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크기업 IPO와 차등의결권

lyft가 곧 있을 IPO에서 Dual class voting right 즉 차등의결권을 채택했다. 이에 다시금 미국에서 차등의결권 이슈가 주목받고 있다. 참고로 리프트는 우버의 경쟁사인 차량 공유 테크 기업이다.
.
Image result for lyft
.
관련기사
.
일단 집고 넘어갈게 있다. 이건 항상 미국 경제/경영 관련 포스팅을 할때 마다 느끼는 건데, 나는 대부분 한국 이슈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 얘기로 수다를 떠는데, 포스트는 그렇게 읽히지 않는 것 같다. 미국 얘기를 하면서 한국말로 글을 쓰니 피할 수 없긴하다. 그러나 현상이 비슷해도 맥락이 전혀 다를 때가 많다. 물론 세상일이 두부 자르듯 구분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차등의결권 이야기도 좀 그런 면이 있다. 내가 느끼기에 한국에서 차등의결권은 주로 오너의 경영권 방어와 재벌 기업 지배구조, 재벌 개혁의 맥락이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차등의결권 허용이 주로 오너 경영권 방어의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 같구.
.
그런데 알고보면 미국이라고 차등의결권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기업입장에서도 장단점이 있고, 잘못하면 오히려 악수가 되기도 한다. (자세한 예는 뒤에서.)
.
21세기 와서는 차등의결권을 채택하는 건 대체로 테크기업이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 구글(알파벳). 이 기업들은 주식을 class a와 class b로 나누고 창업자가 가진 주식 class b가 좀더 큰 의결권을 가진다. 이번에 IPO를 하는 lyft도 이 방식을 채택했다. Lyft는 class b가 20표를 행사한다. 반면 일반적인 지배 구조에서는 1주가 1표를 행사한다. 그럼 founder가 class b 주식을 팔면 어떻게 되나? Class B의 효력을 상실하고 Class A 주식이 된다.
.
문제는 이렇게 의결권이 작은 주식을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 상식적으로는 의결권이 작으니까 그만큼 주가도 낮을 것 같다.
.
근데 테크기업들은 그렇질 않았다. 잘 알다시피 페북이나 구글 (알파벳) 주식은 잘나가는 주식이다. 그러니까 주주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테크 기업들의 경우는 창업자의 카리스마가 기업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때가 많다. 그러니까 투자자들은 창업자의 의결권이 크기 때문에 기업이 단기적인 주식시장의 변덕 보다는 founder의 장기비전에 집중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거다.
.
Image result for zuckerberg
.
여기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2017년에 IPO를 한 스냅챗. 스냅챗의 IPO는 여러모로 뉴스가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Zero voting right을 가진 class C 를 발행했다는 거다. 처음 시장의 반응은 좋았다. 근데 S&P에서 태클을 건다. S&P 500 index에서 스냅챗을 빼기로 결정한거다.
.
Image result for snapchat
.
미국 금융에서 인덱스 펀드 (그것도 가장 큰 S&P 500) 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건 참 뼈아픈 일이다. 인덱스 펀드는 인덱스에 연동되어 있고, S&P 500 같은 펀드의 규모는 수조원에 달한다. 인덱스에 제외된다는 건 이 큰 규모의 투자에 제외된다는 의미.
.
결과적으로 스냅챗 주식은 엄청 빠졌다. 물론 회사 경영 자체가 좀 방향을 못잡는 면도 있지만 그와 별개로 인덱스에서 제외한 결정도 상당한 타격이었다.
.
그런데, 한국에서 차등의결권 미국 사례를 들 때 이 얘기가 언급되는 걸 본적이 없다. 잘 몰라서? 꼭 그런것 같지도 않다. 한국말로 검색해보니 스냅챗 IPO 직전에는 zero voting share에 대해 긍적적인 기사가 많더라. 그러게. 이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차등의결권 논의가 한국에서는 미국과 다른 맥락에서 이뤄진다는 확신이 든다.
.
당시 스냅챗 관련기사:
.
여담이지만 당시 블루 애이프런이나 알파벳(구글)도 class c 주식을 발행했었는데, 알파벳은 S&P 500에서 제명되진 않았다. (몇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내막을 잘 모르는 나는 ‘이건 뭐야’ 싶다…ㅋ)
.
그래도 당시 S&P의 결정은 테크기업들이 차등의결권에 열광하던 분위기에는 확실히 찬물을 끼얹었고, 작년에는 차등의결권 논란이 잠잠해졌었다. 그리고 올해 lyft가 등장한 거다.
.
dual class stock은 미국에서도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는 주제이다. 워낙 논쟁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주제에 정답이 어디 있겠나. 나같은 장삼이사야 그저 팝콘을 준비할 뿐이다. 또, 뒤이어 IPO를 하는 우버도 유심히 보고 있을 것이고.
.
+덧: 산타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한국의 차등의결권 논란이 제가 받은 인상과 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한국도 스타트업이 많이 활성화 되었고 제가 그쪽 분위기는 전혀 모를 수 있겠다는 싶네요. 제가 얻는 한국 정보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국 반독점 규제 논란과 그 역사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 중 하나인 워렌 의원이 최근 공약으로 테크 대기업들, 즉 아마존/구글/페북의 분할을 내세워서 화제이다. 심지어는 한국 뉴스에서도 보도를 할 정도.

미국판 재벌개혁워런아마존·페북·구글 분할 (조선일보, 3월 11일자)

Image result for warren

나도 이 주제에 다소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핸펀으로 메모를 남겨본다.

기사만 보면 지상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이게 왠일인가 싶지만, 독과점 (특히 테크기업의) 이슈는 최근 미국 경제/정치 쪽에서 이미 상당히 뜨거운 이슈이다. 이쪽으로 급진적인(?) 경제학자들은 테크기업의 모노폴리를 monopsony 수요독점 이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반독점 운동은 소위 New Brandeis Movement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워렌은 New Brandeis Movement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정치인 중에 하나이다.

2016년 워렌이 open market event에서 한 연설은 일종의 New Brandeis Movement의 요약문으로 들릴 정도이다. 참고로 연설문 링크를 남겨둔다. 11페이지 분량이고 주석이 친절하게 달려있어 추가 공부를 하기에도 좋다.

2016 엘리자베스 워렌 반독점 정책 연설 전문 (2016년 6월 29일자)

뉴 브랜다이즈 운동 관련해서 최근 기사는 아래 NYT 기사를 참조하면 될 것 같다. 아래 기사는 독점법 관련 젊은 스타 법학자 리나 칸 (30세)을 소개하고 있다.

Amazon’s Antitrust Antagonist Has a Breakthrough Idea (NYT, 2018년 9월 7일자)

Image result for 리나 칸

반독점 관련 논쟁의 역사를 좀 살펴보자. 1890년 루즈벨트의 Sherman Act와 1914년 우드로 윌슨의 Clayton Act를 우선 봐야할 것 같다. Sherman Act는 지금 엑손 모빌의 전신인 스탠다드 오일과 American Tobacco Company를 분할 시키는 근거가 된 법이다. 그리고 그당시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루이스 브랜다이즈 대법원 판사이고.

Image result for louis brandeis

브랜다이즈의 말을 하나 인용해보자면, “We may have democracy, or we may have wealth concentrated in the hands of a few, but we can’t have both.” 이 있다.

2세기 전의 이 말이 현대 미국 젊은이들에게도 상당히 공감을 주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반독점 운동을 ‘뉴 브랜다이즈 운동’이라고 명명한게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셔먼 액트 시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자 반독점의 흐름은 피크를 친다. 기업이 커지면 연방정부가 눈여겨 보기 시작했고, 자영업자 같은 분들이 소송을 걸면 법원은 항상 ‘소위’ 약자의 편에 섰다.

Image result for sherman act

예를 들어보자. 1966년 von’s grocery case. 60년에 지역 마트를 사서 캘리포니아에 진출한 회사가 반독점법에 걸린다. 합병 이후에도 그회사의 지역 시장 점유율은 7.5%에 불과함에도.

1967년 Utah pie case. 전국구 규모의 냉동 파이 회사가 싼 가격을 무기로 지역 파이 시장에 진출하려 했으나, 동네 파이 가게의 시장을 잠식한다는 이유로 반독점에 걸린다. 물론 소송건 파이가게가 지역독점을 하고 있고 이로 돈을 번다는 건 안 비밀.

판결문 링크
1966 US v. Von’s Grocery Co.
1967 Utah Pie v. Continental Baking Co.

상황이 이쯤 되자 사람들이 반독점 규제에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에 이르자 반독점의 기세는 누그러들었다. 그 기세가 완전히 꺽어진건 1978년 Robert Bork 판사에 의해서다. (참고로 Bork 판사는 DC circuit의 판사로 재직했고 레이건에 의해 대법원 판사 후보에 올랐으나 의회 인준에 실패했다.)

Image result for robert bork

Bork 판사는 지금까지도 반독점법 관련 고전으로 읽히는 Antitrust Paradox라는 책을 출판한다. 시카고 로스쿨 출신 Bork는 시카고의 밀턴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세운 독점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consumer welfare에 해가 되는가 아닌가였다.

그러니까 현대의 기준으로, 또는 Bork 판사의 기준으로, 브랜다이즈가 주장한 이야기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경제학을 모르는 사람이 할법한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들은 뉴 브랜다이즈 운동을 hipster economy 라며 무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 계속 논란이 되는 불평등의 문제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던 시장경제의 약속은 어디로 가고, 독점 (또는 monoposony) 는 왜 점점 심화되고 있고, 자영업/중소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M&A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실제적인 의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다.

참고로 이건 최근 벌어지고 현상이고 팩트이다. (해결책이나 분석은 자신이 밟고 있는 이념의 토대에 따라 상이할 수 있겠지만…) 관련해서 3년전에 자료를 정리한 적이 있는데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될 것 같다.

커져가는 반기업 정서, 그리고 독과점 이슈 (2016년 9월 29일자)

너무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는데 점심시간도 끝나가니 내 의견을 남기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이런 어려운 얘기에 내가 답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벌려놨으니 아직 정리가 안된 생각이라도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아서.

사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에 들어서 논란이 되는 반독점 규제 이슈는 애매하기 짝이 없고 답도 없다. Antitrust paradox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부분 소비자가 손해보았는가 물어본다면 대답이 어렵다.

소셜 미디어는 (광고를 제외하면) 소비자에게 공짜이기에 페북이 독점한다고 해서 광고가 귀찮은 이상의 어떤 경제적인 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소비자는 페북에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정보라는게 페북수준으로 데이타를 모으기 전까지는 돈되기 힘들고, 그렇게 신경쓰는 사람도 드물다.

비즈니스 모델만 거칠게 보자면 구글도 뭐 매한가지고. 애플/아마존이 독점한다고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야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준다면야 뭐…. (한가지 흥미로운 건 1990년대 독점 논쟁의 중심에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 완전히 이미지를 쇄신했고 심지어는 페이스북/아마존과 비교해 착한 기업 이미지까지 있다.)

결국 현대에서 문제가 되는 독점은 경제학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부의 집중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해 따라오는 권력의 집중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그 옛날 브랜다이즈는 독점의 문제를 민주주의의 문제로 보았었다. 생각해보면 권력을 분리한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미국적이다. 나는 미국 정치철학은 근본적으로 권력을 분리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가끔 실리콘밸리 쪽 분들을 만나면 드는 생각이 이분들은 혁신을 하다보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분들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존경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배배꼬인 생각이 든다.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고고한 자태가 어디까지 가능할까. 정치도 규제도 딴 세상 이야기이고 숭고한 혁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듯이 말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배배꼬인 관점이다. 나는 그분들의 열정과 선의를 믿는다. 그리고 그를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서 누리며 살고 있다. 당장 이 메모도 아이폰으로 페북에다 남기고 있는 걸. 그러나 사람과 선의를 믿는 것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제는 주체 못하고 커진 힘에 더이상 책임감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아닐까. 페이스북이 최근 곤혹을 겪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Image result for mark zucker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