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초기 영국에서 일어난 일들 – 1733년 맨체스터

Empire of Cotton 이어서.

18세기 후반 맨체스터는 혁신의 심장부였다. 지금의 실리콘밸리와 비견할 만한 기술혁신이 이뤄진 곳이 당시 맨체스터와 그 일대 랭커셔 지방이다. 18세기 가장 핫했던 테크 산업은 섬유업. 그시절 랭커셔 지방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공장이란게 세워졌고, 시골이 도시로 변했으며, 수만명의 사람들이 농장에서 공장으로 이동했다.

무엇보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첫번째 혁신은 1733년 weaving 제직 공정에서 시작한다. John Kay가 flying shuttle이라는 목재 제직기 (실을 짜는 일종의 베틀)를 발명한다. 지금 기준으로는 상당히 단순한 기계였지만 한번 작업으로 양쪽에서 천을 짜주기 때문에 생산성이 2배로 향상된다.

제직공정 생산성이 향상되자 바로 앞공정인 spinning 방적공정에 부하가 걸린다. 짧은 뭉치를 긴 실로 만드는 방적 공정에서 혁신이 일어난 건 1760년대. James Hargreaves 하그리브스가 spinning jenny를 발명한다. 실뭉치를 앞뒤로 늘려서 실을 자아내는 spinning jenny는 방적공정 생산성을 세배로 늘린다. 1769년 Richard Arkwright 아크라이트는 이 방적기를 수차에 연결해 수력방적기를 개발하고, 1779년 Samuel Crompton 크롬프턴은 spinning jenny와 수차를 합하여 mule 뮬 발적기를 발명한다.

이제 다시금 후공정인 weaving 제직에 부하가 걸린다. 1785년 Edmund Cartwright 카트라이트가 제직기를 수차에 연결한 power loom을 개발하면서 제직공정이 방적공정의 생산성을 따라 잡게된다.

19세기 초 면직물 제조업은 산업화를 완성한다. 마지막 결정타로 면직물 제조업자들은 James Watt 와트가 1769년에 발명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활용하고, 이에 생산성은 다시한번 도약한다.

이제 영국의 면화산업은 인도의 면화산업에 확실한 비교우위를 갖게되었다. 당시 인도의 경우 100파운드의 원면을 방적하는데 5000시간이 필요했다. 영국은 1790년에 mule방적기를 활용해 이를 1000시간으로 줄였고, 1795년에 수차를 이용하면서 300시간. 1825년 Roberts의 자동 mule 방적기 발명으로 135시간으로 줄였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370배의 생산성 향상을 보였다.


(그림: 1835년 랭카셔 – 뮬 방적기)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은 면직물 가격의 하락을 가져온다. 1795년부터 1811년 사이에 면직물 가격은 반값으로 떨어진다. 이제 품질/가격 면에서 인도산은 영국산과 견줄수 없게 되고 인도 면제품은 서서히 퇴출되기 시작한다.

반면 영국 경제는 호황을 누린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의 면섬유산업은 소자본으로도 큰 수익을 보장하는 대박 아이템이었다. ROI를 보자. 당시 대표적인 면제조 회사였던 Cardwell & Birle 은 연평균 투자자본회수율이 13.1%, N. Dugdale이 24.8%, McConnel & Kennedy는 16%에 이른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들의 사업확장이 외부의 자금 유입없이 이루어졌다는 것. 당시 공장주들은 Retained Profits 즉 이익잉여금을 재투자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앞에서 언급한 McConnel & Kennedy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McConnel은 원래 방적기 제조업자였다. 그는 주문받은 방적기 2대의 대금을 지불 받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그 방적기로 대신 사업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에 Kennedy라는 투자자를 만나서 500파운드를 투자받는다. 1791년 그렇게 두개의 방적기로 시작한 사업이 1797년 7464개의 방적기를 돌리는 규모의 사업으로, 1810년에는 78972개의 방적기를 돌리는 사업으로 급성장한다. 당시 영국의 다른 면사 공장과 동일하게 이들도 사업을 retained profits 이익잉여금을 재투자하여 늘려갔고 1799년에서 1804년, 5년 동안 평균 26.5%의 수익을 보았다.

산업혁명 이야기는 이정도로 마무리 짓자. 오늘도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도 좀더 이야기 하려했었는데 손가락이 슬슬 아파온다. (너무 딱딱한 숫자만 늘어놔서 읽는 사람도 벌써 질렸겠지… 오늘은 좀 망한 글인 듯.) 저자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로 로버트 앨런 교수의 이론을 활용한다. (앨런 교수 주장은 ‘세계 경제사’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궁금한 분은 책을 사면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앨런 교수는 영국의 높은 인건비가 기계화 산업화를 일으킨 주된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으므로 아래 링크 참조.
생산성과기술혁신 (2월 28일 포스트)

또 예전에 홍춘욱 박사님께서 세계 경제사의 해당 내용을 포스팅 한 적이 있다. 아래 링크 참조.
세계경제사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임금이 상승하고 일자리가 늘어난이유는?

마지막으로 슘페터를 이야기하면서 마칠까 한다. 기술혁신 하면 슘페터 아닌가.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기적은 부를 민주화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슘페터의 예를 인용한다. 자본가들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산업화가 되었다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비단 스타킹을 더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돈이 많다고 부자가 양말을 무한정 살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로 인해 공장 여공들은 스타킹을 신을 수 있게 되었다. (싸고 질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면서.)

슘페터의 이야기에 딱 들어맞는 예가 면직물이다. 18세기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면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를 테면 당대 패션 리더였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muslin이라는 면직물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아래 그림 참조) 옷뿐 아니라 살이 닿는 모든 부위는 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종이와 침대, 지폐에도 면이 포함되어 있다. 몇백년 전만해도 사치재이던 면직물은 이제 공기처럼 너무나도 흔해서 느끼지 못할 정도 이다.


(그림: 무슬린 드레스를 입은 마리 앙투와네트, 1783년)

슘페터 이야기 출처: 이코노미스트지 재인용

흠… 내가 너무 자본주의 노예같은 이야기를 했나? 그치만 기술의 진보를 이야기 하면서 자본주의 예찬을 안하기도 어려운 일일테다. 다음번엔 좀 어두운 이야기, 그러니까 노예와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에 대해서 수다를 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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