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 출장 중에 집어든 소설이다. 2007년 퓰리처 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시간이 넉넉할 것이라 생각해서 책을 몇권 들고 왔는데 피곤해서 많이 읽지는 못했다. 반 정도 읽은 시점에서 메모를 남긴다.
플롯은 단순하다. 큰 전쟁 이후 인류 문명은 완전히 무너진다. 모든게 불타버리고 재로 덮인다. 한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암석이 얼어 붙어 깨질 정도로 춥고 하늘은 항상 잿빛이며 모든 것이 젖어서 눅눅하다. 굶주린 무법자들이 언제 덮칠지 모른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아버지와 아들에게 먹을 것은 항상 부족하다.
여러 가지 결로 읽힐 수 있는 소설이지만 내게 이책은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부분만 옮긴다. 번역본이 없는 관계로 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Can I ask you something? he said.
Yes. Of course.
Are we going to die?
Sometime. Not now.
And we’re still going south.
Yes.
So we’ll be warm.
Yes.
Okay.
Okay what?
Nothing. Just okay.
Go to sleep.
Okay.
I’m going to blow out the lamp. Is that okay?
Yes. That’s okay.
And then later in the darkness: Can I ask you something?
Yes. Of course you can.
What would you do if I died?
If you died I would want to die too.
So you could be with me?
Yes. So I could be with you.
Okay.
인생의 한 챕터를 겪고 나서 그런 다음에야 이해가 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굳이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말 몇마디와 행동만 봐도 등장인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아버지가 되는 경험은 인생의 그런 한 챕터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세 사람이다. 삼주 정도 떨어져 있으니 그 무게를 더욱 느낀다.
내가 남자다운 사람인가? 남자다움을 내 영역을, 내 가족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자세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그다지 남자다운 편이 못된다. 모름지기 수컷이라면 쥣뿔도 몰라도, 자기는 속으로 곪아들어가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는 법이다. 때로는 그런 모습이 치기로도 나타나고, 때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도 나타난다. 나는 반대로 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다.
작년 여름 그런 무게를 느낀 적이 있다. 몇년 만에 한국에 돌아갔더니 양가 부모님들이 부쩍 늙으셨다.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이제 내가 누군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야 한다는 걸 알게되었다.
남자가 늙는 것은 물리적인 나이가 상관이 없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면 그때부터 훌쩍 늙기 시작한다. (그 시점은 은퇴를 전후 할 때가 많다.) 장남이지만 그다지 무게를 못느끼고 살았던 나는 태평양을 건너왔고 부모님들은 그새 나이가 드셨다.
삼주 동안 샌프란에 와있는 동안 십개월 된 작은 딸내미가 아팠단다. 중이염으로 열이 꽤 올랐다고. 큰애는 잔병치레를 한일이 없었는데 작은애는 종종 아프다.
큰애도 이번에는 유난히 아빠를 찾았다고 한다. 처음 며칠은 아빠를 생각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꼭 세수를 하기 전에만 울었다고. 울고나면 다시 세수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웃기는 녀석이다.
애들한테도 애들 엄마한테도 그다지 잘해준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내 빈자리를 느끼는 사람이 지구상에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