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laimer: 저는 의료계에 별 연관이 없는 일반인이고, 이번 포스트도 그저 기사 소개하고 옮기는 수준의 썰이니, 참고만 하시고 자세한 내용은 링크의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지적도 환영합니다. 다만, 인신공격은 바로 차단할 생각입니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헬스케어 시스템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헬스케어 이슈에 불을 붙인 장본인은 다름아닌 샌더스 의원.
현재로는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의 후보로 낙점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지지자들은 그대로이고 열기도 여전하기 때문에 그의 정책들은 힐러리 캠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주 힐러리 캠프에서도 좀더 진보적인 헬스케어 공약을 내어 놓았다. 공약의 골자는 현재 65세 이상 혜택을 받는 메디케어 프로그램 (노인 무상 의료 복지 프로그램)의 가입연령을 50대로 낮추겠다는 것. 세부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론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50대가 무료로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고 보험료를 지불하게 되는 것 같다.
Hillary Clinton Takes a Step to the Left on Health Care (NYT, 5월 10일자)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난주에는 샌더스의 전국민 단일 의료보험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해당 보고서를 낸 씽크 탱크인 Urban Institute는 힐러리/오바마를 지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Urban Institute 보고서를 살펴 보기 전에 미국 의료 시스템과 한국 의료 시스템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한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의료시스템이 단순하다. 크게보면, 1) 환자 2)의료보험 공단 3)의료계로 나눌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의료보험 공단은 정부로, 환자는 국민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일종의 single payer인 의료보험 공단은 정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민의 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의료수가제를 통해서 저렴한 의료비를 제공할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의료수가제가 만능은 아니다. 의료진 수급 문제라던지,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 등의 한계도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의료 시스템 개별 주체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1) 환자, 2) 병원, 3) 제약회사, 4) 보험사, 5) 연방정부, 6) 주정부가 모두 다른 인센티브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사실 환자 입장에서 보자면, 저렴하고 수준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게 이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 이다. 비용 측면에서 미국은 (공적지출과 개인 지출을 합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비 부담을 가진 나라이고, 효율 측면에서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이다.
OECD 국가별 의료비 지출 (GDP 대비). 산타크로체님 블로그에서 재인용
선진국 기대 수명 (출처 Reuters, 2013년 기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의료 개혁이 오바마 케어이다. 오바마 케어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이지만, 의료보험의 혜택을 못받는 의료 사각지대를 없앴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국 보험 미가입자 감소 추세 (출처: Urban Institute)
그러나 이 오바마 케어가 의료보험료와 의료비를 낮추는데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국 의료 사각지대하고 별 상관이 없었던 대다수의 미국사람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없었고, 일부는 세금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선거 초반 힐러리는 의료보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원인에 대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가 미국 의료 시스템을 오히려 후퇴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의료 시장을 자유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현재 미국 의료시장은 완전 자유시장은 아니고, 실제적으로는 주별로 준독점 상태이다.) 샌더스 의원은 single payer 시스템으로 의료 개혁을 하면, 소위 buying power 때문에 의료 비용이 내려가고, 불필요한 행정비용이 줄어 들것 이라는 주장한다. 반면 힐러리를 지지하는 크루그먼은 의료 사각지대를 없앤 것은 오바마의 큰 업적이고, 아직 갈길이 멀지만, 의료 개혁은 쉬운 길이 아니니 다른 문제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제 Urban Institute의 지적을 NYT 기사를 통해 살펴 보자.
기사는 샌더스 의원의 정책대로 single payer로 전환한다고 해서 미국의 의료비가 획기적으로 낮아지기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앞에서 언급한 의료 시스템의 플레이어 중에서 병원을 우선 보자. 병원에서 주로 들어가는 비용은 입원 병실 비용, 의료 장비 비용, 그리고 의사들 월급이다. 그중 의사들 월급은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사에 의하면, 미국 family physician의 평균 소득이 $207,000라고 한다. 영국은 $130,000 정도 이다. 영국에 비해서도 1.5배 가량 높다. family physician은 전문의가 아니고 일반의이니 전문의는 그 차이가 더 클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family physician이 동네 병원 의사 쯤 될 텐데, 영국보다 한국은 의사 수입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있다. 얼핏 듣기로 한국에선 전문의인 종합병원 페이 닥터가 연봉 1억 쯤 된다고 하니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의는 수입이 그보다는 좀 낮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연봉 7천 쯤으로 나오는데, 신뢰성 있는 자료는 아니지만, 터무니 없는 숫자는 아닌 것 같다.
의사 봉급 말고도, 미국 병원은 기본적으로 1인 1실이고, 환자당 할당되는 의료 인력이 많다.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구조이다.
이런저런 점을 감안 했을 때, single payer로 되었을 때, 병원비를 낮출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샌더스 안처럼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 이지만, 서비스 측면만 보자면 미국 의료 시스템도 장점이 있다. (물론 비용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우리 집은 아이를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낳았는데, 확실히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의사들이 실력이 우수하긴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산모가 아이 공장에서 아이를 만들고 procedure 대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비싼 만큼 친절하고, 배려 받는 느낌이 크다. 병실도 특별한 상황이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 1인실이 주어지는데, 심신이 닳을 때로 닳은 환자들에게 private 한 공간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의료비 청구서를 받는 순간 그 고마운 마음은 사라진다.) 이는 의사/간호사 당 환자 수가 적고, 병원비가 엄청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이 아파서 병원을 갈 때도 마찬가지 이다. 의사들은 보통 20~30분 정도 천천히 진료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농담도 해가면서. 그런데 결론은 주사나 약을 주지 않을 때가 많다. 감기로 병원에 가면 주사부터 놓는 한국과 다르다. 주사도 한방 맞지 않고 이야기만 하고 나서 100불 정도 청구서가 나오면 열불이 나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 취급을 받는 느낌은 든다. 이것도 비싼 의료비와 의사 당 제한된 환자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또다른 플레이어 제약 회사를 보자. 미국 제약회사는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single payer로 전환하면 bargaining power를 이용해 약값을 낮출 여지가 있다. 기사에서 언급한 Urban Institute도 single payer로 전환했을 경우, 25% 정도 약값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펼치는 제약회사들과 공화당의 반대 등의 정치적인 난관을 성공적으로 넘을 것을 가정한 수치이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이해관계도 다르다. 오바마 케어 때를 예를 들자면, 오바마 케어는 원안에는 메디케이드 (저소득층 의료 지원 혜택)를 확대하는 것이 포함이 되어있었다. 이를 위해 오바마 정부는 주정부에 메디케이드를 확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공화당이 우세한 red state들은 이를 거부했다.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힘겨루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기사에서 지적 하듯이, single payer 의료개혁은 미국 의료 시스템은 완전히 뒤집어 엎어서 새로 만드는 일이다. 의료보험 회사들과 관련 산업을 완전히 없애거나 국유화 시키는 일이 우선은 필요하고, 수십조원의 돈이 굴러다니는 병원, 의료업계, 제약 업계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개혁을 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아침에 쉽게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참고로, Urban Institute의 보고서 이후에, 샌더스을 지지하는 측에서도 반박을 했다. 약값은 25% 보다 더 인하하는 것이 가능하고, single payer로 전환하면 행정비용이 추가로 절감된다는 내용이다.
The Urban Institute’s Attack On Single Payer: Ridiculous Assumptions Yield Ridiculous Estimates (Huffpost, 5월 9일자)
논쟁들을 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다가, 희망도 생겼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우선 의료시스템 개혁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도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혹여 single payer로 전환한다고 하여도) 어쨌든 미국은 세계에서 의료비가 가장 비싼 나라로 남겠구나 싶다. 굳이 내 자신을 위로하자면, 내가 부담하는 비싼 의료비 때문에 미국 의학이 발전하고, 다른 나라도 덕을 보는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