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단일민족 신화

일본은 한국보다 더 homogenous균질한 나라라는 생각을 해왔다. 최근 기사를 보니 과연 수치상으로도 그러하더라. 외국인 체류 인구가 한국은 4%, 일본은 2%라고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표현보다 homogeneous가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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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일본에 갔을 때도 느꼈는데, 이제 세븐일레븐에서 필리핀이나 네팔계로 보이는 분들을 쉽게 본다. 건설인부나 간호 인력도 외국인이 많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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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 정부는 外人 geijin 친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geijin은 한국어로는 외국인쯤 되는 듯. 물론 난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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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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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된다. 마침 며칠전 한 블로거께서 올린 [일본의 단일민족 신화기원]이라는 책의 서평을 읽었다.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워낙 길었고, 나는 일본 역사에 친숙하지 않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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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국의 단일민족 신화와 고대사 열풍을 관심있게 지켜본 적이 있어, 그 이야기들이 남의 얘기로 들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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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 지식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일본의 정체성 찾기의 과정에 심정적으로 동조했던 인물들이 빠졌던 황국신민화의 함정을 일본의 관점에서 읽게된건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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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일본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였는데, 천황을 중심으로 하나의 가족을 형성한다는 일종의 가족국가 형태인 국체론이 일본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항상 느끼던 가족 같은 회사, 가족같은 모임의 갑갑함이 어디서 온건지도 알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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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세번의 큰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일본인의 정체성을 바꿔온다. 세번의 사건이라함은 첫번째가 메이지 유신과 개항, 둘째가 청일/러일 전쟁의 승리, 세번째가 패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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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번째 사건 이후 일본은 자신의 정체성을 혼합민족으로 둔다. 백인들에 대한 열등감과 전승 이후 생긴 자신감을 토대로 일본인은 야마토 민족을 아시아에서는 우월한 민족이라는 위치로 상정한다. 그리고 대만인과 조선인을 그들의 국체론 아래서 adoptee양자로 간주한다. 가족이지만 열등하면서 동시에 천황에대한 충성이 요구되는 미묘한 균형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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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이후 일본인의 일본관은 단일민족으로 회귀한다. 쌀을 먹는 평화로운 섬나라 사람들의 소박한 공동체. 이 소박한 공동체는 명백하게 이질적인 존재인 아이누인과, 자이니치 (재일교포)를 무시하거나 차별한다. 단일민족 신화안에서 숫자가 크지 않다면 존재가 없는 것이고,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크다면 차별이 정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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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유지하면서 동화를 장려하는 정책. 그다지 낯설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요즘 뉴스를 들으면서 느낀 섬뜻함과 멀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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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포스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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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덴노 (1852 –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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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받은 편지

가끔 예전에 썼던 글들을 뒤적여본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쓴글을 읽어보면 내가 이런 생각들을 했었나 싶어 놀랄 때가 있다. 때론 좋은 쪽으로, 아니면 반대로도.

글을 쓸때 (가상의) 독자를 염두에 두는데, 어떤 글은 미래의 내가 독자이다.

오늘 4년전 나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인데, 그 시절 내가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좋은 책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장자가 말한 심재(心齋) 그리고 바울이 말한 자기 비움과 자족 (2014년 8월 6일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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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정체성과 난민 이야기

그리스 신화 중에 ship of Theseus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있다. 반신반인인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영웅 테세우스가 아테네로 돌아오면서 탄 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인들은 테세우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배를 보존하기로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나무 판자가 썩고, 후손들은 이를 새로운 판자로 교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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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크는 테세우스의 배의 정체성을 묻는다. 판자를 한두개 쯤을 교체할 때는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흘러 이 배의 나무 판자를 모두 교체했다면, 그래도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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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의 배를 국가라는 개념에 적용해본다. 국가는 보통 짧게는 몇십년, 길게는 수백년의 수명을 가진다. 인간의 수명 보다 상대적으로 길기에 건국 초기를 지나면 국가의 구성원이 달라진다. 그러면 몇세기가 지난 나라를 처음의 국가와 같은 국가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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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경우는 나라의 정체성을 민족과 연결지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건 한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지, 대부분 민족과 나라는 그렇게 선명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민족의 개념이란게 상당히 모호하다는 점을 별개로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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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나라별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다. 예외적인 나라가 몇 있었다. 한국은 유독 인종을 답변한 이가 많았고, 파키스탄은 종교,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 (케냐, 가나, 나이지리아)은 국적 취득을 압도적으로 답했다. 또 인도네시아가 지역 공동체를 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도표는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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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지난 몇년 사이에 나라의 정체성이 급격히 바뀌었다. 얼마전 이코노미스트지는 표제로 ‘Cool Germany’를 뽑았었다. 독일의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그들을 세계에서 가장 hip하고 다면적인 나라중에 하나로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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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난민이 이슈로 떠오르자 난민을 가장 열린 자세로 받아들인 나라가 독일이었다. 2016년 자료를 보면 독일 인구의 0.8%가 시리아 출신이다. 64만명이면 천안시나 전주시 급의 소도시이다.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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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료를 보면 독일 여성의 20%는 자녀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출산율이 다소 반등했는데, 이또한 대부분 외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통적인 독일인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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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독일인은 전형적인 백인, 아리아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미 지금의 독일은 그리고 앞으로의 독일은 전혀 다른 독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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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은 난민들에게 열린 정책을 고수했고, 시리아인을 포함해 몇년 사이에 110만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시리아인이 반정도를 차지한다.) 사실 난민 사태 이전부터 터키 출신을 비롯 외국출신들이 서서히 독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년 선거에서 이민자 출신 국회의원은 8% 였다. 인구로는 이미 23%가 이민 출신이다.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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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이코노미스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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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초에 독일을 방문했었다. 3주 가량 독일 사람 지인집에 머물렀다. 지인의 아들은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놀랍게도 터키문화에 젖어있었다. 전형적인 백인이 우리와 모인 자리에서 터키 음악을 틀고서 터키 스타일 춤을 추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딸은 러시아에서 이주한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프랑크푸르트 외곽 지대였는 저녁 때 맥도날드를 들렸다가 절반 이상이 터키나 동유럽계여서 과연 여기가 독일인가 싶었다. 관광지가 아닌 도시 외곽이나 공장지대를 가보면 폴란드나 터키계 이민자들이 주류로 느껴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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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월드컵팀을 보면 전통적인 독일이름은 점점 찾기 힘들다. 외질, 보아탱, 고메즈는 모두 외국출신 성이다. 20세기만 해도 독일 안에서도 외국 출신이 국가 대표팀에서 뛰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이제는 뉴스꺼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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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독일인을 독일인이게 하는 것일까. 독일 민족? 루터교? 독일어? 아니면 독일인의 준법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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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D 같은 경우는 이 이슈를 적극적으로 의제를 삼았다. 그들의 표어는 ‘Islam is not belong to Germany.’ 이다. AfD가 말하는 독일 문화는 그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einheimische Kultur” 즉 native culture이다. AfD는 “our occidental and Christian culture, our nation’s historical and cultural identity, and an independent German nation of the German people”을 보존할 것이라는 약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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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메르켈의 CDU/CSU는 “Leitkultur”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leading culture쯤 될 것 같은데, 내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이주민들에게 문화를 강요하기보다는 독일인의 가치와 문화에 젖어들 수 있도록 가이드하고 돕는다는 개념이다. Leitkultur는 기원을 보자면 2000년에 CDU의 리더였던 Friedrich Merz가 제시한 개념인데 당시 그는 독일인의 가치로 세속주의, 독일어 사용, 준법정신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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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관련 기사
What is German? (2016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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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독일인을 독일인이게 하는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한국인을 한국인이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미국인을 미국인에게 하는 것일까? 살면서 던질 기회가 잘 없는 큰 질문들인데,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자꾸 내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육로 운송/해상운송/항공 운송 비교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모스크바까지 철도길이 열리는 것에 관한 글을 종종 본다. 마침 페친이신 갓과장님과 홍이사님이 철도운송의 가격 경쟁력에 대한 좋은 글을 써주셨다. (글 말미에 링크 참조) 가격말고 다른 관점에서도 물류 산업 대해 좀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 댓글을 달다가 좀 길어졌는데 담벼락에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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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와 해상 운송을 경쟁관계로만 보는 건 지나치게 이슈를 단순하게 보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해상 운임은 다른 운송수단의 운임과 비교해 월등하게 경쟁력이 있지만, flexibility나 트래킹은 좀 갑갑한 면이 있습니다. 가격이 유일한 원인이라면 해상운송이 글로벌 물류 짱먹는게 맞겠지만, 꼭 그런건 만도 아닙니다. BCG 자료를 토대로 만든 아래 이코노미스트지 차트를 보면, 해상운송에 해당하는 forwarding & contract logistics는 약 20% 가량입니다. (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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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운송을 제외하면 다른 옵션은 UPS/FedEx/DHL 같은 항공운송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빠르기나 flexibility 면에서는 항공운송이 해상운송에 압도적 우위에 있습니다. 컨테이너로 물건 실어보내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어디있는지도 파악이 힘들기 때문에 실시간 트래킹이 가능하고 중간에 기착지를 바꾼다거나 다시 돌려 보내는게 가능한 항공운송이 확실히 장점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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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단점은 역시나 가격인데, 항공운송은 워낙 가격이 셉니다. 이를테면 70Kg 되는 짐을 상하이에서 런던까지 보내면 비슷한 무게의 사람이 타는 것보다 가격이 네배쯤 들고, 시간도 세배쯤 더걸립니다. 게다가 사람이 뱅기타면 밥도 주고 영화도 보여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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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갈 만한 게 철도 운송이 되고요. 가격도 적당하면서 해상 운송보다는 좀 덜 갑갑하니까요. 사실 이게 틈새 시장이라기 보기에는 좀 큽니다. 게다가 해상과 철도 운송은 서로 대체제라기 보다는 보완재의 성격이 강해서 철도 운송이 활성화 되면 그 근방의 해상 운송에도 긍정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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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flexibility 측면에서는 육상 운송이 가장 월등하기 때문에, 육로가 뚤린다면 섬처럼 고립된 한국에는 이점이 될 것은 확실합니다. 당장 미국 고속도로만 봐도 엄청난 화물 트럭이 줄지어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한국은 유럽이나 미주와 비교하면 육상 운송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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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게 얼마만큼의 이익이냐 따지는 건 가정이 많이 들어가는 이야기라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단순하게 가격 경쟁력만을 가지고 의미가 없다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은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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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과장님 포스트 링크
홍이사님 포스트 링크

트럼프는 특검 로버트 멀러를 해고할 수 있을까?

오늘 포스팅이 많았지만, 일도 손에 안잡히고, 시사적인 이슈는 타이밍을 놓치면 포스팅하기 머시기 해지는 지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한번 정리해본다. 나는 정치도 미국 법도 잘 모르지만, 그냥 궁금해서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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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배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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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FBI 국장 코미, 법무부 차관 Rod Rosenstein에 대해 포스팅 한 일이 있다. 물론 트럼프 러시아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하는 사람은 특검 로버트 멀러이지만 멀러를 고용한 법무부 차관 로젠스타인 역시 중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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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포스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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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뉴욕 FBI 요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집과 사무실을 급습했다. 대통령의 변호사 사무실을 급습한건 보통 일이 아닌지라. 당연히 뉴욕 판사의 수색영장 발부가 있었고, (중요한 물증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 그리고 법무부 차관 로젠스타인의 최종 승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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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사실은 나도 포스팅하려고 생각했는데, 이페이지 쥔장님께 선수를 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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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쪽은 난리가 났다. 트럼프는 당장 변호인과 의뢰인의 비밀 보장 권리를 침해한다고 트윗을 날렸다. (모두 대문자로 써서 말이다.) 그리고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가 멀러 특검을 해고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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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진짜로 트럼프는 멀러를 해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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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부터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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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법 article 2 section 2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중간에 삽입구를 처내고 읽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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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shall have power to make treaties and he shall nominate and shall appoint ambassadors, other public ministers and consuls, judges of the Supreme Court and other officers of the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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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애매하게도 (원래 미국 헌법이 좀 애매한게 많다.) 해임 권한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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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해임권한에 대해 해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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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한 첫번째 판례는 Meyers v. U.S.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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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당시 오레곤주 우체국장 Meyers를 해임한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Meyers는 원래 나쁜놈 이었다고. 어쨌든 관련해서 연방 대법원은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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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natural, therefore, for those who framed our Constitution to regard the words ‘executive power’ as including the power to remove executive offic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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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판례는 1935년 Humphrey’s Executor v. U.S. ca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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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통령이던 F. D. 루즈벨트는 FTC(통상위원회) 멤버였던 험프리를 (뉴딜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해임한다. 그런데 이 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다른 판결을 내린다. 대법원이 말하기로는 공직자들은 quasi-legislative officer와 quasi-judicial officer가 있는데, quasi-legislative officer는 대통령 마음대로 짜를 수 있지만, quasi-judicial officer는 단순히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짜를 수 없다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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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이해하기론, 대법원 판결은 FTC 위원은 다소 독립성/정치 중립성이 보장되는 자리임을 확인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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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어쨌든 우리의 관심인 특검 멀러 케이스로 돌아가보자. 그래서 트럼프는 멀러를 짜를 수 있을까? 법적으로는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법무부쪽 사람들에게는 FTC 의원과 달리 대통령이 해임할 권리가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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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짜르는 게 안되더라도 (멀러를 고용한건 법무부 차관 로젠스타인이다.) 로젠스타인에게 짜르라고 명령할 수 있고, 로젠스타인이 거부하면 로젠스타인을 짜르고 후임자에게 멀러를 짜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법무부 장관 제프 세션스에게 명령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맘만 먹는다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리고 닉슨 때 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이부분은 뒤에서 다시 이야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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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Nixon (1913-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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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특검을 해임하는게 적법한가는 문제가 안될지라도 그 배경에 불법적인 사실을 감추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그게 소위 말하는 obstruction of justice사법방해이다. 사실 Obstruction of Justice는 좀 특이한 죄이다. 그자체가 범죄라기 보다는 범죄에 대한 판결을 방해하는 범죄라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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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생각해볼 일은 현직 대통령을 고발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문제이다. 대통령을 민사소송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면책 특권도 같이 찾아봤는데 이건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한번 다룰까 싶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 워낙 많은데 그때마다 민사소송에 시달리면 나라가 마비될 것이다. 논리적으로 수긍이 가능 이야기. 그런데 면책 특권이 형법에도 적용되느냐. 그건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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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 만한 정치 스캔들이 워터게이트이다. 워터게이트 때 대통령을 기소하는 데에까지 갔더라면 그때 대통령 면책 특권 논쟁에 결론을 맺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후임자 포드는 닉슨의 범죄행위를 (재판이 시작도 안했는데!) pardon사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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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워터게이트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하자면, 닉슨도 당시 특검 아치볼드 콕스를 짜르고 싶어했다. 그래서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에게 특검을 짜르라고 했으나, 그는 거부한다. 결국 닉슨은 리처드슨을 짜르고, 차관에게 명령한다. 차관이 거부하자 닉슨이 차관마져 짜른다. 결국 법무부 서열 3위가 특검을 해임하는데, 이를 Saturday Night Massacre라고 한다. 그 결과는 알다시피 닉슨 탄핵이었고, 닉슨은 탄핵되기 전에 자진 사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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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bald Cox (191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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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ot Richardson (19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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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든 이들이 멀러를 해임하는 건 (헌법적인 권한과 별개로) 정치적 자살행위하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트황상께서 이에 동의하는지 잘 모르겠다. 워낙 평생을 법정 파이터로 살아온 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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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요즘 미국 정치가 워낙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좋은 일인건지, 이래저래 미국 헌법부터 정치까지 배우는 기회가 되긴 한다.

Dover Beach by Matthew Arnold

마음이 헛헛해져 예전에 읽던 영시를 꺼내 봤다. 이번에는 직접 번역도 달았다. 영문과 출신이면 알 수도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시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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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 love, let us be true
아, 사랑이여, 진실하자
To one another! for the world, which seems
서로에게! 왜냐하면 세상은
To lie before us like a land of dreams,
마치 꿈의 땅처럼 우리 앞에 놓여있는 듯 하고,
So various, so beautiful, so new,
그토록 다채롭고, 그토록 아름다우며, 그토록 새롭게 보여질 지라도,
Hath really neither joy, nor love, nor light,
진실로 그곳에는 기쁨도 사랑도 빛도 없는,
Nor certitude, nor peace, nor help for pain;
확실한 것도 평화도 고통을 덜어줄 도움도 없는 그러한 곳이기 때문이다.
And we are here as on a darkling plain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어스름한 평원 위에 있다.
Swept with confused alarms of struggle and flight,
전투와 패주의 혼란스런 경고에 압도된
Where ignorant armies clash by night.
어둠속에서 무지한 군대들이 충돌하는 바로 그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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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ver Beach 중에서 by Matthew 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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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마지막인 이 구절은 두번 읽어야 한다. 한번은 순서대로, 두번째로는 인과관계를 따져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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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두번째 줄 접속사 for를 기준으로 뒷부분이 말하는 바, 밤에 전쟁을 하고 있음에도 누구와 무엇과 싸우는지도 모르는 그러한 상황, 세상에 확실한 것도 없으며 고통만이 가득한 그 곳임을 알고 있음에도, 아니 정확히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시인은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for를 쓴다.) 앞의 진술은 서로에게 진실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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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시에서 말하는 love는 뭐고 시의 청자는 누구일까? 이 시가 신혼여행에서 쓴 시라는 걸 생각하면, 사랑이라고 부른 대상을 부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리고 시가 다루는 소재의 크기를 고려해보면, 좀더 크게 혼란한 세상에 던져져 낙담한 사람들을 향한 속삭임이라고 읽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렇게 읽는 근거는 바로 다음줄에 있는 one another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두명이서 서로간에를 말할 때는 each other를 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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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아놀드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를 돌이켜보면, 아놀드의 의심과 고뇌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게다가 바로 전 연에는 그 유명한 sea of faith 라는 표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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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조금 헛헛했던 나에게 돌아온다. 조그맣게 속삭여본다. 내가 붙들고 있는 그 조그마한 진실마저 흔들리고, 평안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그 순간. 서로에게 진실하자. 아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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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덧대기
1. 현대인의 감성으로 이 시가 다소 아재스럽게 읽히는 것은 이 시가 노래하는 주제가 워낙 거창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여러 시인과 작가들에게 변주가 되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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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전에 이안 매큐언의 체실비치에서를 읽은 적이 있는데 배경설정이 이 시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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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체실비치에서는 워낙 소품이긴 한데, 묘사와 구성이 쫀쫀해서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달에 영화로 개봉한다고. 예고편을 보건데 영화도 좀 소품 같은 느낌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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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초기 영국에서 일어난 일들 – 1733년 맨체스터

Empire of Cotton 이어서.

18세기 후반 맨체스터는 혁신의 심장부였다. 지금의 실리콘밸리와 비견할 만한 기술혁신이 이뤄진 곳이 당시 맨체스터와 그 일대 랭커셔 지방이다. 18세기 가장 핫했던 테크 산업은 섬유업. 그시절 랭커셔 지방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공장이란게 세워졌고, 시골이 도시로 변했으며, 수만명의 사람들이 농장에서 공장으로 이동했다.

무엇보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첫번째 혁신은 1733년 weaving 제직 공정에서 시작한다. John Kay가 flying shuttle이라는 목재 제직기 (실을 짜는 일종의 베틀)를 발명한다. 지금 기준으로는 상당히 단순한 기계였지만 한번 작업으로 양쪽에서 천을 짜주기 때문에 생산성이 2배로 향상된다.

제직공정 생산성이 향상되자 바로 앞공정인 spinning 방적공정에 부하가 걸린다. 짧은 뭉치를 긴 실로 만드는 방적 공정에서 혁신이 일어난 건 1760년대. James Hargreaves 하그리브스가 spinning jenny를 발명한다. 실뭉치를 앞뒤로 늘려서 실을 자아내는 spinning jenny는 방적공정 생산성을 세배로 늘린다. 1769년 Richard Arkwright 아크라이트는 이 방적기를 수차에 연결해 수력방적기를 개발하고, 1779년 Samuel Crompton 크롬프턴은 spinning jenny와 수차를 합하여 mule 뮬 발적기를 발명한다.

이제 다시금 후공정인 weaving 제직에 부하가 걸린다. 1785년 Edmund Cartwright 카트라이트가 제직기를 수차에 연결한 power loom을 개발하면서 제직공정이 방적공정의 생산성을 따라 잡게된다.

19세기 초 면직물 제조업은 산업화를 완성한다. 마지막 결정타로 면직물 제조업자들은 James Watt 와트가 1769년에 발명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활용하고, 이에 생산성은 다시한번 도약한다.

이제 영국의 면화산업은 인도의 면화산업에 확실한 비교우위를 갖게되었다. 당시 인도의 경우 100파운드의 원면을 방적하는데 5000시간이 필요했다. 영국은 1790년에 mule방적기를 활용해 이를 1000시간으로 줄였고, 1795년에 수차를 이용하면서 300시간. 1825년 Roberts의 자동 mule 방적기 발명으로 135시간으로 줄였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370배의 생산성 향상을 보였다.


(그림: 1835년 랭카셔 – 뮬 방적기)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은 면직물 가격의 하락을 가져온다. 1795년부터 1811년 사이에 면직물 가격은 반값으로 떨어진다. 이제 품질/가격 면에서 인도산은 영국산과 견줄수 없게 되고 인도 면제품은 서서히 퇴출되기 시작한다.

반면 영국 경제는 호황을 누린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의 면섬유산업은 소자본으로도 큰 수익을 보장하는 대박 아이템이었다. ROI를 보자. 당시 대표적인 면제조 회사였던 Cardwell & Birle 은 연평균 투자자본회수율이 13.1%, N. Dugdale이 24.8%, McConnel & Kennedy는 16%에 이른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들의 사업확장이 외부의 자금 유입없이 이루어졌다는 것. 당시 공장주들은 Retained Profits 즉 이익잉여금을 재투자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앞에서 언급한 McConnel & Kennedy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McConnel은 원래 방적기 제조업자였다. 그는 주문받은 방적기 2대의 대금을 지불 받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그 방적기로 대신 사업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에 Kennedy라는 투자자를 만나서 500파운드를 투자받는다. 1791년 그렇게 두개의 방적기로 시작한 사업이 1797년 7464개의 방적기를 돌리는 규모의 사업으로, 1810년에는 78972개의 방적기를 돌리는 사업으로 급성장한다. 당시 영국의 다른 면사 공장과 동일하게 이들도 사업을 retained profits 이익잉여금을 재투자하여 늘려갔고 1799년에서 1804년, 5년 동안 평균 26.5%의 수익을 보았다.

산업혁명 이야기는 이정도로 마무리 짓자. 오늘도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도 좀더 이야기 하려했었는데 손가락이 슬슬 아파온다. (너무 딱딱한 숫자만 늘어놔서 읽는 사람도 벌써 질렸겠지… 오늘은 좀 망한 글인 듯.) 저자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로 로버트 앨런 교수의 이론을 활용한다. (앨런 교수 주장은 ‘세계 경제사’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궁금한 분은 책을 사면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앨런 교수는 영국의 높은 인건비가 기계화 산업화를 일으킨 주된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으므로 아래 링크 참조.
생산성과기술혁신 (2월 28일 포스트)

또 예전에 홍춘욱 박사님께서 세계 경제사의 해당 내용을 포스팅 한 적이 있다. 아래 링크 참조.
세계경제사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임금이 상승하고 일자리가 늘어난이유는?

마지막으로 슘페터를 이야기하면서 마칠까 한다. 기술혁신 하면 슘페터 아닌가.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기적은 부를 민주화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슘페터의 예를 인용한다. 자본가들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산업화가 되었다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비단 스타킹을 더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돈이 많다고 부자가 양말을 무한정 살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로 인해 공장 여공들은 스타킹을 신을 수 있게 되었다. (싸고 질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면서.)

슘페터의 이야기에 딱 들어맞는 예가 면직물이다. 18세기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면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를 테면 당대 패션 리더였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muslin이라는 면직물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아래 그림 참조) 옷뿐 아니라 살이 닿는 모든 부위는 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종이와 침대, 지폐에도 면이 포함되어 있다. 몇백년 전만해도 사치재이던 면직물은 이제 공기처럼 너무나도 흔해서 느끼지 못할 정도 이다.


(그림: 무슬린 드레스를 입은 마리 앙투와네트, 1783년)

슘페터 이야기 출처: 이코노미스트지 재인용

흠… 내가 너무 자본주의 노예같은 이야기를 했나? 그치만 기술의 진보를 이야기 하면서 자본주의 예찬을 안하기도 어려운 일일테다. 다음번엔 좀 어두운 이야기, 그러니까 노예와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에 대해서 수다를 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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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대영 제국에의 향수

18-19세기 영국 경제와 면화 산업을 공부하면서 문득 보리스 존슨의 말이 생각 났다. 보리스 존슨은 영국 현 외무장관 그리고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바로 그 양반이다.

연설의 일부를 발췌한다. 연설문 제목은 Beyond Breixt: a Global Britain 이다.

whether we like it or not we are not some bit part or spear carrier on the world stage. We are a protagonist—a global Britain running a truly global foreign policy – Boris Johnson (2016년 12월 2일 연설 중)

브렉시트는 고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영국 자유무역 전통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어떻게 가능한가 싶지만, 정말 그렇다.

캘리코법 폐지와 곡물법 폐지를 기점으로 영국은 세계에 자유 무역의 가치를 전파했다. 그러니까 브렉시트 정신(?)의 일부는 과거 위대한 영국에의 향수에 기대고 있는데, 그 위대한 영국이 바로 자유무역의 수호자 였던 것이다.

갑갑하고 권위적인 EU와 유럽의 전통에서 벗어나서 세계에서 (주로는 과거 영연방 국가들과 함께) 영국의 가치를 펼치겠다는 이야기는 테레사 메이의 외교정책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나는 테마이다. 그리고 발췌한 연설에서 보리스 존슨은 영국이 세계 무대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인 것이 숙명 같은 거라고 했다.

메이와 보리스 존슨은 영국의 위대한 역사와 전통, 과거 대영 제국의 일부였던 나라들에 흩어진 문화적 공통점, 특히 영어의 강력함. 그런 것들이 위대한 영국을 가능하게 해줄 거라고 주장한다.

글쎄다. 18-19세기에는 그 말이 맞았을 런지 모르겠다. 그때 역사를 보면 확실히 영국은 세계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다만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링크: 보리스 존슨 연설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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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과 테레사 메이 (사진 출처: the Independant)

뱅골 경제의 몰락과 동인도 회사 – 1757년 다카

인도 전문가 페친께서 캘리코법 포스팅을 보고서 댓글을 다셨는데, 답이 길어졌다. 따로 포스팅으로 옮겨둔다.

페친님은 동인도 회사가 인도를 본격적으로 식민지배한 시점이 영국이 면직물 수출을 늘린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을 이야기하셨고 아래는 나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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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18세기 후반 부터 영국과 인도의 관계도 완전히 역전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면직물 산업만을 보더라도 이전까지는 인도산 면직물이 경쟁우위를 보였지만, 산업혁명에 힘입어, 영국산 면직물이 가격과 품질 면에서 서서히 인도산을 제치게 됩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 면직물을 독점했기에 상당한 이점을 누립니다. 우선 영국인이 인도 면직물 제조 기술을 맘껏 베낄 수 있었고, 인도산 면직물을 세계 시장에 팔면서 개척한 루트를 영국이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 면직물이 경쟁력을 얻으면서 인도 경제 (특히 영국 동인도 회사의 본거지 였던 뱅갈지역)는 완전 폭망합니다. 그 시점이 동인도 회사가 인도를 본격 식민통치하기 시작한 기점과 일치합니다.

한때 세계 면직물 시장을 주름잡았고 부를 키웠던 무굴 제국 면직물 산업은 급락하는데, 1747년에서 1797년 20년 사이에 인도산 면직물 가격은 반으로 떨어집니다. 뱅갈지역은 완전 거지가 되서 먹을 걸 걱정하는 정도가 되었지요. 지금의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가 면직물 생산의 중심지였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한참 부유했을 때 다카는 세계 GDP의 29%를 차지할 정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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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뱅골지역, 지금은 방글라데시와 인도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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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부터 동인도 회사는 인도를 면직물 수출 시장, 목화 공급처로 만들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습니다. 면직물 산업이 성장하면서 안정적인 원재료 공급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면직물 수출은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목화 생산지로서의 변화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마 다음 번 연재에서 이야기 할 텐데요. 조금만 말씀 드리면, 처음 목화 생산지로의 변신을 성공했던 곳은 캐리비안 쪽과 브라질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미국 남부 지역이 목화 시장을 장악합니다.

관련해서 18세기 영국 목화 수입 나라별 구분 차트도 올립니다. (아래 참조) 아시겠지만, west indies는 서인도 제도 그러니까 캐리비안이고 Levant는 지금의 시리아/이스라엘/요르단 쪽이죠. 당시는 오스만 제국의 일부 였을 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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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의 보호무역과 캘리코법 – 1701년 런던

Empire of Cotton 지난번에 이어서.

17세기 후반, 유럽에 인도산 면직물 캘리코가 소개된다. 가볍고 땀흡수도 잘되는 이 혁신적인 신소재에 유럽 귀족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펼쳐진다. 마직물 (linen)과 양모 업자들은 반발한다. 국산품을 애용해야지 우리는 뭘 먹고 살라는 말이냐. 양치기, 농민, 섬유산업 수공업자들을 말려 죽일 셈이냐. 면직물을 들여온 동인도 회사 직원들은 테러의 대상이 된다.

동인도 회사가 설립된지 이십년도 되지 않아, 1621년 런던의 양모 상인들은 면직물 수입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인다. 1623년에는 국회에서 토론을 하는데, 면직물 수입을 ‘injurious to the national interest’ 국익에 해가 되는 일이라고 부른다. (이쯤에서 트럼프가 떠오르는 건 내가 요즘 뉴스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17-18세기 영국 정치에서 면직물 수입은 중요한 이슈였다. 정치인들은 보호무역을 선택했다. 1685년 영국정부는 동인도회사의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매기기로 한다. 1690년 이를 20%로 올린다. 1701년에는 인도산 면직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데 이를 calico acts 캘리코법이라고 한다. 1721년에는 인도산 면직물을 착용하는 것 조차 법으로 금한다. 1772년은 수입면직물에 대한 거부감이 극도로 높았던 해이다. 밀수한 인도 면직물을 집에 소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는 기록이 있다.

인도산 면직물 수입에 대한 반발은 영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비단, 양모 업자가 반발했고 이에 1686년 인도 면직물 수입을 금지한다. 1726년에는 심지어 밀수업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섬유업이 발달했던 다른 나라도 상황은 같았다. 베네치아, 플랑드르, 프러시아, 스페인, 오스만 제국 또한 면직물 수입을 금하였다.

그런데 영국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 기간 영국 면직물 산업의 생산성이 폭발한다. 공산품이 경쟁력을 가지게 되자 서서히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시절 영국은 아담스미스와 리카도가 활동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지금은 경제학자로 알려졌지만 리카도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평생을 자유무역을 수호하는데에 바친 인물이다.

영국 국회는 1774년 캘리코법을 폐지한다. 그리고 영국 면직물 산업은 바로 수출 붐을 맞이한다. 아래 그림을 보면 캘리코법 폐지 이후 면직물 수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17세기 후반이 되면 영국 면직물 생산의 61.3%를 수출하는데, 이게 자유무역으로 태세전환한지 20여년 만의 일이다.

오늘은 주로 팩트 나열 위주로 전개해봤다. 이 연재를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하게된다면 팩트에 더해서 면화산업을 중심으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논쟁, 산업혁명과 생산성 이야기, 제국주의에 대해 고민해본 이야기도 해볼 생각이다.

참고로 아래에는 지금까지 쓴 이야기와 (하게 된다면) 이어서 쓸 이야기 목차.

 

목차

  • 노예와 미국 남부의 목화농장들: 왜 미국이 목화 생산의 중심이 되었을까? 경쟁자들인 아시아(중국/인도), 캐리비안, 브라질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 19세기의 보호무역과 산업화 – 중상주의에서 산업 자본주의로의 전환기: 어떤나라들 (독일, 이태리, 미국북부)은 성공적 산업화에 성공하였으나 어떤 나라들 (이집트, 브라질, 인도)은 실패했다. 유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가 생긴 원인은 무엇일까?
  • 식민 국가들의 탈산업화 – 원재료인 목화를 사수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노력: 19세기 초반 제국주의자들은 어떻게 착취의 구조를 만들어 갔는가?
  • 노동자와 산업혁명, 아동착취와 노동 계급의 형성
  • 현대의 면화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