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introverts (내성적인 사람들의 힘)

Originally posted 03/14/2104

본의아니게 미국에 살게 되어 3년 정도 미국사람들하고 매일 부대끼며 살다보니 어쩔 수없이 외향적인 성격으로 나를 푸쉬하고 그렇게 변해 가는 나를 발견한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에게는 이게 참 쉽지 않다. 미국문화는 이런 면에서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데, 사교적이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능력에 비해 더 인정받는 경향이 있다. 이건 회사 뿐 아니라 학계나 교육계도 마찬가지 인 듯하다.

오늘 링크를 건 TED강연은 Quiet이라는 책을 7년에 걸쳐 쓴 수잔 캐인이라는 사람의 강연이다. 내향적인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강연의 내용 자체도 흥미롭지만, 내향적인 자신의 성향을 극복하고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는 강연을 하는 그 모습 자체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기자님이라고 하셔도 밤10시 이후에는 체크인 불가합니다.” (아고라 글)을 읽고

Originally posted 03/21/2014

“기자님이라고 하셔도 밤10시 이후에는 체크인 불가합니다.”

예전 채플힐 살 때 듀크나 UNC로 미국 연수 오신 분들을 알게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소위 한국 사회 지도층이라할 수 있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데 가끔 창피할 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대접받고 살던게 습관이 든 그 분들이 미국와서도 대접받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일 때였다. 미국에서는 잘알려진 유명 인사라 할지라도 일상에서는 평범하게 사는게 보통인데 그런 모습이 얼마나 이상하게 여겨졌을까? 그때는 어찌나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럽던지…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순위를 매기자면, 가장 심했던게 기자분들, 그담이 법조인, 그리고 고위 공무원, 의사 순이랄까? 물론 대다수는 성실하게 주변에 피해주지 않고 조용히 계시다 한국으로 돌아가시지만, 몇몇 분은 한국인의 이미지를 안좋게 만들고 고국으로 돌아가셨던 듯… 이 글을 보니까 그 때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낸시랭의 신학펀치 – 제6회 ‘창세기 이야기는 왜 다른 신화와 비슷한가요?’

Origianlly Posted 03/12/2014 @ facebook

많이 생각 해봤지만 그다지 입밖으로 내본적은 없는 주제다. 과학과 기독교, 신화와 성경… 창조과학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과학적인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아왔다. 어쨌든 구원교수님이 마지막에 언급한 두가지 입장 중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두번째 입장, 즉 인류는 역사적으로 공통적인 경험을 해왔고 이것이 각기 다른 신화에서 유사한 모티브로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사람이 성경을 썼다는 사실이 성경의 가치를 절대 훼손하지 못한다. 우리는 성령을 믿는 사람들이고 그 옛날 성경이 쓰여질 때부터 오랜 세월 성경이 전수되고 확립 되어지는 과정에서 성령이 주재하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믿음 아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명제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IOC, 피겨 판정논란에 “공식항의 없으니 입장도 없다”

<올림픽> IOC, 피겨 판정논란에 “공식항의 없으니 입장도 없다”

IOC: There’s no figure skating judging controversy

요새 워낙 김연아 선수 이야기가 많아 나까지 한마디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늘은 링크된 기사 내용보다는 우리나라 언론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오늘 아침 출근전에 USA 투데이를 읽다가 IOC가 공식 항의 없이는 조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글을 보고서 퍼서 share했더랬다. 그런데 몇시간 뒤에 회사 출근해서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같은 내용의 기사가 한국말로 그대로 옮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구성 조차 바뀌지 않은 번역한 내용이었다. 혹시라도 출처에 대한 언급이 있을까 다시 읽어 보았다. 마치 본인이 쓴 기사 인양 쓰여져 있었다. 속사정은 잘 모르니 내가 오해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빠른 보도가 경쟁력인 통신사로서 연합뉴스가 핫 이슈인 내용을 빨리 전달하고자 하는 절실함은 이해가 가지만, 출처 정도는 밝히는게 최소한의 직업 윤리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나라 언론이 외신이 전하는 내용이 엄청난 권위를 가진 내용인양 번역한 다음 ‘타임지 보도에 따르면…’으로 시작되는 기사들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눈에 거슬린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기도 전에 외국 사람들의 눈치를 먼저 봐야 하는가? 국민들이 그런 뉴스를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국내 언론사들이 그런 모양새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의 언론도 조금만 수준이 높았으면 한다. 그리고 출처조차 밝히지 않고 본인이 작성한 양 쓰여진 뉴스는 기본도 안된 글이 아닐까?

낸시랭의 신학펀치 – 제4회 ‘큐티(QT)식 성경읽기는 문제가 되나요?’

Originally posted 02/19/2014 on facebook

큐티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 중에 간혹 큐티를 오늘의 운세 보듯이 하는 분이 있다. 어느 한 단어나 한 구절에 꽂혀서 성경 전체의 맥락을 무시한 채 자신의 생각대로 해석하여 적용하려고 드는 분… 신년이나 생일에 맞춰 그날의 말씀을 찾아 랜덤한 성경구절을 찾아 그 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는 분 등… 이러한 모습이 신년운세를 알기위해 점집을 찾는 행위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하나님 말씀을 매일 진심으로 읽는 것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큐티는 참으로 유익한 신앙적 전통이다. 하지만 많은 신자들에게 큐티는 적용꺼리를 억지로 꺼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종종 지워주곤 한다. 그러한 적용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성경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간혹 설교에서조차 끊어 읽기 큐티식 성경해석을 발견했을 때는 그 답답함이 얼마나 큰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성경을 맥락에 맞게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듯 싶다.

복음 자체가 어려운 내용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시 가장 무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서 가르키신 말씀이니 말이다. 하지만 교회사를 되돌아 보자. 교회가 가장 세속화/계급화 되었던 중세시대에 낮은 자를 위한 예수님의 복음은 헬라어/그리스어로 숨겨져서 가진자의 성경이 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마틴루터가 종교개혁 초창기에 했던 일(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서 금속활자로 성경을 보급했던 것)은 무척이나 적절하다. 아마도 현대의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일 중에 하나는 평신도에게서 너무나 멀어져버린 성경 말씀을 제대로/쉽게 풀어서 낮은자에게 돌려주는 일이 아닐까 한다. 종교개혁/미국 대각성운동이 그러했던 것 처럼 그러한 일이 다시 이루어 진다면 그 유익은 교회 뿐 아니라 우리가 몸담은 세상에도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짧게 쓰려다 오늘도 사설이 길어 졌다… ㅋ

(덧붙임 02/12/2015)

예전에 지나가듯 잡상을 적어둔 내용인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날이 너무 서있다. 근대 의외로 이글이 조회수가 높다. 지울까도 싶었지만, 당시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현재도 동일하기 때문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글에서는 큐티의 단점 만을 크게 부각시켰다. 그러나 큐티는 분명히 매일매일 성경을 마음에 새기려는 분들에게 귀한 도구이다. 다만 지나친 일반화, 원 의미의 변질,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적용의 위험성 또한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이글을 읽고서, 평소 성경도 안읽고 성경 공부도 안하는 분이 ‘누가 그러는데, 큐티 안좋은 점도 있다고 하더라. 큐티 안해도 된다.’ 이렇게 말씀 하시면 정말 오해하시는 거다.

인문학자 강신주는 어떻게 ‘문화권력’이 되었나 – 미디어스

Originally posted 02/11/2014 @ facebook

인문학자 강신주는 어떻게 ‘문화권력’이 되었나 – 미디어스

최근 강신주라는 분이 한국에서는 뜨거운 감자인듯 하다. 하지만 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내게는 여전히 기술의 진보와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에 풍요로움을 가져다 준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포스트 모던시대에 이런 믿음은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사고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논의가 너무 배부른 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인문주의자들은 자동차가 환경에 가져온 해악을 말하며 자전거와 대중교통의 활성화를 이야기 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 하는 일이 전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이 있는 환경론자/인문주의자라면 세탁기나 전기를 없애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탁기가 인류에 가져온 유익을 생각해보자. 불과 우리의 할머니 또는 증조 할머니 세대만 해도 머리에 빨래감을 지고 개울가에서 양재물에 빨래방망이로 힘겹게 세탁이라는 이름의 중노동에 시달려 왔을 것이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평생을 세탁과 아궁이밥 짓기, 다듬이질 등의 고된 노동을 해왔던 것이 바로 우리네 할머니 세대의 일상적인 삶이다. 그뿐인가?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대다수의 아낙들은 자기 몸의 1/5의 무게를 지닌 빨래감을 머리에 이고서 하루에도 수키로를 오가며 물을 기르고 빨래를 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의 폐해와 기술의 진보가 가져오는 해악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도 우리의 삶에 풍요와 윤택함을 가져다주는 이름모를 엔지니어와 기업가들에 대한 존경과 경의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낸시랭의 신학펀치 – 제2회 ‘세종대왕은 지옥에 가나요?’

내가 느끼기에 성경은 그리 친절한 책은 아니다. 성경은 각 책마다 다른 저자의 관점과 뚜렷한 목표의식이 닮겨 있긴 하지만 인생의 모든 문제와 질문에 시원시원한 즉답을 주지는 않는다. 복음이 전파된 적이 없던 곳에서 구원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를 괴롭혔던 적은 없지만, 몇몇 분들에게는 꽤 중요한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프로그램 후반부에 나오는 공동체적인 관점에서의 구원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은 내게도 생각의 단초를 던져 준다.

‘이혼 적령기’란 말 들어보셨나요? – 시사In

Originally posted 02/04/2014 @ facebook

‘이혼 적령기’랑 말 들어보셨나요?

결혼한지 벌써 9년차다. 나두 혹시 이혼 적령기?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돌싱도 생겨나고. 우리 세대가 부모님 세대들과 비교해서 참을성이 많이 나빠진건 아닐 텐데… 부모님 세대를 보면 그냥 남들 사는데로만 해도 어느정도 만족해가며 살았던 것 같은데…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살기가 각박해졌나 싶다.

Halloween 풍경

Posted 10/13/2013 @ facebook

올해로 3번째 미국에서 맡는 할로윈이다. 작년까지는 딸아이가 할로윈을 잘 모르고 지나갔는데 이제는 진심으로 즐기고 좋아한다. 지금도 좀있으면 trick-or-treat을 간다면서 신나있다. 추석이나 설날도 잘 모르는 아이가 미국 명절을 먼저 배우는 것 같아 애비로서 미묘한 감정이 든다. – 한국에도 요즘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할로윈 때 파티를 하는게 유행인 듯 하던데, 미국에서는 할로윈이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명절이다. 애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분장하고 과자를 얻고 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는 재미가 있는 이벤트라는 느낌이 크다. – 오늘 아침에 보스가 내게 2시쯤 가기로 되어 있지 않냐면서 묻는다. 나는 당연히 그런적 없다고 했지만, 딸 분장 시키고 과자 얻으로 다니려면 그때쯤은 가야 할꺼라며 오늘은 빨리 가란다. 나는 가볍게 듣고서 오후에도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2시쯤 와서 보스가 다시 한번 체크한다. 아직도 안갔느냐며 일년에 한번 있는 명절 때 가족과 함께 보내라며 집으로 보낸다. 내가 한국 정서로 머뭇거리니까 자기도 오늘 차막힐 것 같아서 일찍 퇴근할 생각인데 내가 자리에 있으면 안 갈꺼라면서 무서운 표정을 지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