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 흑자의 의미 – 유럽 케이스를 중심으로

페친 김바비님이 이코노비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경제학은 재수없는 소리만 한다고. 동의한다. 그러니까 경제학자들은 좋은 꼴을 못보는 사람들이다. 실업률이 낮아지면 일자리의 질은 별로라고 딴지 걸고 (미국 얘기) 흑자 폭이 늘어나도 국가별로는 여전히 불균형이 심하다고 한소리 한다. (유럽 얘기)

지난 7월에 발행된 IMF External Sector Report에 따르면, 유럽의 경상수지 흑자 폭이 늘었다. (아래 도표 참조) 작년 기준 유럽 GDP의 3.6%이고, 총액으로 따지면 450조원으로 세계 경제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참고로 트럼프의 주적 중국의 흑자폭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전과 비교할 때) 나라별로 봐도 대부분 흑자로 돌아섰다. 독일의 흑자 폭은 GDP 대비 8.0%, 만년 적자 나라였던 스페인도 1.9%, 이태리도 2.8% 이다. 심지어 유럽의 환자 그리스도 적자가 1% 미만으로 줄었다.

그럼 좋은거 아닌가?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한다. 왜 그런지 좀더 살펴보면 이렇다.

결국 경상수지는 거시의 눈으로 본다면, 투자와 저축의 차이일 뿐이다. 거시 경제에서 말하는 투자와 저축은 일상 용어와 의미가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 투자/저축 보다 소득/소비라는 말로 바꾸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GDP=소비+소득+수출-수입이라는 항등식이 핵심이다. (BoP, Balance of Payments)

Balance of Payments를 회계적으로 더 공부하려면 링크 참조 (참고로 158페이지)

어쨌든, 그러니까 경상수지가 흑자라는 건 경제가 잘나가는 거하고 어떤 면에서 1도 연관이 없다. 그림을 그려보면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하고 경제성장률은 상관 관계가 없다. 중요한건 왜 흑자가 나는가이다. 오히려 경상수지 흑자는 국가 경제의 지출이 소득보다 작아서 해외에 저축하는 (바꿔 말하면 경제 규모에 비해 내수가 위축되어 있는) 상태로 보는게 더 정확하다.

나도 이 개념을 잡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수출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적자가 있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경상수지 적자/흑자에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건 수출을 통해, 무역의 규모가 늘어나고, 거기에 따라서 국가 경쟁력 (바꿔 말하면 생산성)이 향상 되는가이다. 수입을 줄여서 흑자폭이 는다면 오히려 경제가 폭망한다는 증거이다.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이다.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는 8년 동안 힘겨운 긴축을 실행했다. 소비를 줄이고, 투자를 줄였다. 그리고 결과로 수입이 2007년 대비 25% 감소한다. 유로 지역과 같이 단일 화폐를 사용한다면 그 과정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변동 환율제에서는 수출입의 불균형이 환율로 해소되지만 (관련한 예전 포스팅, 먼델 플레밍 모델) 단일 화폐 지역 안에서는 환율 조정 대신 임금 인하, 소비 위축, 실업률 증가가 나타난다.

IMF 보고서는 여전히 과도한 독일의 흑자도 문제로 지적한다. 독일 경제가 인플레에 좀더 융통성을 가지고, 국내 수요를 확장했다면 그 과정이 좀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요즘 미국을 보면 정반대로 움직인다. 트럼프 정부는 내수 진작 정책을 쓰고 있다. 법인세 대폭 인하, 대규모 인프라 투자계획 (이건 말만 무성하고 한건 없지만…)은 (거시 경제 용어로) 저축보다 투자를 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게 되어 있고 (자본수지 흑자는 경상수지 적자를 의미한다.), 강달러를 유인하고 수입을 늘이는 방향이다. 거기다가 금리는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고.

그러니까 거시 경제의 렌즈로 보면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 그래서 요새 나오는 분석이 무역전쟁은 경제논리가 아니다라는 얘기다. 뭐 그건 처음부터 그랬다. 하지만 그때는 많은 분들이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트럼프가 숨긴 패라고 해석했지.

아 그리고 한국. 한국 경제는 내가 입털만한 내공이 없어서 그냥 넘어간다. IMF 보고서는 한국 정부에게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주문한다. 서비스업과 사회안전망 강화로 국내 수요를 창출하라고 한다. 뭐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원론적인 얘기고 한국 정서상 가능하지 않아보인다. 내수 진작하고 서비스업 키우는게 그렇게 쉬웠으면 벌써 했지 싶기도 하고.

보고서 세부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2018 External Sector Report: Tackling Global Imbalances amid Rising Trade Tensions (IMF, 2018년 7월)

관련한 이코노미스트지 기사는 아래 링크 참조.

What a rising current-account surplus means for the euro area (the Economist, 8월 23일자)

루터의 종교개혁과 역사의 우연

오늘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

올초에 독일과 루터에 관한 이야기를 끄적인 적이 있어 재공유한다.

재공유 하면서 당시 역사적 배경을 되새겨 보았다.

한 페친분이 언급하셨는데, 돌이켜보면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여러가지 우연의 요소가 있었다. 관점에 따라 그 우연을 신의 섭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역사의 필연성이라고 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보름스 회의 (Diet of Worms) 직후에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루터를 납치해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기지 않았다면, 그는 얀후스나 틴들 같은 순교자가 되었을 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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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t of Worms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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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그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지내며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지 않았다면. 또는 활자술의 발명이 없어서 그의 번역과 이후 팜플랫들이 널리 퍼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종교 개혁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지 모른다.

지난 번 루터와 독일에 관한 글은 아래 참조.

Isaac의 생각저장 창고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신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독일에서 합창단원을 하다가 지금은 스위스 시립 합창단원으로 직장을 얻어 정착하셨다. 그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독일은 동네마다 합창단이 잘 조직 되어있고 안정적으로 운영이 된다고 한다. 특히 여자 알토 파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구직이 비교적 수월하다고 했다.

합창단 일자리가 많아서 원한다면 (그리고 심심하고 단조로운 유럽 생활에 만족한다면) 성악 전공자가 독일에 정착하기 쉽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성악 유학을 가는 분들 중에 이탈리아로 가시는 분들은 귀국하시는 분들이 많고 독일 쪽은 남는 분들이 꽤 된다고 들었다.

신학도 아울러 전공하신 그분께서는 독일에는 기독교의 유산이 사회 전반에 여전히 남아있다고 몇차례 언급 했다. 지금은 독일도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속국가라고 봐야하지만 문화/사회적으로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기틀을 잡은 나라이고 그 중에서 루터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이왕 음악이야기로 수다를 시작했으니,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자. 독일에는 130여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독일에는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가 80개쯤 되니까 (위키피디아 기준) 왠만한 도시는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규모이다. 그렇게 많은 오케스트라 운영이 가능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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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나치 역사 청산 과정

그저께 독일인의 과거사 청산 관련해서 포스팅을 했었다. 페북에서 한분과 댓글 대화를 나눴는데 좀 길어졌다. 기록 차원에서 포스트로 따로 저장해둔다.

링크도 걸어두려했는데, 재공유를 한 포스트라 아쉽게도 좌표가 따로 안찍힌다.


반갑습니다.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네요.

독일이 1950년대 이전까지는 나치 역사를 정리하는데에 미온적이었다는 이야기는 저도 잘 몰랐었네요.

제가 절차와 과정은 잘 모르지만, 그리고 아마도 그 과정이 모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독일인은 나치와는 완전히 결별한 사람들이 된것은 분명합니다.

(이건 독일이 아니고 이스라엘 이야기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나온김에, 예를 들자면, 유명한 아이히만 재판의 경우도 체포하는 과정, 그리고 재판의 절차를 따지고 보면 아르헨티나의 주권을 침해하고, 독일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스라엘의 법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국제법 상 문제가 많은 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제 여론은 이스라엘 편이였죠. 그러고 보니 아이히만 재판도 60년대 일이군요.)

어쨌든 현대로 돌아오면 민족주의와 배타주의가 다시금 힘을 얻는 서구 정치 지형에 유일하게 극우(?)가 힘을 못쓰는 나라가 독일이기도 합니다.

독일인들의 나치 금기는 지독할 정도인데, 독일인의 원죄와 별 관련이 없는 제 입장에서는 좀 심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독일에서 무슬림에 대한 공포가 다른 유럽에 비해서도 큰 편임에도, 반이슬람을 표방하는 AfD가 독일에서는 큰 힘을 못쓰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CDU의 메르켈과 그의 유력한 대항마인 SPD의 슐츠도 모두 인종적인 발언에는 선을 분명히 긋고 있죠.

서구 사회에서 뜨거운 주제인 극우세력 이슈도 영미권이나 프랑스에서는 경제/사회적인 이슈로 또는 ‘freedom of speech’ 문제로 접근하여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독일에서는 철저히 도덕 문제로 접근/분석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래저래 말이 길어졌네요. 좋은 내용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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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범 재판 사진 (출처: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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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루터의 직업 소명론

얼마전 ‘독일과 루터의 유산’ 이라는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다. 마침 한국 루터교 최주훈 목사님께서 루터의 직업 소명론을 자세히 설명해주셨기에 공유한다.

예전에 내가 올렸던 포스트 링크는 여기.

독일과 루터의 유산 (1월 12일자 포스트)

나는 루터의 사상과 독일인의 경제관을 이야기 하면서 beruf와 calling에 대해 언급만 하고 지나갔는데, 목사님께서는 아주 상세히 설명해주신다. 그리고 칼빈주의/자본주의, 루터교/독일식 사회주의의 연관성도 좀더 상세하게 풀어주셨다.

해당 주제에 관심있는 분에게 도움이 될 듯. 내 어설픈 잡담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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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루터의 유산

독일에서 성악을 전공하신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독일에서 합창단원을 하다가 지금은 스위스 시립 합창단원으로 직장을 얻어 정착하셨다. 그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독일은 동네마다 합창단이 잘 조직 되어있고 안정적으로 운영이 된다고 한다. 특히 여자 알토 파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구직이 비교적 수월하다고 했다.

합창단 일자리가 많아서 원한다면 (그리고 심심하고 단조로운 유럽 생활에 만족한다면) 성악 전공자가 독일에 정착하기 쉽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성악 유학을 가는 분들 중에 이탈리아로 가시는 분들은 귀국하시는 분들이 많고 독일 쪽은 남는 분들이 꽤 된다고 들었다.

신학도 아울러 전공하신 그분께서는 독일에는 기독교의 유산이 사회 전반에 여전히 남아있다고 몇차례 언급 했다. 지금은 독일도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세속국가라고 봐야하지만 문화/사회적으로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기틀을 잡은 나라이고 그 중에서 루터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이왕 음악이야기로 수다를 시작했으니,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자. 독일에는 130여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독일에는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가 80개쯤 되니까 (위키피디아 기준) 왠만한 도시는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규모이다. 그렇게 많은 오케스트라 운영이 가능하려면 그만큼의 관객이 있어야 한다. 독일인에게 철마다 클래식 공연장에 가는 일은 자연스럽다. 앞서 언급한 그분은 독일인이 이렇게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이 된 것을 루터의 영향이라고 보았다. 루터는 음악이 그리스도인에게 종교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았고 이를 통해 사탄과 싸우는 무기가 된다고 했다. 반면에 루터는 미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마침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이번주에 관련한 기사가 나서 공유한다. 해당 기사는 루터가 독일에 끼친 영향에 대해 적고 있다. 그 예중에 하나가 음악에 대한 애정이다. 독일인이 클래식 콘서트를 즐기는 건 일종의 정례화된 종교 행위 같은 느낌까지 준다. 루터가 독일에 끼친 영향은 음악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디자인, 출판, 경제관 등 사회 전반에 걸쳐있다.

물론 나는 어떤 하나의 요인이 (이경우에는 루터라는 사람이)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독일만 봐도 루터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자니 섭하다. 독일에는 칸트 같은 사상가, 바하/헨델/베토벤 같은 음악가, 하이젠 베르크 같은 과학자 처럼 독일 뿐 아니라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쨌든 기사 자체는 재미나게 읽었다. 내용 정리/저장 해둘 겸 해서 공유한다.

해당기사: The Economist | Charlemagne: Nailed it (1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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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1483-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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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루터는 독일의 어떤 분야에 영향을 끼쳤을까. 첫째 독일인의 미적인 감각이 그러하다. 루터는 기독교인은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실용적이고 소박한 바우하우스 스타일은 루터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 후에 스웨덴에도 영향을 미쳐 IKEA 스타일이 되었다고. (루터교는 북유럽에도 전파되었다.) 생각해보면 루터교 목사의 딸인 메르켈 총리나 본인이 루터교 목사인 요하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소박한 이미지의 사람들이다. 옆나라 프랑스의 화려함과 비교하면 이는 더욱 도드라진다.

또 독일은 출판 시장이 크다.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시장이라고. 루터와 연관지어 생각해보자. 루터는 성경을 독어로 번역 배포 하면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그는 빈부/남녀/노소에 관련없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는 독일의 문맹률을 낮추는데에 공헌한다.

마지막으로 독일인의 경제 관념이다. 막스 베버가 1904년 ‘프로테스타티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을 통해 논증한 바에 따르면, 근대 자본주의 정신은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베버가 말한 신교는 주로 칼빈주의와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를 말한다. 칼빈은 세상의 모든 직업은 숭고하다고 보았다. 베버에 따르면 칼빈의 사상은 개인이 부를 추구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독일식 자본주의는 영미권 자본주의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부채를 최소한으로 가져가고 인플레이션 억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독일 경제의 방향성은 (물론 전후 극악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바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루터의 사상에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루터는 구원 이후에 기독교인이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독일어로 work는 beruf이고 직업은 (영어 calling) berufung 이다. 어원이 같다. Gerhard Wegner라는 한 신학자 역시 북유럽과 독일 복지의 뿌리를 루터식 사회주의 Lutheran socialism에서 찾았다.

루터의 유산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루터는 유대인을 배척했다. 유대인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이유에서다. 어떤면에서 루터의 생각은 전후 독일인의 유대인 혐오에 사상적인 배경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해당 기사는 세상의 권위에 순종하라고 설교하고 농민반란을 진압하는 군주를 지지했던 그의 보수적인 성향이 현재 독일인의 국민성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올해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정확하게 5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니까 1517년 10월 31일 그는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독일이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카톨릭을 포함해도 기독교인은 삼분의 일이 채 되지 않는다. 특히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비텐베르크는 지금에 와서 유럽에서도 가장 비종교적인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독일 관련 이야기에서 종종 루터의 유산을 발견하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역사에 실재했던 한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클 수 있는가를 실감하고서는 깜짝 놀라곤 한다.

대학 진학률과 스위스에 대한 수다

아래는 팔로우 하는 분 글인데, 원래는 댓글을 달려다가 페친 외에는 댓글달기가 허용이 되지 않아서 퍼왔다. (그김에 페친도 신청했다.)

상당수 동의하지만 몇가지 추가할 이야기가 있다.

Dong-shin Yang님께서 고졸자와 대졸자의 차별이 적은 나라로 덴마크, 독일, 스위스를 드셨는데, 하나만 바로잡자면 임금 격차로만 봤을 때 독일은 대졸자와 고졸자의 차이가 큰 나라이다. 반면 덴마크와 스위스는 확실히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격차가 거의 없다. (아래 도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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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스위스에 대해 좀더 수다를 떨어볼까 한다.

나는 스위스에 몇달 체류한 경험이 있다. 스위스는 고졸자에게 졸업후 평균 8만불의 연봉을 준다. 물론 물가가 엄청 비싸서 아주 넉넉한 금액은 아니라는 것이 함정. 그래도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차타고 나가서 물가가 (상대적으로) 싼 옆나라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서 장을 봐온다.

그런 연유로 이나라 사람들은 대학에 갈 이유가 별로 없는데, 실제로 대학 진학률이 20~30% 로 아주 낮은 수준이다. 스위스 대학이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했고 교육의 질이 높은 편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낮은 편. 본국 사람들은 정말 공부를 하고싶어 하는 사람만 대학에 가고 나머지는 별 욕심도 없다. 대학 구성원은 대부분 유학생들이다. 언어권에 따라서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인들이 캠퍼스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스위스에서는 그냥 농사만 짓고 살아도 사는 게 힘들지 않다. (농사가 쉬운 일이라는 건 아니다.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보면 스위스가 워낙 농업에 대한 지원금이 크기에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근대 몇달 살아본 얕은 수준의 경험으로 느낀 바로는 그게 그렇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더라. 의외로 스위스인들은 치열하게 살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짧게 있어서 그저 선입견일 수 있겠으나…) 게다가 외부인/외국인에 대한 무지와 차별이 심하다. (지난 월드컵에서 한 스위스 선수가 한국팀에 했던 인종차별 발언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듯.) 조상들이 잘 닦아둔 인프라와 금융 시스템의 혜택을 누리면서 외부인의 접근에 대해 지극히 폐쇄적인 나라가 스위스에 대한 나의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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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딴 얘기지만 수다를 시작한김에 하나만 덧붙이자.

스위스의 폐쇄적인 정책은 최근 브렉시트로 영국에 크게 데인 EU에게도 큰 골칫거리이다. 원칙적으로 EU는 하나의 시장을 추구하고, 따라서 국경의 구분이 없는 자유로운 이동과 (EU 내에서) 자유로운 취업을 보장한다. EU의 구성원은 아니지만, 스위스도 EU의 free movement에 동의한 나라였다. 그러다가 2014년 다시 (EU 내에서도) 이민자를 안받기로 했는데, 사실 작은 나라이기에 그냥 눈감아 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브렉시트가 터진 거고 이제는 EU도 예외를 허용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관련 기사
The Economist | Charlemagne: The parable of Ticino (9월 24일자)

대학 진학률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두서없이 스위스 이야기로 끝났다. 정리하는 게 좋겠지만, 그냥 귀찮아서 포스팅 버튼 꾹 누른다.

유럽인의 긴휴가에 대한 수다

산타크로체님이 프랑스의 긴 휴가에 대한 좋은 글을 올려주셨다.

프랑스의 긴 여름휴가와 우울증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 (산타크로체 포스트)

산타님 포스트 만큼 영양가는 없지만, 프랑스 휴가하니까 생각나는 얘기들이 있어서 그냥 잡담.

미국 항공사 델타에 다니는 친구 얘긴데, 그친구가 프랑스의 국적기 ‘에어프랑스’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더랬다. 프로젝트가 한참 바쁘게 돌아가던 즈음에 그쪽 회사 중요 담당자가 자기 다음주 부터 휴가라고 신나서 말하더랜다. 그냥 상식적으로 휴가라면 길어야 열흘 갔다 오는 건가보다 하고 흘려 들었는데, 갑자기 10주 짜리 휴가를 가버린 것. 담당자하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두절. 다행히 그친구가 워낙 회사에서 초짜 시절에 벌어진 일이라 중요한 프로젝트가 아니어서 일정을 조정하면서 적당히 넘어갔지만, 프랑스 긴 휴가의 위력을 새삼 느낀 사건이었다고.

프랑스가 대표적으로 휴가가 긴 것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유럽도 대체로 휴가가 길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직장생활을 하는 목적이 멋진 휴가를 가기 위해서 라고 생각 하더라.

친한 친구 중에 독일인이 있는데, 그 쪽 분들은 휴가 계획을 일년 전부터 세워두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미리부터 치밀한 준비를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독일인이다. 어쨌든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유럽인은 일년에 한번 뿐인 휴가를 최대한 멋지게 누리기 위해 돈을 벌고 일을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여담이지만, 유럽인은 생겐조약으로 유럽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혜택을 누린다. 생겐조약의 경제적인 효익을 떠나서 유럽인들은 국경을 초월한 자유로운 이동을 정말 중요한 문제로 본다.

그에 비하면 미국사람의 휴가란 우울하기 짝이 없어서 (so pathetic ㅠㅠ) 길이가 짧은 건 둘째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휴가중에도 업무를 놓지 못한다. 이메일 체크는 기본이고, 아예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서 업무를 하는 분도 있다. 성과중심의 업무 평가가 일상화 되어 일이 빵꾸라도 나면 순전히 그사람 책임. 성과가 안나거나 회사가 어려우면 바로 자르는게 상식이라, 내가 아는 어떤 분도 휴가에서 돌아와보니 책상이 치워져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하지만, 유럽도 호시절은 이제 지난 듯 하다. 사실 프랑스의 긴휴가도 ‘에어 프랑스’ 같은 준 공기업 같은 회사나 가능한 일이고, 그것도 베이비부머가 주역이 되어 일하던 시절에나 통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예전 휴가지에서 만난 한 프랑스인과의 대화에 따르면 그렇다…) 산타님이 포스팅 한 내용처럼 이제 긴 휴가 혜택은 유럽인에게도 호사스런 일인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유럽인과 미국인의 일에 대한 자세는 다르다. 예전에 이 주제로 유럽사람들과 이야기한 일이 있었는데, 한 프랑스인이 항변하기로는, 유럽의 근로 시간당 생산성은 오히려 미국을 능가한다고 했다. (숫자를 보여주면서…) 유럽인은 효율성 대신에 삶의 여유를 택했다나 뭐래나.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유럽가서 살아야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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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세금 구조 비교 (독일/한국을 중심으로)

‘독일이야기’라는 페북 페이지를 가끔 방문한다. 주인장께서 최근 독일의 복지/세금 정책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올렸는데, 일부 공감했으나, 몇가지 이견이 있어 댓글을 달았다. 기록차원에서 이곳에 저장해 둔다.

‘독일 이야기’ 페이지 링크

해당 포스트 링크

그리고 참고로 여기 끌어온 도표의 출처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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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올리시는 독일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연재하고 계시는 ‘불편한 진실’, 복지 이야기도 흥미 진진하네요. 서민들의 생계유지를 국가적 차원에서 배려하는 모습도 인상깊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국가의 철학이 확고했고 국민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로도 사회 안전망인 복지 지출이 독일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거의 없다시피 하네요. 아래 도표를 보면 독일의 공공사회 복지 지출은 GDP 대비 27.8%, 한국은 9.6%입니다.

도표1

캡처

다만, 복지 정책에 대한 의견에는 일부 공감하지만, 세금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어 몇자 남깁니다. 복지/세금은 국가간 단순 비교가 어렵고 국가 운영 철학에 관련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순 비교가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GDP 대비 세금수입(24%)은 OECD 평균(34%) 비해 지나치게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독일 36.8%)

그리고 세금이나 복지 지출을 국가별로 비교한다면 절대값 비교보다는 GDP 대비 비율 비교가 좀더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아래의 도표들은 국가별 GDP 대비 세수 비율을 보여줍니다.

도표2

캡처

도표3

캡처

직접세에 대해서는 앞에서 몇분이 실질적 면세 구간을 언급하셨는데요. 사실관계만 따지자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국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2009년 40%, 2013년 32%, 2014년 48%였습니다. 근로자의 절반이 소득세를 안 내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는 소득세에 해당 할 뿐 누구나 간접세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도표3에서 보듯이 한국은 GDP 대비 7.5%로 독일의 10.8%에 비하면 소비 관련해서 낮은 세금을 징수하고 있습니다. (OECD 평균 11%)

한국의 직접세 면세 구조 관련 이야기는 한 블로거 분께서 잘 정리해주신 내용이 있어 그대로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여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 생활 8년 차의 대리로 연봉은 3,500만원이라고 해보자. (무리한 가정인가?) 반면 여자는 이 보다 조금 못한 직장을 다니는 5년차의 직장인으로 연봉은2,500만원으로 부부 합산 가구 소득은 6,000만원으로 상위 25%의 가구 소득에 속한다. 이들은 직장까지 대중 교통으로 한 시간 소요되는 거리에 신도시에 전세로 거주하고 있으며 3살 짜리 딸이 있다. 이들이 부담하는 직접세는 얼마일까? 딸을 부양 가족으로 등재한 남자는 월 소득세 2.5만원(국세)과 지방소득세 0.25만원을 원천징수 당한다. 소득세율은 0.94%이다. 여자는 부양 가족이 없으니 싱글과 똑같이 취급하여 월 소득세 1.7만원(국세)와 지방소득세 0.17만원을 원천징수 당한다. 세율은 대략 0.89%정도 된다. 이들이 내는 직접세는 당연히 전세 거주자이므로, 재산세/취등록세 등이 없고, 보유하고 있는 아반테 승용차에 대한 자동차세 25만원 정도가 추가 되어 최종 직접세 부담은 80만원이 된다. 최종 담세율은 1.3%(=세금 80만원/세전 소득 6,000만원)이 된다. 건강보험 개인부담금이 대략 소득의 2.9%이므로 건강 보험에 들어가는 것의 절반도 안 되는 걸 내고 모든 공공서비스를 이용한다.

물론 이것은 굉장히 관대하게 잡았다. 사실 저 지경이면 부모 4명 중에 한 명 정도는 부양 가족으로 등재하거나, 전세금 대출금 이자에 대한 소득 공제, 신용카드 사용액과 현금 영수증으로 인한 공제 등을 받고 나면 사실상 ‘면세다.’ 그나마 냈던 소득세 55만원도 연말 정산으로 다 돌려 받고 내는 세금이라고는 자동차세 밖에 없다.”

쓰다보니 조금 길어졌는데요, 아무래도 애독자이다보니 더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저도 딱히 세금/경제 쪽으로는 아는 바가 많지는 않고 자료는 대부분 인용/정리 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불평등에 관하여 14-1: 조세정책

*싱글세 논란을 통해서 본 담세 구조로 인한 자기 관련성의 문제 

그럼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메르켈의 강단

아내가 메르켈 총리의 연설을 듣고서 감동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독일어를 모르는 내게 아내가 설명을 해주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 때문에,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면, 이건 내 나라 독일이 아니다.”

난민 문제에 대해 메르켈은 일관적으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에 대해 독일 안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예전에 포스팅했지만, 나는 아무리 메르켈이라도 난민 문제를 부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정치적인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강단이 존경스럽다. 독일에 대한 자부심, 글로벌 리더십,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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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http://www.br.de)

동영상 링크 (페이스북)

유럽 난민 이슈와 나

유럽 난민 이슈를 정리해봤다. 오류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 부탁한다.

생겐 조약 (Schengen Agreement)과 entry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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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Bloomberg)

한국사람이 처음 유럽여행을 하면 신기한게 하나있다. 국경을 넘을때 아무도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95년 발효된 생겐 조약 때문이다. 생겐 조약 이후 26개의 유럽 국가들은 국경을 걷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유럽과 비유럽의 경계선에 있는 나라들의 국경이 실질적인 국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헝가리가 이에 해당한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계속 심각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기에 유럽의 정부들은 오랜 시간 묵살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그리스와 이태리를 통했던 해로가 주요 루트였다면, 최근에 헝가리를 통하는 육로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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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T)

문제는 헝가리의 경우는 난민을 받아들인 역사도 없고 (서유럽에 비하면)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난민들도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또는 영국으로 가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또한 EU는 처음 난민 신청을 한 나라의 난민을 인정하기 때문에 헝가리 같은 경우는 난민을 방치하고 그대로 독일로 실어보내는 일이 최근에 발생했다. (역사 때문인지 독일은 난민에 전향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난민들은 심지어 독일 총리를 mama Merkel 이라고 부른다고.) 이 뉴스는 현재 진행형인데, 9월 4일 오늘자 뉴스에 의하면 열차 이용이 어려워진 시리아 난민들이 독일까지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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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rance24)

이런 와중에 숨진 세살 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경제/정치 공동체 유럽

사진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잠깐 EU의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생겐 조약은 EU에서 단일 시장을 구현하기 위한 합의의 일부분이다. 같은 화폐를 쓰는 단일 시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네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1. 재화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goods)
  2. 자본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capital)
  3. 서비스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services)
  4. 거주이전 (또는 노동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persons)

생겐 조약이 발효된 근간에는 네번째 자유 즉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난민 사태는 EU의 근간을 흔드는 커다란 위협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리스 사태 보다 더 시급한 위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참고로 네가지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사태는 두번째 자유, 즉 자본 이동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다.

EU가 출범 했을 당시 유럽은 일단 화폐 부터 통합하고, 나머지는 차례로 통합해 가는 방향을 선택 했다. 그런데, 이 나머지 통합이라는게 갈길이 아직 멀어보인다. 그나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게, 재화이동의 자유 정도이다. 이는 지금도 Euro의 근본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유럽의 변방 그리스

어찌 보면 유럽 통합은 도달하기 너무 어려운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올해의 큰 이슈였던 그리스 사태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금융으로 드러난 문제와 별개로 그리스가 (서)유럽과 얼마나 이질감이 있는 국가 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스는 우리에게 서양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반짝이는 문화를 꽃피웠을 뿐이다. 비잔틴 제국의 한 지역으로 1000년을 존재했고, 이후는 오스만 제국의 일원으로 400년을 살았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망해갈 때서야 자신들의 조상의 찬란한 문명을 기억해 내었고, 발칸반도의 다른 나라와 함께, 민족주의의 바람을 타고서, 열강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스 정교 기반에다가 오스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리스는 어찌 보면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유럽의 경계로 존재하고 있다.

현대의 그리스는 EU에서 쫓겨 날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중동/아프리카/아시아의 난민들이 들어오는 entry country이니 그 역사가 참 애처럽게 느껴진다. 그리스에 더 관심 있는 분들은 블로거 Santacroce님의 포스트를 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스 비극1: 그리스인은 유럽인일까?)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그리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는 유럽 난민 사태가 유럽인의 정체성의 위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이 어디까지 유럽이라고 선을 그을 것인가,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함께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물론 이전에도 프랑스가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받아 들이거나, 핀란드가 소말리아전쟁 난민을 받아들인 예가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생겐 조약과 EU의 통합 덕택(?)에 지금의 난민들은 유럽 안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유럽의 정체성에 위협을 주고 있다.

아일란과 유럽의 대응

다시 유럽 난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아이란의 사진은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을 테이블로 불러 들였다. 지금까지 난민문제에 상당히 열려 있던 독일을 포함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영국도 모른척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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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 decisions on asylum applications, 2014 (source: eurostat)

사실 유럽이 얼마만큼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조금 의문이다.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이런 문제가 진작에 일어나지 않았을 테다. 예를 들어 독일 망명 신청자는 30만에 달하는 데 이는 독일 인구의 0.4%에 해당한다. 민족주의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와중에 유럽이 이를 소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제아무리 마마 메르켈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인 (시인 김종삼)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나와 관련된 주제가 아니면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정보전달이 내가 블로그를 하는 주된 목적은 아니다. 몇번 그런 포스트를 한일이 있지만, 나중에는 쓸데 없는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능력도 부족하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섣불리 아는 척 하는 일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좋아하는 시 때문이다. 아래 시는 읽을 때에 천천히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읽어야 하는 시이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인은 47년 자신이 월남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기교 없이 쓰여진 이 시가 읽고나면 큰 파장을 남긴다.

어찌보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리아/아프간/이라크/파키스탄의 사람들이지만, 나의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파하는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보면서 내 생각도 정리해보았다. (아참 이 포스팅의 많은 부분은 Santacroce님께 빚져 있는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