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진과 중국의 미래(?)

우스개로 하는 이야기겠지만, 요즘 중국에서 잘나가는 지역을 찾으려면 부패 공무원들이 쥐고있는 자산의 가치를 주목하라고 한다. 천오백만명 도시 텐진을 보면 그 말이 설득력 있다. 한때 중국 GDP 성장을 이끌던 잘나가던 도시 텐진은 부정부패와 과잉투자로 얼룩졌고, 2015년 대화재를 기점으로 추락한다. (아래 차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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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텐진의 GDP 성장률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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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이코노미스트지에는 텐진 기사가 실렸다. 기억을 되새겨봤다. 10년 전, 텐진이 잘나가던 시절 출장을 간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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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서 텐진은 스모그 자욱한 공업도시이다. 텐진은 베이징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베이징/텐진 지역은 스모그로 악명 높다. 1km 앞이 안보일만큼 짙은 스모그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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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으로 출퇴근 하는 길은 공돌이/공순이들로 가득차 있었다. 삼성뿐 아니라 모토롤라, 에어버스 같은 외국계 기업이 텐진에 들어왔다. 항구와 베이징을 동시에 접한 지리적 이점, 나름 준수한 대학 인프라는 텐진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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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중국 경제가 현대화하면서 텐진은 중국판 러스트벨트가 되었다. 그뿐 아니다. 공무원들은 부패했고, 과잉투자가 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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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맨해튼을 꿈꾸며 조성한 텐진 빈하이 신구. 수천억 위안을 투자해 만든 금융단지의 70%가 공실이다. 파이낸스 빌딩은 텅텅비었고 대신 한층을 통채로 탈출방에 새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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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하이 신구가 2018년 지금까지 유령 도시인 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가 굴러가기에는 많이 부족해보인다. 텐진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에도 10%를 못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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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집에는 원래 힘든일이 꼬이는 걸까. 정점을 찍은 건 2015년 텐진 항구 대화재였다. 이 사고로 173명이 죽었고 (대부분은 소방관), 1조 3천억의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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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공 약품을 저장하는 회사가 안전규정을 무시했고, 그럼에도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부패에 연루된 텐진 시장은 지금은 감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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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장은 부패를 일소한다는 약속을 했다. 성장 정책은 긴축 정책이 되었다. 분식회계를 걷어내자 텐진시 성장률은 1/3로 줄었다. 전임 시장아래서 13.5% 였던 성장률은 3.5%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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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다른 도시들이 그러하듯이 텐진도 고령화의 늪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60세 이상 텐진 인구는 1980년대 10%에서 25%로 수직 상승했다. 젊은 사람들은 텐진 보다는 좀더 기회가 많은 내지로 이주한다. 작년 한해 5만 2천 명의 인구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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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텐진시가 넋놓고 있는 것 만은 아니다. 지난 5월에는 20-30대 대졸자들에게 호구를 발행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이게 왜 파격적인 지는 중국 특유의 호구 제도를 찾아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럼에도 딱히 호응이 있는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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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예전 자료지만 중국 호구제 관련 한글 자료
중국 호구제 개혁, 만만디 (포스코 경영연구원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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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텐진은 베이징과 연계한 동반 성장 전략도 내놓았다. 아예 텐진을 베이징에 편입시킨다는 계획이다. 지지부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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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이 중국의 미래일까. 중국은 정말 크다. 단편적인 경험으로 미국이 어떻다라고 하나로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상당히 용감한 일인데, 마찬가지로 텐진 하나만으로 중국의 미래가 어떻다고 말하는 것도 무모하다. 텐진은 안좋은 예 중에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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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텐진은 2000년대에 머물러있다. 이미 2010년대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하기가 뭐시기 하다. 중국 경제가 잘나가지만 텐진 같이 고분분투 하는 공업도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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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10년 전에 만났던 법인장, 주재원, 현지 직원들, 조선족 직원들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당시 그 사람들 고민은 인건비였다. 텐진 공장들은 commodity 류의 공업이 주이고, 인건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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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나 소재를 아는 분이 있다. 당시 회사는 베트남 투자를 검토 중이었다. 그때 나의 보스는 지금 베트남에 가있다. 싼 인건비를 찾아서.

한국 방문중에 느낀 점들

0. 4년 만에

4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소년이 대학 졸업반이 되는 시간이고, 군대를 두번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다. 병장 만기 제대를 하고서 사회에 나왔을 때, 몹시 어색했었다. 늦잠을 마음껏 잘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세상이 무질서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 사람이 눈앞에 흔하다는 것도 이상했다. 늦잠을 자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6시가 되자 눈이 저절로 떠졌었다.

시차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하다. 정신이 없다. 약간 멍한 상태로 가족/친구들을 만난다. 어떤 부분은 생소하고, 어떤 부분은 ‘아 그랬었지’ 싶다.

외국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전혀 모르는 곳에 가면 모든 것을 새로 경험한다. 한국은 익숙한 곳이라, 생경한 느낌이 더 크다. 나도 변했고 한국도 변했다. 몇년 더 외국에 체류하면 한국을 잘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미국에 온전히 스며든 것도 아니니 약간은 서글프다.

두 주 정도 있으면서 느낀 점을 적어본다. 짧게 머물렀기에 나름의 가치가 있다. 좀더 있었다면 나는 다시 한국에 젖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느낀 이질감이 익숙함으로 변할 것이고, 나는 미묘한 차이를 더이상 느끼지 못할 것이다.

1. 공항에서 들어오면서

중국 자본이 한국에 공격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처음 본 광고판은 중국어로 되어 있었다. 交通銀行. 과거 삼성이 글로벌 브랜드를 키우려고 할 때, 제일 먼저 각국의 주요 공항 광고판을 장악하는 일부터 했다. 당시 한국인이 외국에서 애니콜 광고판을 보면서 느꼈던 뿌듯한 감정을 중국 사람들도 느낄런지 모른다.

2. 유행어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월드컵의 열기가 가득하던 2002년. 김정은은 비씨카드 광고에서 ‘부자되세요’를 외쳤다. 그리고 그시절 우리는 ‘부자 되세요’를 덕담으로 주고 받았다. 모든 유행어를 사회현상이라고 부르고 분석하려 드는 것은 때로 과도하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단어는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공감을 주는 단어인듯 하다.

3. 자극이 넘쳐나는 한국

무엇보다 한국 여기저기 넘쳐나는 자극이 인상 깊었다.

3-1. 간판

우선 간판. 한국 간판은 자극적이다. 간판이 건물과 어우러지지 않을 뿐더러 간판의 모든 글자는 강조되어 있다. 문서로 따지면 모든 글자에 견고딕체, 글자크기 40 pt, 굵은 글씨, 붉은 강조색, 밑줄치기를 사용한 느낌이다. 모든 글자를 강조를 하다 보니 아무 것도 강조되지 않는다. 이것은 옆가게 간판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원색적으로 튀려고 하니 서로 묻힌다. 간판들이 서로 돌출되어 아우성을 지르는 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3-2. 지하철 광고

어디를 봐도 광고를 피할 수 없다. 다음 열차를 기다릴 때도, 열차안에서 고개를 잠깐 돌려도, 스크린도어가 열릴 때도 닫힐 때도 모두 광고이다. 소리부터 시선까지 광고를 피할 방법이 없다. 버스 안에서도 광고가 가득하고, 버스 밖에서도, 안내 방송을 들을 때도, 은행에서 순번을 기다릴 때도 광고는 피할 수 없다.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4년 사이에 일상 생활에서 광고 노출은 과하게 커졌다. 공해로 봐도 무방하다.

3-3. 뉴스

뉴스에 극단적인 표현이 넘쳐난다. 뉴스를 틀어 보았다. 몇분 사이에 뉴스에서 파란, 좌초, 파국, 충격 같은 단어를 수차례 들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그냥 틀어놓고 배경음으로 들으면서도) 나라가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역시도 정보가 아니라 공해다. TV조선이나 채널a는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뉴스는 계속 된다. 그곳에는 한줄 짜리 단신이 나온다. ‘연봉킹’, ‘돌연’ 등등의 강조의 표현이 많아서 눈쌀이 찌푸려졌다. 간판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모든 뉴스가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정작 보는 사람은 무관심해진다. 그럴 수록 컨텐츠 생산자는 더욱 자극적인 문구를 만든다.

3-4. 시위 구호

예전에 ‘결사항전’이라는 단어를 보고서도 유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결사는 목숨을 걸고라는 뜻이다, 살면서 목숨을 걸 일이 몇개나 될 것인가. 물론 사안이 중요하기에 강조를 하는 것을 알겠지만, 너무 흔하게 듣다보니 가치가 떨어져 버렸다. 이제 진정 강조를 하려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 할 판인데, 나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잘 모르겠다.

3-5. 음식

한국사람은 원래부터 자극적인 것을 좋아했던 걸까. 맵고 짠 음식을 즐긴다. 직설적이고, 거침없으며, 저돌적이다.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그 안에서는 자극적인 한방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생존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3-6. 내가 변한 것일까, 한국이 변한 것일까

해외에서 사는 것은 외딴 섬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데에 열심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싶다. 외국인들은 다른 사람에 별 관심이 없다.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가보면 속세를 떠나 산에서 도를 닦다가 도시로 내려온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내가 언어에 좀더 민감해져서 일 수도 있다. 예전보다 단어 하나하나가 더 신경이 쓰인다. 영어 환경에서 한국어 환경으로 바뀌어 더욱 그런 것 같다. 어쨌든 나도 변했고 한국도 변했다.

Gangnam,_Seoul,_Korea

4. 긍정적인 점

회식 문화가 달라졌다.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에 의하면, 이제는 이차/삼차로 가는 회식은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떤이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회식 자리를 한달에 한번 이상 갖기 힘들다고 했고, 어떤이는 경비 절감때문에 회식비가 많이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물론 회사/부서/상관에 따라 편차가 있다.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변한 듯 하다.

이러한 변화는 주류 소비 행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양주 시장은 예전만 못하다. 젊은 사람들은 가볍게 마시는 맥주나 도수가 약한 소주를 찾는다. 크래프트 비어도 열풍이고 맥주의 종류도 다양해 졌다. 나이든 어른신들은 건강에 좋다며 막걸리, 동동주를 찾는다.

남자의 육아휴직 사용도 꽤 활성화 되었다. 물론 자유롭게 사용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제 주변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의 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개인/가족을 더 자주 말하고, 조직은 예전보다 끈끈하지 않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어 간다.

이러한 변화들은 내가 한국을 떠난 4~5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안에서 느끼기에는 변화가 느리게 보이지만, 밖에서 보기에 5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로는 크다. 한국인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또 새것에 대한 저항이 작다.

한국인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빨리 개선된다. 그리고 5년 10년 후에는 한국사람들은 또다른 문제를 들고서 한국사람들은 이래서 안돼, 변해야돼, 외국을 봐봐. 라고 말하고 있을런지 모른다. 한국인은 놀랍도록 유능한 사람들이다. 세계 어디를 봐도 이정도로 빠르게 개선하고, 바꾸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 점에서 나같이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몇년만 지나도 한국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는 내가 한국을 떠난 순간으로 고정되어 있다. 한국은 오늘도 변하고 있다. 내가 이전의 경험에 근거해서 ‘한국은 이래서 문제다’라고 말한다면 그 문제는 이미 사라진 다음 일지 모른다.

5. 그외 사소한 것들

5-1. 대중교통

간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니 사람사는 것 같았다. 미국, 특히 내가 사는 곳은 대중교통망이 허술하다. 자동차를 항시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버스/지하철/택시를 이용하다보니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서울만의 매력이다.

5-2. 물리적인 접촉과 우측통행

한국은 서로 몸을 부딪히는 게 자연스럽다. 미국 사람들은 서로 간에 물리적인 거리를 둔다. 몸이 부딪히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고, 알아서 서로 비켜준다. 좁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우리는 곡예하듯 어깨만 살짝 돌려 피해가는데 반해, 미국 사람들은 넓은 곳에서도 상대가 지나가도록 멈추어 기다려 준다. 굳이 지나가야하는 상황이 되면 ‘Excuse me’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 얘네들은 우측통행이 생활화되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른쪽으로 몸을 피한다. 나도 알게 모르게 습관이 들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룰이 없어서 어색했다.

5-3. 비보호 좌회전

미국에서는 비보호 표지판이 없어도 대부분의 도로가 비보호 좌회전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게 어색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 오니까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는게 어색했다.

5-4.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 이전

2호선을 탈때면 삼성역에 내려서 반디앤루니스 코엑스를 들리곤 했다. 책을 살 일이 없어도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를 주욱 둘러봤었다. 이번에 들렸을 때, 코엑스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반디앤루니스가 없었고, 대신 영풍문고가 들어와 있었다. 추억의 장소를 하나 잃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전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가보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