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은 왜 외국에서 서로 피할까?

미국 몇년 살면서 외국에 체류하는 한국 사람에 대한 특이한 점 하나를 알게 된게 있다.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을 일부러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한국 사람만큼 정이 넘치고 끈끈한 사람들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인사 나누고 고향이나 학교 등등의 호구조사를 하고서 공통분모를 찾는다. 하나라도 유사점이 있으면 바로 형/아우를 규정하고서 절친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다니는 건 어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는 그런게 이상하게만 여겨졌는데, 조금 지내다보니 나도 어떨때는 한국사람들하고 만나는게 불편할 때가 있다. 금새 친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엮이게 되는게 부담스러운 거다. 사람사이의 관계가 좋게 되기만 한다면야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 만큼 좋은 일이 없겠지만, 꼭 모든 사람이 나와 맞을 수는 없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특히나 이민사회는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한번 알게 된 사람은 계속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야한다.

한국인의 다른 특징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존댓말의 문화이다. 존댓말에 관련한 내 생각은 이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다. (미국사람들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존댓말이다.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면 무의식중에 손위/손아래를 따지게 되고 손위사람에게는 존중을 손아래사람에게는 복종을 요구한다. 나는 한국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문화가 존댓말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경험과 연륜이 있는 사람에게 존경과 존중을 표시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단순히 숫자적으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사람이 옳다거나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복잡한 관계 속에 얽혀서 살고 있다. 우리는 나이, 학번, 입사동기, 사돈, 선배, 후배 이 모든게 얽혀서 서열을 정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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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임수정의 ‘내아내의 모든것’을 재미있게 본적이 있다. 거기서 임수정은 눈치안보고 독설을 퍼붓는 사람이지만 밉상은 아닌 캐릭터로 나온다. 그중에서 인상깊었던 한 장면이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와이프들끼리의 모임 장면이다. 이러한 모임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거기서 와이프들끼리의 관계는 남편의 직급으로 규정된다. 한 아주머니가 임수정에게 말을 한다. “와이프가, 눈치가 아주 많이 없네!” 이때 임수정은 그 사모님들에게 말을 한다. “눈치를 안 보고 살아서 그래요. 예의만 지키면 눈치는 안봐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영화의 큰 맥락과 관련이 없는 장면이었지만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미국와서 한국 아이들과 미국아이들의 차이점을 하나 발견한게 있다. 한국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형이고 언니인지 먼저 따진다. 그런데 아이들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한가지가 있다. 미국은 학기가 가을에 시작하기 때문에 보통 9월이나 10월 생들이 학교를 빨리 간다. 거기서 바로 복잡한 호칭 문제가 발생한다. 나이가 같은데 학교를 먼저 갔기 때문에 형이라 해야 할지 언니라 해야할지 애매해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빠른 xx년생이랑 비슷한 상황이다. 이게 미국아이들에게는 별로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학년이 높다고 해서 존댓말을 쓰는 것도 아니고 호칭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학교를 먼저 갔을 뿐이다.

미국 아이들도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보통 리더십이 더 있기는 하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논 이야기를 들어봐도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놀이를 주도할 때가 많다. 선생님/학생 역할 놀이를 할때 생일이 빠른 아이들이 선생님 역할을 맡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건 또래에 비해 성숙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리더십이지 존댓말이나 호칭으로 인위적으로 생기는 리더십은 아니다.

한국인은 나이를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몇살에는 취직을 해야하고, 몇살에는 결혼을 해야하며 아이를 나아야하고 등등 모든것이 나이에 맞춰져서 되어질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문화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문화라는 것은 각자 모두 이유가 있고 옳고 그르다기 보다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러한 부분은 정말 아쉽다.

미국사람들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To have a second language is to have a second soul.” – Charlemagne

언어가 단순히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일까? 아니면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까?

스탠포드 대학의 Caitlin Fausey의 실험에 따르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사람을 비난하는 경향이 커진다고 한다. (출처: Lost in Translation, WSJ) 이는 영어가 수동태보다 능동태를 좋아해서 그렇다. 예를 들어 꽃병이 깨진 사건을 표현할 때, 영어로는 “John broke the vase.”라고 말하고 스페인/일본어로는 “The vase was broken.”라고 말한다. 다른 예로 같은 내용의 비디오를 보여주고 각기 다른 언어 사용자에게 그 사건을 묘사하라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때 영어권 사람들은 ‘누가’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위주로 묘사했다고 한다. 반면에 비영어권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가 더욱 중요했다고 한다.

한국어의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는 존댓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람이 나보다 손위 사람이냐 손아래 사람이냐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 차이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만나면 민증부터 깐다. 잠시 호구조사가 끝나면 (어느 지역출신이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 등등..) 바로 말을 놓거나 아니면 두번째 만날 즈음에는 슬쩍 말을 놔야겠다는 판단을 한다.

한국사람들끼리는 나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손위사람하고 영어로 대화를 하면 종종 어색해진다. 분명히 형이거나 누나인데 ‘You’라고 해야하고, 존칭인 ‘sir’ 같은 말은 왠지 사이가 먼사람 같이 느껴진다. 말끝마다 ‘please’를 붙일 수도 있지만 ‘please’는 존댓말이라기 보다는 공손한 말의 느낌이다.

이러한 어색함은 한국사람끼리 대화하다가 미국사람이 대화에 끼면 두배가 된다. 미국사람들한테는 손위사람에게도 친해지면 격식없이 casual English를 사용하는데 미국 할아버지에게 격식없이 영어를 하다가 옆에 있는 1살 위의 형에게 격식없이 영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어색하다. 설명하기 애매한 시츄에이션인데, 아마 겪어본 사람은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에게 나이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직장 상사가 나보다 젊은 사람일 경우도 있고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이 아래사람이 되기도 한다. 지금 회사에서 전의 보스는 50대 중반 백인 아저씨였는데 그의 보스는 30대 중반인 한국계 미국인이다. 처음에 나는 이런 상황이 좀 어색했다. 근데 둘의 관계는 직장 서열로 규정되기 때문에 나이가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 제일 적응이 안된건, 나이어린 보스가 스무살 정도 위의 부하직원의 어깨를 툭치면서 ‘Hey, man! What’s up?’ 하면서 썰렁한 농담을 주고 받는 거였다. 근데 내보스는 ‘어린 녀석이…’ 라고 불끈하는 게 아니라 격없이 대한다고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더라.

미국에서 오래 지낸 교포 어르신들과 대할 때도 이런 부분은 참 애매하다. 중요한건 이사람이 한국 스타일에 가까운가 아니면 미국 스타일에 가까운가를 먼저 파악하는 건데, 미국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손으로 악수를 하는게 좋고 한국사람에 가깝다고 판단되면 허리를 약간 숙이고 두손으로 공손하게 악수를 해야 한다.

존댓말과 어른 공경의 태도가 우리나라를 우리나라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조금은 경직된 조직 문화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문화적인 부분데서 오지 않았나 싶다.

샤를마뉴(카를루스 대제)의 말을 인용해서 거창하게 글을 시작했는데, 잡설만 길어졌다. 외국에 살다보면 처음에는 한국과 비교해서 외국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 싫어지기도 하고, 다른점이 좋아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몇년후 나조차도 그러한 외국 문화에 적응되어 변해버린다. 반대로 한국을 보면서 좋은게 생기고 싫은게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어권 밖에서 살면서 하나 좋은 점은 우리나라 사회와 문화를 보는 다른 시각이 생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