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사람들의 밥먹기

Susan Cain On Why It’s OK To Eat Alone (TED idea 8월 11일자)을 읽고서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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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TED idea 해당 기사)

나는 내향적인 사람 (introvert) 이다. 내향적이라는 의미가 사람을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들하고 오래 있으면 빨리 지치고, 그래서 어느정도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들은 혼자인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 사회는 외향적인 (extroverted) 성향을 긍정한다. 미국에서는 내향적이다는 말은 anti-social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쉽상이다. 미국인들은 처음보는 사람들과도 쉽게 수다를 떤다. 에너지가 넘치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리더십이 있다고 하고, 능력이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식 교육은 참여를 권장한다. 참여를 잘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외향적이고 잘 나선다(?)는 의미이다. 조별 과제에서 능동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칭찬 받는다.

그런 점에서 내게 수잔 케인의 TED 강의는 인상적이었다. (링크) 내향적인 사람들의 장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한다. 다양한 정보들 중에 소음을 구분할 줄 알고, 그렇게 습득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줄 안다.

회사는, 대부분의 경우,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주도권이 가기가 쉽다. 내가 미국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받은 조언은 ‘Never eat alone.’이었다. 인맥은 일을 하는데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가는데에 중요한 자산이다. 그렇게 보면 이 조언은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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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향과 더불어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이것이 내게는 쉽지는 않은 임무이다.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잠깐의 순간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나는 내 옆에 누가 앉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밝은 얼굴로 즐겁게 대화를 하겠지만 말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나름 농담을 구사하기도 하고, 소셜 이벤트를 조직(!)하기도 한다.

(image source: https://infjoe.wordpress.com/)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나의 가장 현실적인 대처 방법은 어떤 것일까. 내향적인 성향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첫번째 스텝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나서 내게 적합한 다른 모델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인터뷰에서 수잔 케인이 말한 것처럼, 칵테일 파티나 네트워킹 이벤트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말자. 대신에 한명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면 그것으로 그날의 임무는 완성이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꽤 위로가 된다. 미국이라고 해도 외향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구나 싶다. 그녀의 책과 강연은 미국 내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교육계에서도 내향적인 아이들을 위한 몇가지 시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관련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래의 Atlantic지 기사를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링크: When Schools Overlook Introverts (the Atlantic 9월 28일자)

발터 벤야민 글 발췌

셀프서비스 식당 “아우게이아스” – 발터 벤야민

“혼자서 식사를 한다는 것. 이것은 독신으로 사는 것에 대해 제기되는 가장 강력한 이의다. 혼자서 하는 식사는 삶을 힘겹고 거칠게 만들어버린다. 혼자서 식사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영락하지 않기 위해 엄격하게 살아야 한다. 은둔자들은, 이것 때문만 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소한 식사를 했다. 음식은 더불어 먹어야 제격이다. 식사하는 것이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나누어 먹어야 한다. 누구와 나누어 먹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예전에는 식탁에 함께 앉은 거지가 매 식사시간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나누어 주는 것이었지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담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음식을 나누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사교 또한 문제가 된다.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사람들은 서로 평등해지고 그리고 연결된다. 생 제르망 백작은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식탁 앞에서 음식을 탐하지 않은 채 있을 수 있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이미 대화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각자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자리를 일어서는 곳에서는 경쟁의식이 싸움과 함께 일어나기 마련이다.”

+ 덧

어쩌다 벤야민이 눈에 들어와 글들을 퍼다 나르고 있다. 몇년쯤에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행한 철학자로 알고 있는데 글이 매력적이다. 불친절한 글의 전개(논리의 흐름을 독자와 전부 공유하지 않는다.)가 그를 어려운 철학자 반열에 올려 놨나보다. 아니면 번역의 문제일 수도.

그의 글 만을 놓고 봤을 때는 영락없이 트위터/페이스북 글쓰기이다. 이건 페북 중독자가 셀프서비스 식당에서 혼자 밥먹다가 뜬금 없이 든 생각을 포스팅한 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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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가 – 발터 벤야민

“훌륭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말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기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걸어간다는 것이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그 소망의 실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실현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즉 그 실현이 목표에 정확하게 합당한 실현이 되는지, 아니면 탐욕스럽고 흐리멍덩하게 소망에 자신을 탕진하는지는 길을 가고 있는 자의 훈련 여부에 달려 있다. 그가 자신을 절제하면서 불필요하거나 장황하거나 어슬렁거리는 동작들을 피하면 피할수록, 모든 신체의 자세는 자신에게 그만큼 더 족하게 되고, 그 신체를 더욱더 적절하게 운용하게 된다. 열악한 작가는 착상이 많이 떠올라 그 착상들 속에서 기력을 탕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열악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냉철하게 말할 줄 모른다. 재기발랄하게 훈련받은 신체가 펼치는 연기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사유에 부여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작가의 재능이다. 훌륭한 작가는 결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쓰는 글은 그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만 도움을 준다.”

Walter Benja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