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지 선정 2018 올해의 국가

해마다 크리스마스 즈음, 이코노미스트지는 올해의 국가를 선정한다. 선정기준은 원래부터 넘사벽 국가가 아니라 그해에 가장 드라마틱한 성과를 보인 나라이다.

관련 기사

The Economist’s country of the year 2018 (12월 18일자)

연말은 왠지 뭔가를 뽑아야 할 것 같은 때이고, 거기에 올해의 국가 뽑는 거 더하는게 어색할리가 있을까. 그치만 따져보면 올해의 국가를 뽑는 건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다. 국가라는게 한해 반짝 잘됐다고 계속 잘되는 것도 아니고, 한번 크게 삽질했다고 선진국이 갑자기 개도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는게 쉬운일도 아니고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데…

2017년 이코노미스트지는 올해의 국가로 프랑스를 선정했다. 작년 말엔 그만큼 마크롱의 개혁에 거는 기대가 컸었다. 그치만 노란 조끼 운동으로 올 겨울 기세가 완전 꺽인 프랑스(와 마크롱)를 보면, 역시 한두해 반짝 한 걸 가지고 나라를 평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가 실감하게 된다.

작년에 2위에 올랐던건 한국이었다. 작년 세계인의 눈에는 한국의 존재감이 끝장이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박근혜 탄핵, 이재용 수감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문대통령의 외교 점수도 높았는데, THAAD 로 인한 중국의 위협을 최소화하고 트럼프의 한미 FTA 취소 협상을 교묘하게 연기 시킨 것에 큰 점수를 부여했다.

혹시나 오해를 줄이고자 덧붙이자면, 나는 한국 정치를 잘 모르고, 문대통령을 지지도 비난도 안하는 편이다. 대통령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작다. (물론 트럼프는 미국 사는 내게 큰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삶의 기쁨과 고뇌를 한 인물에 투영해서 생각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어떤 인간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

그리고 외신이 한국을 보는 시각도 필요 이상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외부인의 시선이기에 신선하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여지를 던져 주지만, 결국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어쨌든…

작년에 이코노미스트지가 한국 말고 프랑스를 선정한 이유는 여전한 북한의 위협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작년만 해도 남북 관계는 몹시나 험악했다. 뉴스를 볼 때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나더라. 그러던게 신년사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무드가 조성 되었고, 올 상반기는 한국인들이 평화 euphoria를 경험했다. 만약 올해의 국가 선정이 연말이 아니고 여름이었다면, 한국이 선정되었으리라.

그럼 2018년 올해의 국가는 어딜까. (자조 유머의 달인) 영국 사람들 답게, 영국을 뽑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처럼 부유하고, 평화로우며, 안정된 나라도, 순간적인 감정으로 이뤄진, 대책없는 결정으로 나라가 일순간에 헌정 위기의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는 타산지석이 충분한 선정 사유가 된다는 것. ㅎㅎㅎ

영국을 제치고(?) 2018년 올해의 국가로 선정된 곳은 아르메니아다.

아르메니아. 부패가 만연한 가난한 나라에서 올해 무슨 일이 있었나. 독재자 세르지 사르키산이 사퇴를 했다. 사르키산은 2008년 부터 10년동안 대통령을 했다. 아르메니아 헌법상 삼선이 불가능했고, 사르키산은 내각제로 개헌을 하고 총리가 되는 편법을 쓴다. 눈가리고 아웅에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에 사르키산은 하야한다. 이후 선거에서 70%의 지지를 받은 야당 지도자가 총리를 이어받았다. 언론들은 이를 아르메니아 벨벳 혁명이라고 부른다.

물론, 아르메니아는 여전히 쉽지 않다. 열강에 둘러 쌓여 있는데,( 터키/러시아/범아랍권) 그나마 친러시아을 표방하며 생존을 모색하는 가난한 나라이다. 아제르바이젠과의 영토 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이코노미스트지가 아르메니아를 올해의 나라로 선정한 것은, 여러모로 열악한 상황임에도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게 이유이다.

아르메니아 인이여,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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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학살?

오늘 오전 법무부 차관 로젠스타인이 백악관으로 호출되었다. 그의 해임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닉슨의 탄핵절차는 닉슨이 법무부 장/차관을 해임하면서 시작되었다. 역사는 이를 토요일밤의 대학살이라고 한다. 파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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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업데이트: 사안이 사안인 만큼, 백악과 미팅은 목요일(9/27)로 연기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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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목요일에는 대법원 판사 지명자 카버나의 성추문을 폭로한 포드 교수의 청문회가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목요일은 팝콘을 두봉지는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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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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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한 예전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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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Rosenstein (1965- )

트럼프와 한미 FTA 비화

Just wow.

게리콘이 트럼프가 사인하기 직전에 책상에서 빼돌렸다는 한미FTA 폐기 공지 서한. 진본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슨 정치 드라마를 보는 기분. 음모론 식의 이야기나 가쉽은 보통 거르는 편인데, 점점 믿지 않기가 힘들어진다. 워터게이트를 터뜨렸던,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선구자 밥 우드워드의 신간에 포함된 내용이라고.

빼돌린 이야기 자체보다 황당했던건 이 편지가 없어졌다는 걸 ‘그분’이 눈치도 못 챘다는 것. 복잡한 미국 속내니 국제 정치 분석이니 하는게 참 허망하다.

매케인과 낭만보수

오늘자 뉴스는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이 1년이 조금 넘게 해오던 뇌종양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Sen. John McCain to discontinue medical treatment, family says (USA Today, 8월 24일자)

한때 대통령 후보까지 올랐었다. 생의 마지막에서는 그는 트럼프와 여러 이슈에서 삐걱였다. 기억나는 건, 오마마케어 폐지에 극적인 반대표를 던지던 순간. 나토에 대한 적극 지지. 트럼프 정부의 친러시아 분위기에 강한 우려 표명. 같은 모습이다.

지난주에 뉴요커지는 이미 매케인에 대한 짧은 논평을 하면서 부고아닌 부고를 올렸다. 뉴요커는 그를 두고서 end of romantic conservatism 이라고 평했다. 2018년 지금 시점 미국 공화당에서 그의 노선은 좀 올드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다.

John McCain and the End of Romantic Conservatism (8월 18일자 뉴요커)

스러지는 한 노인을 보면서 왠지 애잔하다. 그의 정치적 노선에 동의해서도 아니고, 옛날이 좋았다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내가 그만큼 물렁한 사람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고, 아니면 늙어감/사라짐이 좀더 공감되는 벌써 그런 연배가 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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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케인 (1936 – )

트럼프는 특검 로버트 멀러를 해고할 수 있을까?

오늘 포스팅이 많았지만, 일도 손에 안잡히고, 시사적인 이슈는 타이밍을 놓치면 포스팅하기 머시기 해지는 지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한번 정리해본다. 나는 정치도 미국 법도 잘 모르지만, 그냥 궁금해서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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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배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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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FBI 국장 코미, 법무부 차관 Rod Rosenstein에 대해 포스팅 한 일이 있다. 물론 트럼프 러시아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하는 사람은 특검 로버트 멀러이지만 멀러를 고용한 법무부 차관 로젠스타인 역시 중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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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포스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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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뉴욕 FBI 요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집과 사무실을 급습했다. 대통령의 변호사 사무실을 급습한건 보통 일이 아닌지라. 당연히 뉴욕 판사의 수색영장 발부가 있었고, (중요한 물증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 그리고 법무부 차관 로젠스타인의 최종 승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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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사실은 나도 포스팅하려고 생각했는데, 이페이지 쥔장님께 선수를 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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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쪽은 난리가 났다. 트럼프는 당장 변호인과 의뢰인의 비밀 보장 권리를 침해한다고 트윗을 날렸다. (모두 대문자로 써서 말이다.) 그리고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가 멀러 특검을 해고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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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진짜로 트럼프는 멀러를 해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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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부터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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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법 article 2 section 2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중간에 삽입구를 처내고 읽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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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shall have power to make treaties and he shall nominate and shall appoint ambassadors, other public ministers and consuls, judges of the Supreme Court and other officers of the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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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애매하게도 (원래 미국 헌법이 좀 애매한게 많다.) 해임 권한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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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해임권한에 대해 해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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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한 첫번째 판례는 Meyers v. U.S.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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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당시 오레곤주 우체국장 Meyers를 해임한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Meyers는 원래 나쁜놈 이었다고. 어쨌든 관련해서 연방 대법원은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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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natural, therefore, for those who framed our Constitution to regard the words ‘executive power’ as including the power to remove executive offic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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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판례는 1935년 Humphrey’s Executor v. U.S. ca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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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통령이던 F. D. 루즈벨트는 FTC(통상위원회) 멤버였던 험프리를 (뉴딜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해임한다. 그런데 이 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다른 판결을 내린다. 대법원이 말하기로는 공직자들은 quasi-legislative officer와 quasi-judicial officer가 있는데, quasi-legislative officer는 대통령 마음대로 짜를 수 있지만, quasi-judicial officer는 단순히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짜를 수 없다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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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이해하기론, 대법원 판결은 FTC 위원은 다소 독립성/정치 중립성이 보장되는 자리임을 확인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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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어쨌든 우리의 관심인 특검 멀러 케이스로 돌아가보자. 그래서 트럼프는 멀러를 짜를 수 있을까?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법무부쪽 사람들에게는 FTC 의원과 달리 대통령이 해임할 권리가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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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짜르는 게 안되더라도 (멀러를 고용한건 법무부 차관 로젠스타인이다.) 로젠스타인에게 짜르라고 명령할 수 있고, 로젠스타인이 거부하면 로젠스타인을 짜르고 후임자에게 멀러를 짜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법무부 장관 제프 세션스에게 명령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맘만 먹는다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리고 닉슨 때 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이부분은 뒤에서 다시 이야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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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Nixon (1913-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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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특검을 해임하는게 적법한가는 문제가 안될지라도 그 배경에 불법적인 사실을 감추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그게 소위 말하는 obstruction of justice사법방해이다. 사실 Obstruction of Justice는 좀 특이한 죄이다. 그자체가 범죄라기 보다는 범죄에 대한 판결을 방해하는 범죄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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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생각해볼 일은 현직 대통령을 고발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문제이다. 대통령을 민사소송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면책 특권도 같이 찾아봤는데 이건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한번 다룰까 싶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 워낙 많은데 그때마다 민사소송에 시달리면 나라가 마비될 것이다. 논리적으로 수긍이 가능 이야기. 그런데 면책 특권이 형법에도 적용되느냐. 그건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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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 만한 정치 스캔들이 워터게이트이다. 워터게이트 때 대통령을 기소하는 데에까지 갔더라면 그때 대통령 면책 특권 논쟁에 결론을 맺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후임자 포드는 닉슨의 범죄행위를 (재판이 시작도 안했는데!) pardon사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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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워터게이트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하자면, 닉슨도 당시 특검 아치볼드 콕스를 짜르고 싶어했다. 그래서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에게 특검을 짜르라고 했으나, 그는 거부한다. 결국 닉슨은 리처드슨을 짜르고, 차관에게 명령한다. 차관이 거부하자 닉슨이 차관마져 짜른다. 결국 법무부 서열 3위가 특검을 해임하는데, 이를 Saturday Night Massacre라고 한다. 그 결과는 알다시피 닉슨 탄핵이었고, 닉슨은 탄핵되기 전에 자진 사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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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bald Cox (191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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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ot Richardson (19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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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든 이들이 멀러를 해임하는 건 (헌법적인 권한과 별개로) 정치적 자살행위하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트황상께서 이에 동의하는지 잘 모르겠다. 워낙 평생을 법정 파이터로 살아온 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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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요즘 미국 정치가 워낙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좋은 일인건지, 이래저래 미국 헌법부터 정치까지 배우는 기회가 되긴 한다.

보호무역과 미국

작년에는 경제 관련 포스팅이 꽤 많았는데, 올해는 그닥. 요즘에는 경제학 개론 과정에서 배우는 이야기 조차 아무도 믿지 않는게 현실이기도 하고… (차라리 약이나 팔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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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참 올렸던 포스팅 중에서 무역 관련 포스팅만 정리해서 링크를 걸어둔다. 지난달 세탁기 관세가 있었고 (중국은 솔라패널) 요즘은 철강/알류미늄 관세를 논의하고 있다. 이 포스트들은 워낙 여러차례 울궈먹은 사골이긴 한데, 무역 이야기는 당시보다 지금이 더 시의적절한 듯 해서 한번더 울궈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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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트 링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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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께서 맨큐 교수의 투정(?)을 올려주셨는데,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인 미국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할 지 모르겠다. 외교 쪽에서 벌어지는 황당스런 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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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님 포스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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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큐 교수의 투정 기사 원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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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 첫해는 스캔들로 정신 없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실제로 한일이라고는 법인세 대폭 인하 밖에 없었다. 올해는 트럼프 정부가 이런 저런 일들을 벌이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보호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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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he Economist, KAL’s cartoon, 2017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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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땅, 예루살렘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다는 발표를 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에 지금까지는 누구도 이를 실행에 옮긴 적이 없다. AIPAC의 영향력 때문에 부시도 공약으로만 이야기 했을 뿐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제는 이 이슈가 예전보다 국제정치에서 덜 민감한 사안이라는 뜻이거나, 트럼프가 워낙 파격적이라는 의미이겠지…)

예루살렘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이 모두 신성한 땅으로 여기는 곳이다. 유대교는 성전이 있었던 곳이기에, 기독교는 이에 더해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기에, 이슬람은 모하메드가 하늘로 승천한 곳이기에 그러하다. 현대에 와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크게보자면 이스라엘-중동, 더크게는 기독교-이슬람)의 중심이 되었다.

2년전에 구약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의미를 되새긴 적이 있다. 생각이 나서 공유한다. 구약은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이 같이 경전으로 인정하는 책이기에 두 종교에 모두 동일한 의미가 있다.

혹시나 모를 오해를 막고자 덧붙이자면, 예전 포스트가 이스라엘이나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혀 정치적인 입장없이 성경을 그자체로 독해했던 내용을 옮긴 포스트이다.

몇천년전 이야기를 현대의 문맥에 맞추어 재해석하는 일은 각자가 딛고서있는 믿음과 지적인 풍토, 정치적인 신념에 따라 다를 것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예전 포스트
시편 121편: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2015년 11월 12일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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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예루살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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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와 Anti-반세계화

페북에서 작년 오늘 포스트로 페루 APEC 정상회담과 TPP의 우울한 앞날을 예감했던 기록이 떴다. 역시나 예상대로 몇달뒤 트럼프가 취임 하자마자 한 첫번째 일이 TPP 철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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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며칠전 (11월 11일) APEC 정상회담 중에 TPP 참가국이 미국 없는 TPP를 진행하기를 결의했다. 이름하여 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he T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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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없는 TPP가 앙꼬없는 찐빵이긴 하다. 올해 다낭 APEC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America First 연설에 답변하는 정치적 제스처라고 읽히는 모양이다. 그래도 각국 GDP의 1~2%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니 (아래 도표) 밑지는 장사는 아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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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치적으로는 보호무역이 대세임에도 사실 무역자체는 활황이다. 올해 WTO가 전망한 merchandise trade (상품 무역) 증가분은 3.6%인데 이는 전세계 GDP 증가를 상회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 지역 무역은 올해 상당히 좋다. 아래 그래프는 몇일전 발표된 싱가포르 무역 수치. 확실히 2016년 들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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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조업 임금 상승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인기와 평가는 순전히 운에 달린게 아닐까. 특히나 경제분야는 더욱.

현대에 와서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나라의 정책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건 아니다. 보통 취임 첫 몇달은 각료들 인사와 업무 파악에 정신이 없다. 그러니까 당선 1년 만에 대통령이 바꿔서 경제가 확 살았다고 주장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그 어느때보다 서로 연동 되어있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이를 테면 임기 초반에 IMF가 왔다던가, 금융위기가 왔다던가. 이런 때는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중요하겠지.

어쨌든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트럼프 대통령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경제가 풀리기 시작하더니 여러 지표들이 매우 긍정적이다.

이번주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미국 경제에 보이는 긍정적인 신호들을 주요 기사로 실었다. 블루칼러 직종의 임금이 꽤 올랐다고 한다. 특히 지난 분기 상승은 고무적인데, 대략 (annualized) 4%가 상승 했다.

관련기사
Cheer for the blues – Blue-collar wages are surging. Can it last? (the Economist, 11월 14일자)

오바마 말기에도 경제 지표는 나쁘지 않았는데, 그래도 임금의 상승 정체는 문제로 자주 지적되었다. 2009년 금융 위기 때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임금은 8.7% 상승하였지만 물가는 9.5% 상승 했다. 바꿔 말하면, 금융위기 이후에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임금정체로 중산층의 불만은 커졌었고, 전문가들은 이를 트럼프 당선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작년에도 실업율은 낮았다. 그게 지속 되면서 올해는 서서히 임금상승까지 오는 모양이다. 그것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세상에나 블루칼러가 바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아니던가!)

작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의 8년 임기를 돌아보며 이코노미스트 지에 기고문을 실은 적이 있다. 오바마는 기고문에서 후임자에게 경제 숙제로 4가지를 남겼다. 생산성 증가율 감소, 불평등 심화, 노동 참여율 감소, 미래를 위한 경제 기반 만들기. (참고로 예전에 페북에서 김선함씨가 이 기고문을 번역해서 올린 적이 있다. 링크 그리고 나도 짧게 감상을 포스팅을 했었다. 링크)

경제 숙제 중에서 노동 참여율 감소 부분만 보면 오바마 때까지 꾸준히 떨어지기만 하던 노동참여율이 올해들어 주춤하다. 여성 노동 참여율은 증가세까지 보인다. 작년 오바마 기고문에 실린 차트와 (아래 차트1) 올해 차트를 비교해보면 (아래 차트2)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차트1. 2016년까지 노동 참여율


차트2. 2017년 포함 노동 참여율

이코노미스트지는 임금 상승의 주원인을 수요 쪽에서 찾는다. 생산성 쪽은 사실 별 변화가 없기도 하고.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 수요 증가를 가져 온 것은 약달러와 유가의 상승이다. 약달러 때문에 미국은 올해 수출이 상당히 좋다.

유가 상승 역시 미국 제조업 일자리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올해 제조업 일자리의 대부분은 오클라호마나 텍사스 같은 동네의 석유 산업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울한 러스트 벨트 경제에는 여전히 별 도움은 안되었다는 이야기도 되고.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 보면 임금상승이 불평등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보면야 세계화/자동화로 인간의 입지가 위험하다지만, 2~3년만 두고 보자면 이런 분위기가 계속 될 때 최소 지금 백악관에 계신 양반에게는 큰 도움이 될 모양이다. 나야 그 양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만 뭐가 됐든 경제가 좋다는 데 불평할 것까지야.

공장이 문을 닫을 때, 일어나는 일

꽤나 마음을 움직였던 뉴욕타임즈 기사를 하나 공유한다.

기사 이야기 전에 내 경험부터. 한국에서 공장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신규사업을 추진하는 연구소에 배치되었다. 회사는 기존 사업을 정리 중이었다. 정리 대상으로 선정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부산에 있었다. 부산공장을 정리하면서 몇몇 직반장들과 엔지니어들이 천안과 기흥으로 전환배치 되었다. 부산 공장의 직원 일부는 정리해고 되고, 일부는 퇴직금으로 식당을 차렸고, 일부는 시위를 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이 시급을 받는 여공들은 그냥 공장을 그만 두지 않았을까 싶다.

공장을 정리했던 구체적인 과정은 잘 모른다. 공장 정리의 처음과 끝을 담당했던 인사/경리 담당자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디테일이 포함된 이야기는 없었다. 사람이 할일이 못된다고 했던 건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 몇달 후에 부산 공장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덩그러니 빈 건물 바닥에는 노랗게 금그어둔 설비의 표식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공장 정문에는 피켓을 든 일인 시위자가 서 있었다.

뉴욕타임즈 기사는 베어링 공장의 40대 steelworker 쉐넌 Shannon의 이야기이다. 한국으로 치면 열처리 공정 반장 정도 되는 사람이다.

2016년 10월 쉐넌은 공장이 문을 닫고 멕시코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25살이 되던 해에 쉐넌은 베어링 공장에 청소부로 취직을 했다. 쉐넌이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동거중인 남자친구의 폭력에서 도망쳐서 자립하기 위해서였다. 마흔 셋이된 지금은 열처리 공정의 베테랑이고 30키로가 넘는 철근을 맨손으로 옮기는 furnace 전문가이다. 그 동안 공장은 주인이 몇번 바뀌었고, 그녀는 몇몇 남자들과 사귀고 결혼/이혼을 했고, 또 집을 사기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 17년 동안 쉐넌과 항상 같이 있었던 것은 공장일이었다.

“사업상의 결정입니다.”

상사가 쉐넌에게 한 말이다. 쉐넌과 함께 300명의 직원이 작년 이맘쯤 소식을 들었다.

쉐넌은 화가났다. 바로 공장을 뛰쳐 나갔고, 멕시코 공장이 불에 타버리라고 저주를 했다. 그리고 밤새 울었다. 그렇게 세 밤을 울고서 월요일날 다시 출근을 한다. 사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 있던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40대 중년 여자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이 있을까.

몇달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트위터로 쉐넌의 공장을 직접 언급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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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노동자들은 몇 마일 옆에 이뤄진 캐리어의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캐리어의 기적: 트럼프 취임 직후 에어컨 회사 캐리어가 멕시코 공장 이전을 취소한 일.) 쉐넌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 그녀에게 정치인이란 표를 얻기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투표를 잘 하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민주당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을 말하는 것은 좀더 먼 이야기 였고, 일자리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트럼프의 트윗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Go President Trump!!”

시급 7 달러가 23달러가 되기 까지 17년의 시간이 걸렸다. 쉐넌은 자신의 공장이 만드는 고품질 베어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쉐넌은 자신이 담당하는 기계를 ‘타코’라는 애칭을 붙여 사람처럼 부른다. 쉐넌의 어머니는 정부보조로 식량을 타먹었지만 쉐넌은 자신이 일해서 번돈으로 두 자식들을 키웠다. 싱글맘인 자신을 지금에 이르르게 한 것은 일자리였다.

2005년 처음 열처리 공정에 배치되었을 때, 사수들은 쉐넌을 좋아하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열처리는 남자의 일이었다. 쉐넌이 처음 가스 밸브를 열었을 때, 사수는 천천히 열어야 한다는 주의를 주지 않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만 했다. 작은 폭발이 있었다. 쉐넌은 그날 공장을 때려칠 생각을 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쉐넌은 furnace에서 나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챌 수 있다. 쉐넌에게 ‘타코’는 꾸준히 들여봐야하는 투정많은 남자친구 같은 존재이다.

조금 딴 이야기지만, 마침 오늘 에이미 탄의 인터뷰를 들었다. ‘조이럭 클럽’의 작가 에이미 탄은 인터뷰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이야기 했다. 강인한 여자였던 탄의 어머니는 탄에게 항상 말했다고 한다. ‘절대 남자를 믿지 말고, 외모를 믿지 말라.’ ‘외모는 서른이 넘으면 의미가 없고, 남자에 의존하면 너의 삶은 망가진다.’ ‘여자가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 가려면 직업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쉐넌의 이야기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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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왔다. 공장 곳곳에는 낙서가 들어찼다. “Build a Wall!’ ‘Go to Mexico!”

그리고 멕시코 공장의 견습생들이 출장을 왔다. 공장 사람들은 둘로 나뉜다. 노조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기술 이전을 거부했다. 고작 시간당 4불의 야근 수당에 영혼을 팔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조용히 기술을 전수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 갈린 사람들의 인종이다. Rexnord 공장은 인종의 장벽이 거의 없는 곳이다. 흑백의 비율이 반반이고 타인종간의 교제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기술 이전에 거부하는 이들은 대다수 백인이고 흑인들은 묵묵히 회사의 방침을 따른다.

저소득 백인 남자들에게 미국은 우울한 곳이다. 20세기에 steelwork는 오로지 백인 남성들의 것이었다. 그러다가 일자리가 흑인에게도 허용되고, 그다음에는 여성에게 허용되었다. 21세기가 오자 이제 그들의 자리는 없어지고 공장은 멕시코로 이전하게 되었다.

흑인은 좀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본다. Brookings의 설문 조사를 보면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관련 자료 링크

UNEQUAL HOPES AND LIVES IN THE U.S. OPTIMISM (OR LACK THEREOF), RACE, AND
PREMATURE MORTALITY

내가 생각하기로 이는 실제적으로 흑인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예전에 포스팅 한 적이 있는데, 미국 저소득자를 기준으로 흑인들의 평균 수명은 증가하고 있고 백인들의 평균 수명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이전 포스트 링크: Black Americans See Gains in Life Expectancy (NYT) 2016년 5월 9일자 포스트

백인 여자 쉐넌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에 섰다. 예전에 남자들에게 텃세를 받아본 경험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에 따르면 실질적인 돈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이들은 아직 그녀의 수입에 의존한다. 딸은 퍼듀 대학 간호학과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모자라다. 그녀의 손녀는 희귀병을 앓고 있고 계속해서 수술비가 필요하다.

쉐넌은 멕시코에서 온 견습생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핏덩이 같은 멕시코 견습생들은 쉐넌을 종종거리며 따라다닌다. 흡연시간에도 쉐넌은 견습생들을 데리고 다닌다. 쉐넌은 견습생들이 자기와 같이 있지 않으면 헤꼬지를 당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듬해 봄. 쉐넌의 딸 니콜은 퍼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모자란 등록금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되었다. 니콜은 쉐넌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이다.

휴식시간. 견습생 중 하나가 쉐넌에게 이야기를 한다. “My friend tells me that the reason a lot of people don’t like us is because we’re taking their jobs. 친구가 그러던데 여기사람들이 우리를 싫어하는게 우리가 당신들 일자리를 뺐어가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쉐넌은 답했다. “I’m not mad at you. I’m happy that you get the opportunity to make some money. I was blessed for a while. I hate to see it go. Now it’s your turn to be blessed. 내가 너한테 화난 건 아냐. 나는 네가 돈을 벌 기회가 생겨서 기뻐. 그동안 나는 운이 좋았지. 상황이 돌아가는 꼴이 짜증나. 그래도 이번에는 네가 그 운을 잡을 차례야.”

Rexnord 베어링 공장은 2주전, 그러니까 2017년 9월에 문을 닫았다. 쉐넌은 트럼프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른 중요한 이슈들에 Rexnord 공장이 묻혔을 뿐이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다른 정책인 오바마케어 철폐는 희귀병을 앓는 쉐넌의 손녀에게 (안좋은 쪽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쉐넌이 보기에 트럼프 역시 이전의 다른 정치인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을 뿐이다. 17년 동안 베어링 공장 주인이 몇번 바뀌었던 것 처럼.

+ 덧: 이 포스팅은 내 생각과 기사 요약이 조잡하게 섟여 있으므로 영어가 되시면 원문을 직접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기자가 글을 잘 쓰길래 찾아보니 보스턴 글러브에서 퓰리쳐상을 받고 뉴욕타임즈로 스카웃 된 친구더군요. 좀 길긴 하지만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 덧2: 관련해서 podcast 링크(30분 분량) 도 남깁니다. 기사에 다뤄지지 않은 뒷얘기 그리고 쉐넌과 기자의 육성도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