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불붙은 헬스케어 논쟁

미국에는 헬스케어 논쟁이 다시금 불붙었다. 오바마케어 폐지가 실질적으로 무산이 된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 다른 대안을 상정하면서 맞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샌더스가 다시 단일의료 보험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민주당 상원의원의 반정도가 동의를 했다. (지지를 표한 의원들은 대부분 민주당 내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의원들이다.) 물론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도 않은 현 국회에서 샌더스 안이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화당 쪽에서는 좀더 원론적으로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 안 또한 통과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미국의 헬스케어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섟여있다. 단순히 민간 의료보험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완전히 자유시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료시장이 정부의 통제에 있지도 않다.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복지형태로 제공하는 민간보험이 있고 (민간 의료보험),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어지는 메디케어가 있으며 (단일의료보험), 주에서 관리하는 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가 있고 (주정부 관리), 소위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민간보험이 개인을 대상으로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오바마 케어). 그리고 2천8백만 정도 무보험자가 있다. 또 병원은 Veteran Health Administration (한국으로 치면 보훈병원)을 제외하고는 민간이 운영한다.

내 의견을 밝힌다. 나는 약간 심드렁하다. 의료보험이 누구에 의해 운영되는가가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큰틀의 결정도 중요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하부의 세세한 운영과 촘촘한 의료망이 관건이 아닐까 한다. 정말 크게 보자면, 의료보험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의 복지가 어떻게 설계되어있는 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사실 복지의 문제로 들어가면 다양한 가치가 서로 부딪치게 된다. 의료분야를 예를 들자면, 1) 생명에의 가치, 2) 의료 접근성으로 대표되는 평등의 가치, 3) 선택의 자유 라는 다양한 가치관이 서로 상충하여 존재한다. 대부분의 정책입안, 집행자들이야 긍정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겠지만 세가지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미국의 의료비가 비싼 것은 의료보험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미국의 의료비가 비싸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를 테면 환자당 의료진 수나 의료업계 종사자들의 급여수준) 나는 이쪽이 좀더 타당하다고 보는 편이다.

굳이 미국식 의료에서 장점을 찾자면 미국이 의료 기술의 발전을 선도한다는 점. (워낙 돈이 많이 굴러 다니는 산업이다보니…)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자료를 공유한다. 2008년 자료니까 좀 지난 자료이긴 하지만 여전히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다. 121페이지에 이르는 매킨지 보고서에 미국 의료 비용 분석이 빼곡히 들어있다. 영어가 부담스럽더라도 차트가 많기 때문에 해당문제에 관심이 있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자료. 주요 차트는 아래에 첨부 했으니 참조. (뭐 적어도 차트 성애자인 나에게는 재미있었다는 이야기.)

Accounting for the cost of US health care: A new look at why Americans spend more (McKinsey Global Institute)

작년에 나도 비슷한 내용의 포스팅을 한적이 있다. 당시 포스트는 아래 링크를 참조.

Healthcare, Again (2016년 5월 17일자)

그런데 왜 지금와서 다시금 의료보험이 이야기 되는 것일까? 지겹지도 안나.

개인적으로는 최근 미묘한 워싱턴 분위기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배넌의 퇴장이나 그리고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 사이의 잡음이다. 여기서 공화당 지도부라고 함은 오바마케어 폐지에 실패한 폴 라이언과 미치 맥코넬이다. 지난 주에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민주당 인사들과 만남을 가졌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멕시코 장벽 건설을 늦추는 대신에 다른 분야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분석을 한다.

For Conservatives, Trump’s Deal With Democrats Is Nightmare Come True (9월 6일자 NYT)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시 되돌려서 생각해보면, 트럼프는 (기존의 좌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뚜렷한 정치 노선이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기성정치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점에서 샌더스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의 초창기 선거유세를 들어보면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망가진 주요 원인을 제약회사의 탐욕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샌더스의 문제의식과 유사하다.

관련한 예전 포스트: 미국의 정체성과 도널드 트럼프 (2016년 3월 16일)
물론 트럼프는 당시 대안으로 단일 의료보험을 제안한 적이 없다. 정확히는 대안 자체가 없었다.

덧: 언급한 자료 중에 주요 차트를 같이 올린다.

국가별 PPP(구매력) 대비 의료비 지출

미국과 주요 EU 국의 약값 차이

OECD 국가별 기대 수명

선진국 국가별 의사 급여수준 비교

OECD 국가 CT/MRI capacity

인당 의료 진단 건수

국가별 입원일수 및 일당 입원비 비교

국가별 간호사 임금비교

국가별 bed occupancy rate 비교 (고정비 지출)

미국 병원 원가/이익 구조

제약회사 이윤율

연도별 신약 출시 수

전문의를 만나거나 수술 날자를 잡는데 걸리는 시간 국가별 비교

 

 

 

Healthcare, again

Disclaimer: 저는 의료계에 별 연관이 없는 일반인이고, 이번 포스트도 그저 기사 소개하고 옮기는 수준의 썰이니, 참고만 하시고 자세한 내용은 링크의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지적도 환영합니다. 다만, 인신공격은 바로 차단할 생각입니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헬스케어 시스템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헬스케어 이슈에 불을 붙인 장본인은 다름아닌 샌더스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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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는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의 후보로 낙점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지지자들은 그대로이고 열기도 여전하기 때문에 그의 정책들은 힐러리 캠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주 힐러리 캠프에서도 좀더 진보적인 헬스케어 공약을 내어 놓았다. 공약의 골자는 현재 65세 이상 혜택을 받는 메디케어 프로그램 (노인 무상 의료 복지 프로그램)의 가입연령을 50대로 낮추겠다는 것. 세부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론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50대가 무료로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고 보험료를 지불하게 되는 것 같다.

Hillary Clinton Takes a Step to the Left on Health Care (NYT, 5월 10일자)

http://nyti.ms/27bsae7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난주에는 샌더스의 전국민 단일 의료보험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해당 보고서를 낸 씽크 탱크인 Urban Institute는 힐러리/오바마를 지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버니 샌더스의 의료 개혁 공약안 (영문)

Urban Institute 보고서 원문

Urban Institute 보고서를 살펴 보기 전에 미국 의료 시스템과 한국 의료 시스템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한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의료시스템이 단순하다. 크게보면, 1) 환자 2)의료보험 공단 3)의료계로 나눌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의료보험 공단은 정부로, 환자는 국민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일종의 single payer인 의료보험 공단은 정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민의 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의료수가제를 통해서 저렴한 의료비를 제공할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의료수가제가 만능은 아니다. 의료진 수급 문제라던지,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 등의 한계도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의료 시스템 개별 주체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1) 환자, 2) 병원, 3) 제약회사, 4) 보험사, 5) 연방정부, 6) 주정부가 모두 다른 인센티브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사실 환자 입장에서 보자면, 저렴하고 수준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게 이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 이다. 비용 측면에서 미국은 (공적지출과 개인 지출을 합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비 부담을 가진 나라이고, 효율 측면에서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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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별 의료비 지출 (GDP 대비). 산타크로체님 블로그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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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기대 수명 (출처 Reuters, 2013년 기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의료 개혁이 오바마 케어이다. 오바마 케어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이지만, 의료보험의 혜택을 못받는 의료 사각지대를 없앴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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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험 미가입자 감소 추세 (출처: Urban Institute)

그러나 이 오바마 케어가 의료보험료와 의료비를 낮추는데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국 의료 사각지대하고 별 상관이 없었던 대다수의 미국사람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없었고, 일부는 세금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선거 초반 힐러리는 의료보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원인에 대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가 미국 의료 시스템을 오히려 후퇴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의료 시장을 자유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현재 미국 의료시장은 완전 자유시장은 아니고, 실제적으로는 주별로 준독점 상태이다.) 샌더스 의원은 single payer 시스템으로 의료 개혁을 하면, 소위 buying power 때문에 의료 비용이 내려가고, 불필요한 행정비용이 줄어 들것 이라는 주장한다. 반면 힐러리를 지지하는 크루그먼은 의료 사각지대를 없앤 것은 오바마의 큰 업적이고, 아직 갈길이 멀지만, 의료 개혁은 쉬운 길이 아니니 다른 문제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제 Urban Institute의 지적을 NYT 기사를 통해 살펴 보자.

기사는 샌더스 의원의 정책대로 single payer로 전환한다고 해서 미국의 의료비가 획기적으로 낮아지기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앞에서 언급한 의료 시스템의 플레이어 중에서 병원을 우선 보자. 병원에서 주로 들어가는 비용은 입원 병실 비용, 의료 장비 비용, 그리고 의사들 월급이다. 그중 의사들 월급은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사에 의하면, 미국 family physician의 평균 소득이 $207,000라고 한다. 영국은 $130,000 정도 이다. 영국에 비해서도 1.5배 가량 높다. family physician은 전문의가 아니고 일반의이니 전문의는 그 차이가 더 클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family physician이 동네 병원 의사 쯤 될 텐데, 영국보다 한국은 의사 수입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있다. 얼핏 듣기로 한국에선 전문의인 종합병원 페이 닥터가 연봉 1억 쯤 된다고 하니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의는 수입이 그보다는 좀 낮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연봉 7천 쯤으로 나오는데, 신뢰성 있는 자료는 아니지만, 터무니 없는 숫자는 아닌 것 같다.

의사 봉급 말고도, 미국 병원은 기본적으로 1인 1실이고, 환자당 할당되는 의료 인력이 많다.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구조이다.

이런저런 점을 감안 했을 때, single payer로 되었을 때, 병원비를 낮출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샌더스 안처럼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 이지만, 서비스 측면만 보자면 미국 의료 시스템도 장점이 있다. (물론 비용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우리 집은 아이를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낳았는데, 확실히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의사들이 실력이 우수하긴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산모가 아이 공장에서 아이를 만들고 procedure 대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비싼 만큼 친절하고, 배려 받는 느낌이 크다. 병실도 특별한 상황이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 1인실이 주어지는데, 심신이 닳을 때로 닳은 환자들에게 private 한 공간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의료비 청구서를 받는 순간 그 고마운 마음은 사라진다.) 이는 의사/간호사 당 환자 수가 적고, 병원비가 엄청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이 아파서 병원을 갈 때도 마찬가지 이다. 의사들은 보통 20~30분 정도 천천히 진료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농담도 해가면서. 그런데 결론은 주사나 약을 주지 않을 때가 많다. 감기로 병원에 가면 주사부터 놓는 한국과 다르다. 주사도 한방 맞지 않고 이야기만 하고 나서 100불 정도 청구서가 나오면 열불이 나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 취급을 받는 느낌은 든다. 이것도 비싼 의료비와 의사 당 제한된 환자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또다른 플레이어 제약 회사를 보자. 미국 제약회사는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single payer로 전환하면 bargaining power를 이용해 약값을 낮출 여지가 있다. 기사에서 언급한 Urban Institute도 single payer로 전환했을 경우, 25% 정도 약값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펼치는 제약회사들과 공화당의 반대 등의 정치적인 난관을 성공적으로 넘을 것을 가정한 수치이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이해관계도 다르다. 오바마 케어 때를 예를 들자면, 오바마 케어는 원안에는 메디케이드 (저소득층 의료 지원 혜택)를 확대하는 것이 포함이 되어있었다. 이를 위해 오바마 정부는 주정부에 메디케이드를 확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공화당이 우세한 red state들은 이를 거부했다.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힘겨루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기사에서 지적 하듯이, single payer 의료개혁은 미국 의료 시스템은 완전히 뒤집어 엎어서 새로 만드는 일이다. 의료보험 회사들과 관련 산업을 완전히 없애거나 국유화 시키는 일이 우선은 필요하고, 수십조원의 돈이 굴러다니는 병원, 의료업계, 제약 업계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개혁을 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아침에 쉽게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참고로, Urban Institute의 보고서 이후에, 샌더스을 지지하는 측에서도 반박을 했다. 약값은 25% 보다 더 인하하는 것이 가능하고, single payer로 전환하면 행정비용이 추가로 절감된다는 내용이다.

The Urban Institute’s Attack On Single Payer: Ridiculous Assumptions Yield Ridiculous Estimates (Huffpost, 5월 9일자)

논쟁들을 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다가, 희망도 생겼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우선 의료시스템 개혁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도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혹여 single payer로 전환한다고 하여도) 어쨌든 미국은 세계에서 의료비가 가장 비싼 나라로 남겠구나 싶다. 굳이 내 자신을 위로하자면, 내가 부담하는 비싼 의료비 때문에 미국 의학이 발전하고, 다른 나라도 덕을 보는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