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문을 닫을 때, 일어나는 일

꽤나 마음을 움직였던 뉴욕타임즈 기사를 하나 공유한다.

기사 이야기 전에 내 경험부터. 한국에서 공장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신규사업을 추진하는 연구소에 배치되었다. 회사는 기존 사업을 정리 중이었다. 정리 대상으로 선정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부산에 있었다. 부산공장을 정리하면서 몇몇 직반장들과 엔지니어들이 천안과 기흥으로 전환배치 되었다. 부산 공장의 직원 일부는 정리해고 되고, 일부는 퇴직금으로 식당을 차렸고, 일부는 시위를 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이 시급을 받는 여공들은 그냥 공장을 그만 두지 않았을까 싶다.

공장을 정리했던 구체적인 과정은 잘 모른다. 공장 정리의 처음과 끝을 담당했던 인사/경리 담당자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디테일이 포함된 이야기는 없었다. 사람이 할일이 못된다고 했던 건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 몇달 후에 부산 공장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덩그러니 빈 건물 바닥에는 노랗게 금그어둔 설비의 표식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공장 정문에는 피켓을 든 일인 시위자가 서 있었다.

뉴욕타임즈 기사는 베어링 공장의 40대 steelworker 쉐넌 Shannon의 이야기이다. 한국으로 치면 열처리 공정 반장 정도 되는 사람이다.

2016년 10월 쉐넌은 공장이 문을 닫고 멕시코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25살이 되던 해에 쉐넌은 베어링 공장에 청소부로 취직을 했다. 쉐넌이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동거중인 남자친구의 폭력에서 도망쳐서 자립하기 위해서였다. 마흔 셋이된 지금은 열처리 공정의 베테랑이고 30키로가 넘는 철근을 맨손으로 옮기는 furnace 전문가이다. 그 동안 공장은 주인이 몇번 바뀌었고, 그녀는 몇몇 남자들과 사귀고 결혼/이혼을 했고, 또 집을 사기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 17년 동안 쉐넌과 항상 같이 있었던 것은 공장일이었다.

“사업상의 결정입니다.”

상사가 쉐넌에게 한 말이다. 쉐넌과 함께 300명의 직원이 작년 이맘쯤 소식을 들었다.

쉐넌은 화가났다. 바로 공장을 뛰쳐 나갔고, 멕시코 공장이 불에 타버리라고 저주를 했다. 그리고 밤새 울었다. 그렇게 세 밤을 울고서 월요일날 다시 출근을 한다. 사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 있던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40대 중년 여자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이 있을까.

몇달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트위터로 쉐넌의 공장을 직접 언급한 적도 있다.

Image result for Rexnord of Indianapolis is moving to Mexico and rather viciously firing all of its 300 wo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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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노동자들은 몇 마일 옆에 이뤄진 캐리어의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캐리어의 기적: 트럼프 취임 직후 에어컨 회사 캐리어가 멕시코 공장 이전을 취소한 일.) 쉐넌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 그녀에게 정치인이란 표를 얻기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투표를 잘 하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민주당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을 말하는 것은 좀더 먼 이야기 였고, 일자리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트럼프의 트윗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Go President Trump!!”

시급 7 달러가 23달러가 되기 까지 17년의 시간이 걸렸다. 쉐넌은 자신의 공장이 만드는 고품질 베어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쉐넌은 자신이 담당하는 기계를 ‘타코’라는 애칭을 붙여 사람처럼 부른다. 쉐넌의 어머니는 정부보조로 식량을 타먹었지만 쉐넌은 자신이 일해서 번돈으로 두 자식들을 키웠다. 싱글맘인 자신을 지금에 이르르게 한 것은 일자리였다.

2005년 처음 열처리 공정에 배치되었을 때, 사수들은 쉐넌을 좋아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열처리는 남자의 일이었다. 쉐넌이 처음 가스 밸브를 열었을 때, 사수는 천천히 열어야 한다는 주의를 주지 않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만 했다. 작은 폭발이 있었다. 쉐넌은 그날 공장을 때려칠 생각을 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쉐넌은 furnace에서 나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챌 수 있다. 쉐넌에게 ‘타코’는 꾸준히 들여봐야하는 투정많은 남자친구 같은 존재이다.

조금 딴 이야기지만, 마침 오늘 에이미 탄의 인터뷰를 들었다. ‘조이럭 클럽’의 작가 에이미 탄은 인터뷰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이야기 했다. 강인한 여자였던 탄의 어머니는 탄에게 항상 말했다고 한다. ‘절대 남자를 믿지 말고, 외모를 믿지 말라.’ ‘외모는 서른이 넘으면 의미가 없고, 남자에 의존하면 너의 삶은 망가진다.’ ‘여자가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 가려면 직업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쉐넌의 이야기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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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다. 공장 곳곳에는 낙서가 들어찼다. “Build a Wall!’ ‘Go to Mexico!”

그리고 멕시코 공장의 견습생들이 출장을 왔다. 공장 사람들은 둘로 나뉜다. 노조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기술 이전을 거부했다. 고작 시간당 4불의 야근 수당에 영혼을 팔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조용히 기술을 전수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 갈린 사람들의 인종이다. Rexnord 공장은 인종의 장벽이 거의 없는 곳이다. 흑백의 비율이 반반이고 타인종간의 교제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기술 이전에 거부하는 이들은 대다수 백인이고 흑인들은 묵묵히 회사의 방침을 따른다.

저소득 백인 남자들에게 미국은 우울한 곳이다. 20세기에 steelwork는 오로지 백인 남성들의 것이었다. 그러다가 일자리가 흑인에게도 허용되고, 그다음에는 여성에게 허용되었다. 21세기가 오자 이제 그들의 자리는 없어지고 공장은 멕시코로 이전하게 되었다.

흑인은 좀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본다. Brookings의 설문 조사를 보면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관련 자료 링크

UNEQUAL HOPES AND LIVES IN THE U.S. OPTIMISM (OR LACK THEREOF), RACE, AND
PREMATURE MORTALITY

내가 생각하기로 이는 실제적으로 흑인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예전에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미국 저소득자를 기준으로 흑인들의 평균 수명은 증가하고 있고 백인들의 평균 수명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이전 포스트 링크: Black Americans See Gains in Life Expectancy (NYT) 2016년 5월 9일자 포스트

백인 여자 쉐넌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에 섰다. 예전에 남자들에게 텃세를 받아본 경험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에 따르면 실질적인 돈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이들은 아직 그녀의 수입에 의존한다. 딸은 퍼듀 대학 간호학과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모자라다. 그녀의 손녀는 희귀병을 앓고 있고 계속해서 수술비가 필요하다.

쉐넌은 멕시코에서 온 견습생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핏덩이 같은 멕시코 견습생들은 쉐넌을 종종거리며 따라다닌다. 흡연시간에도 쉐넌은 견습생들을 데리고 다닌다. 쉐넌은 견습생들이 자기와 같이 있지 않으면 헤꼬지를 당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듬해 봄. 쉐넌의 딸 니콜은 퍼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모자란 등록금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되었다. 니콜은 쉐넌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이다.

휴식시간. 견습생 중 하나가 쉐넌에게 이야기를 한다. “My friend tells me that the reason a lot of people don’t like us is because we’re taking their jobs. 친구가 그러던데 여기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는게 우리가 당신들 일자리를 뺐어가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쉐넌은 답했다. “I’m not mad at you. I’m happy that you get the opportunity to make some money. I was blessed for a while. I hate to see it go. Now it’s your turn to be blessed. 내가 너한테 화난 건 아냐. 나는 네가 돈을 벌 기회가 생겨서 기뻐. 그동안 나는 운이 좋았지. 상황이 돌아가는 꼴이 짜증나. 그래도 이번에는 네가 그 운을 잡을 차례야.”

Rexnord 베어링 공장은 2주전, 그러니까 2017년 9월에 문을 닫았다. 쉐넌은 트럼프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른 중요한 이슈들에 Rexnord 공장이 묻혔을 뿐이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다른 정책인 오바마케어 철폐는 희귀병을 앓는 쉐넌의 손녀에게 (안좋은 쪽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쉐넌이 보기에 트럼프 역시 이전의 다른 정치인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을 뿐이다. 17년 동안 베어링 공장 주인이 몇번 바뀌었던 것 처럼.

+ 덧: 이 포스팅은 내 생각과 기사 요약이 조잡하게 섟여 있으므로 영어가 되시면 원문을 직접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기자가 글을 잘 쓰길래 찾아보니 보스턴 글러브에서 퓰리쳐상을 받고 뉴욕타임즈로 스카웃 된 친구더군요. 좀 길긴 하지만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 덧2: 관련해서 podcast 링크(30분 분량) 도 남깁니다. 기사에 다뤄지지 않은 뒷얘기 그리고 쉐넌과 기자의 육성도 들을 수 있습니다.

Black Americans See Gains in Life Expectancy (NYT)

어제 일자 뉴욕타임스 기사

기사에 따르면, 최근 미국내에서 흑인의 기대수명과 백인의 기대수명의 차이가 줄고 있다고 한다. 한가지 요인은, 약물 중독과 자살로 백인의 기대수명이 주는 추세 (관련해서 이전 포스팅, NYT 관련 기사) 때문이다. 그러나, 흑인의 기대수명이 느는 것도 확실한 추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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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이 증가하는 것은 단순히 몇가지 이유로 설명하기엔 복잡한 측면이 있겠지만, 기사에서는 1) 메디케어, 메디캐이드로 인해 흑인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늘었고, 2) 흑인의 흡연인구 감소로 인한 폐암 사망률 감소, 3) 흑인 사회에서의 폭력 범죄 감소, 4) 영아 사망률의 감소 등을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다.

물론 폭력 범죄의 감소는 흑인 남성 수감자의 증가 (관련해서 이전 포스팅, NYT 기사) 때문인지 핑커교수의 지적처럼 인류의 폭력 성향의 감소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좋은 소식.

단견이긴 하지만, 기사에서 든 네가지 원인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 국가의 기대수명을 늘리는 것은 의학의 발전도 있지만, 사회의 공중보건, 치안, 교육 수준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싶다.

관련 NYT 기사

감옥에서 예일 법대까지

며칠전, 한 단편 소설을 리뷰하면서 미국의 교정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링크)한 적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skid row 길거리 인생이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교도소에서의 삶도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정반대의 이야기이다. 밑바닥 인생의 굴레, 삶의 관성을 거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인터뷰이지만 픽션보다 더 극적이고 아름답다. Reginald Betts는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n ‘Bastard Of The Regan Era’ A Poet Says His Generation Was ‘Just Lost’ (NPR Fresh Air 12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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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NPR 해당 인터뷰)

1996년 Reginald Betts는 차량절도를 한다. 16살 소년은 중범죄자 수용소에서 8년을 복역한다. 24세에 출소한 Betts는 몇년 후에 예일대 법대생이 되었다. 그는 자서전과 시집을 출판한 작가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에서 인상적인 몇 부분을 발췌/정리해서 한글로 옮겨봤다. 링크에 스크립트가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전체를 직접 들을 것을 추천한다.

질문: 작가님께서 쓰신 책의 제목 ‘레이건 시대의 서자들’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는 두가지 의미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첫째는 말그대로 아버지의 부재입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부재만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시대적인 맥락에서 레이건 시대의 젊은이들은 아비 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저 자신 그리고 저와 유사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생각해볼 때 저는 우리가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잊혀졌다고 느낍니다.

질문: 작가님은 어떤 점에서 레이건 시대가 버림받은, 그리고 잊혀진 시대라고 규정하시는지요?

레이건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그러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1980년에 태어났고 마약과의 전쟁은 제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레이건 시대의 Mandatory Minimum Sentences 관련 형법은 우리 사회, 특히 중독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언젠가 시카고에서 아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털복숭이 맘모스 동영상을 봤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트라우마와 비극의 사건 현장에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어머니 맘모스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레이건 시대에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크게 볼때, 우리는 사회에서 버림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조망할 때, 우리는 그의 삶을 둘러싼 사랑과 관심을 같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인생을 가정과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저는 책에서, 레이건 시대의 부산물인 우리 세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흑인들의 삶에서 시스템 적인 한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습니다.

질문: 범죄를 저지를 때, 무슨 생각을 했나요? 차량절도를 사전에 계획했나요?

아뇨. 우발적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한 교육자로서, 저는 그날의 사건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공개석상에서도 여러차례 이야기 해왔지만, 저는 범죄를 계획하지는 않았습니다. 차량 절도는 제가 자란 지역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죠. 제가 아는 사람중에도 차량 절도범이 있었습니다. 차를 훔치자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고 정신을 차려보니 총을 들고서 차주인과 함께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와 15살 짜리 공범은 그 차를 훔쳤습니다. 그날은 잘못된 결정을 내린 하루였고, 그 결정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질문: 그럼 이제 교도소 이야기를 할까요? 제 생각에 감옥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두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경우에는, 책과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법전을 공부했습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책을 읽었고, 감옥 안에서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옥에서 범죄를 배웁니다. 또 그들은 전과기록 때문에 정상적인 직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되지 않습니까?

중요한 점을 지적하셨네요. 제 생각엔, 죄의 경중에 고려하지 않고 모든 범죄자들을 감옥에 보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정책이 수많은 죄수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감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망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저는 감옥에서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었어요. 구타도 거의 없었고, 망가지지 않았어요. 물론 저는 일년을 독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저는 교도소에 수감된 첫해를 독방에서 지냈죠.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일년 동안 저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질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작가님께서는 독서를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독방에서 독서를 하면서 또다른 세계가 열렸다고 하셨는데요. 감옥에서의 독서 체험은 감옥 이전과 비교해서 어떻게 달랐나요?

감옥에 가기 전에는 저에게 독서는 그저 재미였습니다. 의무감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옥에 갇히고서 독서는 마법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길로 향하는 수단이 되었지요. 독서는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되는 법과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꿈꾸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질문: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책을 구하셨나요? 그것도 독방에서요.

어떤 점에서 독방에서의 경험은 제가 시인이 되고 지적인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방에서는 원하는 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독서를 하게 되죠. 독방에서는 책을 구하기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은 책을 구해냅니다. 어떤 사람은 감방안에 책을 두고 가는데, 이게 돌고 돕니다. 보통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책들입니다.

한번은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날 오후, 나는 옆방에다 ‘누구 책 좀 보내줄수 있어?’ 하고 물었죠. 누군가가 감방 문틈으로 책을 던지더군요. 지금도 누가 그 책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책은 Dudley Randall의 시집이었습니다. 바로 그 책이 제 인생을 바꿨지요. 그 책을 접하고 저는 Etheridge Knight, Robert Hayden, Lucille Clifton, Sonia Sanchez 같은 흑인 작가들을 알게되었고 문학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고른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적인 영역이 넓어 질 수 있었죠. 톨킨을 배웠고, 판타지 문학을 접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접하기도 했죠. 제가 책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책이 마법이 되었던 셈이죠. 저는 책을 통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고 삶이 변했습니다.

질문: 교도소 이후에 대해 얘기해 보죠. 감옥에서 출소할 당시 작가님은 24살 이었죠? 8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후에 어디로 갔나요?

네, 집에 있는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다른 출소자들과는 달리 저는 갈 곳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차를 줬기 때문에 차도 있었죠. 어머니는 제게 바위 같은 존재였어요.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의 도움이 컸지요. 어머니는 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질문: 작가님의 책을 보면 신에게 올리는 감사의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작가님이 말하는 신은 누구인가요? 자서전에 따르면 작가님은 감옥에서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신앙을 가지지는 않기로 했다는 대목이 있는데요.

특정 종교의 신을 지칭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하나의 신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가족은 침례교이고, 저는 교회와 조금 미묘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일한 하나의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감옥에서 살아남고, 이후에 제가 이룬 모든 일들이 스스로 해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감옥에서 살아남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일대 법대에 진학할 자격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저보다 똑똑한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만약에 제가 감옥에서 한두가지 결정만 다르게 했더라도 지금 이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신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질문: 어머니께서는 작가님을 잘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감옥에 가게 되었죠. 작가님께서는 아드님을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은 어떻게 아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들과 피할 수 없는 종류의 대화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좋은 이야기죠. 제 아내는 상담치료사이고,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죠. 저는 시인이자, 작가이며, 예일대 법대생입니다. 우리는 아들과 대학생이 의미하는 것, 석사학위가 의미하는 것, 고등교육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들은 그 의미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피할 수 없는 대화가 있죠. 아들이 5살일 때 일입니다. 아들의 유치원 친구가 너희 아버지는 차를 훔쳐서 감옥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상처받고 울기 시작했죠. 선생님이 저를 불렀고 저는 제가 아이에게 설명하겠다고 했죠. 저는 5살 아이에게 내가 차를 훔쳤으며 그때문에 감옥에 가야만 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5살 짜리에게는 나쁜 사람이 가는 곳이 감옥입니다. 여러번 설명을 해야했죠.

제가 아들을 보호했던 방식은 불편한 진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안에는 수많은 흑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또 그것이 우리 사회가 폭력과 범죄를 다루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자식을 보호하려면 아이에게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매일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 것을 보죠. 또 제가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매일 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그를 통해서 배우고, 그 배움이 아이를 사회에서 보호합니다.

어머니가 저를 잘 보호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제가 감옥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셨죠. 책에 대한 애정과 감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독립심을 키워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가르친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랑과 관심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제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맘모스는 그러한 공동체에 속해 있었죠. 지금 저에게 공동체는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들입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아이들이 감옥과 같은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지요.

저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대다수 평범한 백인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흑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순간순간 맞닥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환경에 맞서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요. 저는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아이들이 좀더 나은 세상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