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내전 업데이트 – 반복되는 2004년의 악몽

작년 하반기부터 대(對)ISIS 이라크/시리아 전황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세에 몰린 ISIS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현대전은 전투에서 이기고 깃발 꼽는다고 해서 상황종료가 아니다. 현재 상황을 복기해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 해봤다.

밀리터리나 중동 전문가는 아니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공부 차원에서 정리해 본 내용이므로, 오류는 바로 지적해주시길 부탁한다.

순서

  • ISIS는 밀리고 있는가?
  • 현재 이라크 상황 – 팔루자 함락전
  • 2004년 팔루자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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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S는 밀리고 있는가?

점유지역 기준으로 ISIS는 확실히 밀리고 있다. 2015년 1월과 12월을 비교하면 점유 지역이 14%가 줄었다. (아래 지도 참조) 또 올해 3월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팔미라 Palmyra 수복에도 성공했으니, 지금은 더욱 줄었을 것이다. 참고로 팔미라는 시리아 남부 지역이고, 지도상에 짙은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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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적으로 보자면, 시리아 쪽은 쿠르드 전선에서 진전이 있었다. 시리아 북부지역을 탈환했다. 2016년에는 ISIS 자칭 수도인 락까 Raqqa 지역에 근접한 상태이고, 미군 특수부대원이 유프라테스강 동쪽 지역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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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남부의 팔미라 Palmyra 지역. 2015년 5월 ISIS가 점령하여 많은 우려를 낳았었다. 고대 팔미라 제국의 수도였고,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곳이다. 이곳은 올해 3월 시리아 정부군이 러시아의 지원 아래 수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아사드 정부의 입지가 회복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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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쪽을 보면, 작년 하반기에는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Tikrit를 회복하였고, 라마디 Ramadi도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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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라크 상황 – 팔루자 함락전

위의 지도에서 라마디 Ramadi와 바그다드 Baghdad 사이에 위치한 붉은 지역에 팔루자 Fallujah가 있다. 지난주에 바로 이곳에 이라크 군이 진격했고, 2016년 6월 2일 현재 치열한 전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왜 팔루자인가? 미군 측은 팔루자 공격에 반대했었다. 팔루자는 이미 고립된 상태이고, 전략적으로 보았을 때, ISIS의 제 2 도시인 모술 Mosul을 공략하는 편이 우선 순위다. 미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군은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등에 엎고서 팔루자 함락전을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라크 알 아바디 총리 Haider al-Abadi의 약한 지지기반을 이유로 꼽았다. (Fallujah, again Economist, 5월 28일자) 5월 18일 바그다드 자살 폭탄 테러(Deadly Bombing at Baghdad Market (NYT동영상))로 522명이 사망하여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도시 분위기도 뒤숭숭 하다고 하다. 바그다드 코앞에 있는 팔루자는 전략적으로 의미가 작더라도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팔루자 함락전은 여러모로 우려가 되는 점이 많다.

미군의 개입 정도를 기준으로 시리아 쪽 ISIS 전선과 이라크 쪽 ISIS 전선은 사뭇 다르다. 시리아 전선에서는 미군은 시리아 정부군 (알 아사드)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고, 시리아 측은 러시아가 뒤를 봐주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과 적대하는 미군은 대신 쿠르드 민병대, 시리아 반군과 동맹을 맺고 있다. 시리아 북부에서는 쿠르드, 시리아 반군, 미군 특수부대 연합군이 ISIS와 싸우고 있고, 남부에서는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연합군이 ISIS와 대치하고 있다.

반면 이라크 전선에서 미군은 이라크 정부군을 훈련하고 물자를 지원하는 수준으로 역할을 제한한다. 미군 대신 이라크 정부군과 공동작전을 펼치는 것은 이란군이다. (미군과 이란군은 적대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시아파가 주축이 되는 이란과 이라크 정부 주도의 작전은 수니 계열의 이라크인에게 종교 탄압으로 읽힌다. 시아 쪽은 상황을 정반대로 본다. 팔루자는 수니파의 도시이고, 시아파 사람들에게 수니 테러리스트들의 근거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ISIS의 모태인 AQI는 팔루자를 근거지로 삼았다.) 전쟁에서 종파 갈등이 연계되면, 시민과 적군의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시가전으로 접어들면, 도시를 쓸어버리는 작전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 자체로도 비극일 뿐 아니라, 또다른 증오의 씨앗이 된다.

군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팔루자는 라마디, 티크리트와는 다르다. 작년 수복된 두 도시는 고립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ISIS가 수세에 몰리면 퇴각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팔루자는 퇴로가 봉쇄된 상황이기 때문에 치열한 함락전이 불가피하다. 이미 팔루자에 있는 5만명의 시민들에게 의약품 보급은 끊겼고, 그들은 심각한 기아에 직면한 상태이다.

2004년 팔루자의 악몽

팔루자는 2004년에 유사한 상황을 맞았었다. 미군이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벌인 다음해 였다. 미군은 2003년 신속하게 작전을 마치고, 단기간에 마무리 지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2004년 즈음 부터 미군은 끌려다니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미군 무능력의 상징이 바로 팔루자였다. 수니파 도시 팔루자는 바그다드 바로 옆에 있다. 팔루자는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 AQI (ISIS의 모태)의 근거지이기도 했기 때문에 결국 미군은 도시를 쓸어버리는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팔루자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팔루자 함락전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메리칸 스나이퍼‘에도 묘사된 바 있다.

‘American Sniper’ Chris Kyle essential in 2004 Fallujah liberation, 워싱턴 포스트 2015년 2월 1일자

이라크의 종교/인종 분포 지도를 살펴보면 팔루자는 수니와 시아의 접경지대에 있다. 어찌보면 팔루자는 이라크가 탄생할 때부터 비극의 씨앗을 앉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이라크는 하나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나라였다. 다른 민족과 종교를 가진 집단들이 후세인이라는 강력한 독재자 아래서 위태위태하게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ISIS가 수세로 돌아선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말하기엔 상황이 너무나 암울하다. ISIS를 몰아내는 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ISIS를 제거하는가, 사후 처리는 누가 어떻게 진행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팔루자 함락전에서 2004년 이라크 상황이 겹쳐져서 보이는 것은 당시 미군이 수렁으로 빠지는 상징과 같은 전투가 팔루자 전투였기 때문이다. 2년 뒤인 2006년 부터는 이라크 내에서 수니-시아 간의 종파 갈등이 본격화 되었고, 2011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렸다. 2016년 지금에 와서는 알다시피 이라크는 셋으로 쪼개져서 내전 중이며, 그 와중에 ISIS라는 절대악이 등장하여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라크 지역의 역학관계와 IS

예전에 세상 모든 국가/단체에게 어그로를 끄는 IS가 어떻게 유지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IS의 적대 세력은 다음과 같다.

시리아 아사드 정부, 시리아 반군, 시리아 쿠르드, 터키, 미국/EU, 이스라엘, 이라크 정부, 이라크 쿠르드, 이라크 시아, 이란, 러시아, 알카에다… 그야말로 모두의 적이다. (관련 포스트)

나의 작은 의문은 산타크로체님의 포스팅을 보고 정리가 되었다.

완전한 권력의 공백 보다는 그나마 나은 IS 세력. 석유와 그에 얽힌 이해관계. 난민문제. 등등등 아~ 복잡다.

산타크로체님의 포스트: 시리아 난민은 많은데 이라크 난민은 왜 안보일까? ISIS가 건재한 이유, 러시아 개입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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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볼만한 TED 강의도 공유한다. 5분짜리라 부담없다.

현지인에게는 (당장 내일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보다는 ISIS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정부조직 서비스 (전력, 치안, 쓰레기/하수 처리 등등…)가 낫다.

유럽 난민 이슈와 나

유럽 난민 이슈를 정리해봤다. 오류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 부탁한다.

생겐 조약 (Schengen Agreement)과 entry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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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Bloomberg)

한국사람이 처음 유럽여행을 하면 신기한게 하나있다. 국경을 넘을때 아무도 여권 검사를 하지 않는다. 95년 발효된 생겐 조약 때문이다. 생겐 조약 이후 26개의 유럽 국가들은 국경을 걷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유럽과 비유럽의 경계선에 있는 나라들의 국경이 실질적인 국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헝가리가 이에 해당한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계속 심각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기에 유럽의 정부들은 오랜 시간 묵살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그리스와 이태리를 통했던 해로가 주요 루트였다면, 최근에 헝가리를 통하는 육로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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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T)

문제는 헝가리의 경우는 난민을 받아들인 역사도 없고 (서유럽에 비하면)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난민들도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또는 영국으로 가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또한 EU는 처음 난민 신청을 한 나라의 난민을 인정하기 때문에 헝가리 같은 경우는 난민을 방치하고 그대로 독일로 실어보내는 일이 최근에 발생했다. (역사 때문인지 독일은 난민에 전향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난민들은 심지어 독일 총리를 mama Merkel 이라고 부른다고.) 이 뉴스는 현재 진행형인데, 9월 4일 오늘자 뉴스에 의하면 열차 이용이 어려워진 시리아 난민들이 독일까지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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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france24)

이런 와중에 숨진 세살 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경제/정치 공동체 유럽

사진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잠깐 EU의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생겐 조약은 EU에서 단일 시장을 구현하기 위한 합의의 일부분이다. 같은 화폐를 쓰는 단일 시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네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1. 재화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goods)
  2. 자본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capital)
  3. 서비스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services)
  4. 거주이전 (또는 노동 이동)의 자유 (Free movement of persons)

생겐 조약이 발효된 근간에는 네번째 자유 즉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난민 사태는 EU의 근간을 흔드는 커다란 위협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리스 사태 보다 더 시급한 위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참고로 네가지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 사태는 두번째 자유, 즉 자본 이동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다.

EU가 출범 했을 당시 유럽은 일단 화폐 부터 통합하고, 나머지는 차례로 통합해 가는 방향을 선택 했다. 그런데, 이 나머지 통합이라는게 갈길이 아직 멀어보인다. 그나마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게, 재화이동의 자유 정도이다. 이는 지금도 Euro의 근본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유럽의 변방 그리스

어찌 보면 유럽 통합은 도달하기 너무 어려운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올해의 큰 이슈였던 그리스 사태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금융으로 드러난 문제와 별개로 그리스가 (서)유럽과 얼마나 이질감이 있는 국가 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스는 우리에게 서양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반짝이는 문화를 꽃피웠을 뿐이다. 비잔틴 제국의 한 지역으로 1000년을 존재했고, 이후는 오스만 제국의 일원으로 400년을 살았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망해갈 때서야 자신들의 조상의 찬란한 문명을 기억해 내었고, 발칸반도의 다른 나라와 함께, 민족주의의 바람을 타고서, 열강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독립을 쟁취했다. 그리스 정교 기반에다가 오스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리스는 어찌 보면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유럽의 경계로 존재하고 있다.

현대의 그리스는 EU에서 쫓겨 날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중동/아프리카/아시아의 난민들이 들어오는 entry country이니 그 역사가 참 애처럽게 느껴진다. 그리스에 더 관심 있는 분들은 블로거 Santacroce님의 포스트를 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스 비극1: 그리스인은 유럽인일까?)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그리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는 유럽 난민 사태가 유럽인의 정체성의 위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이 어디까지 유럽이라고 선을 그을 것인가,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함께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물론 이전에도 프랑스가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받아 들이거나, 핀란드가 소말리아전쟁 난민을 받아들인 예가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생겐 조약과 EU의 통합 덕택(?)에 지금의 난민들은 유럽 안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종교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유럽의 정체성에 위협을 주고 있다.

아일란과 유럽의 대응

다시 유럽 난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아이란의 사진은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을 테이블로 불러 들였다. 지금까지 난민문제에 상당히 열려 있던 독일을 포함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영국도 모른척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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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 decisions on asylum applications, 2014 (source: eurostat)

사실 유럽이 얼마만큼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조금 의문이다.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이런 문제가 진작에 일어나지 않았을 테다. 예를 들어 독일 망명 신청자는 30만에 달하는 데 이는 독일 인구의 0.4%에 해당한다. 민족주의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와중에 유럽이 이를 소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제아무리 마마 메르켈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인 (시인 김종삼)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나와 관련된 주제가 아니면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정보전달이 내가 블로그를 하는 주된 목적은 아니다. 몇번 그런 포스트를 한일이 있지만, 나중에는 쓸데 없는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능력도 부족하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섣불리 아는 척 하는 일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좋아하는 시 때문이다. 아래 시는 읽을 때에 천천히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읽어야 하는 시이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인은 47년 자신이 월남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기교 없이 쓰여진 이 시가 읽고나면 큰 파장을 남긴다.

어찌보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리아/아프간/이라크/파키스탄의 사람들이지만, 나의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파하는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보면서 내 생각도 정리해보았다. (아참 이 포스팅의 많은 부분은 Santacroce님께 빚져 있는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