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정신이란?: 딸깍발이와 ‘잘살아보세’ 정신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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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의 수필중에 ‘딸깍발이’라는 게 있다. ‘딸깍발이’는 1956년 발표된 ‘벙어리 냉가슴’이라는 수필집에 포함되어 있는데, 교과서에 실려있기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있다. ‘딸깍발이’에서 이희승 선생은 해학적인 한문체를 사용하여 선비정신을 묘사하고 있다. 생각보다 길지 않으니 그가 말한 선비정신이 무엇인지 궁굼하면, 고등학교 국어시간의 추억을 되살릴 겸, 한번 읽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원문: 딸깍발이)

선비정신은 해방이전 까지 우리 민족의 중심이 되는 사상이었다. 우리 민족은 성리학에 바탕하여 고상한 세계 즉 이상향을 추구하였고 양반들은 매일 경서를 읽고 붓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서로 보여주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성리학은 본래 중국에서 시작한 학문이지만 실제로 그 정신에 입각해서 나라를 세운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 불교 정신으로 대표되는 고려가 망하고 당시 지식인이었던 신진 사대부 계층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다. 성리학과 선비정신은 우리 민족이 500년간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었다.

선비정신이 도전을 받게 된 것은 구한말이다. 이때 우리에게 당면한 시대 과제는 외세에 의한 개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였다. 선비 정신을 바탕으로 점잖게 공자와 주자, 그리고 이상향을 논했던 우리 민족은 물질문명으로 밀어닥친 세상 앞에 무방비 상태였다. 19세기와 20세기 초는 전세계 적으로도 사상의 혼란이 가득했던 시기 였다. 누군가는 선비정신을, 누군가는 동학을, 누군가는 일본을, 누군가는 자본주의를, 또 누군가는 공산주의를 따르자고 말했고 우리는 혼란에 빠져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일제 통치와 6.25로 대표되는 우리의 근현대사는 한민족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기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던 것은 ‘잘살아보세’ 정신이었다. (주: 새마을정신은 오염된 말이기에 ‘잘살아보세’ 정신이라는 말을 내가 만들어봤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정부의 선전구호로서의 ‘새마을 운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잘살아보세’ 정신은 군사정권 이전부터 국민 모두가 열망하는 하나의 가치였다. 70/80년대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이밥에 고기국 한번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했고, 소를 팔아서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우수한 노동력이 배출되었고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탄생한다. 우리 부모세대에게 그 흥분은 아직 가시지 않은 젊은 시절의 체험이다.

모든 큰 성공이 그러하듯이 ‘잘살아보세’ 정신의 성공에도 그늘이 있었다. 그 비극의 시작은 새마을 운동이 기존의 우리것에 대한 부정인 데에 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던 우리는 옛것을 고리타분하고 냄새나는 노인네 취급했다. 먹고사는데 도움이 된다면 한옥이던, 문화재던, 자연이건 일단 부수고 스레트 지붕으로 덮어버렸다. 청계천과 중랑변의 판자집들은 모두 부숴버리고 빈민들은 용산으로 신림동으로 성남으로 쫓겨 갔다.

한국교회가 세를 얻었던 것은 이쯤이 아닌가 한다. 성장의 고통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던 것은 교회의 목사님들이었다. 교회에서 주일날 위로를 얻은 기독교인들은 힘을 얻어서 다시 산업의 역군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회/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잘살아보세’ 정신이 있다.

몇달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윤치호 언급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윤치호는 YMCA를 이끌며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계몽운동을 펼친 인물이였다. 그의 사상은 한국인은 무지하기 때문에 기독교 정신으로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년에 이르러 그의 지향점은 이토 히로부미의 대동아 공영론에 대한 지적인 동의로 향한다. 온누리 교회에서의 문창극의 강의는 이 윤치호의 사상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의 강의에서 발견하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부정과 친일의 기운은 윤치호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세상은 바뀌었고 우리도 변했다. 이제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살아보세’ 정신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매년 10% 이상 성장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 같다. 우리는 97년 IMF로 이름지어진 외환파동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도 높은 경제 개혁으로 위기를 넘길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고달퍼 졌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말이다. 이 말은 너무 오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짧게 설명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닥친 시대적 과제 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 밝혀야 겠다. 정치나 근현대사는 워낙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고, 내 생각이 다른 사람과 다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지나서 답답하게 만들고 불쾌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지난번에 간디 관련 포스팅을 하고서 (관련글: 단식의 의미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 민감한 주제를 별 설명도 없이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설명을 해야하겠는데 짧게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글마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내가 던진 질문에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잘살아보세’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 새로운 가치가 말하는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현 정권의 대통령은 ‘잘살아보세’ 정신의 상징이다. 젊은 세대는 왜 이분이 대통령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6.25를 겪지 않았고 잘살기 위해서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해야 했던 우리 부모의 가난을 알지 못한다. 전쟁과 가난의 상처는 논리적인 설득으로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부모님들의 선택은 ‘잘살아보세’ 정신으로 돌아가자 였고 젊은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못하고 세대 갈등의 길을 선택했다.

간디를 언급한 이전 글에서 진보세력이 ‘정권심판의 메세지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런 맥락이었다. 배웠다는 분들은 하나 같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있지만 아직도 그 대답이 그렇게 속시원하지 않다. 미국을 따르는 것을 대안으로 할 수도 있고 독일이나 북유럽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대답이 아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답변이 선비정신이었고 우리 부모세대의 답변이 ‘잘살아보세’ 정신이었듯이 우리는 우리의 답변이 필요하다. 진보가 우리에게 제시해야 할 것은 시대정신(時代精神, 독일어: zeitgeist)이다. 나는 그러한 의미에서 아직 진보라고 이름지워진 사람들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면 진보라는 말자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진보(progress)라는 것은 어떠한 지향점이 있고 그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어 간다는 것인데 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글을 마치기 전에 기독교인인 나의 생각을 하나만 덧붙이려고 한다. ‘잘살아보세’ 정신을 완전히 부정한다면 이것은 선비정신을 부정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교회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마찮가지이다. 한국교회의 신학은 고단했던 우리의 삶에 위안을 주었고 그것은 그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다만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아는 한가지 모습으로 제한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존재이다. 한국교회가 알고 있는 신학에 그 모습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교회에 새로운 신학과 사상이 필요한 이유이다.

미국사람들에게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To have a second language is to have a second soul.” – Charlemagne

언어가 단순히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일까? 아니면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까?

스탠포드 대학의 Caitlin Fausey의 실험에 따르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다른사람을 비난하는 경향이 커진다고 한다. (출처: Lost in Translation, WSJ) 이는 영어가 수동태보다 능동태를 좋아해서 그렇다. 예를 들어 꽃병이 깨진 사건을 표현할 때, 영어로는 “John broke the vase.”라고 말하고 스페인/일본어로는 “The vase was broken.”라고 말한다. 다른 예로 같은 내용의 비디오를 보여주고 각기 다른 언어 사용자에게 그 사건을 묘사하라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때 영어권 사람들은 ‘누가’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위주로 묘사했다고 한다. 반면에 비영어권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가 더욱 중요했다고 한다.

한국어의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는 존댓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람이 나보다 손위 사람이냐 손아래 사람이냐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 차이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만나면 민증부터 깐다. 잠시 호구조사가 끝나면 (어느 지역출신이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 등등..) 바로 말을 놓거나 아니면 두번째 만날 즈음에는 슬쩍 말을 놔야겠다는 판단을 한다.

한국사람들끼리는 나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손위사람하고 영어로 대화를 하면 종종 어색해진다. 분명히 형이거나 누나인데 ‘You’라고 해야하고, 존칭인 ‘sir’ 같은 말은 왠지 사이가 먼사람 같이 느껴진다. 말끝마다 ‘please’를 붙일 수도 있지만 ‘please’는 존댓말이라기 보다는 공손한 말의 느낌이다.

이러한 어색함은 한국사람끼리 대화하다가 미국사람이 대화에 끼면 두배가 된다. 미국사람들한테는 손위사람에게도 친해지면 격식없이 casual English를 사용하는데 미국 할아버지에게 격식없이 영어를 하다가 옆에 있는 1살 위의 형에게 격식없이 영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어색하다. 설명하기 애매한 시츄에이션인데, 아마 겪어본 사람은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에게 나이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직장 상사가 나보다 젊은 사람일 경우도 있고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이 아래사람이 되기도 한다. 지금 회사에서 전의 보스는 50대 중반 백인 아저씨였는데 그의 보스는 30대 중반인 한국계 미국인이다. 처음에 나는 이런 상황이 좀 어색했다. 근데 둘의 관계는 직장 서열로 규정되기 때문에 나이가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 제일 적응이 안된건, 나이어린 보스가 스무살 정도 위의 부하직원의 어깨를 툭치면서 ‘Hey, man! What’s up?’ 하면서 썰렁한 농담을 주고 받는 거였다. 근데 내보스는 ‘어린 녀석이…’ 라고 불끈하는 게 아니라 격없이 대한다고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더라.

미국에서 오래 지낸 교포 어르신들과 대할 때도 이런 부분은 참 애매하다. 중요한건 이사람이 한국 스타일에 가까운가 아니면 미국 스타일에 가까운가를 먼저 파악하는 건데, 미국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손으로 악수를 하는게 좋고 한국사람에 가깝다고 판단되면 허리를 약간 숙이고 두손으로 공손하게 악수를 해야 한다.

존댓말과 어른 공경의 태도가 우리나라를 우리나라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조금은 경직된 조직 문화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문화적인 부분데서 오지 않았나 싶다.

샤를마뉴(카를루스 대제)의 말을 인용해서 거창하게 글을 시작했는데, 잡설만 길어졌다. 외국에 살다보면 처음에는 한국과 비교해서 외국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 싫어지기도 하고, 다른점이 좋아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몇년후 나조차도 그러한 외국 문화에 적응되어 변해버린다. 반대로 한국을 보면서 좋은게 생기고 싫은게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한국어권 밖에서 살면서 하나 좋은 점은 우리나라 사회와 문화를 보는 다른 시각이 생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