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초기 영국에서 일어난 일들 – 1733년 맨체스터

Empire of Cotton 이어서.

18세기 후반 맨체스터는 혁신의 심장부였다. 지금의 실리콘밸리와 비견할 만한 기술혁신이 이뤄진 곳이 당시 맨체스터와 그 일대 랭커셔 지방이다. 18세기 가장 핫했던 테크 산업은 섬유업. 그시절 랭커셔 지방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공장이란게 세워졌고, 시골이 도시로 변했으며, 수만명의 사람들이 농장에서 공장으로 이동했다.

무엇보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첫번째 혁신은 1733년 weaving 제직 공정에서 시작한다. John Kay가 flying shuttle이라는 목재 제직기 (실을 짜는 일종의 베틀)를 발명한다. 지금 기준으로는 상당히 단순한 기계였지만 한번 작업으로 양쪽에서 천을 짜주기 때문에 생산성이 2배로 향상된다.

제직공정 생산성이 향상되자 바로 앞공정인 spinning 방적공정에 부하가 걸린다. 짧은 뭉치를 긴 실로 만드는 방적 공정에서 혁신이 일어난 건 1760년대. James Hargreaves 하그리브스가 spinning jenny를 발명한다. 실뭉치를 앞뒤로 늘려서 실을 자아내는 spinning jenny는 방적공정 생산성을 세배로 늘린다. 1769년 Richard Arkwright 아크라이트는 이 방적기를 수차에 연결해 수력방적기를 개발하고, 1779년 Samuel Crompton 크롬프턴은 spinning jenny와 수차를 합하여 mule 뮬 발적기를 발명한다.

이제 다시금 후공정인 weaving 제직에 부하가 걸린다. 1785년 Edmund Cartwright 카트라이트가 제직기를 수차에 연결한 power loom을 개발하면서 제직공정이 방적공정의 생산성을 따라 잡게된다.

19세기 초 면직물 제조업은 산업화를 완성한다. 마지막 결정타로 면직물 제조업자들은 James Watt 와트가 1769년에 발명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활용하고, 이에 생산성은 다시한번 도약한다.

이제 영국의 면화산업은 인도의 면화산업에 확실한 비교우위를 갖게되었다. 당시 인도의 경우 100파운드의 원면을 방적하는데 5000시간이 필요했다. 영국은 1790년에 mule방적기를 활용해 이를 1000시간으로 줄였고, 1795년에 수차를 이용하면서 300시간. 1825년 Roberts의 자동 mule 방적기 발명으로 135시간으로 줄였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370배의 생산성 향상을 보였다.


(그림: 1835년 랭카셔 – 뮬 방적기)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은 면직물 가격의 하락을 가져온다. 1795년부터 1811년 사이에 면직물 가격은 반값으로 떨어진다. 이제 품질/가격 면에서 인도산은 영국산과 견줄수 없게 되고 인도 면제품은 서서히 퇴출되기 시작한다.

반면 영국 경제는 호황을 누린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의 면섬유산업은 소자본으로도 큰 수익을 보장하는 대박 아이템이었다. ROI를 보자. 당시 대표적인 면제조 회사였던 Cardwell & Birle 은 연평균 투자자본회수율이 13.1%, N. Dugdale이 24.8%, McConnel & Kennedy는 16%에 이른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들의 사업확장이 외부의 자금 유입없이 이루어졌다는 것. 당시 공장주들은 Retained Profits 즉 이익잉여금을 재투자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앞에서 언급한 McConnel & Kennedy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McConnel은 원래 방적기 제조업자였다. 그는 주문받은 방적기 2대의 대금을 지불 받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그 방적기로 대신 사업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에 Kennedy라는 투자자를 만나서 500파운드를 투자받는다. 1791년 그렇게 두개의 방적기로 시작한 사업이 1797년 7464개의 방적기를 돌리는 규모의 사업으로, 1810년에는 78972개의 방적기를 돌리는 사업으로 급성장한다. 당시 영국의 다른 면사 공장과 동일하게 이들도 사업을 retained profits 이익잉여금을 재투자하여 늘려갔고 1799년에서 1804년, 5년 동안 평균 26.5%의 수익을 보았다.

산업혁명 이야기는 이정도로 마무리 짓자. 오늘도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도 좀더 이야기 하려했었는데 손가락이 슬슬 아파온다. (너무 딱딱한 숫자만 늘어놔서 읽는 사람도 벌써 질렸겠지… 오늘은 좀 망한 글인 듯.) 저자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로 로버트 앨런 교수의 이론을 활용한다. (앨런 교수 주장은 ‘세계 경제사’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궁금한 분은 책을 사면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앨런 교수는 영국의 높은 인건비가 기계화 산업화를 일으킨 주된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으므로 아래 링크 참조.
생산성과기술혁신 (2월 28일 포스트)

또 예전에 홍춘욱 박사님께서 세계 경제사의 해당 내용을 포스팅 한 적이 있다. 아래 링크 참조.
세계경제사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임금이 상승하고 일자리가 늘어난이유는?

마지막으로 슘페터를 이야기하면서 마칠까 한다. 기술혁신 하면 슘페터 아닌가.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기적은 부를 민주화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슘페터의 예를 인용한다. 자본가들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산업화가 되었다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비단 스타킹을 더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돈이 많다고 부자가 양말을 무한정 살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로 인해 공장 여공들은 스타킹을 신을 수 있게 되었다. (싸고 질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면서.)

슘페터의 이야기에 딱 들어맞는 예가 면직물이다. 18세기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면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를 테면 당대 패션 리더였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muslin이라는 면직물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아래 그림 참조) 옷뿐 아니라 살이 닿는 모든 부위는 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종이와 침대, 지폐에도 면이 포함되어 있다. 몇백년 전만해도 사치재이던 면직물은 이제 공기처럼 너무나도 흔해서 느끼지 못할 정도 이다.


(그림: 무슬린 드레스를 입은 마리 앙투와네트, 1783년)

슘페터 이야기 출처: 이코노미스트지 재인용

흠… 내가 너무 자본주의 노예같은 이야기를 했나? 그치만 기술의 진보를 이야기 하면서 자본주의 예찬을 안하기도 어려운 일일테다. 다음번엔 좀 어두운 이야기, 그러니까 노예와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에 대해서 수다를 떨 생각이다.

이전 포스트 목차

 

뱅골 경제의 몰락과 동인도 회사 – 1757년 다카

인도 전문가 페친께서 캘리코법 포스팅을 보고서 댓글을 다셨는데, 답이 길어졌다. 따로 포스팅으로 옮겨둔다.

페친님은 동인도 회사가 인도를 본격적으로 식민지배한 시점이 영국이 면직물 수출을 늘린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을 이야기하셨고 아래는 나의 답변이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18세기 후반 부터 영국과 인도의 관계도 완전히 역전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면직물 산업만을 보더라도 이전까지는 인도산 면직물이 경쟁우위를 보였지만, 산업혁명에 힘입어, 영국산 면직물이 가격과 품질 면에서 서서히 인도산을 제치게 됩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 면직물을 독점했기에 상당한 이점을 누립니다. 우선 영국인이 인도 면직물 제조 기술을 맘껏 베낄 수 있었고, 인도산 면직물을 세계 시장에 팔면서 개척한 루트를 영국이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 면직물이 경쟁력을 얻으면서 인도 경제 (특히 영국 동인도 회사의 본거지 였던 뱅갈지역)는 완전 폭망합니다. 그 시점이 동인도 회사가 인도를 본격 식민통치하기 시작한 기점과 일치합니다.

한때 세계 면직물 시장을 주름잡았고 부를 키웠던 무굴 제국 면직물 산업은 급락하는데, 1747년에서 1797년 20년 사이에 인도산 면직물 가격은 반으로 떨어집니다. 뱅갈지역은 완전 거지가 되서 먹을 걸 걱정하는 정도가 되었지요. 지금의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가 면직물 생산의 중심지였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한참 부유했을 때 다카는 세계 GDP의 29%를 차지할 정도 였습니다.

 

Related image

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뱅골지역, 지금은 방글라데시와 인도로 나뉘어 있다.

.

18세기 후반 부터 동인도 회사는 인도를 면직물 수출 시장, 목화 공급처로 만들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습니다. 면직물 산업이 성장하면서 안정적인 원재료 공급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면직물 수출은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목화 생산지로서의 변화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마 다음 번 연재에서 이야기 할 텐데요. 조금만 말씀 드리면, 처음 목화 생산지로의 변신을 성공했던 곳은 캐리비안 쪽과 브라질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미국 남부 지역이 목화 시장을 장악합니다.

관련해서 18세기 영국 목화 수입 나라별 구분 차트도 올립니다. (아래 참조) 아시겠지만, west indies는 서인도 제도 그러니까 캐리비안이고 Levant는 지금의 시리아/이스라엘/요르단 쪽이죠. 당시는 오스만 제국의 일부 였을 꺼고요.

No automatic alt text available.

.

목차

제국의 상인들, 국제무역의 시작, 그리고 동인도 회사 – 1498년 캘리컷

지난번 책소개에 이어서 Empire of Cotton 일부 요약해본다.

지난번 포스트 링크

1498년,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 캘리컷을 발견(?)했다. 이후 국제 무역은 완전히 달라졌다. 포르투갈은 희망봉을 거치는 아시아 직항을 뚫었고, 이는 오스만 제국을 통하지 않고 유럽으로 후추와 면직물을 들여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포르투갈이 먼저 아시아 루트를 개척했다.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이 아시아 무역에 뛰어들었다. 포르투갈이 서서히 쇠퇴하는 동안 네덜란드와 영국이 (joint stock company를 통해) 아시아 루트의 주도권을 잡았고, 네 차례 영란전쟁을 거치며 아시아 지역의 제해권이 어느정도 정리 되었다.

네덜란드가 (간신히) 인도네시아 지역의 후추를 지키는 동안 영국은 인도양을 손에 넣었다. 18세기에 이르면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인도의 무역을 독점한다. 특히 인도의 면직물 calico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특산품이었고 영국의 상인들에게 부를 가져다 준다.

구체적으로 영국의 무역로를 보자면 이렇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면직물을 독점으로 산다. 면직물을 동남아시아에 팔아서 향신료를 구입한다. 그리고 일부는 유럽 내수용으로 가져오고, 또 서아프리카에서 부족장들에게 팔고서 노예를 사온다. (물물교환)

그리고 그 노예는 남아메리카와 캐리비안의 플랜테이션에 투입된다. 그리고 그 플렌테이션에서 환금성이 높은 작물을 키운다. 설탕, 쌀, 담배, 염료를 재배하는데에는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다. 유럽의 상인들은 아프리카의 족장들에게 면직물 (또는 총기)을 대가로 노예 사냥을 요구한다.

어쨌든 이렇게 인도산 면직물은 영국 무역의 중심이 된다. 1766년에 이르면 동인도 회사 수출의 75%가 면직물이다.

동인도회사가 수익을 올린 방식은 철저히 독점에 의존했다. 인도인들은 영국 동인도회사를 제외하고 자유롭게 물건을 팔 수 없었다. 수탈로 인도인의 수익 분배는 급감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17세기 후반 면직물의 매출의 1/3을 먹었지만, 그 비율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6%로 떨어진다. 한때 면직물 교역으로 번성했던 인도의 구자라트, 뱅갈지역은 빈곤한 도시로 전락한다.

사실 면제품이 가진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은 면화를 상당히 늦게 알게되었다. 유럽 기후는 목화재배에 적합하지 않다. 목화를 키우기에는 너무 춥고 습하다.

중세 시절의 유럽인들은 나무에서 솜이 자란다는 걸 믿지 못했다. 심지어 인도에 가면 나무에서 양이 자란다는 상상까지 했다. (아래 참조)

Image result for vegetable lamb

(중세 유럽인들 목화나무 상상도)

인도산 면직물이 서서히 보급되면서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된다. 이전까지 유럽 섬유산업은 마직류천 (linen)과 양모가 전부 였다. 그런데, 인도산 면직물이 들어오면서 섬유 생산업자들은 큰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애구 오늘은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좀 길어져서 보호무역 내용은 다음으로 연기.

 

목차

생산성과 기술혁신

지난 주에 가볍게 끄적인 게 있다. 재정확대 정책과 인플레에 대해서 였는데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나 같은 범부가 뭘 알겠나. 말마따나 정말 갑작스럽게 생산성이 막 향상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직도 사짜스럽게 들리는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기술이 퀀텀 점프할지도 모르는데…”

지난 포스팅: 인프레이션 없는 재정확대? (2월 15일)

이 얘기를 경제학적으로 다시 풀자면, 기술혁명이 오면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고, 인플레 없는 장기 성장이 올 수 있지만, 그 기술혁신이 (경제학 측면에서) 예측 가능한 변수가 아니라는 의견이다.

내가 알기론 경제학에서 기술혁신은 공급측면 (supply side of economy)의 변수이고, 기술혁신이 왜 생기는가는 경제학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는 아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경제학에서 기술혁신은 어디선가 느닷없이 등장하는 외생변수일 뿐이다.

포스팅을 하고서 이번주는 생산성에 대한 생각을 좀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게 다 거기서 거긴지, 이번주는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를 공유한다. 뉴욕타임스 economic trends section Neil Irwin의 기사이다.

Irwin은 이번달 맥킨지 보고서를 인용한다.

Solving the productivity puzzle

맥킨지 보고서는 주장하기를, 생산성 향상이 반드시 공급에만 달려있는게 아니고 (supply side of economy) 수요측면에서도 (demand side of economy)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일단 원인은 모르겠고, 갑자기 기술이 발전하면 그 분야의 생산성이 급증하는 거 아냐?’ 라고 보는게 아니라. (이건 공급 측면 접근이겠지.)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고, 기업들은 자재도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그제서야 창의적인 해결책 (기술 개발/투자)을 고안하지 않겠냐는 얘기다.

맥캔지 보고서가 든 근거 두가지만 살펴보자.

미국 자동차 산업.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미국의 자동차 생산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장 가동률이 올라가기 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기업들은 신규 공장을 짓지 않았다. 신기술에 대한 투자는 보통 신규 공장을 지을 때에 이뤄진다. 그러니까 미국 자동차 업계의 신규 기술 투자는 최근까지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패스트푸드점. 패스트푸드점 자동 주문 단말기는 오래전에 개발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무인 판매대 보급이 급격히 늘은 건 최근이다. 이또한 실업률이 4.1로 최저점에 이른 요즘 경제 분위기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말이 된다.

맥캔지 보고서는 여기서 마무리 짓고, 좀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영국의 산업혁명.

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었을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일단 영국의 면화 산업을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면화이고 이후의 철도, 증기기관, 철강 산업이 면화의 폭발적인 성장을 뒷받침 하면서 모멘텀을 맞이했다. (1770년 면화산업은 영국 경제의 2.6%를 차지했으나 1831에는 22.4%에 이른다. 비교하자면 같은 해에 철강 산업은 6.7%, 석탄은 7%, 양모는 14.1%였다. 근로자를 기준으로 따지면 당시 영국 노동자의 1/6이 면화산업에 종사했다.)

18세기 영국은 식민지 개척(?)을 통해 인도의 면화를 독점적으로 공급을 받을 수 있는 루트와 면직품들을 팔 수 있는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면직물 시장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여담으로 좀더 설명하자면, 당시 국제 무역은 인도에서 면직물을 사고, 남아메리카 은광에서 은을 캐고, 캐리비안에서 설탕을 재배하는 하는 식이었다. 이를 유럽과 식민지에 팔고, 또 서아프리카에서는 노예를 사고 (ㅠㅠ), 그리고 그 노예들이 은광과 설탕 제배에 투입되는 구조였다.

다시 산업혁명으로 돌아와서.

산업혁명 이전까지 영국의 면화 산업은 몇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인도/중국의 면직물과 비교우위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상황.

당시 면직물은 인도 제품을 최고로 쳤다. 아프리카 부족들과 무역을 할 때도 족장들이 인도의 calico 캘리코를 (인도산 면직물) 요구할 정도였다고.

결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 벵골지역을 장악해서 차근차근 인도 기술을 따라 잡았고, 면화에 대한 구입루트를 확보했지만 생산량 확보와 원가절감은 결코 따라잡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 면화 생산은 농부들의 농한기 부업이었고, 주로는 여자와 아이들의 일이었다. 바꿔말하면 노동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인도에서 영국까지 운송비도 엄청났고, 부업이기에 균질한 품질을 보장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영국 랭커셔 지방의 임금은 인도의 6배 수준.

Image result for cotton factory industrial revolution

(source: http://eh.net/encyclopedia/women-workers-in-the-british-industrial-revolution/)

경제사 쪽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한계 상황이 영국의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는가 보다. 그 논리를 따르자면, 실업률이 최저에 이르고 노동력이 희소해지면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할 요인이 충분해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2018년 지금의 미국??)

결론은 그렇다치고, 어쨌든 산업혁명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면, 영국 면화 산업의 생산성은 산업혁명, 공장의 건설에 힘입어 급격히 상승한다. 18세기 인도의 경우 100파운드의 원면을 방적하는데 5000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영국은 1790년에 mule방적기를 이용해 1000시간으로 줄였고, 1795년에 수차를 이용하면서 300시간. 1825년 Roberts의 자동 mule 방적기 발명으로 135시간으로 줄였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370배의 생산성 향상을 보였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 향상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GDP와 마찬가지로 생산성은 절대수의 증감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률이 기준이 되어 경제 지표를 구성한다. (대분기)

관련자료:

Empire of Cotton by Sven Beckert (Vintage Books, 2014)
Why the industrial revolution was British: commerce, induced invention,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 (The economic history review, R. C. Allen)
주경철 교수 칼럼
[경제사 뒤집어 읽기] 산업혁명 일으킨 인도산 면직물 (2011년 4월 8일자, 한경]

애고 길었다. 자꾸 삼천보로 빠진다. 어차피 내 포스팅이 수다긴 하니까…

시간이나면 다음 포스팅으로 요즘 읽는 책 Empire of Cotton 이야기도 좀 해보려고 한다. 면화의 역사에 대한 책이지만, 마침 산업혁명과 산업화, 보호무역에 관한 챕터를 읽는 중인데, 요즘 상황에도 걸맞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임신의 날: 이탈리아의 사례를 통해서 본 저출산 문제

권남훈 교수님과 산타크로체님이 저출산 관련해서 좋은 글들을 올리셨다.

관련해서 마침 어제 읽은 뉴욕타임스 기사가 생각나서 공유한다.

이탈리아에는 임신의 날 fertility day가 있다.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이탈리아가 국가적으로 임신을 장려하고 나선 것.

이탈리아 정부는 이번달 22일을 임신의 날로 정하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 캠페인 광고들이 지나치게 성차별 적이고 공격적이다는 논란을 불러왔고 결국은 광고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캠페인 광고 문구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Beauty has no age limit. Fertility does.”
“Don’t let your sperm go up in smoke.”

캠페인은 임신을 장려하는 데에 실패한 대신 왜 이탈리아가 출산율이 낮은가에 대한 국가적인 토론의 장을 여는 데에 성공(?)했다.

인터뷰 몇개를 옮긴다.

“정부는 아이를 가지라고 권장하지만, 이탈리아의 복지 시스템은 여전히 할머니들에 의존하고 있어요.”

“서류상으로 이탈리아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실상은 다르죠. 여자들이 아이들을 더 돌볼 것이 요구됩니다. 만약 육아 시설이 잘되어 있는 지역에 살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도시에 산다면, (아이를 가지고도) 직업을 유지할 겁니다. 그러나 만약 복잡한 대도시에 살면서 주변에 가족이 없다면, 여자들은 임신에 신중하게 됩니다.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지요.”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탈리아: 1.37명, 유럽 평균: 1.6명, 한국: 1.23명) 그래서인지 그들이 고민하는 내용도 한국과 유사하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말하는 출산률이 낮은 요인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낮고 육아의 부담이 높아서이고 (좀더 설명하자면,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서 경제활동 참가가 가능한 인구는 늘었지만 실제 사회통념이나 시스템은 여전히 여성에게만 육아의 책임을 지우는 구조이기에), 둘째는 이탈리아의 암울한 경제 전망이다.

우선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출산율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까? 권남훈 교수님이 인용하신 Feyrer, Sacerdote and Stern 팀의 연구에 의하면 그러하다. 아래 도표를 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활발할 수록 출산율이 높다. 이탈리아와 한국은 여성경제활동 참여와 출산율이 가장 떨어지는 국가들 중에 하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장 여성이 평등하다고 이야기 되는 스웨덴은 모범사례이다. 여성 경제 활동 참여율이 85%정도이고 출산율도 상당히 높다. (1.9명 수준)

capture

관련 페이퍼 링크
UNDERSTANDING FERTILITY WITHIN DEVELOPED NATIONS by Feyrer, Sacerdote and Stern (2008년)

그러면 출산율이 이탈리아의 암울한 경제전망과도 연관이 있을까? 산타크로체님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어느정도 상관관계가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미국의 경우, 대공황과 70년대 오일쇼크 때,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때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없을 때에 아이를 낳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capture1

마지막으로 기사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난임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지난달 이코노미스트지에서도 마침 출산율에 관한 기사들이 실렸는데, 그중 하나가 시험관아기에 대한 이야기다.

An arm and a leg for fertilised egg (the economist, 8월 27일자)

기사에 따르면, 시험관아기 시술 비용은 나라마다 조금 차이가 있다. 인도는 한차례 시술에 2-3천불 정도, 미국은 만2천에서 만 5천불 정도 이다. 시험관아기 시술에 친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는다고 한번에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평균적으로 삼회 이상 시술을 받고, 어떤 경우에는 일년이 넘게 노력하다가 결국 포기하기도 한다. 또한 시술을 한 사이클 받을 때마다 엄청난 양을 호르몬 제를 꾸준히 맞아야 한다. 대부분 시술 비용은 호르몬 제와 약품비용이다.

의학계는 시험관아기 시술비용을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한가지 방법은 투여 약물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이는 소위 ‘mild IVF’ approach라고 불리고 일본, 프랑스 쪽에서 인기가 좋다. 다른 한가지 방법은 시험관 lab실 비용을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shoe-box-sized IVF laboratory라고 불리며, 영국, 포르투갈, 가나 쪽에서 주로 사용된다.

내가 알기로 한국의 경우는 시술비용을 낮추는 노력이 크지는 않다. 이보다는 정부에서 시술비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행된다. 지자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시험관 시술은 (지원을 받는다면) 거의 공짜로 알고 있다. 이에는 한국의 낮은 의료비용도 한몫을 하고 있다.

결론을 짓자. 사실 나는 출산율이 낮아서 GDP가 낮아진다는 이야기에 좀 시큰둥 한편이다. 권남훈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출산율을 높여서 국가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정부재정에는 영향을 미치겠지만 말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왜 출산율이 낮아지는 가이다. 앞에서 언급한 이탈리아 사례처럼,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보장이 안되고 경제전망이 좋지않아 사람들이 아이를 낳기를 꺼린다면, 이는 사람들이 더이상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니 그것이 더 암울하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경제 활력을 잃게 하는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경제 논리를 떠나서 사람들이 원하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데에, 의학적원인이 있거나 (난임), 사회적인 원인이 있다면 (유아 빈곤률이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 그것이 더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을 쫓아내고 심지어 죽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달 케냐에서는 한 재봉사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려는 살해 미수건이 있었다.)

사족이지만 하나만 더하자. 반대로 세상에는 아이를 갖지 않고자 했으나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가난한 국가들은 적절한 피임이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생긴다. 인도나 나이지리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의외로 인도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지 자료를 참조하면 인도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9명 정도 자녀를 가지는 것을 이상적으로 본다. (아래 그림 참조) 인도나 중국 같은 경우는 오히려 서구 국가들보다 더 적은 수의 아이를 원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더 많은 아이를 가지는 데, 이는 적절하지 못한 피임으로 생기는 일이다.

20160827_fbc212

관련 기사: The Economist | Demography and desire: The empty crib (8월 27일자)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의학적으로만 본다면야 피임의 보급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피임의 보급은 ‘성적인 쾌락’과 ‘임신’을 분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윤리적, 종교적 관점의 고찰 또한 내가 관심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주제를 벗어나니 넘어가기로.)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피임이 이루어지지 않는 청소년이나 빈곤층은 여전히 출산율이 높다. 아이를 원하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고통이나 원치않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고통은 동일하게 힘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지 못했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키우기 전에 예상했던 것 보다는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은 덧붙이고 싶다. 물론 내가 육아에 한발 비켜선 남성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저출산 문제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 (권남훈 교수님 블로그)
페미니즘은 출산율을 높일까? 노르딕 모델의 고유한 가치 (산타크로체 블로그)

 

단식의 의미 그리고 함께 살아 간다는 것

최근 뉴스에 유민 아버지의 단식 소식이 자꾸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 관련해서는 워낙 많은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려 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있고 아직도 여파가 남아있는 사건이기에 말한마디 꺼내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다만, 단식이라는 행위는 누군가가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 눈에 밟힌다.

다운로드

단식 소식을 접했을 때, 내게 떠오른 인물은 간디였다. 유민 아버지가 간디 같은 성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간디는 진심을 보여주려고 했을 때 단식이라는 행위를 했고 누가 어떻게 말하던 지금 그분은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이다.

간디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책중에 하나가 ‘간디 자서전’이다. 함석헌 선생이 번역했는데, 642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고 어려운 인도 지명과 추상명사들이 나와서 손대기가 쉽지는 않은 책이다. 나도 실은 아직 읽지 못했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잘 요약한 글을 올려주어서 조금 맛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참고한 블로그 글은 다음의 두 링크이다. (해를그리며 님의 블로그: 간디자서전을 읽고, 격암님의 블로그: 간디로본 우리의 모습) 두 글 다 찬찬히 읽어볼 만큼 좋은 글이다.

이분들의 글에 따르면, 간디 자서전은 간디가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본인이 깨달은 진리를 설파하지도 않는다.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본인이 살면서 구도해왔던 실험 과정을 차근차근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은 그가 믿었던 힌두교를 바탕으로 해서 금욕적인 삶과 채식으로 몸을 단련해 왔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본인의 도를 추구하면서 분쟁과 다툼이 있는 곳을 쫓아다닌다. 섬유노동자 파업, 세금 파업 등등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는 일방적인 폭력을 배제하였고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였다.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 단식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폭력을 통한 문제 해결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았고 대화를 통해서 하나되고 화해하는 것을 추구했다.

간디의 이러한 방식은 현대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의 방법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마음으로 깊이 동의한다. 의견의 차이가 생겼을 때 명확하게 승패를 가르는 방법은 일시적으로 통하더라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양당정치에서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그러하다. 누군가는 선거공학적으로 승리를 거둘 테지만 이것은 패자에게 위기의식을 가져오고 오히려 패자는 다음번 승리를 위해 결집하게 된다.

내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태도를 발견할 때는 이러한 말을 들을 때이다. ‘이 모든 것은 놈현 때문이다.’, ‘MB가 나라를 망쳐놨다.’, ‘공주님 때문에 나라를 떠나고 싶다.’ 이 말들은 사실 그저 푸념이다. 푸념을 내가 너무 진지하게 여기는 걸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네편과 내편을 갈라 놓고서 이제 내편이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으니 너는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에게 나라의 모든 것을 맡겨두고 이제 책임은 모두 그쪽이다.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긴하지만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토론을 하고, 글을 쓰고, 자녀를 키우는 모든 일이 크게 보면 정치의 연장선이고 우리의 목소리이다.

정치 이야기를 이왕 꺼낸 김에 몇가지만 더 써보려 한다. 정치 이야기는 워낙 첨예하게 갈리고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에 내가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다. 나는 불필요한 오해로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의 프레임으로 씌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정치와 떨어져 살 수도 없는 일이고 나도 이시점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해두고자 몇자 적어본다.

진보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나는 진보의 정체성이 대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거에서 우리가 야당에게서 듣는 목소리는 정권심판과 반새누리당이었다. 그들에게 대안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듣는 것이 그렇고 최소한 내가 듣는 것이 그렇다. 대안 없이 진보세력이 여당의 도덕성을 문제 삼거나 정권심판만을 이야기 한다면 설사 단기적인 승리를 얻는다 하더라도 길게 봐서는 패배이다. 싸움을 통한 승리는 상대를 완전히 짓밟는 것이 아니라면 무의미하다. 선거를 통해 60:40으로 이기면 무엇하나? 그렇다면 이제 남은 40은 적인가? 이제 그들을 억지로라도 교육시키던가 아니면 늙어서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그렇다라고 말한다면, 더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어떤 생산적인 논의의 가능성 조차 닫은 분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가능하단 말인가.)

보수층은 진보세력을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악으로 인식하고 진보는 현정권을 적으로 인식하여 그들과 싸워 이기려 한다. 적당히 중간을 지키자는 애매한 자세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현정권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정권심판은 대안이 아니고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 대다수는 정치에 관심 없으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가치를 주지 못하면서 기존의 정권에 반대하는 모습은 그저 싸우는 것으로 비추고 정치에 대한 염증만을 불러 일으킨다.

너무 곁길로 샜다. 다시 간디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짓자.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하지만 인도제국은 힌두와 무슬림 세력으로 나누어진다. 게다가 종교분쟁으로 인도인들은 서로를 죽인다. 이에 간디는 죽을때까지 단식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기적같이 전쟁이 멈춘다. 그러나 얼마후 간디는 암살당한다. 결국 인도제국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 독립을 하게된다. 지금도 인도는 파키스탄과 크고 작은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로 28일째라고 들었다. 광화문에 계시는 그분도 큰일 생기지 않고 누구의 가슴도 찢어지지 않은 채로 진정한 의미의 화해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