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면서생(白面書生): 오직 글만 읽고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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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유행한 유머중에 하나가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 ‘키스를 글로 배웠습니다.’이다. 나는 그러한 유머를 볼 때마다 배꼽을 붙잡고 웃는다. 내가 그 유머에 자지러지는 이유는 왠지 모르게 내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이다.

나는 새로운 경험에 항상 목말라 있었고, 그 갈증을 해결했던 방법은 주로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었다. 어린 시절 나를 매료 시켰던 것은 주로 역사이야기, 세계 전래 동화, 각국의 신화, 성경이야기, 탐정소설, SF 소설 같은 것들이다. 딱히 분야가 정해져 있던 것 같지는 않고 잡식을 했는데 한가지 공통되는 점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소설은 우리의 삶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대부분의 인기 있는 통속소설이라는 것은 인기가 있을 법한 소재와 인물을 사람들의 판타지와 적당히 버무려서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단순히 재미 있는 소재만을 가져온다고 해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허접한 소설이라 하더라도 작가는 소설 속에서 세계를 창조하는데, 이때 작가의 세계관이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 히어로물의 세계관이라고 하면 슈퍼맨/배트맨이 등장하여 초인적인 힘으로 세계를 구하지만 괴로워하거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세계관이라 하면 뉴욕에 사는 매력적인 직장여성들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우정을 나누기도 하면서 즐기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관은 소설속에만 존재하는 법칙 같은 것인데 우리가 대부분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안들거나 싫어지는 이유는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불행하게 생을 마치는 식의 세계관이 탐탁치 않고, 어떤이는 모두가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다며 지루해 한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세계관과 맞아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세계관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야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세상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은 영화와 소설 속의 세상을 실제와 혼동할 때가 있다.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은 소설과 다르다. 만약 뉴욕에 한번도 와보지 못한 사람이 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가 그리는 뉴욕이 정말이라고 생각하고 똑같이 살려고 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행동은 코메디의 소재로 적합하다. 연애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무협소설이나 연애소설에 나오는 것을 현실로 생각하고 연인에게 행동한다면 가장 빵점인 연애를 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영화/소설/공연예술에 목을 메던 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 특히 그러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이야기라는 것이 별로 의미 없게 여겨지는 순간이 왔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 얄팍하며, 어떤 이야기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어떤 소설은 그저그런 세계관을 독특한 문체만으로 잔뜩 치장했을 뿐이다. 너무 뻔하다. 내가 알고 느끼는 세계와 작가들이 그리는 세계가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나는 소설읽기를 멈추었다. 소설보다는 자기계발서를… 영화보다는 예능프로를… 즐겨보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책은 (저자가 다른 경우에도!) 그저 동어 반복일 경우가 많다.

이제 책하고 화해를 할까 싶다. 검증된 고전의 경우에는 조금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지혜 같은 것이 있다. 10대에 읽었던 ‘노인과 바다’는 그저 낚시꾼의 허무한 귀환 정도의 재미없는 글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만나는 헤밍웨이는 자연의 위대함, 인간의 의지를 찬양하는 작가이다. 어린시절 톨스토이의 단편은 그저 재미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였을 뿐이다. 한번 종교/삶과 씨름을 해본 후에 만나는 톨스토이는 소박한 이야기에 닮긴 경건함이다.

여전히 사람과 관계 맺기에 미숙한 한 백면서생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