의 지령에 따르는 공산주의자로서, 아주 단면적인 인물이다. 그런데도 이런 대사를 치다니, 이질적이지 않은가. 나중에 혹시라도 송지나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한번 물어보리라. (20년도 더 된 옛날이라 기억이 분명치는 않다. 여튼 이질적이었다는 것과 이데올로기, 아이러니라는 단어를 썼던 것은 분명하다.)

인터스텔라 / Big Hero 6

Big_Hero_6_poster

아이가 어려서 영화관에 잘 가지 못하는데, 지난 주는 기회가 되어서 영화를 두개나 보았다. 하나는 인터스텔라. 다른 하나는 Big Hero 6이다.

Big Hero 6는 아직 한국에 개봉하지 않은 디즈니 애니매이션이다. 찾아보니 내년 1월달에 개봉한다고 하더라. 마블/디즈니/픽사 라인이고, 미국에서는 개봉하자마자 인터스텔라를 밀어내는 괴력을 보였다.

하긴 인터스텔라가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다. (듣기로는 손익분기점 간신히 맞출 정도라나?) 미국사람들이 심각한 영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인것 같기도 하구… ‘놀런’ 감독 말처럼 우리나라 관객의 지적수준이 높아서 일 수도… 어쨌든 우리나라에는 ‘놀런’ 브랜드가 확실히 자리잡은 것 같다.

Big Hero 6는 샌프란소쿄(샌프란시스코와 토쿄의 합성어)가 배경이다. 주제는 ‘너드가 세상을 구할 것이다.’ 정도? 영화 곳곳에서 샌프란시스코와 일본의 풍경이 섞여서 나온다. 아닌게 아니라 만화는 어디선가 보았던 클리쉐들로 범벅되어있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 흥미로운 요소들을 마구 섞었는데 그게 억지스럽지 않고 재미있게 짜여져있다. 꽤 잘빠진 애니매이션이고 한국사람들도 좋아할만한 요소들이 많아서 내년에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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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역시 재미있었다. 나는 고딩시절 과학자를 꿈꾸었다. 책으로 보았던 사건의 지평선, 웜홀, 블랙홀 같은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데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과학 너드가 아니었던 아내도 3시간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아무래도 놀란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링의 힘에서 나왔던 것 같다.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쉬운 가족애와 사랑 이야기를 절묘하게 섟어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더라.

인터스텔라를 이야기하면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이야기 안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전체에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차있다. 어찌보면 신선함은 없는 영화이다. 영화적인 아이디어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서사 방식 역시 닮아 있었다. (기승전결이 아님.) 다른 점은 큐브릭의 영화는 불친절했고 (대사가 거의 없어서 대부분 졸기 쉽상이다.), 놀란은 다양한 기교를 쏟아부어서 이야기에 몰입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음악/음향효과/편집/CG/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이야기까지 모두 영화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나저나 Big Hero 6는 우리 딸과 같이 보았는데, 후회중이다. 딸아이는 영화에서 나온 마스크 쓴 악당이 꿈에 나온다며 삼일 동안 잠을 설치고 있다. 절대 무섭거나 아이들이 보기 힘든 영화가 아니다. 그냥 우리 딸이 좀 심하게 예민한 편이다. 새벽에 잠을 설친 딸을 달래느라 나까지 잠을 설친다.

줄리 앤 줄리아가 문득 생각나서 끄적

홀아비 먹방 포스팅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영화.

메릴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가 주연이다. 두 주인공이 여자 인데다가 여자 감독이 만들어서 그런지 섬세한 연출로 맘을 따뜻하게 했던 영화로 기억한다. 내용은 우울한 뉴요커인 줄리가 기분 전환 삼아 유명 셰프인 ‘줄리아’의 요리책에 있는 요리를 하는데, 이를 365일 동안 블로깅을 하면서 겪는 이야기. 교차편집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다른 시대의 두 인물이 교감하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듣기로 프랑스 요리를 하는 셰프들에게는 ‘줄리아 차일드’는 전설적인 요리사라고 한다. 요리나 블로깅 또는 그냥 편안한 스타일의 따뜻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줄 만하다.

뻘소리: 나도 매일 요리를 해서 올려봐? ㅋㅋ 안될꺼야 아마…

가을 방학 –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20대에 나는 실수와 상처가 두렵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키우리라 믿었다. 그러나 30대에 나는 실수하거나 상처 입을까 봐 벌벌 떤다. 그것은 좀처럼 회복되거나 아물지 않을 것 같다. 20대에 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웃거나 울었다. 그러나 30대에 여전히 남을 의식하는 나를 들여다보며 가끔 웃거나 운다. 20대에는 사랑을 힘주어 말하고 섹스란 말에는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30대에는 섹스라는 말보다 사랑이란 말을 발음하기가 훨씬 어렵고 민망하다”

<톨스토이처럼 죽고싶다> 김별아

노래의 감성이라는 건 울림을 자아내는 세대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는 확실히 20대의 노래다. 왠지모르는 먹먹함과 감정선을 건드리는 게 있지만, 그 실체가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한 10년전 쯤 이야기 처럼… 20대때는 뭐가 뭔지 모르고 헤매었는데, 30대 중반이 되서야 그게 뭐였는지 조금 이해가 간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40대가 되면 확실해 질까? 나이 먹는게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