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정체성과 난민 이야기

그리스 신화 중에 ship of Theseus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있다. 반신반인인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영웅 테세우스가 아테네로 돌아오면서 탄 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인들은 테세우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배를 보존하기로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나무 판자가 썩고, 후손들은 이를 새로운 판자로 교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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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크는 테세우스의 배의 정체성을 묻는다. 판자를 한두개 쯤을 교체할 때는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흘러 이 배의 나무 판자를 모두 교체했다면, 그래도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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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의 배를 국가라는 개념에 적용해본다. 국가는 보통 짧게는 몇십년, 길게는 수백년의 수명을 가진다. 인간의 수명 보다 상대적으로 길기에 건국 초기를 지나면 국가의 구성원이 달라진다. 그러면 몇세기가 지난 나라를 처음의 국가와 같은 국가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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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경우는 나라의 정체성을 민족과 연결지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건 한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지, 대부분 민족과 나라는 그렇게 선명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민족의 개념이란게 상당히 모호하다는 점을 별개로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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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나라별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예외적인 나라가 몇 있었다. 한국은 유독 인종을 답변한 이가 많았고, 파키스탄은 종교,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 (케냐, 가나, 나이지리아)은 국적 취득을 압도적으로 답했다. 또 인도네시아가 지역 공동체를 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도표는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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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지난 몇년 사이에 나라의 정체성이 급격히 바뀌었다. 얼마전 이코노미스트지는 표제로 ‘Cool Germany’를 뽑았었다. 독일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그들을 세계에서 가장 hip하고 다면적인 나라중에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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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난민이 이슈로 떠오르자 난민을 가장 열린 자세로 받아들인 나라가 독일이었다. 2016년 자료를 보면 독일 인구의 0.8%가 시리아 출신이다. 64만명이면 천안시나 전주시 급의 소도시이다.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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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료를 보면 독일 여성의 20%는 자녀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출산율이 다소 반등했는데, 이또한 대부분 외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통적인 독일인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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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독일인은 전형적인 백인, 아리아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미 지금의 독일은 그리고 앞으로의 독일은 전혀 다른 독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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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은 난민들에게 열린 정책을 고수했고, 시리아인을 포함해 몇년 사이에 110만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시리아인이 반정도를 차지한다.) 사실 난민 사태 이전부터 터키 출신을 비롯 외국출신들이 서서히 독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년 선거에서 이민자 출신 국회의원은 8% 였다. 인구로는 이미 23%가 이민 출신이다.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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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이코노미스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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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초에 독일을 방문했었다. 3주 가량 독일 사람 지인집에 머물렀다. 지인의 아들은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놀랍게도 터키문화에 젖어있었다. 전형적인 백인이 우리와 모인 자리에서 터키 음악을 틀고서 터키 스타일 춤을 추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딸은 러시아에서 이주한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프랑크푸르트 외곽 지대였는 저녁 때 맥도날드를 들렸다가 절반 이상이 터키나 동유럽계여서 과연 여기가 독일인가 싶었다. 관광지가 아닌 도시 외곽이나 공장지대를 가보면 폴란드나 터키계 이민자들이 주류로 느껴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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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월드컵팀을 보면 전통적인 독일이름은 점점 찾기 힘들다. 외질, 보아탱, 고메즈는 모두 외국출신 성이다. 20세기만 해도 독일 안에서도 외국 출신이 국가 대표팀에서 뛰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이제는 뉴스꺼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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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독일인을 독일인이게 하는 것일까. 독일 민족? 루터교? 독일어? 아니면 독일인의 준법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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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D 같은 경우는 이 이슈를 적극적으로 의제를 삼았다. 그들의 표어는 ‘Islam is not belong to Germany.’ 이다. AfD가 말하는 독일 문화는 그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einheimische Kultur” 즉 native culture이다. AfD는 “our occidental and Christian culture, our nation’s historical and cultural identity, and an independent German nation of the German people”을 보존할 것이라는 약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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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메르켈의 CDU/CSU는 “Leitkultur”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leading culture쯤 될 것 같은데, 내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이주민들에게 문화를 강요하기보다는 독일인의 가치와 문화에 젖어들 수 있도록 가이드하고 돕는다는 개념이다. Leitkultur는 기원을 보자면 2000년에 CDU의 리더였던 Friedrich Merz가 제시한 개념인데 당시 그는 독일인의 가치로 세속주의, 독일어 사용, 준법정신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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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관련 기사
What is German? (2016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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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독일인을 독일인이게 하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한국인을 한국인이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미국인을 미국인에게 하는 것일까? 살면서 던질 기회가 잘 없는 큰 질문들인데,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자꾸 내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뉴욕타임스 선정 2017년 올해의 책 10권

올해의 책 시즌이 돌아왔다. 아래 링크는 NYT 선정 The ten best books of 2017. 올해 리스트에는 (다행인지) 몹시 끌리는 책이 없었다. 소화불량이다. 작년 리스트에서 보려고한 책들도 소화못했는데, 책만 쌓으면 뭐하리.

그래도 올해 리스트에서 눈에 띄는 책 두권만 보자면.

Pachinko by Min Jin Lee (NYT 서평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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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꽤나 주목받은 소설 중 하나이다. 미국 National book award 후보작 이기도 했고.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이 4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사를 소설로 썼다.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재일교포 이야기에 미국인들이 주목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기회가 되면 읽어볼 생각.

Prairie Fires: The American Dreams of Laura Ingalls Wilder by Caroline Fraser (NYT 서평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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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NYT book list 논픽션은 전기가 강세이다. 그중에서 눈길을 끈 책은 Little house on the prairie 초원의 집의 작가 Laura Ingalls Wilder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전기이다.

이유는 첫째 때문. 첫째가 요즘 책읽기에 푹빠져있는데, 최근 초원의 집을 재미있게 읽었나보다. 초원의 집에 나오는 아버지를 몇차례 언급했다. 초원의 집 아빠 Charles는 정말 손재주가 좋아서 초원에다가 직접 집도 짓고 농장도 꾸리고 가구도 만든다나 어쩐다나. 문제는 내 자격지심. 괜히 비교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살짝 언짢다. 서부 개척시대에 mid west에다 집짓는 거랑 내가 비교되다니.

전기는 소설의 배경이 된 잉걸스 가족의 실제 삶을 이야기한다고. 그리고 작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한다. 작가들이라고 굳이 복수로 말한 것은 Laura의 딸이 집필 과정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황무한 (게다가 춥기까지한) 미네소타, 위스콘신, 사우스 다코다 같은 곳을 개척한 사람들, 그리고 그 땅의 native Americans 들의 이야기를 읽고서 딸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어야할 의무감도 생긴다.

책에서는 개척자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을 개척한 것 처럼 나오지만 실상은 native American들이 이미 살고 있는 땅이었다고. 그러니까 Charles도 주인없는 inhabitable land를 개척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지 않냐고.

뭐 Charles랑 비교당하는게 싫어서 그런건 아니고…

참고
작년 2016 리스트와 내 간단한 커맨트
2015년 리스트

미국 종교인들의 정치성향 조사

요약하자면 (기사 제목대로) 목사들(특히 침례교)은 공화당지지, 랍비들은 민주당지지, 신부들은 중도파라고한다. 개신교를 더 자세히 보면, 그안에서도 성공회 주교와 장로교 목사들은 다소 진보적인 편이고, 감리교 목사는 중도, 침례교 목사는 보수적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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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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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종교인과 해당 종교 신자들이 같은 정치성향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감리교를 예를 들자면 신자들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많지만 목사들은 중도이다.

기사에는 더 상세한 설명도 있고, 종교인들의 성별비, 나이 평균, (종교인이 사는 지역의) 평균 가구 소득과 교육수준 등의 세부자료가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기사를 참조.

마약과의 전쟁 – 콜럼비아의 경우

최근 애틀란타를 방문한 지인과 두테르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막장인 필리핀의 치안을 보았을 때, 두테르테 식의 강력한 공권력 투입이 어느정도 불가피하다고 하셨고, 나는 그래도 휴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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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가비리아 전 콜럼비아 대통령 (19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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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 전쟁을 벌였던 또다른 대통령 세사르 가비리아 César Gaviria가 뉴욕타임스에 올린 기고문을 공유한다.

콜럼비아는 주요산업이 공식적으로는 커피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코카인인 나라이다. 가비리아 전대통령은 재임시에 마약왕 에스코바르를 사살(1993년)하는 데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었고. 아, 참고로 에스코바르는 미드 나르코스의 주인공이다.

소위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고 시작하는 기고문인데, 꼰대의 소리라고 흘려 듣기에는 꽤 의미있는 경험담이다.

행정명령의 위헌 논란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해 헌법학자 John Yoo교수가 NYT에 올린 기고문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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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Yoo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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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배경 설명을 하자면 John Yoo 교수는 한국계 미국인 헌법학자이고 현재 UC 버클리에서 헌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공화당쪽 분이고 부시 때 법무부 부차관보로 일한 경력이 있다.

기고문 내용과 달리 기사 제목은 다소 자극적이다. Run amok은 미쳐 날뛴다는 뜻인데, 기고문을 읽어보면 본인은 행정명령을 통한 대통령의 권한 강화에는 동의하지만, (해밀턴과 그의 연방주의적 헌법 정신에 근거하여) 현재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는 정도의 내용이다.

일전에 행정명령에 대한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 (2월 3일자 포스트)

이전 포스트에도 적었듯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미국정치의 핵심 가치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도 원칙이 그렇다는 것이지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권력이 정확하게 삼분지일로 나뉜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세어졌고 직접민주주의의 경향이 강해져왔다. 특히나 최근 몇십년은 대통령의 권한이 강해지는 추세인데, 어떤이는 그 시점을 아들부시 때로 보기도 하고, 어떤이는 오바마 때로 보기도 한다. (이부분은 본인의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갈리는 듯 하다.)

두 대통령 모두 행정명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부시가 내세웠던 논리는 9/11 테러 이후 안보위협에 대해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였고 (참고로 이글을 기고한 John Yoo 교수가 이러한 법적 논리를 부시에게 제공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오바마는 국회의 다수가 공화당이고 정체된 gridlock이기에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이전 포스트에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자제한 편이었다고 썼지만, 그것은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오바마는 초반에 행정명령 사용에 부정적이었고 gridlock된 이후에 행정명령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다시 원글로 돌아가자. John Yoo 교수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최근 줄리아니가 공개한 일화이다. 참고로 줄리아니는 트럼프 옆에서 법무장관을 노렸고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결국 트럼프의 간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 줄리아니에 따르면 트럼프가 ‘무슬림 밴’을 하고 싶은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게 추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었다고 한다. 당시는 몇몇 변호사들의 자문을 받는 정도의 이야기였다고…

그러나 트럼프는 무슬림 밴의 아이디어를 내려놓지 않은 듯 하다. 결국 법적으로 가능한한 문제가 없도록 포장을 해서 나온 행정명령이 지난주 무슬림 7개국 입국 금지 조치인 것이다. 백악관은 정상급 법조인들의 지원을 받는 곳이고 그들의 검토 이후에 세련되게(?) 포장된 행정명령이 무슬림 7개국 입국 금지 조치였던가 보다. (처음에 트럼프는 ‘ban’이라는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했으나, 공식적인 채널로 ‘ba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다시 부인.)

두번째는 법무장관 대행 샐리 예이츠 해고 과정이다. 샐리 예이츠가 트럼프에 반발한 것은 단순히 정치 논리 만은 아니었다. 헌법에는 무슬림과 이민자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간의 판례와 연방 대법원의 전통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그는 행정명령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강행하는 것은 대통령의 월권행위라고 판단하여 불복을 결정하였다.

그에 맞서는 대통령의 반박은 법적인 논리가 아니었다. 트럼프는 예이츠를 편지한장을 보내서 해고했다. 그 편지에는 예이츠가 불복했기에 국경 통제와 불법이민자 관리를 어렵게 될 것이고 그녀는 배신자라는 언급이 있었을 뿐이다.

예이츠 관련 이전 포스트 (2월 1일자 포스트)

미국의 이민자 정책과 관련한 법적 공방을 이해하는 데에 유용한 기사 였기에 정리해 둔다.

피터 나바로: 트럼프 정부의 유일한 경제학자

피터 나바로. 트럼프 정부 유일한 경제학자이다. 트럼프는 이번에 국가무역위원회National Trade Council을 신설했고 신임의장으로 피터 나바로를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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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Navarro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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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이코노미스트지는 피터 나바로를 가장 권력이 센 (정확히는 권력이 세어질…) 경제학자로 평했다.

The Economist | Peter Navarro: Free-trader turned game-changer

경제학자라고는 하지만 학문적인 업적이 있는 분은 아니기에 나바로를 이해하려면 그의 책을 보는게 가장 빠를 듯하다. 이분은 연구파 교수라기 보다는 대중적인 저술활동에 집중한 인물이다. 또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세차례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마했다.

나바로의 책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으나, 목차만 읽고서도 놀랐다. 학자가 쓴 책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목차들이다.

마침 예전에 오석태님께서 목차를 올려두신 적이 있기에 공유한다. (아래 페북 링크 참조)

내가 관심있던 부분은 나바로가 중상주의자 인가하는 부분이다. 책의 목차만으로 보았을 때, 그는 다행히도 (경제학 박사니까 어쩌면 당연하게도) 중상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경상수지적자가 손해라는 언급은 없고 본인도 중상주의와 선을 긋는다.

집고 넘어가자. 왜 경상수지 적자가 손해가 아닌가?

거시경제의 관점에서 국가 경제는 기업이나 개인의 재정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돈을 벌어서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게 최선인 개개인과 다르게 국가 경제는 생산과 효용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중상주의 시대에야 돈을 벌면 금이라도 쌓아두었지 (그 이후에는 금태환), 지금은 물건을 열심히 팔아서 달러를 벌어봐야 미국 국채를 사는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 달러가 미국 회사 구입 자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중국인들이 M&A와 부동산 시장의 큰손이 된지는 벌써 오래 됐다.)

좀더 풀어서 수식으로 설명하면, 해외에 물건을 판다는 것은 경상수지 흑자를 의미하고 경상수지는 자본수지와 함께 국제수지 balance of payment의 한 요소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 파는 것과 자본이 오고 가는 것을 합쳐서 국제수지가 되는데, 궁극적으로 국제수지는 0이 될 수 밖에 없다. (즉, 경상수지 + 자본수지 = 0) 물건을 많이 팔았다는 의미는 그 받은 돈으로 상대국가 자산에 투자를 한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경상수지 적자는 (거시 경제의 안경을 쓰고 보면) 상대 국가의 자본을 빌려온다는 의미이다.

자본이 유입되고 동시에 물건도 파는 상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환율의 변동 때문에 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부 언론들이 몇몇 경상수지 흑자를 보는 나라들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90년대에 일본이 그랬고 지금은 중국이 그렇다. (미국 시각으로는 한국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나바로의 이야기는 (책의 목차만 보고 판단하건데) 중상주의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농담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대안 중상주의자 alt. mercantilist 라고 해야하나??)

그는 중상주의를 추구한다기 보다는 대신에 무역 전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중국이 다양한 방법으로 (환율 조작과 보조금, 그리고 열악한 근로 환경 등) 무역의 불균형을 가져왔고, 미국은 보복관세 retaliatory duties를 매겨야 한다고 말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트럼프 정부가 말하는 중국제품 45% 보복 관세와 나바로가 추산한 41% 중국 제품 비교 우위는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나바로의 주장대로라면 이 비교 우위는 앞에서 말한 불공정 거래 조건에서 발생한다.)

월요일 트럼프가 TPP를 무효화하는 memorandum에 서명을 했다. 중국에 관세를 매기고 미국에 공장을 지어서 일자리를 회복 시킨다는 정책의 첫걸음이다.

마침 어제 뉴욕타임스에 Jared Bernstein이 그에 반대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참고로 번스타인은 오바마 정권에서 부통령 경제자문을 맡았던 사람이고, 보호무역과 일자리 회복에 친화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트럼프 정부의 조치는 보기에는 그럴듯 할지 모르지만 경제적인 효과는 글쎄요… 란다. 첫째 이유로는 무역이 쌍방간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관세는 미국의 수입을 줄이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수출은 어찌 할 것인가. 중국은 가만히 있겠는가. 그들 또한 미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았을 때, 경상수지 적자는 (거시경제 용어로) 투자와 저축,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 그리고 개별 기업의 경쟁력 (또는 생산성)의 차이로 발생한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를 다 보아도 결국에는 환율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TPP 무효화나 관세보다도 결국에는 환율 조작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결국 번스타인은 자본수지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 즉 이자율이나, 법인세, (다소 리스키하지만) 자본 통제가 없이는 TPP 무효화가 경상수지 적자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세월이란게 참 묘하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미국은 twin deficit으로 고통받았다. 이에 90년대 초 빌클린턴 정부 때 미국 언론들은 일본을 비난했다. 그때도 환율 조작 이슈가 컸다. 앞에서 인용한 번스타인도 환율 조작 이슈를 많이 이야기 했던 사람으로 알고 있다. 나바로도 90년대에 무명의 젊은 학자였다.

그랬던 그는 지금 트럼프 정부 경제 브레인이 되었다. 참고로 90년 논쟁 당시 폴 크루그먼이나 앤 크루거 같은 경제학자들은 이 쌍둥이 적자가 일본의 책임이 아니고 경상수지 적자와 자본수지 흑자가 같이 나타난 현상이라고 논쟁했었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 미국의 주적은 일본이 아닌 중국이 되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영역본 NYT 리뷰

한강의 ‘소년이 온다’ 영역본 Human Acts NYT 리뷰. 확실히 한강이 영미권에서 주목 받는 작가이긴 하다. 서점 매대에서도 그의 책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책소식이 반갑기도 했지만, 리뷰 내용도 좋아서 옮겨둔다.

‘채식주의자’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어서 읽기가 꺼려졌는데 ‘소년이 온다’는 왠지 사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코맥 맥카시의 로드 이후에 다시 나를 우울하게 하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이가 번역본의 일부를 발췌했길래 읽어봤다. 그 중에서 다음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다.

Where shall I go? I asked myself.
Go to your sister.
But where is she?
Go to those who killed you, then.
But where are they?

어제 후배와 페북에서 잠깐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일까.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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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역별 선호 티비프로그램

뉴욕타임스 기사를 하나 공유한다.

정치를 떠나서 문화적으로도 미국이 얼마나 양극화 되어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 도시화 비율 높은 동부와 서부, 흑인 비율이 높은 남부, 시골이 많은 나머지 지역에서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다르다.

동부와 서부에서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모던패밀리, 빅뱅이론, 왕좌의 게임 같은 쇼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미드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프로그램들. 한국인들에게 미국 사람들의 이미지는 동부와 서부의 모습이 전부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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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시골이 많은 나머지 지역은 ‘덕 다이너스티’ 나 ‘댄싱 위드 더 스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다. 예전 보스가 전형적인 오하이오 러스트 벨트 출신 50대 백인 아저씨 였는데, 덕 다이너스티의 팬이였다.

궁금해서 몇번 봤었다. 무슨 재미로 보나 싶더라. 루이지애나의 시골 백인 남성들이 주인공인 리얼리티 쇼인데, 사냥을 가거나 아니면 하루 종일 총기 이야기나 수꼴 스런 잡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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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 구분되는 지역은 흑인들이 많이 사는 남부 지역. 이쪽은 흑인 취향의 쇼들이 인기인데, 이를 테면 힙합 음악드라마 ‘엠파이어’나 아님 킴 카다시안의 리얼리티쇼가 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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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즐겨보는 티비 프로그램과 정치 선호도가 거의 일치한다. (예전 보스는 ‘덕 다이너스티’의 팬이기도 하고 트럼프 지지자 이기도 했다.)

또다른 잊혀진 전쟁터, 예멘

뉴욕타임스 사진 및 동영상을 공유한다.

아낙들이 잡동사니를 끌어모아 요리를 한다. 한국에서 전쟁통에 꿀꿀이죽이 저런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끼나 두끼 분량 쯤 될까. 그래도 허기를 덜고자 오십여명이 모였다. 먹거리는 천진한 아이들을 웃게 만든다.

예멘이나 남수단 같은 나라가 시리아에 비해 국제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쪽 동네 사람들은 시리아에서 처럼 유럽으로 건너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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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Reuter

쫓겨난 사람들 (Evicted)

뉴욕타임스 2016년 올해의 책 10 리스트에 오른 책인데,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나 보다. 반가워서 공유.

쫓겨난 사람들 : 도시의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 (YES24 책 링크)

도시 빈곤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좋은 책일 듯.

아래는 뉴욕타임스 서평 링크

Matthew Desmond’s ‘Evicted: Poverty and Profit in the American City’ (NYT,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