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연재: 2. 브렉시트와 EU의 정체성 – Eurosc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Vox기자 Amanda Taub의 NYT 기고문을 공유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간략하게 정리하고 내 생각을 덧붙이려 한다.

지난주 영국에 초점을 맞추던 외신들이 이제 EU 내부의 문제를 조명하는 분위기이다.

Euroseptic, 즉 EU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은 EU가 비민주적이며, 각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르펜이나, UKIP의 패라지, 그리고 이번 브렉시트를 이끈 보리스 존슨이 대표적인 Eurosepti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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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극우 포퓰리스트로 보는 것은 일리가 있는 평가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Euroseptic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놓치는 듯한 찜찜함이 남는다.

개별국가의 시각에서 EU를 바라보면 EU는 대단히 비민주적으로 작동한다. 영국을 예를 들자면,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들 (이를테면, 그리스를 구제하는 문제에 있어서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문제들…)에 대해 정작 영국사람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영국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의사결정을 영국사람이 하겠다는 요구는 정당하며 지극히 근본적인 문제제기인 것이다.

정치는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이익단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미디어와 공론장, 그리고 국회에서 논의를 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경우에는 청원서를 접수하거나, 헌법소원을 하거나, 아니면 시위에 참가하거나, 이런 행위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EU는 그런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심지어는 영국민 자신에게 중요한 큰 결정에 마저 그러하다.

European Parli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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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첨부한 기사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왜 EU는 비민주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것일까?

첫째, EU는 원래 그렇게 작동하도록 고안되었다. 유럽의회의 구성원들은 선거로 선출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technocrat, 즉 전문가 집단이다. 그들은 개별 국가의 이익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EU 관점에서 최적의 결정을 할 것을 요구 받는다.

EU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럽의 평화와 공존, 그리고 하나된 유럽이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이상과 개별국가의 이익은 상충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나 유럽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파시즘이나 민족주의자들의 봉기는 더더욱 그러하다. EU의 전문가 중심의 의사결정은 이러한 목적에 잘 부합한다.

기사는 두번째로 EU의 지나치게 약한 권력을 지적한다. (헤깔리기 쉽지만, 강한 권력이 아니다.) 유럽 난민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EU는 각 나라에 난민 수용을 강제로 배정할 수 없다. 유럽의회에서 협의를 거친 이후, 각 나라와 다시 협상하고, 부탁하며, 양해를 구해왔다. 유럽 각국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자기 나라가 떠안기는 거부하고 서로 모른척해왔다. 그리고 그 협상의 결과에 대해 개별 국가들은 모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과 각국의 힘의 균형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포스팅한 바 있다. European Union을 United States of America를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유럽연합과 각국 정부는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관계와 유사하다.

미합중국도 건국초기에는 연방정부의 힘이 약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서로 견제하면서 성장해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로간의 대립이 가장 치열했을 때가 남북전쟁이다.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은 연방정부의 권한이 극대화된다. 연방을 탈퇴하면 전쟁을 불사한다는 것보다 더 강력한 메세지가 어디있겠는가.

Webster's_Reply_to_Hayne

Nullification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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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의 연방주의자들이 강한 연방정부를 주장했던 것처럼 하나된 유럽, 그리고 강력한 유럽 연합이 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브렉시트 이후, EU는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좀더 강력한 EU를 추구하던지 (강력한 EU는 우선은 UK에 대한 강경대응의 모습으로 표현될 것이다.) 아니면 어떠한 식으로든 민주적인 의사 결정 절차를 추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사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그리고 엘리트 정치인들과 대중의 괴리이다. 브렉시트 과정에서 영국의 양당은 모두 EU 잔류를 내걸었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엘리트 정치인을 불신했다. 사실, 카메룬의 협박(?)은 결론만 보면 틀린말은 아니였다. 그가 말했듯이 Exit을 선택하는 것은 영국민의 선택이지만, 그 와중에서 생기는 사회/정치적인 혼란, 경제적인 부담은 온전히 국민의 몫으로 남게되었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기성정치에 불만 표시로 브렉시트를 선택하였다.

EU가 태생적으로 민주적이지 않은 것 또한 EU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듯이, 엘리트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우려를 표하는 것 또한 나름의 당위성이 있다. 사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은 영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트럼프와 샌더스의 부상 또한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브렉시트 관련글 모음

1편: European Union과 United of States of America
2편: 브렉시트와 EU의 정체성 – Eurosc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3편: 브렉시트와 불평등의 문제 – 경제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4편: 브렉시트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 사회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브렉시트 연재: 1. European Union과 United of States of America

요즘 뉴욕타임스에는 브렉시트에 대한 유력인사들의 기고문이 이어진다. 그제는 프랑스 마린 르펜의 기고문이 있었고, 어제는 샌더스의 기고문이 올라왔다.

특정 사건에 대한 정치인의 논평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건 그자체의 의미를 곱씹는다기 보다는 평소에 자신이 주장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사건을 재해석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를 테면, 샌더스 의원의 경우는 브렉시트에서 99퍼센트의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를 읽는다. EU와 UK 엘리트 정치인들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분노가 브렉시트를 이끌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샌더스는 그들의 분노가 반이민 정서에 기대고 있는 부분은 우려를 표한다. 샌더스가 트럼프와 자신을 구분 짓는 지점이 바로 이민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NYT 기고문에서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공정무역(?)’에 찬성한다는 본인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브렉시트를 계기로 전세계 민주주의자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전선 르펜 역시 기고문에서 브렉시트를 통해 평소 자신의 주장을 반복한다.

르펜은 기고문에서 브렉시트가 EU의 무능과 독일 중심의 유럽질서에 반기를 든 용기있는 결정이라고 평했다. 하나의 유럽의 꿈은 환상에 불과하고 유럽국가들은 관료주의적인 EU에서 탈출하여 독립주권 행사와 진정한 자유를 선택해야한다고 말한다.

나는 샌더스와 르펜의 주장에 대해 평하기보다는 요새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를 하나만 언급하려고 한다. (이것도 위 두사람처럼 내 관점의 연장선상으로 개별 사건을 보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리라.)

그것은 미합중국 초기의 역사중에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의 갈등이다. 물론 European Union을 United States of America와 동일한 기준으로 놓고 보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과정상의 진통에서는 어느 정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갈등 속에서 성장해왔다. 우리에게야 연방이라는 개념이 쉽게 와닿지 않지만, 그리고 현대의 미국은 연방정부의 권력이 상당히 강해져서 하나의 나라라는 느낌이 더욱 크게 다가 오지만, 미국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헌법을 보면 주정부의 권한과 연방정부의 권한을 미묘하게 조정하는데에 꽤 큰 노력을 들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주정부는 이론적으로는 연방정부의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nullification이라는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nullification 영문 위키피디아 링크)

Nullification이 정점에 달했던 시점은 앤드류 잭슨이 대통령이던 시절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관세법 거부 사태였다. 당시 잭슨 대통령은 군대를 끌고 가는 가장 과격한 방법으로 주정부의 권한을 짓밟는다. (1833년)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관세는 구실이고, 진짜 목적은 미합중국 해체와 남부연방의 설립이다. 다음에는 노예제를 구실로 삼을 것이다.’ (영문 위키 피디아 nullification crisis 항목 재인용) 이를 브렉시트로 바꾸어 말하면, ‘EU 분담금과 이민 문제는 구실이고, 진짜 목적은 EU의 해체와 대영제국의 재건이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Webster's_Reply_to_Hayne

Nullification Crisis (image source: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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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잭슨의 무력진압은 결과적으로는 남부 주정부들과 연방정부의 갈등을 키우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30년 뒤에 일어난 남북전쟁을 노예해방이 아니라 nullification이 전쟁의 형태로 표현되었다고 읽을 수 있다.

브렉시트가 여러가지 경제 이슈 (특히 영국의 EU 부담금)와 이민 이슈 (표면상으로는 NHS 혜택), 그리고 (세대간, 지역간) 불평등 이슈들이 엮여서 발생한 것은 맞다. 그렇지만 독일 중심의 EU 체제를 거부하는 영국인의 자존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초기 미국의 연방파 반연방파와의 갈등에서 유사점을 볼 수 있다.

미국 연방주의자가 주장했던 것처럼 하나된 유럽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EU라는 것도 어찌 보면 오랜 기간 치고 받은 유럽이 생각해낸 하나의 꿈이다. 게다가 미국은 역사와 전통이 없는 진공상태에서 탄생한 나라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원주민을 내쫓고 인공적인 진공상태를 만들었지만…) 반면, EU는 길고긴 역사와 상이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들의 집합체이기에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다만 현시대를 사는 내가 바라보기에는, 엘리트들이 (정치인, 경제학자, 사상가 등등… ) 서로 다른 가치관과 꿈을 추구하고 치고 받는 과정에서 고통받고 경제적 부담을 짊어가야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라 안타깝다. 그리고 그 꿈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느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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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European Union과 United of States of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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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브렉시트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 사회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