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STRUST OF SCIENCE – Atul Gawande (New Yorker)

젊은 시절 내가 전공을 바꿔가며, 그리고 가방끈을 늘려가면서 유일하게 배운게 있다면, 그것은 과학으로 세상을 보는 자세 같은 것이다.

과학은, 내가 어릴적 오해했던 것 처럼,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요술 방망이나 놀라운 지식이 아니다. 아툴 가완디를 인용하자면,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에의 결단이고 a commitment to a systematic way of thinking, 관찰과 실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지식을 쌓겠다는 결의이다 an allegiance to a way of building knowledge explaining the universe through testing and factual observation.

20대를 돌이켜보면, 나는 새로운 지식 자체를 갈구했었다.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지식을 얻고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계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경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게 되는게 신기했다. 기존의 지식을 새로운 지식으로 바꾸는 그 경험에만 열광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 부터인가 과학이 단순히 놀라운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천문학자 Hubble을 인용하자면, 과학은 건강한 회의주의이며 healthy skepticism,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며 suspended judgement, 훈련된 상상력 disciplined imagination 이다.

불변하는 지식은 없다. 과학적인 지식은 단지 가능성이 높은 근사치 probable knowledge 이다. 언제나 반례가 존재할 수 있다.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보고서 가설을 세우며 (또는 다른 이의 가설을 받아들이고) 사실 관찰을 통해서 자신의 가설을 검증해 간다. 어느정도 관찰이 진행된 후에 자신의 가설을 수용할 건인지 기각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과학은 세상을 근사치로 (또는 모델로) 이해하고 그 근사치는 계속해서 수정 보완 되어 간다. (successive approximation)

아툴 가완디가 어제 칼텍에서 졸업식 축사를 했다. 그는 과학을 불신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단어 문장 하나하나에 공감했고, 많은 생각을 불러왔기에 공유한다.

간혹 음모론에 근거하여 과학의 가장 기본 지식마저도 흔들어버리려는 시도를 볼 때가 있다. 미디어는 검증된 기초적인 과학 지식을 흔들 때 종종 ‘주류’ 과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충분히 교육받은 이들이 ‘주류’, ‘비주류’라는 구분짓기에 흔들리고, 필요이상으로 회의를 하게 되는 것을 볼 때마다 의아해 진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나는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과학은 직관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그것은 과학이 직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관찰과 실험에 의해 입증되는 proven 것이기에 그러하다.

THE MISTRUST OF SCIENCE by Atul Gawande, 6월 10일자 New Yorker

The New Yorker

(image source: 해당 기사)

트럼프와 모순의 힘

지난 주말 NYT에 재미있는 기사가 두개 실려서 소개한다.

첫째는 지금까지 트럼프의 정치적인 입장의 변화를 그래프로 정리한 기사이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2000년에는 총기규제를 찬성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 3월 공화당 후보 토론회에서는 총기 규제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예전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올해 들어서는 의료산업을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정치인 이전의 트럼프는 진보적인 입장을 지지했으나, 공화당 유력주자가 되고서는 보수적인 발언을 자주 한다.

트럼프가 대권에 도전하면서, 정치적인 견해를 바꾼 것일까. 트럼프의 말을 듣다보면 그의 말바꾸기가 정치관의 변화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정도가 심하다. 그는 모순된 말을 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다. 예를 들자면, NYT 기사에서도 정리했듯이, 그의 낙태에 대한 발언은 모순 그 자체이다. 정치인이 되기 이전인 1999년에 그는 낙태를 찬성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 2월 22일 Fox news와의 인터뷰에서 낙태 반대론자로 견해를 바꾸었다고 했다. 이어서 3월 30일 그는 MSNBC에서 낙태하는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강경한 발언을 한다. 그리고 같은 날 그는 캠페인 웹사이트에 여성은 피해자이고, 의사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진짜 트럼프의 입장인가.

또, 그는 히스패닉은 잠재적인 범죄자들이기에 국경에다가 벽을 세워야 한다고 꾸준히 말해 왔다. 그러나, 며칠전에 그는 타코를 먹으면서 ‘I love hispanic!’ 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는 히스패닉을 어떻게 생각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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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모순된 행동이 유권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지금 미국 대선 상황을 보면 크게 두부류로 나뉜다. 첫째 부류는 트럼프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부류는 그의 말의 진위 여부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를 더 확고히(!) 지지한다. 나는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의 반응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음 기사는 모순의 힘을 이야기하며 두번째 그룹의 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모순의 힘을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며칠전에 나는 미디어가 과학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포스팅한 적 있다. 요약하자면, 미디어가 과학 연구를 가십거리로 전락시켰고, 또한 상호 모순적인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예를 들자면, 한 뉴스는 커피가 암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보도하고, 다른 뉴스는 커피가 암의 원인이 된다고 보도.) 대중의 인식 속에서 과학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대중은 그저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다가 쓰면 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커피가 암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커피가 암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칼럼에 따르면, 유사한 일이 트럼프 지지자에게도 일어난다. 첫번째 부류가 아닌, 그러니까 그의 언행이 거슬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트럼프의 모순된 행동이 오히려 그를 신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모순된 언행을 반복하게 되면 대중은 결국 그 중에서 본인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여 믿게 되는 확증편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디어를 통해 명성을 얻은 celebrity이다. 그는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행이 모순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있게 주장을 펼치는가, 그것을 어떻게 이슈로 만드는가 이다. 미디어 세상에서는 대중이 듣기 좋은 이야기를 선정적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해서 이슈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진실인가 아닌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모순은 일관성이라는 가치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일단 모순의 힘을 사용해서 일관성의 가치를 흔들어 버리면 정책이나 방향성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대중에게 일관된 가치가 없어지게 되면 그자리에 남는 것은 ‘인물’이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의 발언을 따르게 된다. 나는 한 인물이 카리스마로 대중을 장악하는 상황보다는 다양한 견해들이 충돌하여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선호한다.

 

미디어가 과학을 소비하는 법, 그리고 그 폐해

“Science is by its nature imperfect, but it is hugely important.”

블로그에서도 몇번을 언급했지만, 나는 John Oliver쇼의 애청자이다. 지난 주말 방송은 그중에서도 베스트로 꼽을만 했다. Vox에서 지난 주 에피소드를 소개하길래 공유한다.

John Oliver exposes how the media turns scientific studies into “morning show gossip” (Vox, 5월 9일자)

존 올리버도 언급하지만, 오늘날 미디어가 과학을 소비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가십 위주이다. 이를테면, 커피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든가, 방귀가 암예방에 도움이 된다든가 등등…

미디어의 가십위주 과학 소비는 대중의 인식 속에 과학을 흥미거리로 전락시켰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뉴스를 듣다보면 도대체 커피가, 포도주가, hug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자기 편한대로 끌어다가 믿어버리면 된다.

이는 대중이 유사과학을 맹신하게 하는 부작용마저 만들고 있다. ‘기후 변화는 거짓이다’나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 같은 터무니 없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과학적으로는 유의성이 약한) 이야기가 최근 힘을 얻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명제는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 거짓이라는 과학적 공감대 scientific consensus가 형성되어 있는 바이다.

“No! No, no, no, no, no, no, no, no! In science, you don’t just get to cherry-pick the parts that what you were going to do anyway. That’s religion. You’re thinking of religion.”

다시한번 깊이 공감하게 되는 John Oliver 이야기.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대중은 ‘섹시’한 결론만을 듣고 싶어하지만, 과학은 느리게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되어 가는 과정과 방법론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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