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의 보호무역과 캘리코법 – 1701년 런던

Empire of Cotton 지난번에 이어서.

17세기 후반, 유럽에 인도산 면직물 캘리코가 소개된다. 가볍고 땀흡수도 잘되는 이 혁신적인 신소재에 유럽 귀족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펼쳐진다. 마직물 (linen)과 양모 업자들은 반발한다. 국산품을 애용해야지 우리는 뭘 먹고 살라는 말이냐. 양치기, 농민, 섬유산업 수공업자들을 말려 죽일 셈이냐. 면직물을 들여온 동인도 회사 직원들은 테러의 대상이 된다.

동인도 회사가 설립된지 이십년도 되지 않아, 1621년 런던의 양모 상인들은 면직물 수입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인다. 1623년에는 국회에서 토론을 하는데, 면직물 수입을 ‘injurious to the national interest’ 국익에 해가 되는 일이라고 부른다. (이쯤에서 트럼프가 떠오르는 건 내가 요즘 뉴스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17-18세기 영국 정치에서 면직물 수입은 중요한 이슈였다. 정치인들은 보호무역을 선택했다. 1685년 영국정부는 동인도회사의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매기기로 한다. 1690년 이를 20%로 올린다. 1701년에는 인도산 면직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데 이를 calico acts 캘리코법이라고 한다. 1721년에는 인도산 면직물을 착용하는 것 조차 법으로 금한다. 1772년은 수입면직물에 대한 거부감이 극도로 높았던 해이다. 밀수한 인도 면직물을 집에 소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는 기록이 있다.

인도산 면직물 수입에 대한 반발은 영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비단, 양모 업자가 반발했고 이에 1686년 인도 면직물 수입을 금지한다. 1726년에는 심지어 밀수업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섬유업이 발달했던 다른 나라도 상황은 같았다. 베네치아, 플랑드르, 프러시아, 스페인, 오스만 제국 또한 면직물 수입을 금하였다.

그런데 영국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 기간 영국 면직물 산업의 생산성이 폭발한다. 공산품이 경쟁력을 가지게 되자 서서히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시절 영국은 아담스미스와 리카도가 활동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지금은 경제학자로 알려졌지만 리카도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평생을 자유무역을 수호하는데에 바친 인물이다.

영국 국회는 1774년 캘리코법을 폐지한다. 그리고 영국 면직물 산업은 바로 수출 붐을 맞이한다. 아래 그림을 보면 캘리코법 폐지 이후 면직물 수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17세기 후반이 되면 영국 면직물 생산의 61.3%를 수출하는데, 이게 자유무역으로 태세전환한지 20여년 만의 일이다.

오늘은 주로 팩트 나열 위주로 전개해봤다. 이 연재를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하게된다면 팩트에 더해서 면화산업을 중심으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논쟁, 산업혁명과 생산성 이야기, 제국주의에 대해 고민해본 이야기도 해볼 생각이다.

참고로 아래에는 지금까지 쓴 이야기와 (하게 된다면) 이어서 쓸 이야기 목차.

 

목차

  • 노예와 미국 남부의 목화농장들: 왜 미국이 목화 생산의 중심이 되었을까? 경쟁자들인 아시아(중국/인도), 캐리비안, 브라질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 19세기의 보호무역과 산업화 – 중상주의에서 산업 자본주의로의 전환기: 어떤나라들 (독일, 이태리, 미국북부)은 성공적 산업화에 성공하였으나 어떤 나라들 (이집트, 브라질, 인도)은 실패했다. 유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가 생긴 원인은 무엇일까?
  • 식민 국가들의 탈산업화 – 원재료인 목화를 사수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노력: 19세기 초반 제국주의자들은 어떻게 착취의 구조를 만들어 갔는가?
  • 노동자와 산업혁명, 아동착취와 노동 계급의 형성
  • 현대의 면화산업

생산성과 기술혁신

지난 주에 가볍게 끄적인 게 있다. 재정확대 정책과 인플레에 대해서 였는데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나 같은 범부가 뭘 알겠나. 말마따나 정말 갑작스럽게 생산성이 막 향상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직도 사짜스럽게 들리는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기술이 퀀텀 점프할지도 모르는데…”

지난 포스팅: 인프레이션 없는 재정확대? (2월 15일)

이 얘기를 경제학적으로 다시 풀자면, 기술혁명이 오면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고, 인플레 없는 장기 성장이 올 수 있지만, 그 기술혁신이 (경제학 측면에서) 예측 가능한 변수가 아니라는 의견이다.

내가 알기론 경제학에서 기술혁신은 공급측면 (supply side of economy)의 변수이고, 기술혁신이 왜 생기는가는 경제학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는 아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경제학에서 기술혁신은 어디선가 느닷없이 등장하는 외생변수일 뿐이다.

포스팅을 하고서 이번주는 생산성에 대한 생각을 좀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게 다 거기서 거긴지, 이번주는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를 공유한다. 뉴욕타임스 economic trends section Neil Irwin의 기사이다.

Irwin은 이번달 맥킨지 보고서를 인용한다.

Solving the productivity puzzle

맥킨지 보고서는 주장하기를, 생산성 향상이 반드시 공급에만 달려있는게 아니고 (supply side of economy) 수요측면에서도 (demand side of economy)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일단 원인은 모르겠고, 갑자기 기술이 발전하면 그 분야의 생산성이 급증하는 거 아냐?’ 라고 보는게 아니라. (이건 공급 측면 접근이겠지.)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고, 기업들은 자재도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그제서야 창의적인 해결책 (기술 개발/투자)을 고안하지 않겠냐는 얘기다.

맥캔지 보고서가 든 근거 두가지만 살펴보자.

미국 자동차 산업.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미국의 자동차 생산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장 가동률이 올라가기 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기업들은 신규 공장을 짓지 않았다. 신기술에 대한 투자는 보통 신규 공장을 지을 때에 이뤄진다. 그러니까 미국 자동차 업계의 신규 기술 투자는 최근까지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패스트푸드점. 패스트푸드점 자동 주문 단말기는 오래전에 개발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무인 판매대 보급이 급격히 늘은 건 최근이다. 이또한 실업률이 4.1로 최저점에 이른 요즘 경제 분위기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말이 된다.

맥캔지 보고서는 여기서 마무리 짓고, 좀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영국의 산업혁명.

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었을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일단 영국의 면화 산업을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면화이고 이후의 철도, 증기기관, 철강 산업이 면화의 폭발적인 성장을 뒷받침 하면서 모멘텀을 맞이했다. (1770년 면화산업은 영국 경제의 2.6%를 차지했으나 1831에는 22.4%에 이른다. 비교하자면 같은 해에 철강 산업은 6.7%, 석탄은 7%, 양모는 14.1%였다. 근로자를 기준으로 따지면 당시 영국 노동자의 1/6이 면화산업에 종사했다.)

18세기 영국은 식민지 개척(?)을 통해 인도의 면화를 독점적으로 공급을 받을 수 있는 루트와 면직품들을 팔 수 있는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면직물 시장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여담으로 좀더 설명하자면, 당시 국제 무역은 인도에서 면직물을 사고, 남아메리카 은광에서 은을 캐고, 캐리비안에서 설탕을 재배하는 하는 식이었다. 이를 유럽과 식민지에 팔고, 또 서아프리카에서는 노예를 사고 (ㅠㅠ), 그리고 그 노예들이 은광과 설탕 제배에 투입되는 구조였다.

다시 산업혁명으로 돌아와서.

산업혁명 이전까지 영국의 면화 산업은 몇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인도/중국의 면직물과 비교우위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상황.

당시 면직물은 인도 제품을 최고로 쳤다. 아프리카 부족들과 무역을 할 때도 족장들이 인도의 calico 캘리코를 (인도산 면직물) 요구할 정도였다고.

결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 벵골지역을 장악해서 차근차근 인도 기술을 따라 잡았고, 면화에 대한 구입루트를 확보했지만 생산량 확보와 원가절감은 결코 따라잡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 면화 생산은 농부들의 농한기 부업이었고, 주로는 여자와 아이들의 일이었다. 바꿔말하면 노동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인도에서 영국까지 운송비도 엄청났고, 부업이기에 균질한 품질을 보장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영국 랭커셔 지방의 임금은 인도의 6배 수준.

Image result for cotton factory industrial revolution

(source: http://eh.net/encyclopedia/women-workers-in-the-british-industrial-revolution/)

경제사 쪽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한계 상황이 영국의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는가 보다. 그 논리를 따르자면, 실업률이 최저에 이르고 노동력이 희소해지면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할 요인이 충분해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2018년 지금의 미국??)

결론은 그렇다치고, 어쨌든 산업혁명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면, 영국 면화 산업의 생산성은 산업혁명, 공장의 건설에 힘입어 급격히 상승한다. 18세기 인도의 경우 100파운드의 원면을 방적하는데 5000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영국은 1790년에 mule방적기를 이용해 1000시간으로 줄였고, 1795년에 수차를 이용하면서 300시간. 1825년 Roberts의 자동 mule 방적기 발명으로 135시간으로 줄였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370배의 생산성 향상을 보였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 향상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GDP와 마찬가지로 생산성은 절대수의 증감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률이 기준이 되어 경제 지표를 구성한다. (대분기)

관련자료:

Empire of Cotton by Sven Beckert (Vintage Books, 2014)
Why the industrial revolution was British: commerce, induced invention,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 (The economic history review, R. C. Allen)
주경철 교수 칼럼
[경제사 뒤집어 읽기] 산업혁명 일으킨 인도산 면직물 (2011년 4월 8일자, 한경]

애고 길었다. 자꾸 삼천보로 빠진다. 어차피 내 포스팅이 수다긴 하니까…

시간이나면 다음 포스팅으로 요즘 읽는 책 Empire of Cotton 이야기도 좀 해보려고 한다. 면화의 역사에 대한 책이지만, 마침 산업혁명과 산업화, 보호무역에 관한 챕터를 읽는 중인데, 요즘 상황에도 걸맞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