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번째 포스트 중간 결산

16세기 초반, 종교개혁 시기의 중심인물 에라스무스.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는 대표적인 회색인간이었고, 경건한 자유주의자였다.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하우징어 (Johan Huizinga, 1887 – 1945)는 에라스무스(1466-1536)를 아래와 같이 평했다.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이 세속적 관심사로부터의 초연함과 지저분한 것들에 대한 경멸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원적 즐거움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시장의 물품 가격을 잘 알고, 영국 왕의 원정계획에 대해 소상하고, 로마에서 온 소식을 잘 알며, 덴마크의 생활환경을 꿰뚫고 있어 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대화집>에 나오는 현명한 노인은 그리 높지 않은 명예의 자리에서 안전하고도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판단치 않으며, 이 세상에 대해 미소를 짓는다. 책들로 둘러싸인 채 늘 고요하게 있으면서 자족하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바람직하다.” (에라스뮈스 평전 – 요한 하위징아 저, 연암서가)

관련한 이전 포스트: 회색분자와 에라스무스(2015년 3월 5일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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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100개를 저장할 때마다 중간 결산을 하고 있다. 300번 째 중간 결산을 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떠들었다. 내가 아는 이상, 그리고 능력이상 떠들기도 했다. 예전에 한 번 적었듯 나에게 블로그는 내 자신과의 대화이다. 나의 포스트들은 일차 독자가 나이고, 내가 읽고서 만족하면 그걸로 족하다. 글을 써두고서 시간이 흐른 뒤에 읽어보면 예전의 나를 만나게 된다. 이전에도 블로그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종종했지만, 이는 내가 그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었고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글을 쓰면서 나를 드러내려고 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글들이 있는데, 나를 빼고서 글을 쓴다면 쓰레기 더미를 재생산하는 것 밖에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보니, 최근의 포스트들은 몇개는 그나마 봐줄만 했고, 몇개는 별 의미가 없었다. 요즘 관심사가 주로 시사적인 이야기에 치우치다보니 고요하게 앉아서 책을 보며 자족할 일도 별로 없었다. 뉴스에 지나치게 열중하면, 얼굴을 찌푸리고 판단하기 시작하며 중심을 잃기 쉽상이다.

어쨌든 중간 결산이니까 재미삼아 통계도 내어봤다. 300번 째 포스팅 때 누적조회수가 18000건 이었고 지금은 약 31000건 정도이다. 중간 결산 때마다 트래픽이 대략 두배 정도 는다. 과분한 관심이고 동시에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조회수가 높았던 15개의 포스트를 정리해보았다. 조회수가 높았다고 좋은 글이었던 것은 아니고 몇몇 글은 지금 읽어보니 몹시 부끄럽다. 어떤 포스트들은 시의적절했고, 어떤 포스트들은 제목이 선정적이어서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떤 계기가 되었든, 포스트들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생각을, 그리고 배움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즐거운 일이다. 내 포스트들이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었다면 그또한 감사할 일이다.

1위: 엑셀 Y축 물결무늬 차트 그리기
2위: 주요국가 부동산 가격 추세 그래프
3위: 일본의 의리, 한국의 정, 그리고 미국인의 인간관계
4위: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1.정보 비대칭
5위: 미국회사와 cultural fit
6위: 아나키스트: 천황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
7위: 측은지심(惻隱之心)
8위: 미국 이민 생활의 어두운 단면 – Crime in Atlanta
9위: 미국의 중산층 그리고 맞벌이 부부의 삶
10위: 한국 방문중에 느낀 점들
11위: 유가가 곡물가격에 미치는 영향
12위: 1st work anniversary!
13위: 한국사람들은 왜 외국에서 서로 피할까?
14위: 강세와 발음 – Atlanta, fantastic, coyote
15위: 현대 경제학의 6가지 주요 이론: 2.금융시장의 불안정성 – 민스키 모멘트

순위에 들지 못했지만 쓰면서 재미있었던 포스트 21개를 보태자면

이슬람과 서구사회 (연재), 브렉시트 (연재), 자메이카 육상 선수의 비밀, 미국 낙태 이슈 정리 (연재), 미국 총기 규제 이슈 정리 (연재), IS와 이라크 내전, 2016 미국 대선 관련, 내가 놓친 2015년 미국 트랜드 6가지내가 믿는 기독교 (연재)발음/관사/전치사 이야기시편 121편 :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온라인에서 나를 얼마나 드러내는 것이 좋을까참나무를 훑고 가는 바람소리데스틴 여행기 (연재)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말과 글누군가 정리해둔 외신 추천글에 필받아서First day of school아이 교육에 대해 올바로 질문하는 법, 맥도날드의 기억들, 번역가, 편집자, 그리고 지적 노동THE MISTRUST OF SCIENCE – Atul Gawande (New Yorker)

가 있다.

회색분자와 에라스무스

나는 회색분자이다.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좀 불편하다. 내가 보는 세상은 항상 불투명하고 딱잘라 말하기 어려운 모습만 가득하다. 그렇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흑백 논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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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문화사가 하우징어 (Johan Huizinga, 1887 – 1945)는 에라스무스(1466-1536)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썼다.

The ideal joy of life is also perfectly idyllic in so far that it requires an aloofness from earthly concerns and contempt for all that is sordid. It is foolish to be interested in all that happens in the world; to pride oneself on one’s knowledge of the market, of the King of England‘s plans, the news from Rome, conditions in Denmark. The sensible old man of the Colloquium Senile has an easy post of honor, a safe mediocrity, he judges no one and nothing and smiles upon all the world. Quiet for oneself, surrounded by books.- that is of all thing most desirable.
– Erasmus and the Age of Reformation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이 세속적 관심사로부터의 초연함과 지저분한 것들에 대한 경멸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원적 즐거움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시장의 물품 가격을 잘 알고, 영국 왕의 원정계획에 대해 소상하고, 로마에서 온 소식을 잘 알며, 덴마크의 생활환경을 꿰뚫고 있어 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대화집>에 나오는 현명한 노인은 그리 높지 않은 명예의 자리에서 안전하고도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판단치 않으며, 이 세상에 대해 미소를 짓는다. 책들로 둘러싸인 채 늘 고요하게 있으면서 자족하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바람직하다. (에라스뮈스 평전 – 요한 하위징아 저, 연암서가)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의 마지막 인물이다. 그는 세상의 불확실성과 현실의 모호함이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온건주의자,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와 끝까지 대립했다. 그는 수많은 종교개혁가의 스승이었지만 종교개혁을 끝내 지지하지 않았다. <우신예찬>을 통해서 카톨릭의 부패를 비판했지만, 그의 개혁은 항상 카톨릭의 안에 있었다. 결국 에라스무스는 카톨릭도 아니고, 개신교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여생을 마친다.

후세는 루터의 이름을 기억한다. 당대에 학문적 깊이와 고고함으로 존경을 받았던 에라스무스는 지금에 와서 유약한 지식인, 이도저도 아닌 신학자 정도로 매도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루터는 개신교의 아버지가 되었고, 종교개혁의 기치는 서양 정신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그러할 지라도 나는 루터가 아닌 에라스무스에 더 끌린다. 루터의 신학에 동의하지만 경건함/소박함/정직함/신중함이라는 가치를 지닌 ‘자유주의자’ 에라스무스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영락없는 회색분자인듯 하다.

+ 참고자료: 에라스뮈스의 인문주의 – 그의 생활방식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