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연재: 4. 브렉시트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 사회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이번 달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글을 공유한다. The American Interest에 실린 조너선 하이트 교수의 기고문. 조너선 하이트는 NYU의 사회 심리학자이고, 한국에도 소개된 책 ‘바른마음’의 저자이기도 하다.

When and Why Nationalism Beats Globalism, JONATHAN HAIDT, 2016년 7월 10일자

Jonathan Hai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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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내 포스트는 요약이나 번역이 아니고, 잊기전에 감상을 기록해 두기 위한 메모에 불과하니 내용에 관심있는 분은 본문을 읽을 것을 부탁드린다.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기고문에서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커지고 있는 반이민정서를 민족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는 반이민정서를 단순히 무지나 혐오의 결과가 아니라 다른 가치관의 표현으로 읽는다. 즉 ‘cosmopolitanism 세계시민주의’와 ‘nationalism 민족주의’의 대립으로 읽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남수단에서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는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과 우리동네 앞 수영장 안전수칙에 더 마음을 쓰는 사람과의 가치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사회가 부유해지면 새로운 가치관이 부상한다. Young urban elite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전통주의 traditional values’ 보다는 ‘세속주의 secular rational’를 ‘생존을 위한 삶 survival values’보다는 ‘자기 표현 self-expression’과 ‘해방 emancipative values’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신뢰가 굳건하고, 범죄율이 낮으며,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 사람들이 그러한 안정을 default로 여기기 시작하면, 상호존중과 자유, 그리고 신뢰에서 오는 낮은 거래 비용과 그에 따르는 경제적 풍요가 소중해진다. 그리고 이를 보장하는 ‘cosmopolitanism’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가치일 수 밖에 없다. (하이트 교수의 이 이야기는 잉글하트의 이론에 근거한다.)

말하자면 Cosmopolitan들은 존레논의 ‘imagine’이 묘사하는 세상을 천국으로 여긴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one.

멀리갈 필요도 없다. 이것은 내가 20대에, 그리고 30대 초반에 꿈꾸던 세상이었다. 군대를 제대할 무렵, 나는 세상에 나가서 뭐를 해야하나 싶었다. 그때 막연하게 넓은 세상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제대 후에 일년간 어학연수도 갔고 몇달간 유럽배낭여행도 했다. 이후에도 그러한 마음가짐이 이어졌다. 영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지만 미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능력만 있다면 세상 어디에 가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때의 생각과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내가 미국에 살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다.

다시 민족주의로 돌아오자. 어떤 면에서 그들의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단순히 인종주의자의 편견으로만 보는 것은 부당하다. 민족주의자들에게 애국 patriotism은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이다. 그들에게 민족과 문화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민족주의자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에 도덕적으로 결단한 사람들에 가깝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글에서 말하는 Nationalism은 도덕적 근본주의에 가까운데 어쨌든 여기서는 민족주의자로 표기하기로 하자.)

유럽은 지난 몇년 동안 밀려오는 이민자의 물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물에 빠져 죽어서 해안으로 밀려온 시체들과 트럭과 기차에 숨어들어오는 사람들의 비극을 지켜보고 있자면 절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거기에 아파하며, 외부인을 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cosmopolitan’의 시각을 가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메르켈 총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에, 이민자들이 들어와서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이 흐뜨러지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민족주의자의 시선이다. 헝가리에 몇년간 살았던 한 친구는 나에게 난민들이 기차역에 노숙을 하는 모습에 일종의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친구에게 뉴스에 나오는 기차역은 익숙한 일상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만약이지만, 이웃 나라에서 전쟁이 나서 거지꼴을 한 수천명의 외국인들이 서울역에 천막을 치고 눌러 앉은 모양새다. 게다가 그들중에 일부는 잠재적인 테러범으로까지 여겨지는 상황이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아주 극단적이지는 않아서 두가지 모습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 본인의 상황에 따라, 또 민감한 이슈에 따라, 두가지 모습 사이 어디 쯤에 있는게 보통이다.

민족주의자들이 지키고자하는 가치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종교적인 신념일 수 있고, 어떤이에게는 가부장적인 가치일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가치가 ‘인종’이나 ‘민족’ 또는 ‘피부색’과 결합이 된다면 강렬한 인종주의의 모습을 띠게 된다.

민족주의자들이 단순히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르다고 다른이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은 도덕적인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느낌을 받으면 종종 극단적으로 돌변한다. 그 도덕적 가치는 그룹에 따라 다르다. ‘동성연애’, ‘이슬람’, ‘페미니즘’, ‘개방연애’, ‘환경보호’, ‘마약’, ‘술’, ‘성적 방종’ 등등.

여기서 하나 집고넘어 갈 부분이 있다. 민족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이다. 보수주의자는 말하자면 status quo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다수 교육받은 사람들이고, 극단적인 상황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반면 민족주의자는 자신이 믿는 가치의 수호를 위해 극단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마무리를 짓자. 오늘은 반이민정서와 cosmopolitanism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러한 생각의 계기는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상이다. 아무래도 나는 여전히 cosmopolitan에 로망을 가진 사람인지라… 그리고 타국에서 minority의 삶을 사는지라…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과 유럽 극우민족주의자의 부상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상은 여러가지 결을 가진 이야기이다. (따져보자면 두가지 사건을 하나로 묶어 보는 것도 논리적 비약을 감수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한가지 관점으로만 이해한다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예전에 브렉시트를 Euroseptic의 관점에서 읽기도 하고,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해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EU의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브렉시트를 읽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지만 여러 각도에서 다시금 생각해보는게 내게도 유익했다.

어쨌든 시절이 시절인지라, 내가 믿는 가치가 가치인지라, minority로 또는 경계인으로 살아갈 숙명을 가진 내 아이들에게는 그게 또 겪어가야할 일인지라, 요즘 뉴스를 보는 일은 참 씁쓸하다.

브렉시트 관련글 모음

1편: European Union과 United of States of America
2편: 브렉시트와 EU의 정체성 – Eurosceptic의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3편: 브렉시트와 불평등의 문제 – 경제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4편: 브렉시트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 사회 관점에서 본 브렉시트

다름과 틀림 / 같음과 옳음 (로마서 14장 22절)

최근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가 새롭게 발견한 성경구절이 있어서 공유한다.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음미해 볼만한 내용이 있는 듯하여 포스팅하기로 했다. 물론 이 글은 나의 다른 블로깅도 그러하듯 그저 잊기전에 남겨두는 메모/일기 같은 글이기도 하다. 내가 읽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So whatever you believe about these things keep between yourself and God. Blessed is the one who does not condemn himself by what he approves. (Romans 14:22, NIV)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새번역)

예전에 성경의 로마서를 읽을 때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죄(1~2장)/칭의(3~5장)/성화(6~8장)/하나님의 주권(9~11장) 부분에 집중할 때가 많았고, 실제적인 적용 (12장 이후)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랬다. 14장에 이르러서 바울은 부정한 음식을 먹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대학시절에는 기독교인의 음주 이슈에 적용하는 구절로만 이 14장을 읽었기에 바울이 이야기 하는 많은 부분을 놓쳤다.

로마서 14장에 친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시 로마 교회에는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 신자와 유대교 배경이 없는 기독교 신자가 섟여 있었다. 따라서 유대교가 금지하는 부정한 음식들을 먹는 것에 대한 논란이 생겼고, 바울은 14장에서 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울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날을 중요시 여기고는 중요하지 않으며 교회는 예수의 죽음을 토대로 세워진 곳이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22절이 나온다.

이 편지는 기본적으로 교인을 향해 쓰인 편지이다. 그래서 우선되는 적용은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하는게 맞을 듯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토대가 된 교회에서 교인들은 서로에게 서로의 잣대를 들이대어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종교인은 대부분 옳고 그름에 대한 감수성이 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심지어는 목숨(!)을 걸고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어떤 계기가 생긴다면 아주 맹렬하게 싸우는 사람들이다. 생각나는 여러가지 예가 있지만 굳이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덕이 되지 않을 듯 하다. 예전 이야기를 예로 들면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 하찮은 것으로 싸웠나 싶을 것이고, 진행중인 이야기를 예로 들면 본인의 관점이 연결지어져서 불필요한 논쟁만 불러 일으키지 싶다.

내가 22절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울이 말한 신념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 신념, 혹은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지만, 그 방향이 다른 이에게 향한다면 ‘판단(judgement)’에 그치게 된다. 인간은 판단을 받고서 고치기 보다는 반발하고 상처 받는다. 게다가 그 판단이라는 것이 평소에 신뢰하던 사람으로 부터 온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대부분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복음의 핵심 (죄/칭의/성화/주권)과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이 내게 오늘 더 다가 왔던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교회에서의 다툼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많은 충돌/다툼/갈등 들이 ‘옳고 그름’의 문제에 있어서 오기 때문에 그러하다.

도덕이나 가치 같은 것은 때로 사람들의 차이(좌/우, 근본주의/세속주의 등등…)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흔히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도덕 감각을 갖고 있다는 가정 때문에 쉽게 간과되는 문제 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아이를 때려서라도 훈계를 시키는 것이 옳은가?’, ‘안전 기준법을 지키지 않아 다친 사람들을 국가에서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가?’, ‘무례한 어른을 공경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각자가 가진 도덕의 감각에 따라 다를 것이고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러한 이슈들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듯 하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한 이야기를 사회이슈/도덕 감정까지 끌고 가는 것은 약간의 비약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를 사회에서도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것이 유의미한 비약이다. 바울은 말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 일이며, 나아가서 그 신념대로 사는 것 자체가 그사람에 복이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도덕감각의 화살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삶을 진지하게 살아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바울은 이런 사람을 가르켜 복되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마음_The_Righteous_Mind_조너선하이트_도덕심리학_(1)

마지막으로 메모 차원에서 도덕 감각에 관해 들어볼만한 TED 강의를 공유한다. NYU의 business school의 교수인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의 강의이다. 물론 그 분이 성경이야기나 은혜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사람은 무신론자이다.) 그는 강의에서 도덕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다섯 가지 채널을 통해 설명한다. 워낙 많은 내용을 18분에 압축해서 전달하려고 하다보니 소화하기가 쉽지는 않다.

최근에 들은 바로 그의 책 ‘바른 마음(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에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책에서 나아가서 신념이 형성되는 세가지 원칙에 대해 ‘도덕 심리학’의 관점에서 잘 풀어놓았다고 한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읽을 책이 참 많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지역, 성별, 연령, 빈부, 정치로 인해 여러 면에서 사분오열된 형국이다. 나는 이 책이 쓸모 있는 도구가 되어, 한국인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더불어 보다 풍요롭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창조해 가는 데 가치가 있기만 하다면, 한국인들이 편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서 아이디어와 정책을 구하게 되길 희망해 본다. -조너선 하이트, 한국어판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