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조업 임금 상승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인기와 평가는 순전히 운에 달린게 아닐까. 특히나 경제분야는 더욱.

현대에 와서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나라의 정책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건 아니다. 보통 취임 첫 몇달은 각료들 인사와 업무 파악에 정신이 없다. 그러니까 당선 1년 만에 대통령이 바꿔서 경제가 확 살았다고 주장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그 어느때보다 서로 연동 되어있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이를 테면 임기 초반에 IMF가 왔다던가, 금융위기가 왔다던가. 이런 때는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중요하겠지.

어쨌든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트럼프 대통령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경제가 풀리기 시작하더니 여러 지표들이 매우 긍정적이다.

이번주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미국 경제에 보이는 긍정적인 신호들을 주요 기사로 실었다. 블루칼러 직종의 임금이 꽤 올랐다고 한다. 특히 지난 분기 상승은 고무적인데, 대략 (annualized) 4%가 상승 했다.

관련기사
Cheer for the blues – Blue-collar wages are surging. Can it last? (the Economist, 11월 14일자)

오바마 말기에도 경제 지표는 나쁘지 않았는데, 그래도 임금의 상승 정체는 문제로 자주 지적되었다. 2009년 금융 위기 때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임금은 8.7% 상승하였지만 물가는 9.5% 상승 했다. 바꿔 말하면, 금융위기 이후에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임금정체로 중산층의 불만은 커졌었고, 전문가들은 이를 트럼프 당선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작년에도 실업율은 낮았다. 그게 지속 되면서 올해는 서서히 임금상승까지 오는 모양이다. 그것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세상에나 블루칼러가 바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아니던가!)

작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의 8년 임기를 돌아보며 이코노미스트 지에 기고문을 실은 적이 있다. 오바마는 기고문에서 후임자에게 경제 숙제로 4가지를 남겼다. 생산성 증가율 감소, 불평등 심화, 노동 참여율 감소, 미래를 위한 경제 기반 만들기. (참고로 예전에 페북에서 김선함씨가 이 기고문을 번역해서 올린 적이 있다. 링크 그리고 나도 짧게 감상을 포스팅을 했었다. 링크)

경제 숙제 중에서 노동 참여율 감소 부분만 보면 오바마 때까지 꾸준히 떨어지기만 하던 노동참여율이 올해들어 주춤하다. 여성 노동 참여율은 증가세까지 보인다. 작년 오바마 기고문에 실린 차트와 (아래 차트1) 올해 차트를 비교해보면 (아래 차트2)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차트1. 2016년까지 노동 참여율


차트2. 2017년 포함 노동 참여율

이코노미스트지는 임금 상승의 주원인을 수요 쪽에서 찾는다. 생산성 쪽은 사실 별 변화가 없기도 하고.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 수요 증가를 가져 온 것은 약달러와 유가의 상승이다. 약달러 때문에 미국은 올해 수출이 상당히 좋다.

유가 상승 역시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올해 제조업 일자리의 대부분은 오클라호마나 텍사스 같은 동네의 석유 산업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울한 러스트 벨트 경제에는 여전히 별 도움은 안되었다는 이야기도 되고.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 보면 임금상승이 불평등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보면야 세계화/자동화로 인간의 입지가 위험하다지만, 2~3년만 두고 보자면 이런 분위기가 계속 될 때 최소 지금 백악관에 계신 양반에게는 큰 도움이 될 모양이다. 나야 그 양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만 뭐가 됐든 경제가 좋다는 데 불평할 것까지야.

대통령의 행정명령

요즘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교과서에서 미국 정치는 견제와 균형의 checks and balances 장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배우긴 했었다. 트럼프 정부는 그 장치가 얼마나 작동하는 지 잘 보여줄 모양이다.

어느 시점에서는 그 장치가 작동하리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이보다 더 심한적도 있었다. 문제는 외교와 국제 정치이다. 견제 장치가 있는 국내 정치와 달리 국제 정치는 딱히 견제하는 장치가 없다. UN과 WTO의 힘은 최근 몇십년 동안 급격히 약해졌다.

요즘 말이 많은 대통령 행정명령에 대해 찾아보았다. 수퍼파워님께서 취임후 열흘 동안 트위터 하듯이 행정명령을 뿌리고 있기에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겼다.

우선,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뿐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행정부는 대통령의 소관이기 때문에 행정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행정부는 행정명령을 따르게 된다. 지금처럼 위헌 논란이 계속 되는 경우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행정명령이 만능은 아닌데, 예를 들어 오바마가 내린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명령은 끝까지 실행되지 못했다.

이 행정명령을 뒤집을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송을 제기해서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는 것. 실제 트럼프 정부 열흘동안 42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특히 무슬림 7개국 입국 금지 건에 대한 반발이 심했는데, 매사추세츠, 뉴욕, 버지니아, 워싱턴 주가 동시에 소송을 걸었다. 소송으로 들어가면 보통 일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전까지는 행정부는 행정명령을 따르게 된다.

다르게는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취소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본인이 취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은 후임자가 전임자의 행정명령을 취소한다.

그리고 의회는 대통령이 내린 행정명령을 거부할 권한이 없다. 의회가 할 수 있는 건 반항하는게 유일하다. 이를 테면 예산 승인이나 세금 쪽은 의회 고유의 권한인데, 이 쪽에서 협조를 안해주면서 버티는 거다. 오바마때 공화당에서 쓰던 방법이다. 당시 의회와 대통령의 갈등이 극심해서 정부 셧다운까지 갔었다. 물론 지금은 상하원이 모두 공화당이기에 이렇게 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오바마는 공화당에게 행정명령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자제한 편에 들어간다. 연평균 35회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아들부시는 36회, 클린턴은 46회였다. 물론 오바마도 취임 첫달에는 17개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정권 초기에 빠른 정권안정을 가져오는 데에 행정명령이 어느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기는 하다.

What is the scope of a president’s executive orders? (the Economist, 1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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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료 개혁, 이제 트럼프 차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딴나라 의료 시스템 이야기지만, 어쨌든 미국은 다시 오바마케어 이야기가 시끄럽다.

그 발단은 지난 주말 트럼프가 WSJ 인터뷰에서 한 말. 트럼프가 다시 봤더니 오바마케어에도 쓸모있는 부분이 있더라는 발언을 했다. 그가 말한 쓸모 있는 부분은 기존 병력이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암투병 경력이 있다던가…)을 보험에서 받아주는 부분이다.

일단 하나만 짚고가자. 한국 사람들이 미국 의료보험을 이야기 할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 의료보험의 역할이다. 쉬운 말로 바꾸면, 그렇게 비싼 보험료를 내는데, 병원비는 왜 또 그렇게 비싸데? 하는 의문이다.

한국에서 의료보험은 아무래도 ‘보험’이라는 의미보다는 ‘세금’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세금’을 냈는데, 또 엄청난 비용이 드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의료 보험은 정말로 ‘보험’이다. 한국에서도 의무로 들어야 하는 자동차 보험이랑 비슷한 역할을 한다. 자동차 보험을 든다고 해서, 경미한 사고까지 수리비가 커버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말로 감당 못할 사고가 터지면 그제서야 필요한게 보험이다. 평소에는 아깝지만 그야말로 ‘보험’ 차원에서 들어두는 거다. (그렇지만 사람이 차하고 같나. 아픈데 돈때문에 병원을 못가는 일은 그렇게 수지타산으로 만 생각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보험업계가 겪는 정보비대칭의 문제가 오바마케어에도 똑같이 있다. (여담이지만 올해 수능에 보험과 정보 비대칭 이야기가 지문으로 나왔단다. 내 포스팅들만 열심히 읽어도 쉽게 풀수 있었을 텐데… ^^)

관련 포스트

경제이론 시리즈: 정보 비대칭

보험업계 입장에서는 돈이 많이 드는 암투병 환자와 건강한 사람을 구별해서 보험료를 책정하는게 유리하다. 아니면 아예 아픈 사람들을 보험을 안받는 다던지…

그런걸 금지한게 오바마케어의 한 축이다. 환자가 아프다고 보험에서 거절할 수 없다. 당연히 환자들도 좋아할 거고. (환자라고 쓰고 유권자라고 읽는다.) 트럼프가 오바마케어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게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되면 보험업계가 타산이 맞질 않는다. 그래서 ‘의무가입’ 조항이 들어가는 것이다. 오바마케어에서 욕을 가장 많이 먹는 부분이다. 당연히 현재 건강하고 병원 갈일이 없는 사람들은 보험료가 아까울 수 밖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국에선 의료보험이 세금이 아니라 보험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다.

결국 보면, 이 두축은 같이 가는 것이다. 만약 인기가 좋은 부분만 하고 보험업계의 수지를 맞춰주지 않으면, 나라의 보조금으로 이를 메워주어야 한다. 이건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니까 공화당이 싫어한다.

의무가입, 정부 보조금, 가입거부 금지 세가지는 그래서 오바마케어의 세축인데, 그중 좋은 부분만 떼어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아래의 VOX 기사에서 만화로 잘 설명했다.

This cartoon explains why donald trump can’t take the popular part of Obamacare and leave the rest (Vox, 11월 17일자)

사실 오바마가 처음부터 의무가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하고 토론할 때, 오바마는 의무가입은 없이 의료개혁을 하려했다.

관련기사

It was Clinton vs. Obama on health care (NYT, 2007년 11월 16일자)

그러나 결국 그 안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오바마가 계획을 수정한다.

따지고 보면 오바마케어가 완전히 무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다. 원래는 밋 롬니가 매사추세츠에서 의료개혁을 할 때 시도했던 모델을 일부 차용했다. 롬니 역시 처음에는 의무가입 조항을 넣지 않았고, 이에 보험사들이 수지를 맞추기 위해 보험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롬니도 당시 의무가입 조항을 넣는 방향으로 수정을 했다.

어쨌든 그건 다 옛날 얘기들이다. 이제 정말 의료개혁은 트럼프의 손에 달렸다. 아웃사이더 입장에서야 이러쿵 저러쿵 비난만 하기는 쉽지만 직접해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트럼프의 의료 개혁은 폴 라이언의 안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안대로라면, 보험 가입 강제를 하지 않고 대신에 세금공제를 해준다. 세금공제는, 다들 알겠지만, 조세저항을 낮추는데에는 효과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감세와 유사한 정책이다. 게다가 소득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득이 더 돌아가는 방식이다. 부자 감세라는 공화당의 기조와 일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working class 트럼프 지지자들의 이익에는 반대한다.)

복잡하고 꼬인 미국 의료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한번 정리한 적이 있다. (아래 링크 참조) 오바마가 의료개혁을 추진할 때도 공화당에서는 민주당 잘되는 모습이 보기 싫어 반대를 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Healthcare, again (5월 17일자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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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어디로?

이번 주말 페루에서 APEC 정상회담이 있을 예정이다. 트럼프 당선 이전에는 아무래도 TPP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은 알다시피…

오바마가 꽤나 공들였던 TPP와 기후협약이 물건너간(?) 지금 정상들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궁금하다.

물론 TPP 말고도 중국을 중심으로 진행중인 FTAAP (free trade area of the asian pacific) 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이 따라주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긴 매한가지. (내가 알기로 TPP에서 빠진 중국이 FTAAP를 강하게 밀었다고 들었다.)

미국이 빠져있는 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지만, 이마저도 보호무역이 힘받는 지금 분위기에서는 그닥.

정상들이 모여서 반지성주의 성토하고, 보호무역 안된다고 말하고, 기후협약 지속해야한다고 말해봐야 트럼프 대신 오바마가 참석하는데 큰 영향이 있을리가…

지금은 전세계가 트럼프의 본심이 어떤건지 그저 숨죽여서 지켜볼 따름이다.

참고로 첨부 기사는 현재 아태지역 진행중인 무역협정을 잘 요약해주는 기사라서 링크를 걸어둔다. 그래프도 유익한데, 이는 아래에 따로 떼어서.

The collapse of TPP – Trading down (the Economist, 11월 19일자)

Barack Obama: The way ahead

이번주 이코노미스트지가 이례적으로 현직 미국 대통령의 기고문을 실었다. 여기다 옮겨둔다.

Barack Obama: The way ahead, the Economist,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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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지는 오바마의 견해가 이코노미스트지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기고문을 싣는 이유로 이번 미국 대선의 특수성을 꼽았다.

트럼프 호불호를 떠나서 따져보아도, 금번 공화당 후보는 정책 디테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반면 민주당 후보에게는 정책의 디테일은 있지만, 전혀 검증받지 않았다. 성가실 정도로 토론을 하고 공론장에 올려놓고서 하나하나 고민해봐야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오바마는 글에서 경제 정책 분야에 선명한 주장을 내세운다. 특정인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트럼프를 암시하며 populist의 부상에 우려를 표했고, 경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샌더스와도 다른 입장을 표명했으며, 보호 무역으로 기울고 있는 힐러리에게도 아쉬움을 나타낸다.

오바마에 동의를 하던 안하던, 그는 8년 동안 미국을 이끌었던 지도자이다. 그가 후임자에게 말하는 4가지 경제 숙제에 대해서도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생산성 증가율 감소, 불평등 심화, 노동 참여율 감소, 미래를 위해 탄탄한 경제 기초 만들기)

 

일상이 된 테러의 위협

아내는 9/11 때 뉴욕에서 학교를 다녔다. 아내는 사건 후 일주일 간 매케한 냄새가 도시에 가득했다고 말했다. 분진이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고, 지인들의 생사여부를 이야기 했다. 뉴스는 추가테러의 우려를 이야기했다. 두려움, 슬픔, 추모의 행렬, 그리고 어수선함 가운데서 21세기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아내는 마음이 번잡한 날이면 테러 꿈을 꾼다.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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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첨부한 이코노미스트지 기사를 보면,

2001년 테러 공격 이후, 미국은 엄청난 돈을 보안과 첩보 강화에 쏟아부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2009년까지 대략 일년에 80조원을 추가로 사용했다고 한다. 강화된 공항/항공 안보로 인해 지금에 와서는 민간 항공사가 테러의 수단이 되는 일은 드물다.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2010년대 IS의 등장과 IS 브랜드 테러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외로운 늑대’의 등장은 고도의 훈련된 테러리스트와 조직이 없이도 테러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달 전에 있었던, 니스 테러 사건을 보고서 나는 이제 테러 방지가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나쁜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트럭을 운전하면서 사람들이 밀집된 장소를 질주하는 것을 어떻게 사전에 방지한단 말인가.

니스에서 문제가 불거진, 부르키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나는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을 포스팅하면서 프랑스에서 수영복이 이슈가 되는 이유를 세가지로 꼽은 바 있다. 첫째는 ‘라이시떼 laïcité’, 둘째 여성의 평등, 마지막으로는 테러의 위협이다.

(눈치 챈 사람은 없겠지만, 이어서 부연설명 포스트를 했다. 첫째는 라이시떼에 대해 설명했고, 둘째로는 터키의 세속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여성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했고 오늘은 테러와 안보 위협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부르키니가 안보에 위협이 될까?

말도 안된다. 수영복에 무기나 폭탄을 감춘다고? 하려고 마음먹으면 못할바는 없겠지만 그 노력이면 어떤 옷도 테러의 수단이 되지 않을까.

프랑스인은 부르키니를 금지하는 비합리적인 조치를 과반이 넘게 지지하고 있다. 비상사태가 18개월 이상 지속되는 프랑스의 안보 위협상황과 연관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지난주 사르코지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부르키니 이슈를 첫 논쟁꺼리로 들고 나왔다.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은 작년 12월 1차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물론 알다시피 결선 투표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두번의 선거를 치르는 프랑스의 투표방식을 생각해보면, 누가 알겠는가, 내년 결선투표가 사르코지와 마린르펜의 대결이 될 수도 있다. 그 경우 프랑스 대선에서 선택은 초강경과 덜 초강경한 후보자로 좁혀진다.

니스 테러 이후, 67%의 프랑스인이 정부가 테러의 위협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도 안보는 뜨거운 주제로 떠올랐다. 곧 있을 대선 토론의 핵심 쟁점은 안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테러가 일반인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가.

오바마가 올초에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죽을 확률은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욕조에서 죽을 확률은 백만분에 일이고, 이슬람 테러로 미국에서 죽을 확률은 (올해 Orlando와 San Bernadino 사건을 기준으로) 오백만분에 일이다.

첨부한 이코노미스트지 기사에 공감한다. 테러전은 이제 서구사회에게는 심리전이 되었다. 서구사회는 오랜 시간 열린 사회와 자유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열린 자세는 그만큼 자신을 위험에 노출하는 행동이다. 자신감과 상호신뢰가 없이 가능하지 않다.

정치인들은 기존의 서구의 가치관이라는 전통을 내세우면서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언론도 이에 동참하여 이슈를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나도 올랜도 참사 이후 얼마간 힘들어서 뉴스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앞에도 언급했듯이 테러의 위협은 ‘욕조의 위협’ 보다 작은 수준이다.

트럼프의 안보분야 보좌관인 Michael Flynn은 작년에 테러의 위협을 묘사하면서 “terrorism is committed to the destruction of freedom and the American way of life.”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감한다.

테러의 위협을 원천봉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난 15년 간 전 세계가 노력했으나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을 뿐이다. 이제는 테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한다.

참고자료
Terrorism – Learning to live with it, the Economist, 9월 3일자

이슬람과 서구문명 관련 포스트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프랑스와 세속주의 laïcité (라이시테)
여성의 의복과 종교에 대한 단상들
이슬람 여성 복장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면서…
일상이 된 테러의 위협

총기 규제 이슈에 대한 생각 정리 – 3편: 총기 규제에 대한 오바마의 견해

목차
1편: 총을 가질 권리
2편: 총기 규제의 범위
3편: 총기 규제에 대한 오바마의 견해
4편: 신원조사와 관련 법안 국회 상정

올랜도 참사 며칠 전에 있었던, 오바마의 타운홀 미팅 영상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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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기 규제 반대론자가 질문을 한다. 왜 힐러리나 오바마 같은 민주당 정치인들은 선량하고 책임감 있는 총기 소지자들의 총을 빼앗으려 하는가? 총을 가진 범죄자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권리는 수정헌법 2조에 명시되어 있다. 당신의 고향인 시카고를 예를 들자면, 민주당 지역인데다가 총기 규제가 가장 엄격한 주인데, 총기 살인 사건이 높기로 유명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기서 오바마의 답변이 살짝 의외다.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를 언급한 것은 일종의 개인적인 공격이기도 한데, 오바마는 이에 대한 언급은 넘어간다. (나 같으면 흥분해서 시카고부터 정리하고 토론을 이어 갔을 듯) 굳이 논쟁을 이긴다고 해서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 보다는 국정을 홍보하고 아젠다를 이끌어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사실 시카고의 높은 총기 살인사건률에 대한 반론은 어렵지 않다. 시카고가 총기 규제가 엄격하긴 하지만 한시간만 운전해서 인디애나에 가면 총을 살 수 있다. 또 신원조회 background check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총기 박람회 gun show에 가면 신원조회가 필요 없다. (아래 기사 참조) 이를 gun show loophole 이라고 하는데 내일 좀더 설명하겠다.

오바마는 팩트를 제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힐러리를 포함해 민주당 정치인 누구도 총기를 소유할 권리를 부인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총기 판매가 더 늘어났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총기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바마 정권이 총기를 가질 권리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오해 때문에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가 총기로 인한 사망 사고를 연구하는 것 조차 불가능 하다.

그리고서 오바마는 (2편에서 언급했듯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assault weapon에 대한 언급을 건너뛰고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신원조회 문제를 이야기한다.

현재 FBI의 수사로 용의 선상에 있는 ISIS 동조자들이 총을 사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을 아느냐? 총기 문제가 정치적 논쟁이 되어 아무런 제약을 가할 수 없는 것이다. (No-fly list 라고 불리우는 테러 용의자 리스트에는 실제 20800여명의 미국 시민권자가 등재되어 있고 그들의 비행기 탑승은 제한된다. 그러나 이들이 총기를 사는데에는 문제가 없다.)

오바마는 말을 이어간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총기를 규제하는 법안들을 만들고, 제도적으로 선량한 민간인이 스포츠/사냥/호신에 총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종 이러한 문제들이 잘못 프레임지워져 논의 조차 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이 타운홀 미팅이 있은 후 며칠뒤에 올랜도 참사가 벌어진다. 알려져있다시피 범인 오마르 마틴은 ISIS 동조자로 두차례 FBI의 심문을 받은 적이 있었고, 합법적으로 살상용 돌격소총을 구입해서 범행을 저지른다.

Omar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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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견해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길어졌다. 오늘 하려고 했던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 이야기와 이와 관련해서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법안에 대한 얘기는 내일해야 할 것 같다. 참고로 현재 상정되어 있는 신원조회 관련한 법안은 오는 월요일 (6월 20일) 표결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글은 페북에 6월 18일 토요일에 올렸다.)

목차
1편: 총을 가질 권리
2편: 총기 규제의 범위
3편: 총기 규제에 대한 오바마의 견해
4편: 신원조사와 관련 법안 국회 상정

힐러리 vs. 트럼프 지지율, 이메일 스캔들

존경하는 블로거 산타크로체님 (산타크로체님 네이버 블로그 링크)과 페북에서 댓글로 나눈 대화를 저장해 둔다. (이후 산타님으로 표기)

나: 대통령 후보 확정 직후 지지도가 오르는 현상은 일반적이라 지켜봐야 하긴 합니다.

2008년에도 맥케인이 지지 수락 연설 후, 오바마를 잠시 앞선 적이 있죠. 오바마는 후보로 확정되고 다시 우위를 회복 했습니다. 다만, 놀라운 것은 트럼프가 폴 라이언(온건보수)이나 테드 크루즈 (강경보수)의 지지 없이 공화당의 표심을 다 모으는 일을 했다는 점입니다.

클린턴 측에서는 후보 확정 이후 지지율을 끌어올릴 여력도 있고 아직 선거 초반이라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치만 공화당 경선 때도 설마 설마 하다가 여기까지 온지라…

산타님: 유동적 요인이 있긴 하지만 FBI가 기소를 하거나 갑자기 뇌졸증이 재발하지 않는 한 물론 샌더스 후보의 돌발적 선택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본선에서 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번에 한번 정리했지만 트럼프를 혐오하는 여성표가 워낙 절대적으로 높은 것이 히스패닉/흑인 표 보다도 큰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나:


산타님: 설명이 덧 붙여지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될 듯 합니다.

나: 2008년 미국 대선 때, 맥케인과 오바마의 지지율 차이 그래프 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후보자 선정을 빨리해서 한명에게 힘을 몰아주는데, 초반 그래프를 보시면, 맥케인 확정 이후 지지율이 잠깐 오바마를 앞선 시점이 있었습니다. 이후 오바마가 후보를 확정짓고 나서 다시 지지율을 회복합니다.

산타님: 감사합니다. 그런 효과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당시는 금융위기 발발로 인해 나중에 갈수록 오바마 후보에게 표가 쏠릴 상황이긴 했습니다.

나: 물론 결정타는 2008년 금융위기 였는데, 맥케인이 “미국 경제는 fundamental이 튼튼해서 문제가 없다” 라는 발언을 했죠. 결과는 알다시피…

지금은 워낙 초반이라, 2008년 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미국에 대형 테러 공격이 있다던가, 경제 위기가 온다던가, 막판이라면 작은 hiccup도 변수가 될 수 있긴 합니다.

산타님: 사실 그렇긴 합니다. 다만 트럼프 후보에 대한 혐오도가 쉽게 누그러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유세장에서 이렇게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는 반전/민권 운동이 드세던 60년대나 가봐야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솔직히 외부인이 보는 시각은 트럼프가 대통령 되는 것 못지 않게 현 상황도 미국내 분열이 커지는 것 같아서 걱정은 됩니다.

나: 이메일 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물론 예측은 신의 영역이라,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만약 문제가 정말로 커져서 힐러리 중도 하차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민주당 측에서는 바이든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쪽에서는 바이든 구원 등판보다는 현재 상황을 더 선호할 것 같습니다. 근거가 약한 음모론이나, 의심을 제기하면서 지지율을 살금살금 갉아먹는 네가티브가 효과적이기도 하고요.

산타님: 그런데 경선을 거친 2위 후보를 그냥 무시하고 바이든 부통령을 후보로 정하기는 흠… 기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샌더스 측에서 독자 후보 선언하기 딱 좋은 명분이긴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양측 모두 매우 높은 혐오층이 있기에 정말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 들여야 겠지만 그런 난장판을 겪고 리더십을 확보하기도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클린턴을 싫어하는 중산층 고학력 자들의 심리 중 끝없는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 뻔하다는 게 있는데 걱정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나: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이든은 경선 출마 자체를 안했고, (막판까지 고심은 했습니다만,) 당시 명분은 힐러리를 밀어준다 였습니다. 힐러리 지지자들은 바이든 쪽에 좀더 가깝다고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정말 난장판이 되겠지요. 결과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될 것 같구요.

산타님: 당연히 바이든 부통령이 내용상 민주당 후보가 되는게 맞긴 할겁니다. 제가 걱정되는 것은 EU 또는 유로체제가 올해 브렉시트 등 고비를 어떻게 넘겨도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는 이상 내년이든 후년이든 체제 불안이 급격히 고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르펜이 대통령이 되지는 않겠지만 결국 르펜이 주장하는 국경 통제 등 반EU 정책은 더 힘을 받을 것이고 그래프로 보여 주셨듯이 인종주의 정당들의 힘은 더 커져갈 것입니다. 여기서 미국마저 무력함에 빠지면 이래저래 세계적으로 참 걱정되는 상황이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오늘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글을 정리해 봤지만 장기적 세계 인류의 미래는 포기해도 당장 눈 앞의 실리를 챙기자는 주장은 의외로 힘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걱정되는 것은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는 것보다 국제적 합의체제가 점점 무력해지며 각자 도생의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주제를 이야기 하셔서, 다 이야기하자면 밤을 꼴닥 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말씀하신 주제 하나하나가 워낙 무게감이 있는 주제라. (글적글적.) 한번 뵙고 밤을 세워야 하는 건 아닐지요. ^^

최근 미국 뉴스 정리 및 간단한 커맨트 (2016/05/23)

드론 어택, 2016 미국 대선 업데이트, 박스오피스, political correctness, 바이엘의 몬산토 합병 제안

드론 어택

탈레반 리더 만수르를 드론으로 공격하여, 암살하는데에 성공했다고 오바마가 오늘 발표했다. (관련기사) 오바마 정권 이후 미군은 군용 드론 사용을 전면적으로 확대해 왔다. 아무래도 유인 폭격기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정치적인 부담이 덜한지라…

우리 회사에도 아프간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제대 군인이 있는데, 그 동네 미군 막사에서 드론을 보는 것은 신기한 일도 아니라고 한다.

살상무기가 어찌 인간적일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드론은 특히 상상만 해도 비인간적인 무기이다. 소리없이 하늘에서 내려와 소형 폭탄을 떨어뜨리고 사라진다. 트라우마를 겪는 이에게는 맑게 개인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공포가 따라 오리라.

미국 내에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드론 사용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

관련해서 예전 포스트 (군용 드론에 대한 잡담)

2016 대선 업데이트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모멘텀을 확보하는 반면, 클린턴은 샌더스 측과 감정 싸움이 계속되어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클린턴 지지자들 측에서는 안팎으로 공격을 받는 상황에 대해 불평하는 목소리가 크다. 샌더스 의원은 최소 6월 초에 있을 캘리포니아 경선까지는 최선을 다해 경선에 참여할 것 같고, 본인이 지지자들에게 약속했던대로 경선 완주를 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참고로 지난주에 거의 8%p 까지 차이가 났던 지지율 차이가 현재는 1%p로 좁혀진 상황이다. 생각보다 박빙 모드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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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elections.huffingtonpost.com/pollster/2016-general-election-trump-vs-clinton/

트럼프 측에서는 이미 힐러리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는 트럼프가 힐러리를 crooked Hillary, heartless Hillar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절묘한 별명을 붙여 경쟁자를 조롱해 재미를 많이 봤다. 예를 들자면, Lyin’ Ted, Little Marco, Low Energy Jeb 같은 별명이 있었다. 요즘 미국 정치는 예능 프로그램 같이 서로 별명을 붙여 낄낄대는 수준이다.

박스오피스

지난 주말은 “The Angry Birds Movie”가 1위를 했다고 한다. 예고편을 봤는데, 나쁘지 않아보인다. 잘만하면 연속으로 속편 찍어내는 브랜드가 될 기세. 캡틴 아메리카는 앵그리버드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아~ 아이 키우는 처지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보며 팝콘 집어먹는 일은 이제 사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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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correctness

지난주에 “Oriental”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Asian-American”을 쓰기로 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관련기사: https://meng.house.gov/media-center/press-releases/meng-bill-to-remove-the-term-oriental-from-us-law-signed-by-president)

나는 미국와서야 politically correct한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걸로 목숨거는게 아닌가 싶었고, 오히려 그런 모습이 위선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단어라고 해서 옳은 언어 사용은 아니라는 점. 언어 사용으로 발생하는 위계와 타자화 같은 미묘한 차이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미국 사람들이 차별이라는 이슈에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연륜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어 사용에 대한 논쟁은 미국에서 언제나 뜨거운 주제이다. 최근에는 미식축구팀 ‘워싱턴 레드스킨’을 둘러싼 논쟁이 한참이기도 하다.

바이엘의 몬산토 합병 제안

바이엘사가 몬산토에 $62B의 인수 제안을 했다는 소식이다. 예전에 농산물 대기업의 인수합병 움직임에 대해 포스팅 한적이 있었는데, (링크: 유가가 곡물가격에 미치는 영향) 이후에 신젠타의 듀폰 인수는 무산되었고, 듀폰과 다우가 합병했고, 최근은 몬산토까지 매물로 나왔나 보다.

몬산토는 GMO의 대명사로 알려졌고 탐욕스런 미국 자본의 상징 처럼 되어버린 기업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GMO의 안정성은 계속 검증되어야 하지만, 몬산토의 demonized는 조금 과도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몬산토가 독일 기업이 된다면, 필요 이상의 반감이 누그러들런지 궁금하다.

Healthcare, again

Disclaimer: 저는 의료계에 별 연관이 없는 일반인이고, 이번 포스트도 그저 기사 소개하고 옮기는 수준의 썰이니, 참고만 하시고 자세한 내용은 링크의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지적도 환영합니다. 다만, 인신공격은 바로 차단할 생각입니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헬스케어 시스템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헬스케어 이슈에 불을 붙인 장본인은 다름아닌 샌더스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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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는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의 후보로 낙점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지지자들은 그대로이고 열기도 여전하기 때문에 그의 정책들은 힐러리 캠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주 힐러리 캠프에서도 좀더 진보적인 헬스케어 공약을 내어 놓았다. 공약의 골자는 현재 65세 이상 혜택을 받는 메디케어 프로그램 (노인 무상 의료 복지 프로그램)의 가입연령을 50대로 낮추겠다는 것. 세부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론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50대가 무료로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고 보험료를 지불하게 되는 것 같다.

Hillary Clinton Takes a Step to the Left on Health Care (NYT, 5월 10일자)

http://nyti.ms/27bsae7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난주에는 샌더스의 전국민 단일 의료보험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해당 보고서를 낸 씽크 탱크인 Urban Institute는 힐러리/오바마를 지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버니 샌더스의 의료 개혁 공약안 (영문)

Urban Institute 보고서 원문

Urban Institute 보고서를 살펴 보기 전에 미국 의료 시스템과 한국 의료 시스템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한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의료시스템이 단순하다. 크게보면, 1) 환자 2)의료보험 공단 3)의료계로 나눌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의료보험 공단은 정부로, 환자는 국민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일종의 single payer인 의료보험 공단은 정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민의 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의료수가제를 통해서 저렴한 의료비를 제공할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의료수가제가 만능은 아니다. 의료진 수급 문제라던지,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 등의 한계도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의료 시스템 개별 주체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1) 환자, 2) 병원, 3) 제약회사, 4) 보험사, 5) 연방정부, 6) 주정부가 모두 다른 인센티브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사실 환자 입장에서 보자면, 저렴하고 수준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게 이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 이다. 비용 측면에서 미국은 (공적지출과 개인 지출을 합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비 부담을 가진 나라이고, 효율 측면에서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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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별 의료비 지출 (GDP 대비). 산타크로체님 블로그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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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기대 수명 (출처 Reuters, 2013년 기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의료 개혁이 오바마 케어이다. 오바마 케어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이지만, 의료보험의 혜택을 못받는 의료 사각지대를 없앴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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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험 미가입자 감소 추세 (출처: Urban Institute)

그러나 이 오바마 케어가 의료보험료와 의료비를 낮추는데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국 의료 사각지대하고 별 상관이 없었던 대다수의 미국사람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없었고, 일부는 세금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선거 초반 힐러리는 의료보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원인에 대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가 미국 의료 시스템을 오히려 후퇴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의료 시장을 자유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현재 미국 의료시장은 완전 자유시장은 아니고, 실제적으로는 주별로 준독점 상태이다.) 샌더스 의원은 single payer 시스템으로 의료 개혁을 하면, 소위 buying power 때문에 의료 비용이 내려가고, 불필요한 행정비용이 줄어 들것 이라는 주장한다. 반면 힐러리를 지지하는 크루그먼은 의료 사각지대를 없앤 것은 오바마의 큰 업적이고, 아직 갈길이 멀지만, 의료 개혁은 쉬운 길이 아니니 다른 문제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제 Urban Institute의 지적을 NYT 기사를 통해 살펴 보자.

기사는 샌더스 의원의 정책대로 single payer로 전환한다고 해서 미국의 의료비가 획기적으로 낮아지기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앞에서 언급한 의료 시스템의 플레이어 중에서 병원을 우선 보자. 병원에서 주로 들어가는 비용은 입원 병실 비용, 의료 장비 비용, 그리고 의사들 월급이다. 그중 의사들 월급은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사에 의하면, 미국 family physician의 평균 소득이 $207,000라고 한다. 영국은 $130,000 정도 이다. 영국에 비해서도 1.5배 가량 높다. family physician은 전문의가 아니고 일반의이니 전문의는 그 차이가 더 클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family physician이 동네 병원 의사 쯤 될 텐데, 영국보다 한국은 의사 수입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있다. 얼핏 듣기로 한국에선 전문의인 종합병원 페이 닥터가 연봉 1억 쯤 된다고 하니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의는 수입이 그보다는 좀 낮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연봉 7천 쯤으로 나오는데, 신뢰성 있는 자료는 아니지만, 터무니 없는 숫자는 아닌 것 같다.

의사 봉급 말고도, 미국 병원은 기본적으로 1인 1실이고, 환자당 할당되는 의료 인력이 많다.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구조이다.

이런저런 점을 감안 했을 때, single payer로 되었을 때, 병원비를 낮출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샌더스 안처럼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 이지만, 서비스 측면만 보자면 미국 의료 시스템도 장점이 있다. (물론 비용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우리 집은 아이를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낳았는데, 확실히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의사들이 실력이 우수하긴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산모가 아이 공장에서 아이를 만들고 procedure 대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비싼 만큼 친절하고, 배려 받는 느낌이 크다. 병실도 특별한 상황이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 1인실이 주어지는데, 심신이 닳을 때로 닳은 환자들에게 private 한 공간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의료비 청구서를 받는 순간 그 고마운 마음은 사라진다.) 이는 의사/간호사 당 환자 수가 적고, 병원비가 엄청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이 아파서 병원을 갈 때도 마찬가지 이다. 의사들은 보통 20~30분 정도 천천히 진료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농담도 해가면서. 그런데 결론은 주사나 약을 주지 않을 때가 많다. 감기로 병원에 가면 주사부터 놓는 한국과 다르다. 주사도 한방 맞지 않고 이야기만 하고 나서 100불 정도 청구서가 나오면 열불이 나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 취급을 받는 느낌은 든다. 이것도 비싼 의료비와 의사 당 제한된 환자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또다른 플레이어 제약 회사를 보자. 미국 제약회사는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single payer로 전환하면 bargaining power를 이용해 약값을 낮출 여지가 있다. 기사에서 언급한 Urban Institute도 single payer로 전환했을 경우, 25% 정도 약값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펼치는 제약회사들과 공화당의 반대 등의 정치적인 난관을 성공적으로 넘을 것을 가정한 수치이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이해관계도 다르다. 오바마 케어 때를 예를 들자면, 오바마 케어는 원안에는 메디케이드 (저소득층 의료 지원 혜택)를 확대하는 것이 포함이 되어있었다. 이를 위해 오바마 정부는 주정부에 메디케이드를 확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공화당이 우세한 red state들은 이를 거부했다.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힘겨루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기사에서 지적 하듯이, single payer 의료개혁은 미국 의료 시스템은 완전히 뒤집어 엎어서 새로 만드는 일이다. 의료보험 회사들과 관련 산업을 완전히 없애거나 국유화 시키는 일이 우선은 필요하고, 수십조원의 돈이 굴러다니는 병원, 의료업계, 제약 업계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개혁을 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아침에 쉽게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참고로, Urban Institute의 보고서 이후에, 샌더스을 지지하는 측에서도 반박을 했다. 약값은 25% 보다 더 인하하는 것이 가능하고, single payer로 전환하면 행정비용이 추가로 절감된다는 내용이다.

The Urban Institute’s Attack On Single Payer: Ridiculous Assumptions Yield Ridiculous Estimates (Huffpost, 5월 9일자)

논쟁들을 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다가, 희망도 생겼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우선 의료시스템 개혁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도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혹여 single payer로 전환한다고 하여도) 어쨌든 미국은 세계에서 의료비가 가장 비싼 나라로 남겠구나 싶다. 굳이 내 자신을 위로하자면, 내가 부담하는 비싼 의료비 때문에 미국 의학이 발전하고, 다른 나라도 덕을 보는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