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는 미국의 아틀란타다. 그런데 아틀란타에 살면서 한가지 곤란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인이 ‘아틀란타’를 제대로 발음하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틀란타로 이사온 처음 몇달간, 미국 사람들은 내가 발음하는 ‘아틀란타’를 알아듣지 못했다. 발음기호대로 또박또박 애!틀!란!타!를 외쳐도 아무도 못알아 듣는 것이다.

(image source: flickr)
내가 사는 도시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하는 것은 모양새가 빠져도 너무 빠진다. 그래서 미국인이 발음하는 소리를 유심히 들어보았다. 그랬더니 미국인들은 ‘앨~래나’ 이렇게 발음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비슷하게 흉내내면서 ‘앨~래나’라고 말하니 그제야 알아듣는다. 쓰여진 단어대로면 ‘애틀란타’라고 발음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미국인들이 Atlanta를 ‘앨~래나’로 발음하는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 2음절 강세단어
첫 번째는 강세 때문이다. Atlanta는 2음절에 강세가 있는 단어이다. 강세는 한국어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말은 기본적으로 모든 음절을 강하게 발음한다. 그런데 영어는 그렇지 않다. 단어에 고저/강약/리듬이 있다. 원어민은 발음 뿐만 아니라 강세까지 포함해서 단어를 인식한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발음을 하면 원어민은 그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식으로 Atlanta를 끊어서 애!틀!란!타!라고 발음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1음절인 ‘At’을 약하게 발음하고 2음절인 ‘lan’을 강하게 3음절의 ‘ta’는 아주 약하게 발음을 해야한다. 미국사람들은 강세가 없는 음절의 t발음은 거의 생략한다. 그러면 ‘애ㅅ래나’가 된다.
강세는 신경쓰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우리 기준으로는 몰라도 알아듣는데에는 지장이 없기 때문에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원어민이 ‘앨~래나’라고 말하면, 들을 때는 알아들었다고 해도 강세를 신경쓰지 않고 듣기 때문에 말할 때는 ‘애틀란타’라고 하게 된다.
비슷한 단어가 fantastic이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1음절에 강세를 주고서 ‘팬태스틱’이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강세를 1음절에 두고 말하면 원어민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팬태스틱’이라고 2음절에 강제를 두고 말하면 그제야 그들은 알아 듣는다. (내 경험담이다.) 발음을 신경쓰시는 분들은 fantastic의 f를 p와 구분해서 발음하는데 그분들도 강세를 틀릴 때가 많다. 이러면 발음은 굴리는데(?) 강세가 틀리니까 더 이상하게 들린다.
이런 예라면 정말 많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음을 잘 못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coyote인데, 어떤 분이 발음을 굴려가면서 ‘코~요~테’라고 말해서 듣기가 좀 어색했던 적이 있다. 역시나 미국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그분은 본인이 혀를 덜 굴려나 싶었는지 한껏 오버해서 ‘코~요~테’를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다시한번 서로 못알아 듣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했다. 사실 미국식 발음으로 coyote는 ‘카요리’라고 발음해야 한다. 게다가 이 단어는 2음절에 강세가 들어간다.
둘째 이유: 모음이 없는 소리
Atlanta가 발음이 어려운 데에는 중간에 들어간 t 사운드도 한 몫을 한다. 한국어는 기본적으로 모든 소리에 모음을 붙여서 발음을 한다. 그렇다보니 자음만 있는 소리에도 습관적으로 ‘~으’를 붙여서 발음한다. Atlanta의 경우는 ‘At’와 ‘lan’사이에 모음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At’와 ‘lan’ 사이에 ‘~으’를 넣어서 발음을 하려 한다. ‘앳~래나’가 ‘애틀랜타’가 되면 3음절 단어가 아닌 4음절 단어가 된다. 이렇게 되면 원어민은 더욱 알아듣기 힘들어 한다.
‘~으’를 붙이는 습관이 어디서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추측하기로는 일본식 영어에서 온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알파벳을 처음 배울 때도 ‘~으’를 붙이면서 발음하는 것을 배운다. 대표적으로 잘못 발음하게 되는 알파벳이 ‘V’이다. ‘V’는 ‘브이’라고 발음하는 게 아니라 ‘비~’라고 발음하는게 맞다. 이런 식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메칸더 브이는 메칸더 비가 되야 한다. ‘V’를 신경을 써서 b발음이 아닌 v발음으로 해도 ‘~으’를 붙여서 ‘브이’라고 말하면 미국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경험담이 있다. 체외 수정(시험관 아기)을 뜻하는 IVF(in vitro fertilization)를 발음할 때 ‘아이-브이-에프’라고 발음했는데, 잘 못알아 듣더라. 나는 IVF가 너무 전문용어인가 싶어서 시험관 아기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해줬는데, 그제서야 그 친구가 아~ ‘아이-비-에프’라고 하는 거다.
발음과 강세가 중요한가?
솔직히 발음과 강세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번에도 글을 쓴적이 있지만 (발음/관사/전치사 이야기)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 구사력이다. 기본적으로 문장구사력이 된다면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
또 한국에 살면서 원어민과 대화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원어민이 아니고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들 끼리는 발음이 달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도 발음이 미국식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미국식(또는 영국식) 발음을 못하기 때문에 발음이 틀려도 잘 알아듣는다. 외국나가서 일본사람들하고 서로 영어가 잘 통했던 경험을 해본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워야하는 이유는 영어가 ‘세계어’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는 영어를 사용한다. 이는 국가 간에 무역을 할 때 달러화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달러는 미국의 돈이지만 세계 기축통화로의 역할도 한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세계어를 배우는 데에 있다면 발음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는 우리끼리 영어할 때, Atlanta를 ‘애ㅅ래나’ coyote를 ‘카요리’라고 발음하면 아무도 알아 듣지 못한다. 혹은 누가 알아듣는다고 한들, ‘너무 빠다 발음하신다~.’ 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비웃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의 영어교육에 speaking이 강조되는 것도 무시못할 추세이긴하다. 지금의 영어 교육은 내가 영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하고는 많이 달라지긴 했다. 살다보면 쓸데없는 지식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강세 같은 부분도 알아둔다면 언젠가 유용하게 써먹을 날이 올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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