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와 직장문화

작년 오늘 올렸던 포스트를 재공유하면서 한마디. (페북이 친절하게 알려줬다.)

아마존 직장문화와 저널리즘의 역할 (2015년 9월 10일자 포스트)

작년 8월에 뉴욕타임스가 아마존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탐사보도를 했고, 회사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아마존을 정글같은 곳이라고 비판했다.

아래 포스트는 그후에 NYT 편집장이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옮긴 것. 언론은 아마존 사례 같은 이슈를 발굴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이다.

기사 이후 일년 사이에 서부 테크 기업들의 근무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많은 회사들이 출산휴가를 도입했고 (미국은 남녀 모두 유급 출산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이다. 파푸아 뉴기니를 제외하고는…) 샌프란시스코 시는 6주간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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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icon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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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순진하게 뉴욕타임스 기사 하나가 그 모든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지는 않는다. 서부 테크 기업들은 항상 인재가 부족했고, 인력풀을 유지하기 위해 그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는데 여러가지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지면서 변화가 생기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남부는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동네인지라, 이런 변화가 찾아오려면 한참은 걸릴 듯. 글고보니 올 초에 코카콜라가 6주 유급 출산 휴가를 도입했다. (같은 동네 회사 다니는 내 입장에서는 배가 아플 뿐이고…)

논란의 당사자 였던 아마존도 지난 주에 (특정 직군에 한해서) 주30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 문화가 그렇게 쉽게 변할까 싶긴 하다만…

내향적인 사람들의 밥먹기

Susan Cain On Why It’s OK To Eat Alone (TED idea 8월 11일자)을 읽고서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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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TED idea 해당 기사)

나는 내향적인 사람 (introvert) 이다. 내향적이라는 의미가 사람을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들하고 오래 있으면 빨리 지치고, 그래서 어느정도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들은 혼자인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 사회는 외향적인 (extroverted) 성향을 긍정한다. 미국에서는 내향적이다는 말은 anti-social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쉽상이다. 미국인들은 처음보는 사람들과도 쉽게 수다를 떤다. 에너지가 넘치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리더십이 있다고 하고, 능력이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식 교육은 참여를 권장한다. 참여를 잘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외향적이고 잘 나선다(?)는 의미이다. 조별 과제에서 능동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칭찬 받는다.

그런 점에서 내게 수잔 케인의 TED 강의는 인상적이었다. (링크) 내향적인 사람들의 장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한다. 다양한 정보들 중에 소음을 구분할 줄 알고, 그렇게 습득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줄 안다.

회사는, 대부분의 경우,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주도권이 가기가 쉽다. 내가 미국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받은 조언은 ‘Never eat alone.’이었다. 인맥은 일을 하는데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가는데에 중요한 자산이다. 그렇게 보면 이 조언은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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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향과 더불어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이것이 내게는 쉽지는 않은 임무이다.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잠깐의 순간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나는 내 옆에 누가 앉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밝은 얼굴로 즐겁게 대화를 하겠지만 말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나름 농담을 구사하기도 하고, 소셜 이벤트를 조직(!)하기도 한다.

(image source: https://infjoe.wordpress.com/)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나의 가장 현실적인 대처 방법은 어떤 것일까. 내향적인 성향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첫번째 스텝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나서 내게 적합한 다른 모델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인터뷰에서 수잔 케인이 말한 것처럼, 칵테일 파티나 네트워킹 이벤트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말자. 대신에 한명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면 그것으로 그날의 임무는 완성이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꽤 위로가 된다. 미국이라고 해도 외향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구나 싶다. 그녀의 책과 강연은 미국 내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교육계에서도 내향적인 아이들을 위한 몇가지 시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관련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래의 Atlantic지 기사를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링크: When Schools Overlook Introverts (the Atlantic 9월 28일자)

아마존 직장문화와 저널리즘의 역할

지난달에 아마존 직장문화를 1면에 실은 뉴욕타임즈 기사에 대해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기사는 사례 위주(anecdotal)인데다가, 퇴사자의 입을 빌은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아 (내 기준으로는) 좋은 기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가 회사 이름을 거론하며 돌직구를 날리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타임즈는 이슈를 만들줄 안다. 그 점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모두가 마녀사냥을 하는데, 같이 돌던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건 황색 저널리즘이다.)

어쩌면 저널리즘의 역할은 이슈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사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진실은 복잡다단하고, 딱잘라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반면에 힘있는 글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사가 나간 후에 꽤 말이 많았나보다. NYT 역사 상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였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NYT 편집장은 그게 저널리즘이 해야할 일이라며, 아마존 같은 사례를 계속 발굴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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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re/code)

링크: New York Times Editor Dean Baquet Says It’s His Job to Publish More ‘Amazon’ Stories

미국의 육아휴직/출산휴가

어제 아마존이야기를 하면서 대부분 미국 회사에서는 (남녀 모두) 육아휴직/출산휴가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동영상을 봐도 좋을 듯하다.

대충 요약하자면, mother’s day라며 모성을 찬양하는 광고를 해대지만, 직원들에게는 출산 직후 출근을 강요하는 미국회사의 현실을 꼬집는 개그이다. (미국은 시장경제에 맡기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비판의 화살은 주로 정부보다는 개별 주체인 기업을 향한다.)

나도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출산/육아 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나라는, 파푸아 뉴기니를 제외하면 미국밖에 없다. 위키피디아에 잘 정리 되어 있다. (링크: Parental leave) 비교대상이 OECD가 아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구글의 공짜 점심은 식상하리만큼 보도하면서, 이런 이야기는 왜 하지 않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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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wikipedia)

아마존과 미국 회사

아침에 딸램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 NPR 뉴스에서 아마존의 직장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이다. New York Times에서 1면에 아마존의 직장 문화에 대해 보도를 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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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져서 기사를 찾아 보았다. 아마존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업무강도가 높기는 하더라. 이전에도 비슷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내가 아는 몇몇 분들도 1~2년 있다가 해고를 당하거나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수평적인 구조라서 진급이 힘들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리고 사람을 상당히 많이 뽑는데, (우리회사 입사 동기 중에 한명도 작년에 아마존으로 옮겼고, 딸아이 친구 앤도 아빠가 아마존에 입사하면서 시애틀로 이사를 갔다.) 나가는 사람이 많아 인력 turn-over가 아주 빠르다.

기사 내용은 조금 극단적인 케이스를 가져다 쓴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기사는 아니다.) 퇴사자는 이전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마련이다. 이혼한 사람에게 전배우자에 대해 묻는다면 무슨 대답이 돌아오겠는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기사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들었던 몇몇 사례와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고…

NYT가 과하게 이슈화 하긴 했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슈를 만드는 능력이 대단하다. 한국 언론기관이 회사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 이런 류의 기사를 쓰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존은 이미 유통업계 1위이고 핫한 뉴스를 매달 쏟아내는 기업이다. 직장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제격인 회사이다. 미국 회사도 파보면 직장 문화에 문제가 많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직원 입장에서는… )

돈 주면서 왕처럼 대우하는 곳은 없다. 미국 회사 대부분은 근무 강도로만 보면 한국의 직장을 넘어서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퇴근 후에도, 휴일에도, 휴가 기간에도, 업무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내가 미국와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육아휴직/출산휴가인데, 대부분의 미국 회사들은 육아휴직/출산휴가가 없다. (남녀 모두) 상황에 따라서 필요하다면 무급으로 쉬는 정도이고 이마저도 그렇게 편하게 사용하지 못할 때가 많다. (관련 포스팅: 미국의 육아휴직/출산휴가)

미국 안에서도 직장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간간이 있지만 시장논리가 우선할 때가 더 많다. NYT가 이렇게 이슈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물론 당사자인 아마존 측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영문 원본 기사: Inside Amazon: Wrestling Big Ideas in a Bruising Workplace (NYT 2015년 8월 17일자)

한글 번역 (계란 소년님 블로그): 인사이드 아마존 : 가혹한 직장에서 거대한 발상과 씨름하기

제프 베조스 반박기사: Jeff Bezos says he doesn’t recognize ‘soulless and dystopian’ Amazon (The Verge 2015년 8월 17일자)

미국회사와 cultural fit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한국인은 드물다. 미국 학교에서 마주치는 그 많은 한국 유학생을 생각해보면 의아해질 정도이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cultural fit이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Cultural fit 또는 조직 문화와의 궁합. 미국에서 구직활동을 하던 시절, 나를 가장 애먹였던 부분이다.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미국 회사가 공평하고 능력위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나의 선입관과는 달리, 미국 사회에서 인맥과 사교성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성별/인종/나이/종교로 대놓고 차별을 하지 않는다. 다만 cultural fit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스포츠 팀 응원, 같은 취미 생활, 같은 학교 출신, 유머감각 등등이 성공(또는 취직과 승진)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투자은행에서 오퍼를 받는 친구들은 대부분 남성적인 취미생활을 가지고 있으며, 칵테일 파티 같은데서 미식축구 수다로 분위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사교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나에게 한국도 그렇지 않는가라고 물을 수 있을 듯 하다. (심지어 우리는 나이를 이력서에 적고서 대놓고 차별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유사한 점이 있다. 자기와 일을 하기 편한 사람에게 기회를 더 주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한국 회사와 미국 회사를 모두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우리와 미국의 평가 기준은 조금 다르다. 거기까지 이야기 하자. 더이상 이야기 하면 넋두리가 될 듯 하다. ^^

어쨌든, 미국 회사 생활하면서 내가 느꼈던 점을 꼭 집어 정리해준 기사가 있어서 저장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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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번역: “조직 문화와의 궁합(Cultural fit)”, 제대로 된 인재 채용 기준으로 삼으려면? (News Peppermint)

원문: Guess Who Doesn’t Fit In at Work (NYT, 5월 30일자)

+ 덧: 마침 뉴페가 한글 번역을 했기에 링크를 추가했다.

Active Listening Skill

# 들어가며: 국민성이나 문화를 비교하는 글은 인종적인 편견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의 제한된 경험으로 느낀 내용이니 감안하고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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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르다. 대표적인게 듣는 자세. 미국인들은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표시로 적극적으로 질문한다. 쓰잘데기 없는 질문부터 잘난척하려는 질문, 인사이트 있는 질문까지 각양각색이다.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윗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토다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 사항이다. 나는 이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 학교에서 수업을 받아본 사람들은 공감할런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쓰잘대기 없는 질문을 해대는 사람들 때문에 수업이 진행이 안될 때가 있다. 미국 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이야기 하다가 삼천포로 빠지기 쉽상이다.

내 짧은 경험에 의하면 유대인은 이게 더 심하다. 그래도 미국인들은 상대의 감정은 존중하는 편인데, 그들이 대화에 끼면 항상 피가 튀긴다. 부모 자식간에도 항상 논쟁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다. 이것이 유대인의 강점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토종된장은 이게 그리 편하지는 않다. 아마 그냥 다르게 생겨먹은 거겠지.

한국인이 미국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존재감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이건 꼭 영어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를테면 미국인은 대화를 나눌 때, 되든 안되든 막 질문을 던진다. 그게 어찌보면 그들이 말하는 active listening skill이다. 말없이 앉아있다면, 그들은 이사람이 대화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인과 비교해서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정말 궁금하거나 insight가 없을 때면 언제나 듣는 편이다. 나는 한국 사람 중에서도 조용한 편이고, 말하기 보다는 글을 쓰는 게 좀더 편하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대화에 contribute할 말이 없는데, 끼어드는게 좀 어색하다. 매번 대화에서 번쩍이는 인사이트가 생길리가 없다. 미국식 커뮤니케이션이 장점은 있겠지만, 내몸에 맞는 방식이 아니다.

최근에 회사 보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우려하던 대로 그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다행인것은 그래도 생각보다 나의 insight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가 있었다. (오히려 self-rating보다 좋았다.) 속은 쓰리지만, 개선할 부분이 분명해 졌기에 유익한 시간이었다.

1st work anniversary!

오늘은 UPS에서 일한지 딱 일년이 되는 날.

미국에 아무 연고도 없고 영어도 어설펐던 내가 운좋게도 (또는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회사에서 일년을 버텼다.

순수 토종 된장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남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외국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한 가장으로 사는 것이 유학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닥쳐보니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3년전 미국 처음 올때 몇가지 가능성을 보고서 인생을 계획하고 승부를 걸어봤지만, 인생이라는게 계획했던 대로만 풀리는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레버를 쥐고서 누르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었던 듯…

경제적으로도 불확실함이 컸고 기약없는 시간도 많았는데, 지금까지 지켜봐주고 물심양면으로 써포트해준 울 마나님의 내조가 없었다면 이또한 불가능 했으리라.

어쨌든, 취업하는 것 또는 미국 주류사회(?)에서 살아남기가 거의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여지껏 버텨온 내자신이 신기방기.

미국사람들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To have a second language is to have a second soul.” – Charlemagne

언어가 단순히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일까? 아니면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까?

스탠포드 대학의 Caitlin Fausey의 실험에 따르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사람을 비난하는 경향이 커진다고 한다. (출처: Lost in Translation, WSJ) 이는 영어가 수동태보다 능동태를 좋아해서 그렇다. 예를 들어 꽃병이 깨진 사건을 표현할 때, 영어로는 “John broke the vase.”라고 말하고 스페인/일본어로는 “The vase was broken.”라고 말한다. 다른 예로 같은 내용의 비디오를 보여주고 각기 다른 언어 사용자에게 그 사건을 묘사하라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때 영어권 사람들은 ‘누가’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위주로 묘사했다고 한다. 반면에 비영어권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가 더욱 중요했다고 한다.

한국어의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는 존댓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람이 나보다 손위 사람이냐 손아래 사람이냐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 차이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만나면 민증부터 깐다. 잠시 호구조사가 끝나면 (어느 지역출신이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 등등..) 바로 말을 놓거나 아니면 두번째 만날 즈음에는 슬쩍 말을 놔야겠다는 판단을 한다.

한국사람들끼리는 나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손위사람하고 영어로 대화를 하면 종종 어색해진다. 분명히 형이거나 누나인데 ‘You’라고 해야하고, 존칭인 ‘sir’ 같은 말은 왠지 사이가 먼사람 같이 느껴진다. 말끝마다 ‘please’를 붙일 수도 있지만 ‘please’는 존댓말이라기 보다는 공손한 말의 느낌이다.

이러한 어색함은 한국사람끼리 대화하다가 미국사람이 대화에 끼면 두배가 된다. 미국사람들한테는 손위사람에게도 친해지면 격식없이 casual English를 사용하는데 미국 할아버지에게 격식없이 영어를 하다가 옆에 있는 1살 위의 형에게 격식없이 영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어색하다. 설명하기 애매한 시츄에이션인데, 아마 겪어본 사람은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에게 나이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직장 상사가 나보다 젊은 사람일 경우도 있고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이 아래사람이 되기도 한다. 지금 회사에서 전의 보스는 50대 중반 백인 아저씨였는데 그의 보스는 30대 중반인 한국계 미국인이다. 처음에 나는 이런 상황이 좀 어색했다. 근데 둘의 관계는 직장 서열로 규정되기 때문에 나이가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 제일 적응이 안된건, 나이어린 보스가 스무살 정도 위의 부하직원의 어깨를 툭치면서 ‘Hey, man! What’s up?’ 하면서 썰렁한 농담을 주고 받는 거였다. 근데 내보스는 ‘어린 녀석이…’ 라고 불끈하는 게 아니라 격없이 대한다고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더라.

미국에서 오래 지낸 교포 어르신들과 대할 때도 이런 부분은 참 애매하다. 중요한건 이사람이 한국 스타일에 가까운가 아니면 미국 스타일에 가까운가를 먼저 파악하는 건데, 미국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손으로 악수를 하는게 좋고 한국사람에 가깝다고 판단되면 허리를 약간 숙이고 두손으로 공손하게 악수를 해야 한다.

존댓말과 어른 공경의 태도가 우리나라를 우리나라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조금은 경직된 조직 문화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문화적인 부분데서 오지 않았나 싶다.

샤를마뉴(카를루스 대제)의 말을 인용해서 거창하게 글을 시작했는데, 잡설만 길어졌다. 외국에 살다보면 처음에는 한국과 비교해서 외국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 싫어지기도 하고, 다른점이 좋아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몇년후 나조차도 그러한 외국 문화에 적응되어 변해버린다. 반대로 한국을 보면서 좋은게 생기고 싫은게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어권 밖에서 살면서 하나 좋은 점은 우리나라 사회와 문화를 보는 다른 시각이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회사와 조직생활

오늘은 토론 같은거 하려고 쓴글 아니고 그냥 머리 비울라고 쓴글입니다. 참고하세요…ㅎㅎ

한국에서 6년, 미국에서 1년 도합 7년 정도 보수적인 대기업의 일원으로 박박 기면서 살고 있다. 만약 군대까지 합치면 9년이려나? 조직생활 하면서 느끼는 게 한가지 있는데, 큰조직일 수록 위로 올라가면 실제 밑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모른다는 거다. 그나마 한국에서 덜 주먹구구식이라는 하는 삼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회사를 경험하기 전에는 나름 미국사람들은 합리적이지 않을까 환상도 조금 있었는데, 3달안에 깨져버렸다.

내 조직생활 경험에 의하면,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듣고싶은 이야기 만 골라 듣고, 복잡한 이야기 싫어하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얘기 해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조직에서 잘 나가려면 윗사람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건지…. 운만 띄워도 바로 알아 듣고 최대한 단순하고 명쾌하게 보고하는게 아주 중요한 스킬이다. (이건 내 조직 생활 경험이 피라미드 구조의 보수적인 조직에 국한되어 있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수평적인 조직으로 유명한 구글 같은 회사는 좀 다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치만 구글은 나의 경험밖의 이야기니까 논외.)

높은 위치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 뭐 그런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워낙 신경써야 할 게 많고 보고하는 입장에서는 그 일이 전부이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보고 중에 하나일 뿐이다. 또 관료조직에서는 자기 윗사람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밑에 있는 사람들의 보고를 일일히 성의껏 들을 여유가 없고, 어느 정도는 밑에 있는 사람의 권한도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믿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 내공이 깊은 사람은 잠깐 듣고서도 보고자료의 허실을 단칼에 꽤뚫기도 하지만, 그런사람이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조직이 아주 커지면… 그런게 불가능해 진다.

미국/유럽은 합법적인 로비스트가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지금까지 나는 세명의 로비스트를 만나봤다. 한명은 스위스계 제약회사 로쉐 출신의 EU 본부 로비스트 였고, 한명은 지금 우리회사 로비스트, 그리고 또 한명은 MBA 동기다. 그들을 만나 보기전에는 나는 로비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로비스트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돈으로 정치인들을 매수하는 장면이나 미국 총기협회 같은 단체를 떠올리게 된다.

그 친구들은 로비스트의 모습이 그게 다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친구들이 피력하는 로비스트의 역할은 이렇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입법과정이나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기업이나 이익단체에서 관련 자료 정리해서 알려주고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자료가 로비스트들의 후원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정치가들도 그것을 감안하고 자료를 검토하고 또 반대 입장의 자료도 같이 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로비라는게 순기능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한때 나는 일잘하는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잘 굴러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한적도 있었고,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으로 최고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어떤 대통령이 되던지 큰 차이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정말로 규모가 큰 조직의 최고 위에 있는 사람인데, 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싶다. 규모가 조그마한 회사이거나, 아니면 심지어 서울시 정도의 규모도 쉽지 않을 텐데, 한 국가라니… 또 한 국가라는 건 워낙 크고 작은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대통령이 바꿀 수 있는게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또 잘해보려는 의도에서 어떤 일을 추진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의도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게 다른분야에는 규제가 되어서 부작용이 되는 경우도 꽤 된다.

예전에 아는 공무원 형하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주제하는 회의는 첫 일년은 장관들의 발언권이 세다고 한다. 그치만 우리나라 장관들의 수명은 보통 일년이 넘지 않기 때문에 몇년후에는 거의 대통령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몇년 되면 정책들을 좀 실행할만 한데, 이번에는 장관들이 입을 다물때가 많아서 실상하고 거리가 먼 정책이 될 가능성도 크다고. 그렇다고 외교는 더더욱 대통령이 할 입지가 적지 않나 싶다.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그동네에서 우리나라 자체가 할일이 별로 없다. 물론 대통령에 아무나 앉혀도 되는건 아니겠지. 이왕 얼굴마담의 역할이 크다면 기존 정치권하고 관련이 적은 신선한 사람이 나오면 좀 다를까 싶은 생각은 좀 든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물론 선거할 여건이 된다면 굳이 투표를 포기 하지는 않겠지만, 딱히 큰 기대를 가지 지는 않는다. 그리고 외국에 있으면 투표할 여건이 잘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들 투표를 독려하고 축제처럼 즐기는데, 나처럼 생각하면 안되는 건가? 인증샷 찍는 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먹방도 재미나게 하니까. 살좀 빼고 인증샷찍으로 투표장에 한번 가야겠다. ㅎㅎ

오늘 회사라는 조직사회에서 치이고 나서 그냥 뻘 생각이 많아져서 이런저런 글 써본다. 쓰고 보니 너무 씨니컬하다. 이 글보고 맘불편해 질 것 같은 몇몇 페친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렇다고 이렇게 길게 쓰고 포스팅 안하자니 아깝네… 용감하게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