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ly posted 02/19/2014 on facebook
큐티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 중에 간혹 큐티를 오늘의 운세 보듯이 하는 분이 있다. 어느 한 단어나 한 구절에 꽂혀서 성경 전체의 맥락을 무시한 채 자신의 생각대로 해석하여 적용하려고 드는 분… 신년이나 생일에 맞춰 그날의 말씀을 찾아 랜덤한 성경구절을 찾아 그 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는 분 등… 이러한 모습이 신년운세를 알기위해 점집을 찾는 행위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하나님 말씀을 매일 진심으로 읽는 것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큐티는 참으로 유익한 신앙적 전통이다. 하지만 많은 신자들에게 큐티는 적용꺼리를 억지로 꺼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종종 지워주곤 한다. 그러한 적용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성경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간혹 설교에서조차 끊어 읽기 큐티식 성경해석을 발견했을 때는 그 답답함이 얼마나 큰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성경을 맥락에 맞게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듯 싶다.
복음 자체가 어려운 내용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시 가장 무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서 가르키신 말씀이니 말이다. 하지만 교회사를 되돌아 보자. 교회가 가장 세속화/계급화 되었던 중세시대에 낮은 자를 위한 예수님의 복음은 헬라어/그리스어로 숨겨져서 가진자의 성경이 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마틴루터가 종교개혁 초창기에 했던 일(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서 금속활자로 성경을 보급했던 것)은 무척이나 적절하다. 아마도 현대의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일 중에 하나는 평신도에게서 너무나 멀어져버린 성경 말씀을 제대로/쉽게 풀어서 낮은자에게 돌려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종교개혁/미국 대각성운동이 그러했던 것 처럼 그러한 일이 다시 이루어 진다면 그 유익은 교회 뿐 아니라 우리가 몸담은 세상에도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짧게 쓰려다 오늘도 사설이 길어 졌다… ㅋ
(덧붙임 02/12/2015)
예전에 지나가듯 잡상을 적어둔 내용인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날이 너무 서있다. 근대 의외로 이글이 조회수가 높다. 지울까도 싶었지만, 당시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현재도 동일하기 때문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글에서는 큐티의 단점 만을 크게 부각시켰다. 그러나 큐티는 분명히 매일매일 성경을 마음에 새기려는 분들에게 귀한 도구이다. 다만 지나친 일반화, 원 의미의 변질,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적용의 위험성 또한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이글을 읽고서, 평소 성경도 안읽고 성경 공부도 안하는 분이 ‘누가 그러는데, 큐티 안좋은 점도 있다고 하더라. 큐티 안해도 된다.’ 이렇게 말씀 하시면 정말 오해하시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