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체르노빌 1편 보고 남기는 짧은 감상

2편을 보는 중에 잠깐 첫감상을 남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잘알려진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스포랄 것도 별로 없다. 올해 HBO 대박 드라마 중 하나로 처음엔 기대작도 아니었는데, 입소문이 퍼져서 히트를 쳤다. 왕겜 마지막 시즌에 실망한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선사한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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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때문에 많은 분들이 탈원전 드라마로 생각하기 쉬울 텐데 꼭 그게 메인인 건 아니다. 드라마는 그냥 사건을 드라이 하게 보여준다. 보다보면 당연히 방사능의 무서움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긴 하지만, 아울러서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게되고, 해체 직전 소련의 엄청난 관료주의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드라마는 1980년대 소련 우크라이나 지역을 완벽히 재현했다고 평가 받는데, 정말 그자리에서 같이 있는 것 같다.

재난 상황을 겪고 대처하는 이야기라 (이 미드를 본다면) 어떤 분들은 교훈 같은 걸 현대의 우리가 겪었던 일들에 적용하려고 할 지도 모르겠다. 글쎄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이질적이고 충격이라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연결은 안되더라.

1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원전 폭발을 지켜보던 사람들. 방사능을 제외하면 그 장면은 몹시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리고 그게 더 오싹하다. 이 장면은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의 한 구절을 그대로 재현한 모양이다.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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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은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날 밤에 일어났어요. … 아직도 내 눈 앞에 진홍색 빛이 보이는 듯해요. 원자로가 안에서부터 빛나던 것이 기억나요. 신비로운 색깔이었어요. 그냥 평범한 불이 아니라 광채 같은 것이 났어요. 그 밖의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하면 매우 아름다웠다고도 할 수 있어요. … 우리 집은 9층이라 정말 잘 보였어요. 직선으로 3킬로미터 정도 거리였어요. 베란다로 나가 아이들을 들어 올리고는 “잘 봐! 기억해 둬!”라고 말했어요. 함께 보던 이들은 바로 원자로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어요. 기술자, 직원, 물리 선생님도 있었어요. 까만 먼지를 맞으며 서 있었어요. 얘기했어요. 숨 쉬었어요. 구경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한 번 보려고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차나 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우리는 죽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렇다고 해서 냄새도 안 났다는 건 아니에요. 봄이나 가을 냄새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 지구의 냄새가 아니었어요. 목이 따갑고, 눈물이 절로 흘렀어요. … 아침에 해가 떴을 때 주위를 돌아보자, 뭔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날 후나 지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그때 그렇게 느꼈어요. 영원히 바뀌었다는 기분……. / 나데즈다 페트로브나 비곱스카야, 전 프리퍄티 주민 (pp.263-264)

아 그리고 드라마 트레일러도 같이 첨부한다.

Binge-watching에 대해서, 그리고 미드와 한드에 대해서

2013년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넷플릭스는 시즌 에피소드 모두를 한번에 릴리즈한다. 그리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binge watching 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실 작년이라면 몰라도 올해는 빈지왓칭을 유행어라고 하기에 이미 철지난 느낌이 들기는 한다.

Binge라는 말은 원래 eating과 같이 쓰이는 말인데 binge eating은 폭식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binge watching은 우리말로는 ‘몰아보기’ 쯤 될 듯하다.

한국에는 미국 드라마 ‘몰아보기’ 시청 패턴이 진작부터 있었다. 미드를 본방으로 볼 수 없는 여건 상, 한국 미드 매니아들은 미드를 시간이 지난 후에 볼 수 밖에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막을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이미 나온 에피소드들을 몰아보는 시청패턴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건 왜 한국 드라마는 몰아보기 시청패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일부 드라마 매니아들은 종영된 한국 드라마를 몰아서 다시 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한드는 미드보다는 몰아보는 맛이 덜하다.

생각해보면 한드는 몰아보기 보다는 배경으로 틀어두고서 딴짓을 하며 아무 생각없이 보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한드는 몇화정도 건너뛰어서 시청을 해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 별 무리가 없다. 상황만 달라질 뿐이다. (화장과 옷맵시가 완벽한) 순정만화에서 뛰쳐나온 같은 선남선녀가 주인공이고, 교통사고와 기억상실증. 그리고 어린시절 상처가 연결되는 플래시백이 있다.

반면에 미드는 스토리가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한두회를 놓치면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에피소드 마다 마지막에 cliff hanger 를 심어두어서 (우리말로는 떡밥이라고 하는게 적당할까??) 다음 에피소드를 궁금하게 만든다. 몰아보기 딱 좋다. 물론 장르마다 편차는 있다. 호러/스릴러/SF 류는 몰입도가 더욱 크고, 시트콤 류는 그 반대이다. 프렌즈가 대표적인 예인데, 프렌즈는 한드 마냥 언제 어디서 봐도 이야기를 쫓아가기에 무리가 없다. 어떤 해프닝이 있었던 간에 마지막에는 친구들끼리 ‘센트럴파크’ 까페에 모여 수다 떠는 것으로 끝이 난다.

미드가 우월하다거나 아니면 한드가 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드와 미드는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를 뿐이다. 한국식 드라마의 장점은 등장인물을 이해하는 데에 고민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재벌집 막내에 기획실장이라는 직함을 던저주면 거기서 그 인물의 캐릭터가 정해진다. 가난한집 출신 자존심 센 아가씨를 등장시키면 그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할 수 있다. 한드는 캐릭터 구축에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 바로 사건으로 직행한다. 첫회부터 빵빵 터진다. 재벌집의 반듯한, 그러나 상처로 살짝 삐뚤어진, 청년과 가난한집 청순한, 그러나 자존심은 센, 아가씨가 어떻게 지지고 볶는지 사건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인물의 성격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한국드라마 공식은 너무 뻔해보이고 지루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다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 시간을 많이 들이면, 흥미진진한 사건을 위주로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느리고 재미가 없다.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래서 미드 중에서도 액션이나 스펙타클한 장면이 주가되는 미드는 인물이 평면적이고 전형적이다.

쓰다보니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내가 왜 이런 수다를 떨고 있을까. 어제 밤에 갑자기 한국 드라마를 보고 싶어 져서인 것 같다. 요새 집에 처리해야 할 복잡한 일이 몇개 터졌고, 미국 뉴스는 올랜도 참사 이후 보기가 너무 지치고, 가족들은 방학맞아 한국에 들어 갔고… worn out 되었는지 한국 TV 틀어놓고 멍하게 있으면 기분이 나아질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