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뉴욕 트립 메모

바람쐬러 4년만에 뉴욕에 왔다. 처남집에 머물면서, 여기 친구들을 빼곡히 만났고, 틈틈히 관광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4박 5일을 보냈다.

뉴욕은 매번 올때마다 새롭다. 이번 방문에서는 4년전에 왜 뉴욕에 살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는지, 그럼에도 동시에 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가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마침 그 당시 공감하며 읽었던 가디언지 기사 생각이 나서 링크를 남겨둔다.

A tale of two New York Cities: I was rich, my brother was down and out (the Guardian, 2014년 10월 24일자)

 

File:Above Gotham.jpg

센트럴 파크의 봄

몇주전 맨해튼 바람쐬러 갔을 때 남긴 메모.


어제 맨해튼은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은날 센트럴 파크는 산책을 하기도 좋고, people watching을 하기도 좋다.

누군가는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을 하는게 로망이라, 그꿈을 쫓아서 살다가 보니 뉴욕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내는 맨해튼에서 학교 다니며 5년을 살면서도 1번을 가본게 전부였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마침 화창한날, 놀러나온 센트럴 파크 사람들을, 모자이크처럼 만든 동영상 클립보고서 공유한다.

File:3015-Central Park-Sheep Meadow.JPG

Voyages: Visual journeys with six photographers – NYT

Stunning pictures.

capture

여섯명의 사진 작가들이 사진여행을 떠났다. Breathtaking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사진들이다.

시각적인 경험을 극대화하려면 모바일 환경 말고, 데스크탑에서 볼 것을 추천. (피치못해 모바일에서 봐야한다면, 가로로 두고 넓게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

한국 방문중에 느낀 점들

0. 4년 만에

4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청소년이 대학 졸업반이 되는 시간이고, 군대를 두번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다. 병장 만기 제대를 하고서 사회에 나왔을 때, 몹시 어색했었다. 늦잠을 마음껏 잘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세상이 무질서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 사람이 눈앞에 흔하다는 것도 이상했다. 늦잠을 자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6시가 되자 눈이 저절로 떠졌었다.

시차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하다. 정신이 없다. 약간 멍한 상태로 가족/친구들을 만난다. 어떤 부분은 생소하고, 어떤 부분은 ‘아 그랬었지’ 싶다.

외국 여행과는 조금 다르다. 전혀 모르는 곳에 가면 모든 것을 새로 경험한다. 한국은 익숙한 곳이라, 생경한 느낌이 더 크다. 나도 변했고 한국도 변했다. 몇년 더 외국에 체류하면 한국을 잘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겠구나 싶다. 그렇다고 미국에 온전히 스며든 것도 아니니 약간은 서글프다.

두 주 정도 있으면서 느낀 점을 적어본다. 짧게 머물렀기에 나름의 가치가 있다. 좀더 있었다면 나는 다시 한국에 젖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느낀 이질감이 익숙함으로 변할 것이고, 나는 미묘한 차이를 더이상 느끼지 못할 것이다.

1. 공항에서 들어오면서

중국 자본이 한국에 공격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처음 본 광고판은 중국어로 되어 있었다. 交通銀行. 과거 삼성이 글로벌 브랜드를 키우려고 할 때, 제일 먼저 각국의 주요 공항 광고판을 장악하는 일부터 했다. 당시 한국인이 외국에서 애니콜 광고판을 보면서 느꼈던 뿌듯한 감정을 중국 사람들도 느낄런지 모른다.

2. 유행어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월드컵의 열기가 가득하던 2002년. 김정은은 비씨카드 광고에서 ‘부자되세요’를 외쳤다. 그리고 그시절 우리는 ‘부자 되세요’를 덕담으로 주고 받았다. 모든 유행어를 사회현상이라고 부르고 분석하려 드는 것은 때로 과도하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단어는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공감을 주는 단어인듯 하다.

3. 자극이 넘쳐나는 한국

무엇보다 한국 여기저기 넘쳐나는 자극이 인상 깊었다.

3-1. 간판

우선 간판. 한국 간판은 자극적이다. 간판이 건물과 어우러지지 않을 뿐더러 간판의 모든 글자는 강조되어 있다. 문서로 따지면 모든 글자에 견고딕체, 글자크기 40 pt, 굵은 글씨, 붉은 강조색, 밑줄치기를 사용한 느낌이다. 모든 글자를 강조를 하다 보니 아무 것도 강조되지 않는다. 이것은 옆가게 간판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원색적으로 튀려고 하니 서로 묻힌다. 간판들이 서로 돌출되어 아우성을 지르는 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3-2. 지하철 광고

어디를 봐도 광고를 피할 수 없다. 다음 열차를 기다릴 때도, 열차안에서 고개를 잠깐 돌려도, 스크린도어가 열릴 때도 닫힐 때도 모두 광고이다. 소리부터 시선까지 광고를 피할 방법이 없다. 버스 안에서도 광고가 가득하고, 버스 밖에서도, 안내 방송을 들을 때도, 은행에서 순번을 기다릴 때도 광고는 피할 수 없다.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4년 사이에 일상 생활에서 광고 노출은 과하게 커졌다. 공해로 봐도 무방하다.

3-3. 뉴스

뉴스에 극단적인 표현이 넘쳐난다. 뉴스를 틀어 보았다. 몇분 사이에 뉴스에서 파란, 좌초, 파국, 충격 같은 단어를 수차례 들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그냥 틀어놓고 배경음으로 들으면서도) 나라가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역시도 정보가 아니라 공해다. TV조선이나 채널a는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뉴스는 계속 된다. 그곳에는 한줄 짜리 단신이 나온다. ‘연봉킹’, ‘돌연’ 등등의 강조의 표현이 많아서 눈쌀이 찌푸려졌다. 간판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모든 뉴스가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정작 보는 사람은 무관심해진다. 그럴 수록 컨텐츠 생산자는 더욱 자극적인 문구를 만든다.

3-4. 시위 구호

예전에 ‘결사항전’이라는 단어를 보고서도 유사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결사는 목숨을 걸고라는 뜻이다, 살면서 목숨을 걸 일이 몇개나 될 것인가. 물론 사안이 중요하기에 강조를 하는 것을 알겠지만, 너무 흔하게 듣다보니 가치가 떨어져 버렸다. 이제 진정 강조를 하려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 할 판인데, 나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잘 모르겠다.

3-5. 음식

한국사람은 원래부터 자극적인 것을 좋아했던 걸까. 맵고 짠 음식을 즐긴다. 직설적이고, 거침없으며, 저돌적이다.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그 안에서는 자극적인 한방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생존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3-6. 내가 변한 것일까, 한국이 변한 것일까

해외에서 사는 것은 외딴 섬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데에 열심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싶다. 외국인들은 다른 사람에 별 관심이 없다.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가보면 속세를 떠나 산에서 도를 닦다가 도시로 내려온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내가 언어에 좀더 민감해져서 일 수도 있다. 예전보다 단어 하나하나가 더 신경이 쓰인다. 영어 환경에서 한국어 환경으로 바뀌어 더욱 그런 것 같다. 어쨌든 나도 변했고 한국도 변했다.

Gangnam,_Seoul,_Korea

4. 긍정적인 점

회식 문화가 달라졌다.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에 의하면, 이제는 이차/삼차로 가는 회식은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떤이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회식 자리를 한달에 한번 이상 갖기 힘들다고 했고, 어떤이는 경비 절감때문에 회식비가 많이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물론 회사/부서/상관에 따라 편차가 있다.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변한 듯 하다.

이러한 변화는 주류 소비 행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양주 시장은 예전만 못하다. 젊은 사람들은 가볍게 마시는 맥주나 도수가 약한 소주를 찾는다. 크래프트 비어도 열풍이고 맥주의 종류도 다양해 졌다. 나이든 어른신들은 건강에 좋다며 막걸리, 동동주를 찾는다.

남자의 육아휴직 사용도 꽤 활성화 되었다. 물론 자유롭게 사용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제 주변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의 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개인/가족을 더 자주 말하고, 조직은 예전보다 끈끈하지 않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어 간다.

이러한 변화들은 내가 한국을 떠난 4~5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안에서 느끼기에는 변화가 느리게 보이지만, 밖에서 보기에 5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로는 크다. 한국인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또 새것에 대한 저항이 작다.

한국인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빨리 개선된다. 그리고 5년 10년 후에는 한국사람들은 또다른 문제를 들고서 한국사람들은 이래서 안돼, 변해야돼, 외국을 봐봐. 라고 말하고 있을런지 모른다. 한국인은 놀랍도록 유능한 사람들이다. 세계 어디를 봐도 이정도로 빠르게 개선하고, 바꾸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 점에서 나같이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몇년만 지나도 한국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는 내가 한국을 떠난 순간으로 고정되어 있다. 한국은 오늘도 변하고 있다. 내가 이전의 경험에 근거해서 ‘한국은 이래서 문제다’라고 말한다면 그 문제는 이미 사라진 다음 일지 모른다.

5. 그외 사소한 것들

5-1. 대중교통

간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니 사람사는 것 같았다. 미국, 특히 내가 사는 곳은 대중교통망이 허술하다. 자동차를 항시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버스/지하철/택시를 이용하다보니 사람들과 가까이 접촉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서울만의 매력이다.

5-2. 물리적인 접촉과 우측통행

한국은 서로 몸을 부딪히는 게 자연스럽다. 미국 사람들은 서로 간에 물리적인 거리를 둔다. 몸이 부딪히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고, 알아서 서로 비켜준다. 좁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우리는 곡예하듯 어깨만 살짝 돌려 피해가는데 반해, 미국 사람들은 넓은 곳에서도 상대가 지나가도록 멈추어 기다려 준다. 굳이 지나가야하는 상황이 되면 ‘Excuse me’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 얘네들은 우측통행이 생활화되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른쪽으로 몸을 피한다. 나도 알게 모르게 습관이 들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룰이 없어서 어색했다.

5-3. 비보호 좌회전

미국에서는 비보호 표지판이 없어도 대부분의 도로가 비보호 좌회전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게 어색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 오니까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는게 어색했다.

5-4.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 이전

2호선을 탈때면 삼성역에 내려서 반디앤루니스 코엑스를 들리곤 했다. 책을 살 일이 없어도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를 주욱 둘러봤었다. 이번에 들렸을 때, 코엑스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반디앤루니스가 없었고, 대신 영풍문고가 들어와 있었다. 추억의 장소를 하나 잃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전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가보진 못했다.

고전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가?

시지프스의신화

대학교 친구 중에 항상 고민하고 심각해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도 보통은 심각한 편에 속하지만 그렇게 고민까지 하는 편은 아닌지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내면을 끝까지 파고 들었고 파고 들때마다 나오는 아픔으로 힘들어 했었다.

어쩌면 고전을 읽는 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전 소설을 예를 들어보자. 고전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단순하지 않다. 고전의 세계는 대부분 현실을 많이 닮아 있고 인물들도 입체적이다. 고전의 세계를 한번 통과하고 나서는 내가 가진 세계관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진실을 보게 된다. 어떤 때는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이 책을 통해 직접오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묘하게 책을 읽는 중에 진실을 대면하는 때가 많이 있다. 그것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감수성이 커지면 그만큼 세상을 넓게 보게 되어 그런게 아닐까 싶다.

통속물, 소위 가벼운 책들은 그렇지 않다. 가벼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에 가깝다. 머리쓸 필요 없이,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좋아하는 환타지의 장르를 정해서 통속적인 세상에서 충분히 즐기다 오면 그만이다. 나를 깨고 흔드는 힘은 없다. 통속물은 내가 알고 있는 믿고 있는 세계관을 확실하게 해주고 나는 거기서 힘을 얻으면 그만이다.

고전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가? 어떤 면에서 그러할 지도 모르겠다. 고전을 읽는 사람들은 소위 지혜라는 것에 좀더 가까운 사람이거나 깊이가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어떠한 면에서 고전을 읽는 사람들은 고통을 즐기기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한다. 고전은 우리를 한번 크게 두드려서 흔들어 놓고, 내가 알고 있는 틀을 깨고 나올 것을 종용한다. 문제는 그 틀을 깨어 나와 자유를 얻은 순간, 또 다른 고전이 기다리며 다른 틀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고전을 읽는 행위는 끝도 없이 자기 정진을 하는, 시지프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고행의 길처럼 보인다.

어쩌면 고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몸부림을 마치고 종국에는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정도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치 긴 여행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처럼…

고전이 그다지 인기있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수없이 쏟아지는 지식의 홍수속에서 그 지식이 얼마의 생명력을 가지는가를 생각해보면 꽤 오랜 기간 살아남아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꾼 책들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그 힘을 발휘할 것이다. 꼭 인기 있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고전이 힘을 잃은 시대에 아직도 그것을 붙들고 싸우는 분들에게 건투를 빈다. 그리고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 바란다.

필라델피아 여행 중에

Initially posted on facebook on Aug/18/2014

필라델피아에 있으면서 예전에 봤던 기사 생각이 났다. (기사제목: 빗자루 하나로 절망을 쓸어내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대 IVF간사 출신이신 이태후 목사님의 이야기다. 이 기사가 3년 전인데 아직도 North Philly에 사시는 지 모르겠다. 자신을 비우고 진심으로 이웃과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는 항상 감동이 있다.

나는 이태후 목사님은 알지는 못하고 기사 하나 읽은게 전부이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 기사로 볼 때 그는 본인이 믿는 선교철학을 삶으로 보여주려고 뛰어든 분으로 보인다.

미국에 와서 딸가진 아빠로서 치안/안전은 항상 중요한 관심사다. 미국이 무법천지에 항상 총소리를 듣는 나라는 아니다. 단, 우범지대는 사전에 알고 있는 것이 좋고 그런 동네는 얼씬도 하지 않는 정도, 밤거리를 쏘다니지 않는 정도 (지역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는 필요하다.

2004년인가? 그때 처음와보고 필리는 10년만에 다시 왔다. 대학생이던 당시 사촌형 집에 머물면서, 자유의 종과 프랭클린 저택을 둘러봤던 생각이 난다.

잠깐 미국의 수도였던 역사의 도시 필리에서 가족들과 한때를 보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Do You Speak English? – Big Train – BBC comedy

Originally posted 06/21/2014 @ facebook

프랑스 여행중인 영어권 여행객을 소재로한 BBC comedy. 프랑스 여행해본 사람은 공감할 듯….

참고로 Do you speak English? 랑 Can you speak English? 랑 뉘앙스가 다른데, can을 쓰면 강조가 되서 정말 영어의 영짜라도 아느냐 그런 의미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I can’t speak English라며 웃는 건 그런 느낌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