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nord 베어링 공장 후속기사 – 대체 인력 교육하기

지난주에 공유했던, Rexnord 베어링 공장 쉐넌 이야기 후속기사. 이번에는 다큐(15분 분량)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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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미국 일자리 통계. 붉은 색은 제조업 일자리, 핑크색은 민간부문 일자리 총합. 원자료는 미국 노동부, 뉴욕타임스 재인용)

이전 기사 관련 글은 아래 링크 참조.

공장이 문을 닫을 때, 일어나는 일 (10월 20일 포스트)

공장은 멕시코로 이전을 결정하고 멕시코 견습생을 훈련시키라고 한다.

Mark와 John은 다른 결정을 한다. Mark는 공장에 찾아온 견습생들을 훈련시키고, 이어서 견습생들을 훈련시키러 멕시코 출장을 가기로 한다. John은 이를 모두 거절한다. John과 Mark는 십년지기였다. 그러나 이후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John과 Mark는 영상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John: I am not a bad guy. I am just an old man that doesn’t want to lose my job.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냥 일자리를 잃는게 싫은 늙은이일 뿐이야.

Mark: I like working with my hands. I am 52. I have no real skills. What am I going to do? Am I going back to school? Who’s going to hire me? I have never been to Mexico. I heard weather is nice and the people are super nice. I will see what it is like when I get down there. And whatever it is. I’m going to make the best of it. I always do. 손을 써서 일하는게 좋아. 내 나이 쉰둘이야. 특별한 기술도 없어. 내가 뭘 하겠어? 학교로 다시 돌아가겠어? 누가 나를 쓰겠어? 멕시코에 가본 적은 없어. 날씨가 좋고 사람들도 진짜로 좋다고 하더라고. 가보면 알겠지. 뭐가 됐든간에 최선을 다해야지. 언제는 안그랬나?

 

서독 광부/간호사와 ‘니나 가라, 중동’

독일에 가면 지금도 60년대 간호사로 왔었던 교포를 만날 수 있다. 그분들의 전형적인 모습은 독일인과 결혼해서 정착한, 한국말이 어눌한 할머니다.

스위스에서도 그런 몇분들과 교제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 같이 사연이 길다.

60년대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다. 실업률도 엄청나서 농촌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달려들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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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에 국내 임금의 7~8배를 준다는 정부의 선전은 엄청났다. 대학생들이 신분을 속이고 가짜 광부 경력을 만들어서 서독에 가려고 했다. 이들의 외화 송금은 당시 절박했던 정부의 외화부족을 해소 시키는 데에 일조하였다. 뭐 실업란에도 쬐끔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 당시는 청년이고 중년이고 노년이고 할 거 없이 총체적인 실업난이었으니 말이다.

서독 이야기는 지난 일이긴 한데, 최근 ‘니가 가라, 중동’ 이슈를 보면서 그다지 지나간 일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이건 농담인데, 혹시 그분 딸께서는 그분께서 밀어 부치셨던 경제 해결책이 아직도 통한다고 믿고 계신건 아닌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덧: 재미있는 포스팅을 발견해서 링크를 건다. 이견이 있을 수 있는 핫토픽이고, 내 의견을 덧붙이는 건 안하련다. 참고로 파견근로자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했다는 이야기는 정설은 아니다.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 : 경제성장은 과연 누구의 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