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문화와 성평등

일전에 올린 [실리콘 밸리와 직장문화] 포스트에 Santacroce G Nam 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답변이 길어져서 따로 포스트로 옮겨둔다.

산타크로체님: 매우 흥미있는 이슈인데 관련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정리된 생각은 아니지만 테크기업의 짧은 기술생애주기를 생각하면 예를들어 유럽식의 5주 휴가나 35시간 근무제 또는 매우 관대한 출산 및 육아휴가가 제도적으로 가능할까 싶긴 합니다. 어쩌면 조악한 방식으로 야근을 강요할 필요도 없이 Task 중심의 성과보상 체제라면 능력에 따른 업무 투입 시간은 상당한 개인차를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일정한 결과물을 제 시간안에 도출하는 것만 고려한다면 주 20시간을 일하든 집에까지 업무를 가져가서 50시간 이상을 일하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관대한 출산육아 휴가가 보장되어 1년 정도 업무 공백이 생긴다면 스맛폰 같은 경우는 한 버전을 건너 뛰는 꼴인데 매니저는 생산성의 유지에 대한 고민이 들 것 같고 휴가 해당자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들 것 같기도 합니다. 당연히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유럽식이 좋긴 하겠지만 현 미국 테크기업이 그런 업무 스타일을 전면적으로 채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나:
말씀하신 대로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대부분 task 중심의 성과 보상체제를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실리콘 밸리가 아니더라도 미국 기업 대다수가 ‘일만 제 때 끝나면 근무시간이야 무슨 상관이람.’ 이란 마인드를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도 기업마다 달라서 온도차가 큽니다. 사실 성과중심체제가 일의 양을 줄인다기 보다는 더 과도한 일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아마존이 이슈가 되었던 것은 너무나도 과도하게 성과를 몰아부쳐서이기도 합니다.

또 말씀하신대로 업무 스타일에 따라 직무별로 flexible한 업무 수행이 가능한 일이 있고 아닌 일도 있습니다. 다만 근무 환경과 회사 문화가 좋은 회사일 수록 한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적으로 일이 진행되도록 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말씀하신대로 특히 순간순간 트랜드가 변하는 테크 쪽에서는 그다지 먹히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시스템으로 일하려고 해도 사람이 몸으로 떼워야 할 부분이 분명 있기도 하고요.

제가 이왕 출산휴가 이슈를 제기 했기에 마지막으로 성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유연한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 성평등(특히 남녀 임금 격차 부분)을 가져오는 데에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vox에서 만든 동영상을 본적이 있는데, 2009년에 시카고대 MBA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하버드대 Bertrand 교수 팀), 직군에 따라 임금 차이가 다릅니다. 이를 테면, 테크나 과학쪽 일 처럼 철저하게 성과중심인 직군은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기에 성차이에 따른 임금차이가 적은 반면, 미팅이나 팀웍이 중요한 경영관련 직군은 임금차이가 큰 편이었습니다.

해당 페이퍼: Dynamics of the Gender Gap for Young Professionals in the Financial and Corporate Se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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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해당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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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서 또하나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미국 약사의 남녀간 급여 차이입니다. 미국 약국은 옛날에는 한국처럼 개인 사업자가 많았고 따라서 한사람이 몸으로 때워야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의 약국은 기업화되어서 여러사람이 교대 근무가 가능해 졌습니다. 이 때문에 융통성 있는 근무가 가능해졌죠. 이 변화가 일어났던 30~40년 사이에 남녀의 임금 격차는 드라마틱하게 줄었습니다. 1970년 남성의 66%의 임금을 받던 여성 약사들이 지금은 92%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참고 그래프: What’s your pay gap? (WSJ, 5월 17일자)

참고자료
The truth about the gender wage gap (vox, 8월 1일자)
동영상 https://youtu.be/13XU4fMlN3w

실리콘 밸리와 직장문화

작년 오늘 올렸던 포스트를 재공유하면서 한마디. (페북이 친절하게 알려줬다.)

아마존 직장문화와 저널리즘의 역할 (2015년 9월 10일자 포스트)

작년 8월에 뉴욕타임스가 아마존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탐사보도를 했고, 회사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아마존을 정글같은 곳이라고 비판했다.

아래 포스트는 그후에 NYT 편집장이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옮긴 것. 언론은 아마존 사례 같은 이슈를 발굴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이다.

기사 이후 일년 사이에 서부 테크 기업들의 근무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많은 회사들이 출산휴가를 도입했고 (미국은 남녀 모두 유급 출산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이다. 파푸아 뉴기니를 제외하고는…) 샌프란시스코 시는 6주간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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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icon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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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순진하게 뉴욕타임스 기사 하나가 그 모든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지는 않는다. 서부 테크 기업들은 항상 인재가 부족했고, 인력풀을 유지하기 위해 그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는데 여러가지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지면서 변화가 생기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남부는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동네인지라, 이런 변화가 찾아오려면 한참은 걸릴 듯. 글고보니 올 초에 코카콜라가 6주 유급 출산 휴가를 도입했다. (같은 동네 회사 다니는 내 입장에서는 배가 아플 뿐이고…)

논란의 당사자 였던 아마존도 지난 주에 (특정 직군에 한해서) 주30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 문화가 그렇게 쉽게 변할까 싶긴 하다만…

아마존 직장문화와 저널리즘의 역할

지난달에 아마존 직장문화를 1면에 실은 뉴욕타임즈 기사에 대해 블로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기사는 사례 위주(anecdotal)인데다가, 퇴사자의 입을 빌은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아 (내 기준으로는) 좋은 기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가 회사 이름을 거론하며 돌직구를 날리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타임즈는 이슈를 만들줄 안다. 그 점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모두가 마녀사냥을 하는데, 같이 돌던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건 황색 저널리즘이다.)

어쩌면 저널리즘의 역할은 이슈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세상사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진실은 복잡다단하고, 딱잘라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반면에 힘있는 글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사가 나간 후에 꽤 말이 많았나보다. NYT 역사 상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였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NYT 편집장은 그게 저널리즘이 해야할 일이라며, 아마존 같은 사례를 계속 발굴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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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re/code)

링크: New York Times Editor Dean Baquet Says It’s His Job to Publish More ‘Amazon’ Stories

아마존과 미국 회사

아침에 딸램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 NPR 뉴스에서 아마존의 직장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이다. New York Times에서 1면에 아마존의 직장 문화에 대해 보도를 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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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져서 기사를 찾아 보았다. 아마존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업무강도가 높기는 하더라. 이전에도 비슷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내가 아는 몇몇 분들도 1~2년 있다가 해고를 당하거나 자연스럽게 그만두었다. 수평적인 구조라서 진급이 힘들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리고 사람을 상당히 많이 뽑는데, (우리회사 입사 동기 중에 한명도 작년에 아마존으로 옮겼고, 딸아이 친구 앤도 아빠가 아마존에 입사하면서 시애틀로 이사를 갔다.) 나가는 사람이 많아 인력 turn-over가 아주 빠르다.

기사 내용은 조금 극단적인 케이스를 가져다 쓴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기사는 아니다.) 퇴사자는 이전 회사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마련이다. 이혼한 사람에게 전배우자에 대해 묻는다면 무슨 대답이 돌아오겠는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기사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들었던 몇몇 사례와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고…

NYT가 과하게 이슈화 하긴 했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슈를 만드는 능력이 대단하다. 한국 언론기관이 회사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 이런 류의 기사를 쓰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존은 이미 유통업계 1위이고 핫한 뉴스를 매달 쏟아내는 기업이다. 직장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제격인 회사이다. 미국 회사도 파보면 직장 문화에 문제가 많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직원 입장에서는… )

돈 주면서 왕처럼 대우하는 곳은 없다. 미국 회사 대부분은 근무 강도로만 보면 한국의 직장을 넘어서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퇴근 후에도, 휴일에도, 휴가 기간에도, 업무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내가 미국와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육아휴직/출산휴가인데, 대부분의 미국 회사들은 육아휴직/출산휴가가 없다. (남녀 모두) 상황에 따라서 필요하다면 무급으로 쉬는 정도이고 이마저도 그렇게 편하게 사용하지 못할 때가 많다. (관련 포스팅: 미국의 육아휴직/출산휴가)

미국 안에서도 직장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간간이 있지만 시장논리가 우선할 때가 더 많다. NYT가 이렇게 이슈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물론 당사자인 아마존 측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영문 원본 기사: Inside Amazon: Wrestling Big Ideas in a Bruising Workplace (NYT 2015년 8월 17일자)

한글 번역 (계란 소년님 블로그): 인사이드 아마존 : 가혹한 직장에서 거대한 발상과 씨름하기

제프 베조스 반박기사: Jeff Bezos says he doesn’t recognize ‘soulless and dystopian’ Amazon (The Verge 2015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