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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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었는데, 김영하 팟케스트를 통하였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일상의 어떤 사건을 다루는 소설의 섬세함은 나에게 충분한 호감을 주었다.

이를테면 마지막에 헤더가 로버트의 방에 있다가 바깥의 학생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던지. 남자친구인 콜린과 처음으로 관계를 갖는 장면이라던지.

침대 옆에 누워서 딴짓을 하던 아내도 어느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다. 아내의 감상은 나와 사뭇 다르다. 소설이 붙들고 있는 기억의 한 자락이 아내의 무엇인가를 건드린 듯하다. 그러한 경험은 소설을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든다.

여자의 심리를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가 남자라니. 아내는 잘 믿지 못했다. 일상의 디테일을 포착하여 글을 썼으니 필시 경험이 창작 동인이 되었을 텐데.

<대성당>을 읽을 때. 레이먼드 카버가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으나, 카버의 이야기는 절대로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되지 않는다.

차이는 아마 시점이 아닐까 싶다. 포터의 소설은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데, 그 차분한 절제가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기억의 쪼가리가 읽는 사람의 기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건조한 문장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소설의 이야기와 내 기억이 일치하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책을 사서 표제작 외에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내 기억과도 맞춰 봐야겠다.

블랙 스완(나심 탈렙 저)을 읽는 中

요즘 블랙스완(나심 탈렙 저)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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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던대로 금융을 가장한 인문학 책이다. 그가 말하는 학문과 학자들에 대한 독설은 왠지 통쾌한 면이 있다. 다양한 철학/수학/사상/역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논점이 명쾌하여 이해가 어렵지는 않다.

아직 1/3도 못 읽었는데 공감하는 내용이 많다. 몇가지 노트해 둔 내용을 공유한다. 그리고 원서로 읽고 있는데, 블로그 독자를 위해 내 나름대로 번역해 보았다. 참고로 내 번역은 의역이 심해서 거슬릴 수도 있다.

첫째

History is opaque. You see what comes out, not the script that produces events, the generator of history. There is a fundamental incompleteness in your grasp of such events, since you do not see what’s inside the box, how the mechanisms work. What I call the generator of historical events is different from the events themselves, much as the minds of the gods cannot be read just by witnessing their deeds. You are very likely to be fooled about their intentions. (The Black Swan, Nassim Taleb)

내맘대로 번역: 역사를 이해하기란 힘든일이다. 우리는 역사의 결과물을 알수는 있지만 역사를 만드는 근원을 볼 수는 없다. 역사라는 상자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고, 어떤 메커니즘이 작용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을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미완성 작업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역사를 만드는 근원이라고 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들 그 자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있었다고 해서 운명의 신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우리는 운명의 장난에 쉽게 속아넘어간다. (블랙스완 중에서)

처음부터 잘 쓰지 그랬냐고? 아직 결말을 모르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 쓰나?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처음부터 잘 살겠나? 소설을 쓰는 일은 ‘인생이라는 게 원래 뭐 그 따위’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일로 시작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누구나 없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소설은 시작된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나의 노트: 역사가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인생이 되었든, 그것은 다 사람의 일이다. 사람의 일이 쉽지 않은 것은 그것이 불확실하다는 데에 있다. 다 살아보기 전에는 그 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의 일을 돌이켜 보는 일이란, 왜곡이 심한 백미러(distorted rear-view mirror)를 보는 것과 같다. 지나간 일들은 하나의 관점으로 평가(assess)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고, 그 관점과 일치하지(aligned) 않는 사건들은 생략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사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가 김중혁의 표현을 빌자면, ‘뭐라도 되겠지.’라면서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의 일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둘째

Platonicity is what makes us think that we understand more than we actually do. (The Black Swan)

플라톤과 그의 추종자들의 방식은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내맘대로 주석: 화이트헤드는 ‘모든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고 했다. 내 맘대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현대의 학문은 실제를 이원화하고 쪼개고, 객관화 시켜서 이해하는 플라톤의 방법론에서 시작했다. 현대의 플라톤의 제자들은 모든 현상을 확률이나 이론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만든 이론/사상은 black swan과 같은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은 예기치 못한 사태가 왔을 때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