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토론 2

제가 요새 엄청난 양의 글로 페북을 도배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정치적인 이슈가 담겨 있는 글을 포스팅할 때는 조금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후배가 저의 글에 반박하는 긴 글을 올려주었는데, 댓글로 남겨두기 아까워서 담벼락에 다시 올립니다. 후배의 글을 통해서도 제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도 되었고 배운 점도 있기에 이런 류의 포스팅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포스팅은 수정없이 원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후배의 글)

제가 아는 박노자씨의 평가는 조금 다릅니다. 링크는 ‘영화화 한다면 적당한 인물’ 추천이라 단편적 발췌로 박노자씨의 호의를 추측하기는 힘듭니다. 저는 사실 박노자씨를 통해 윤치호라는 인물을 더 알게 된 사람인데요, 아시다시피 박노자씨의 여러 저작에 윤치호가 계속 등장합니다. 박노자씨의 의견은 ‘윤치호는 이런식(물지 못할거면 짖지도 마라)으로 식민당국에 대한 자신의 무비판, 협력을 스스로 합리화했다’ 입니다. 이건 찾아보시면 금방 나오는것이기도 하고 박노자교수님께 직접 물어보셔도 됩니다.(vladimir.tikhonov@ikos.uio.no 엄청 바쁘실텐데 대답을 무쟈게 잘해주신다는..)

– 그당시에는 어쩔수 없었다거나, 그 상황에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말은 정당화와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시대적 상황인식도 해석이 가미되지 않은 현실인식은 없고, 그 인식범위의 넓고 좁음은 있겠지만 어떤 인식이 정답인가도 있을수 없지요. 자신의 그릇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은 그래서 의미없는 말입니다. 그것이 행위의 정당성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도 최선을 다해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범죄인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식민지시대에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윤치호가 해야 할 선택은, 그 합리성이 아니라 그 정당성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적어도 재평가가 시도되는 지금 이시점 대한민국은 표면적으로나마 독립국이니까요. 물론 실제로 독립을 이루었느냐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합니다.(내적 독립까지 이루어졌다면 이런 재평가가 이슈화될리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 조봉암선생의 배경 언급하신 부분은 조봉암 선생이 남긴 글들로도 반박이 가능할것 같기는 한데, 아예 다른 예로도 쉽게 반박이 될 것 같습니다. 윤치호와 동시대의 인물로 우당 이회영선생 및 그 형제들이 있습니다. 희대의 천재 입장에서는 비이성적인 선택을 한 ‘우매한 민중’일 뿐이겠습니다만,(실제로 윤치호가 대중을 보는 시선은 이랬습니다. 사회진화론자인데다 racist였죠.) 흔한 친일파들의 변명인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는 사실 좀 옹색합니다.

– 윤치호라는 인물이 변절만 하지 않았어도 아마 A급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남겼으리라는 사실은 아마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겁니다. 그런데 이 변절이라는게, 주로 지식인들이 자행하는 – 그리고 자신들의 지식으로 열심히 합리화하기 바쁜 이 변절이라는게, 종합적 평가를 뒤집을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변절을 할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윤치호가 했던건 독립운동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正義에 입각한 최선의 합리적 선택이 아니었나 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특성이죠.

무의미한 논쟁같아서 최대한 짧게 지엽적인것만 적으려고 했는데 써놓고 보니 길고 모호하게 적혀있네요 여튼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는 집권층의 구성이나, 건국인지 독립인지 모를 그시점에 나라를 조직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史觀등이 대한민국을 지금까지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걸 과연 수정할 수 있으려나 회의를 가지고 있고) 그 바탕에는 역사적인 불확실성에 의해 여지없이 짓밟히곤 했던 합리성이라는 허상이 있으며, 그 합리성을 평가하는 방법은 논리가 아니고 정의와 불의의 구분이라고 믿고 있고요. 쓰다보니 제가 생각하는 정치의 본질을 적어놨네요.

(제 답글)
성의 있는 답변 감사합니다. 박노자씨의 윤치호에 대한 제가 아는 평은 위의 두 링크가 다입니다. 후배님께서 더 관심있께 찾아보신 것 같아 제가 잘못생각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제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존댓말로 댓글을 시작했습니다. 언어의 정치성 때문에 반말이 되면 형으로서 하는 훈계가 될 것 같은 부분을 염려에서였죠.

인물을 평가하는 시각 차이는 아마도 후배님과 저의 관점이 달라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상당히도 그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편인 사람이고 진리라는 것이 여러 사람에 관점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믿는 편이거든요. 나쁜짓 해놓고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논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껄끄럽게 하는 관점이긴 합니다만…

지금 회사에서 일하는 중인지라 찬찬히 생각해볼 시간은 없는데요. 집에가서 시간내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관련글 링크:

윤치호 토론

조선근대사 인물 – 윤치호와 서재필

윤치호 토론

Originally posted 06/16 @ facebook

일전에 윤치호에 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주신 분이 있어 댓글을 달다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졌네요. 담벼락에 다시 올립니다. 약간 수정했고, 언제나 그렇지만 비판이나 토론 환영합니다.

의견: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저는 ‘현실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죽산 조봉암선생의 어록중에 이런게 있습니다.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 하고서는 안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있을법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역사에 너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것 같아서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사람’을 판별할 마땅한 기준은 있을 수가 없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박노자씨가 윤치호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근거는 뭔가요. 박노자씨가 윤치호씨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건 대강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사상에 우호적이기도 한가요. 뭔가 안어울려서요.

답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박노자씨의 윤치호에 대한 평을 링크 걸어둡니다.

http://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0753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4174

첫번째 글은 프레시안에 연재된 글인데 영어천재 윤치호의 면모가 자세히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좀 길지만 읽어볼만 합니다. 두번째 글은 씨네 21에 실은 짧은 평인데 간단히 요약되어 있어서 보기 편합니다.

두 링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박노자는 윤치호를 최초의 ‘세계인’으로 평가하면서 그로 인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런 모습 때문에 비난할 수 만은 없다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저는 역사적인 인물을 볼때 그사람의 시대적인 배경과 상황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치호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전세계가 가장 미쳐돌아가던 시기의 인물입니다. 2번의 세계대전이 있었고 약육강식과 폭력이 극에 달했을 때 살았던 인물입니다. 폭력의 시대에 전세계에서 가장 힘없는 나라중에 하나인 우리나라에 태어난 지식인이었죠. 우리는 그가 일기를 꾸준히 썼기에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데, 초반 20대 때의 청년스러움이 세상의 폭력앞에 고통받고 변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의 잘못까지 부정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가 대지주였던 자신의 계급적인 이익을 위해 친일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시대의 무거움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큰 것을 요구하는지… 또 개인은 그 짐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혼란스러워 하고 고통받는 그의 이러한 고뇌하는 모습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뿐입니다.

이건 개인적인 견해인데, 미국사람들과 살면서 느낀건 서양 사람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체면을 생각해서 못 그럴텐데 이 친구들은 필요가 있는 사람한테는 철저하게 잘하죠. 이해관계가 없으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이 공공연히 행해졌던 당시 미국의 상황을 보건데, 윤치호는 아시아의 이름없는 나라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겠지요. 당시 미국인들은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비하했습니다. 일본보다 더 힘이 없었던 한국인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을 겁니다.

외교세계는 냉철합니다. 겉으로는 명분과 논리를 내세우지만 국가적 이익이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금에야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이나 3.1운동으로 약자의 부르짖음이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당시 국제관계는 지금보다 더욱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상황이었죠. (참고로 간디는 윤치호 보다 4살 아래입니다.)

윤치호는 3.1운동 당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우리나라의 독립하고 연관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일본이 미국의 적국으로 돌아서지 않는한 미국은 우리나라 독립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족 자결주의에 고무되어 있던 지식인 계층과 반대되는 현실주의적인 판단이었죠. 윤치호는 3.1운동의 대표로 서명할 것을 요청받지만 3.1 운동이 우리나라에 독립을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참여를 거절합니다. 윤치호의 좌우명이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라는 것은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 윤치호도 일기에 3.1 운동이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을 변화시켰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언급하신 조봉암 선생은 윤치호보다 34살이 어립니다. 3.1운동과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힘을 보고 자란 세대이죠. 박세리의 성공이 여자골프계에 자신감을 가져왔듯이 그는 독립운동의 가치를 목격한 세대예요.

글을 쓰다보니 제가 왜 이렇게 핏대 세우며 윤치호를 쉴드 처주는지 모르겠네요. 윤치호가 불운하다고 말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친일파 윤치호 후손은 지금도 잘살고 있습니다. 원래도 명문가이기도 했고요. 이를 테면 장남 윤영선은 50년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숙부 윤영렬의 손자가 바로 윤보선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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