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배넌과 이민자 정책

이민자에 대한 배넌의 시각을 정리한 6분짜리 클립을 공유한다.

배넌에 대해서는 산타님과 Hyunsung Oh 교수님을 비롯해 이미 여러분이 언급하셨다. 그렇지만 글로 읽는 것과 직접 배넌의 육성으로 듣는 것은 임팩트가 달랐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하나…

배넌은 기독교-백인이 미국의 가치를 대표한다고 확고히 믿고 있고, 아시아계나 무슬림들은 (합법적 이민 포함) 미국에 해가된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배넌이 트럼프의 ‘복심’이라는 사실은 이미 언론에 세세히 파헤쳐진 바이고. 향후 그는 미국의 외교에도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클립을 보다보면 이민자들에 대해 배넌은 비즈니스맨 트럼프 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견해를 가지고 있다. 트럼프가 ‘high-skilled immigrant’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아시아인에 장악되어 있고 큰 문제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라는 단순히 경제 이상이다 more than economy, 국가는 시민 사회 civic society이다.’ 라고 말한다. 그의 견해를 따르자면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이방인일 뿐이다.

그는 트럼프 당선 전에도 무슬림 입국을 금지해야한다고 말했다. 무슬림 입국 심사와 비자 발급 심사 프로세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화당 인사의 의견을 한마디로 일축하면서, 그건 무의미한 돈낭비라고 한다. 아예 무슬림을 받아들이지 말아야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무슬림 7개국 입국 금지 조치이다.

어떤 분들은 트럼프의 지금의 행동이 쇼일 뿐이라고 말하고, 협상의 달인 트럼프가 판을 흔드는 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기에 트럼프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넌이 생각하는 미국인은 기독교/백인 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해서, 어떻게도 쉴드를 칠 수가 없다.

나는 배넌과 밀러가 트럼프에게 중용되는 한, 그리고 그들의 입김이 들어간 정책이 실제로 집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한은 그분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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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배넌 (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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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지난번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포스트에 이어서, 프랑스의 세속주의 전통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자 한다.

지난번 포스트에 한 분께서 프랑스가 전신수영복 burkini 금지를 하면서 수녀복은 허용하는 모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셨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실제 이번 이슈 이후에 이를 비난하는 아래와 같은 트윗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https://t.co/MTlIuAbQ4E

다만 현대에 와서 프랑스의 세속주의 Laïcité 원칙 적용은 ‘성직자’에 한해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이슬람에만 차별을 한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대형)십자가를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도 금지되고, (이미 지어진 성당은 문화유산으로 간주하여 예외로 본다.) 동일한 원칙으로 유대교의 상징 다윗의 별을 전시하는 것도 금지되고 있다. 최근에는 관청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구유 장식도 불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작년에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샤를리 에브도 같은 경우도 어떤 면에서는 세속주의 Laïcité 정신에 기초한 단체로 볼 수 있다. 이 잡지는 이슬람은 물론이고 가톨릭과 모든 종교단체를 조롱하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반은 이슬람혐오가 아닌 무신론(또는 반종교)에 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프랑스의 반종교정책은 유럽에서도 강경한 편이라 (타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큰) 한국적인 정서에서도 심하다 싶을 정도이다. 2011년 사르코지 정권에서 laïcité는 더욱 강화되어 1946년 부터 65년간 방송된 기독교 라디오 설교도 금지된 바 있다.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기위해 내 입장부터 밝힌다. 지난번에 전신수영복 burkini 금지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도 프랑스의 조치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었다. 사실 나는 프랑스의 세속주의와 공화주의적 전통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미국적인 개인주의에 좀더 공감하는 편이다.

지난번 포스트에 언급했듯이 프랑스와 미국은 다문화를 수용하는 데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나는 공화주의 전통을 근간으로하는 프랑스식 모델이 지금에 와서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프랑스가 말하는 관용(똘레랑스)은 공화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공화주의 원칙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 평등, 박애, 세속주의, 애국주의가 이 공화주의의 근간이다.

프랑스 헌법 1조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프랑스는 분할될수 없고, 종교에 의해 통치되지 않으며 민주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La France est une République indivisible, laïque, démocratique et sociale.” 헌법 첫문장부터 프랑스는 세속주의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와 종교와의 대립은 프랑스 혁명 (1789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정부는 당시 교회의 재산을 몰수한다. 당연히 로마 교황청은 격렬하게 반대를 한다. 이에 프랑스는 두차례 로마를 침공한다. (1798년, 1809년) 혁명정부는 가톨릭을 앙시앵레짐의 한축으로 여겼고, 프랑스 헌법에 충성서약을 하지 않은 성직자들을 범법자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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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시엥 레짐을 풍자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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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나폴레옹은 왜 교황과 화해했을까? (nasica 블로그)

이후 나폴레옹은 교황청과 화해를 하게 되는데, 가톨릭을 프랑스의 주요 종교로 인정하는 대신 교회를 프랑스 정부의 관리 아래 두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정교(政敎) 협약 (Concordat)이다. (18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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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ord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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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프랑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분명히 했는데, 현대적 의미에서 세속주의 laïcité 는 1905년 제3공화국의 정교분리 법에 근거한다. 그리고 프랑스인은 모든 공적인 장소를 ‘종교 청정 지대’로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종교행위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학교에서 종교 복장이나 종교 행위를 금하는 법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종교 상징물을 금지하는 법은 1937년 제정되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이법들이 제정될 그 당시만 해도 프랑스는 비종교적인 국가이었기에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들어 프랑스의 인구 구성은 변하기 시작한다. 북아프리카 옛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대다수 무슬림들이었다. 다만 이들 이민 1세대들은 자발적으로 프랑스에 넘어온 이들이었기에 프랑스의 세속주의에 저항이 크지 않았다.

무슬림 2세/3세들이 오히려 종교적으로 근본주의화된다. 방리유라고 불리는 변두리에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히잡/니캅/부르카 등의 이슬람 전통복장 착용은 일종의 분노의 표시이며, 무슬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프랑스의 다문화 정책은 여러모로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약 10% 가량으로 추산된다. 세속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운 프랑스의 정신은 이들을 공화주의를 거부한 2등 시민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다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 이야기로 돌아오자. 아무리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사상을 고려하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복장 선택을 억압하는 프랑스의 정책은 여전히 비판 받을 만하다. 내가 느끼기에도 프랑스의 세속주의 정신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로 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듯 하다.

이상이 내가 burkini 이슈를 프랑스의 정체성 문제로 보는 이유이다.

관련 포스트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여성의 의복과 종교에 대한 단상들
이슬람 여성 복장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면서…
일상이 된 테러의 위협

참고자료
The deep roots of French secularism, BBC, 2004년 9월 1일자
1905 French law on the Separation of the Churches and the State (영문 위키피디아)
Laïcité (영문 위키피디아)

B형 남자의 불편함

많은 분들이 IS와 무슬림을 동일시 한다. 듣는 무슬림 기분 나쁘다. 무슬림은 시아가 있고 수니가 있으며, 그 안에서도 차이가 많다. IS는 그중에서도 왕따 같은 애들이다.

많은 분들이 에볼라때문에 아프리카 사람과 접촉하길 꺼려한다. 듣는 아프리카 사람들 기분나쁘다. 에볼라는 서아프리카에 퍼졌다. 서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는 비행기로 7시간 거리다. 프랑스 파리까지는 6시간. 누구도 파리와 에볼라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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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일부 기독교인의 비리를 듣고 기독교를 욕한다. 듣는 기독교인 기분 나쁘다. 성경을 배우는 것과 실천하며 사는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도 다양한 사람이 있다.

외국인이 한국사람에게 김정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당황스럽다. 북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고, 우리를 북한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할 때, 도쿄에 가봤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스럽다. 행여라도 일본과 한국을 같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싶어 차이를 열심히 설명해 본다. 근데 의미 없다.

어떤 분이 유럽은 이렇다라고 말하면, 궁금하다. 어디 유럽을 말하는 것일까. 복지를 말할 때 북유럽/독일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가 관광을 말할 때는 프랑스/이탈리아를 말하는 것 같기도하다. 유럽을 통째로 말하는 건 한국/일본을 동일 선상에 놓고 말하는 것보다도 훨씬 무모하다.

사람들이 미국을 하나의 인격체처럼 말하면 당혹스럽다.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상호 경쟁 시스템이 작용하는 미국을 하나로 보기는 참 어렵다. 정부/군대/상원/하원/학계/기업/남부/동부/서부 등등… 모두 다른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따로 행동하는 entity들이다.

B형이라고 괴팍하고 한 성깔하는 시크한 남자라고 지레 짐작해버린다면, 기분 나쁘다. 내가 시크한건 맞지만 무지하게 부드럽고 상냥한 남자다.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의 살인사건 서술 방식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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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BBC)

2년 동안 채플힐에 살았었다. 미국에서 흔한 총기사건도 이 동네에서는 거의 없었다. 이 조용한 대학도시에 최근에 이슬람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다.

근데, 인상적인 것은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였다. 기사는 빼곡히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다. 명확한 출처가 기재된 것은 기본이다.

deulpul님께서 미국과 한국의 살인사건 기사 서술 방식을 비교/분석해주셨기에 공유한다.

들풀.넷: 무슬림 부부 살해사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