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단일민족 신화

일본은 한국보다 더 homogenous균질한 나라라는 생각을 해왔다. 최근 기사를 보니 과연 수치상으로도 그러하더라. 외국인 체류 인구가 한국은 4%, 일본은 2%라고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표현보다 homogeneous가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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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일본에 갔을 때도 느꼈는데, 이제 세븐일레븐에서 필리핀이나 네팔계로 보이는 분들을 쉽게 본다. 건설인부나 간호 인력도 외국인이 많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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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 정부는 外人 geijin 친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geijin은 한국어로는 외국인쯤 되는 듯. 물론 난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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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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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된다. 마침 며칠전 한 블로거께서 올린 [일본의 단일민족 신화기원]이라는 책의 서평을 읽었다.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워낙 길었고, 나는 일본 역사에 친숙하지 않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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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국의 단일민족 신화와 고대사 열풍을 관심있게 지켜본 적이 있어, 그 이야기들이 남의 얘기로 들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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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 지식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일본의 정체성 찾기의 과정에 심정적으로 동조했던 인물들이 빠졌던 황국신민화의 함정을 일본의 관점에서 읽게된건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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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일본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였는데, 천황을 중심으로 하나의 가족을 형성한다는 일종의 가족국가 형태인 국체론이 일본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항상 느끼던 가족 같은 회사, 가족같은 모임의 갑갑함이 어디서 온건지도 알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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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세번의 큰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일본인의 정체성을 바꿔온다. 세번의 사건이라함은 첫번째가 메이지 유신과 개항, 둘째가 청일/러일 전쟁의 승리, 세번째가 패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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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번째 사건 이후 일본은 자신의 정체성을 혼합민족으로 둔다. 백인들에 대한 열등감과 전승 이후 생긴 자신감을 토대로 일본인은 야마토 민족을 아시아에서는 우월한 민족이라는 위치로 상정한다. 그리고 대만인과 조선인을 그들의 국체론 아래서 adoptee양자로 간주한다. 가족이지만 열등하면서 동시에 천황에대한 충성이 요구되는 미묘한 균형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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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이후 일본인의 일본관은 단일민족으로 회귀한다. 쌀을 먹는 평화로운 섬나라 사람들의 소박한 공동체. 이 소박한 공동체는 명백하게 이질적인 존재인 아이누인과, 자이니치 (재일교포)를 무시하거나 차별한다. 단일민족 신화안에서 숫자가 크지 않다면 존재가 없는 것이고,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크다면 차별이 정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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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유지하면서 동화를 장려하는 정책. 그다지 낯설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요즘 뉴스를 들으면서 느낀 섬뜻함과 멀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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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포스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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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덴노 (1852 –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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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징코와 자이니치

어제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Pachinko라는 소설을 언급했는데, 몇가지만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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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Jin Lee (19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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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스트 링크 (뉴욕타임스 선정 2017년 올해의 책 10권)

자이니치, 그러니까 재일교포에 대해서는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 본 영상물 중에서는 아래 첨부 다큐 (13분 분량)가 자이니치 (특히 조총련계) 에 대해 잘 요약해서 보여준다. 미국인의 시각이라 감정적이거나 한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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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남북으로 갈리기 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자이니치들은 육이오 이후 자신의 국적을 정해야했다. 지리적으로는 남한 출신이 많긴 했지만, 재일교포에 무심했던 남한정부에 비해 북한은 이들에게 심적 물적 지원을 했었고, 많은 이들이 북한을 자신의 조국으로 선택했다.

이들은 주로 빠찡코를 운영하며 경제 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에 강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 21세기 들어 북한-일본 관계가 급랭하고 북한 군비 자금으로 흘러든다는 비판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빠찡코 운영이 많이 어려워 졌다고 들었다.

며칠전에 서점에서 훑어본 바로는 소설 Pachinko는 정치적인 메세지가 뚜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1910년 부터 현대에 이르르는 4대에 걸친 가족사, 사랑이야기, 가족 간의 갈등이 주였다. marginalized 주변화된 인물들에게서 좀더 극적인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 보편적 사실이 아닐까 한다.

뉴욕타임스 선정 2017년 올해의 책 10권

올해의 책 시즌이 돌아왔다. 아래 링크는 NYT 선정 The ten best books of 2017. 올해 리스트에는 (다행인지) 몹시 끌리는 책이 없었다. 소화불량이다. 작년 리스트에서 보려고한 책들도 소화못했는데, 책만 쌓으면 뭐하리.

그래도 올해 리스트에서 눈에 띄는 책 두권만 보자면.

Pachinko by Min Jin Lee (NYT 서평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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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꽤나 주목받은 소설 중 하나이다. 미국 National book award 후보작 이기도 했고.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이 4대에 걸친 재일교포 가족사를 소설로 썼다.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재일교포 이야기에 미국인들이 주목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기회가 되면 읽어볼 생각.

Prairie Fires: The American Dreams of Laura Ingalls Wilder by Caroline Fraser (NYT 서평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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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NYT book list 논픽션은 전기가 강세이다. 그중에서 눈길을 끈 책은 Little house on the prairie 초원의 집의 작가 Laura Ingalls Wilder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전기이다.

이유는 첫째 때문. 첫째가 요즘 책읽기에 푹빠져있는데, 최근 초원의 집을 재미있게 읽었나보다. 초원의 집에 나오는 아버지를 몇차례 언급했다. 초원의 집 아빠 Charles는 정말 손재주가 좋아서 초원에다가 직접 집도 짓고 농장도 꾸리고 가구도 만든다나 어쩐다나. 문제는 내 자격지심. 괜히 비교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살짝 언짢다. 서부 개척시대에 mid west에다 집짓는 거랑 내가 비교되다니.

전기는 소설의 배경이 된 잉걸스 가족의 실제 삶을 이야기한다고. 그리고 작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한다. 작가들이라고 굳이 복수로 말한 것은 Laura의 딸이 집필 과정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황무한 (게다가 춥기까지한) 미네소타, 위스콘신, 사우스 다코다 같은 곳을 개척한 사람들, 그리고 그 땅의 native Americans 들의 이야기를 읽고서 딸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어야할 의무감도 생긴다.

책에서는 개척자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을 개척한 것 처럼 나오지만 실상은 native American들이 이미 살고 있는 땅이었다고. 그러니까 Charles도 주인없는 inhabitable land를 개척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지 않냐고.

뭐 Charles랑 비교당하는게 싫어서 그런건 아니고…

참고
작년 2016 리스트와 내 간단한 커맨트
2015년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