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 아이, 딱 그만큼의 감수성

언니가 만으로 열이고, 동생은 셋이다. 둘은 항상 함께 다니고, 같이 놀고, 서로 싸우고, 쉬지않고 질투한다.

언니가 잠깐 친구집에 놀러간다. 동생은 언제나 처럼 문밖으로 고개를 쑤욱 내민다. 복도 저멀리 사라지기까지 손을 흔든다. 앞으로 몇달은 못볼 사람처럼 아쉬워하며, 애달픈 눈초리로 배웅을 한다.

언니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문을 닫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한다. “언니한테 못한 말이 있어. 보고싶을꺼야 라고 꼭 했어야 했는데.”

내 딸이지만 지나치게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오면 꼭 잊지 말고 말하자. 언니가 친구네 가서 보고 싶었어 이렇게 말이야.”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등을 몇차례 토닥여주자, 진정을 하는 듯 했다. 큰숨을 몇차례 쉬고서 말을 잇는다. “그치만 언니가 오면, 그때는 언니가 보고 싶지 않은걸.”

어이를 상실했고, 눈물이 찔끔 날만큼 웃었다.

한시간 반정도 있다가 언니가 돌아왔다. 둘은 감격의 상봉을 했고, 세상 누구보다 사이 좋은 자매가 되어 논다. 십분 정도 지났나. 마음을 놓고 잠깐 페북을 하는 사이 애들방에서 싸우고 때쓰는 소리가 들린다.

자매 사이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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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엑소더스

최근 몇년간 뉴욕이나 엘에이, 시카고 (미국 3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블룸버그 기사.

More People Are Leaving NYC Daily Than Any Other U.S. City (Bloomberg, 8월 29일자)

뉴욕을 떠난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댈러스/피닉스/애틀란타. 소위 선벨트라 불리는 이 곳은 미국 안에서도 요즘 경기가 확실히 좋다.

아무래도 물가 (특히 집값)가 높은 곳에서 보자면, 집값과 세금이 싼 남부가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다. 남부는 세금이 싸고, 규제가 적어서 부동산도 저렴한 편이다. 덕분에 무분별한 개발이라는 부작용도 있긴 하지만 (2017년에 휴스턴 허리케인 하비의 피해가 컷었던 이유로 휴스턴의 난개발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사람이 몰리는데도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버블 얘기가 나오는 베이쪽, LA에 비하면 이쪽은 소폭 상승에 그침.

어쨌든 동부/서부에서 살인적인 집값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이건 느무나도 매력적인 것. 최근 지인도 메릴랜드 (워싱턴 생활권) 에서 댈러스로 옮기고서 큰 새집을 샀는데 정말로 만족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도 인건비가 저렴하면서도 인프라/교육이 나쁘지 않은 애틀란타나 댈라스 같은 곳이 매력적이다. 내가 사는 애틀란타도 본사가 이사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대표적으로 벤츠가 최근 뉴저지에서 애틀란타로 미국 본사를 옮겼다.

도시/인구 주제에 관심있어 할 것 같은 페친들이 생각나서 기사 공유.

relates to More People Are Leaving NYC Daily Than Any Other U.S. City

상선약수(上善若水)와 홍콩 시위

‘Be water, my friend.’ 이소룡이 남겼다는 어록이다. 도교의 상선약수를 이소룡의 말로 옮긴 셈이다. 홍콩의 시위 현장에서 상선약수가 등장했다고 해서 관련 영상을 공유한다.

https://youtu.be/V0iytr0qM90

시위가 10주를 넘기면서 점차 선을 넘나들고 있다. 홍콩 정부도, 중국 정부도, 시위대도 타협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대치가 언제까지 갈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5년전 우산시위와 한가지 차이점은 시위대의 전술적인 발전(?) 이다. 월가 점령을 본따서 했던 Occupy Central은 상징적인 장소에서 시위를 하고 그곳을 말그대로 점령했다. 시위대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었다. 이번 시위는 장기전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홍콩 시위대는 게릴라 작전을 펼친다.

그야말로 물흐르듯이…

보안을 염려하여 텔레그램으로 시위를 공지하고, 경찰이 투입되기 전에 해산한다. 최루탄이 발사되면 최루가스가 퍼지기 전에 잽싸게 traffic cone(주황색 깔대기)으로 덮고 물을 붓는다. 여행 가방과 쓰레기통 뚜껑을 방패로 쓰고, 레이져로 시선을 교란한다. 시위가 시작되면 마스크로 신원 노출을 막고, CCTV에 락카를 칠하여 감시장비를 무력화한다.

솔직히 홍콩 시위의 끝이 어디가 될 지 모르겠다. 시위에서 게릴라전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런지. 희망이 있기나 한건지.

그치만 이소룡이 말했다지. “water can flow or it can crash.” 그 끝에서는 무엇이 기다리는지 모르겠다만…

물이 되게나, 홍콩의 친구들이여. 다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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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수다

며칠전에 지인과 페북에서 코맥 맥카시 수다를 떨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영화를 본적이 없었고, 넷플릭스에서 찜만 해두었었다. 내게는 ‘언젠가는 보려 했지만 선뜻 손은 안가는’ 그런 류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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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넷플릭스에 들어가 보니 며칠안에 영화를 내린다고 했다. 나는 부리나케 영화를 봤다.

영화는 무겁고, 잔인하고, 불친절하다. 심지어 배경음악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워낙 몰입감이 쩔어서 보는 내내 숨죽이고 봤다. 나는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못 보는 건 아닌데, 굳이 불쾌한 경험을 찾아가며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킬러가 워낙 예측 불허라서 언제 사람을 죽일지 몰라 조마조마 하고 본 거 빼고는 그냥 볼만했다.

영화에 나오는 희대의 킬러 안톤 쉬거는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이다. 동전 던지기는 그에게 죽음과 삶을 가르는 신성한(?) 의식이다. 잠깐 생각해봤다. 작가가 인생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삶과 죽음은 결정적으로 운에 달렸다는 메세지를 주는게 아닐까 싶었다.

어떠한 아이디어를 극단적으로 밀어부치면 그 아이디어에는 논리적인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극단의 아이디어는 고유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사람의 생과 사가 우연으로 결정된다는 하나의 아이디어는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그 아이디어를 존재 자체로 증명하는 쉬거는 공포와 혼돈이다. 영화에서도 그는 사람들에게 싸이코패스라고 불린다.

이건 다른 이야긴데, 나는 머리 속에서 공리주의의 벤담이 떠올랐다. 언젠가 한번 수다를 떨 기회가 있겠지만, 세상의 모든 가치를 공리 utility로 압축하고 숫자로 quantify할 수 있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지나치게 극단적일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이 아이디어가 근대 서양의 수많은 사상의 토대가 (특히 경제학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되었다는 건 아이러니다.

영화를 보고서 위키를 찾아 읽었다. 어떤 분들은 쉬거의 존재를 재앙으로 해석하더라.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앙은 갑자기 들이닥친다. 이성적인 이해나,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 하다.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서 이성과 논리가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가. 평생을 계획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도 재앙의 방문에는 무력하다. 인간은 연약하고, 그럼에도 살아야하는 인생이 버겁다. 지인의 말처럼 (그리고 보완관 에드의 말처럼) overmatched이다. 극단적인 아이디어는 역시 극단적인 상황을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영화를 보며 한편으로는 내내 엘파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의 배경은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 도시 엘파소이다. 그리고 바로 며칠전 엘파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기 난사가 있었고 월마트에서 4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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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엘파소가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서 상상할 만한 그런 곳, 멕시코 갱단이 길거리를 활보하는 그런 곳은 당연히 아니다. 또 엘파소는 우리 트황상의 말만 들으면, 멕시코에서 건너온 범죄자들이 득실대고 총질과 마약거래를 보는게 일상인 동네일 것 같지만… 실상은 치안이 가장 좋은 동네 중 하나이다. 아무래도 군병력이 주둔한 곳이고 하다보니 오히려 안전한 동네가 됐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차로 10시간 걸려 댈러스에서 운전을 하고온 백인 우월주의자가 더 위험한 존재지.

국경지대라는 곳은 참 묘한 곳이다. 두개의 다른 국가의 정체성이 하나의 선으로 나뉘는 곳. 국가라는 정체성이 마찰을 일으키는 그곳 만큼 폭력을 상상하기 딱 어울리는 곳이 없다.

코맥 맥카시는 엘파소에서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핏빛 자오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말고도 국경 3부작을 썼는데… 그의 작품속에 그려진 폭력의 세계는 그 국경이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자란게 아닐까 싶었다. 요며칠 그 폭력을 영화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동시에 보았다. 영화처럼 현실도 불쾌하다.

고기로 만든 당근을 개발한 버거 체인점

대체육이 돌풍이다. Impossible Foods는 콩이랑 식물성 재료로 육질은 물론 피를 흘리는 육즙까지 구현했다. 얼마전 뉴욕시장에 상장한 또다른 대체육 기업 Beyond Meat도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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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Arby’s 라는 버거 체인점은 반대로 고기로 당근을 만들었다. 맛도 당근인지는 한번 먹어봐야 알겠지만, 나름 재미나서 킵.

관련기사: Arby’s Has an Answer to Plant-Based Meat: A Meat-Based Carrot (NYT, 7월 16일자)

버거 체인계에 대체육은 뜨거운 감자다. 버거킹과 화이트 캐슬이 대체육 메뉴를 이미 출시했다. 버거 체인은 아니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인 Cheesecake Factory도 대체육 메뉴가 있다. 맥도날드는 아직 메뉴 출시에는 조심스럽다고 한다.

Arby’s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 한정 메이저로 들어가는 체인중에 하나. 오히려 meat lover를 공략한다면서 반대쪽으로 가는 횡보를 보인다. Arby’s를 최근에 가본 일이 있었는데, 정말 풀 이파리 하나없이 고기로 꽉찬 미국식(?) 버거를 준다. 한국사람 입맛에는 좀 고난이도라는 인상을 받았다.

+ 덧: 확인해보니까 아직 고기 당근이 정식 메뉴로 출시는 안했다네요. 정식 출시 확률은 50대 50이랍니다. 기대해 봅니다. 한정 메뉴라도 출시하면 먹어볼 의향이 있는데 말이죠.

선택과 도전에 관하여

정지우님의 포스팅을 읽고서

http://www.facebook.com/writerjiwoo/posts/2303954116520415

그러게 말이다.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위로가 된다. 나두 어영부영, 어찌저찌 살다보니 40줄까지 왔다. 30대만 해도 삶을 만만하게 봤다. 겁없이 미국왔는데, 그만치 고생도 많았다. 도전은 다시 하라면 못한다. 이제 선택의 폭이 좁다는 걸 매순간 느낀다.

새로운 도전하는 분들을 존경하고, 동시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분들을 더욱 존경한다.

먹방 mukbang의 세계화

지난주에 페북에 올렸던 글 저장.


오늘자 NYT에 미국 먹방 mukbang 유튜버 기사가 올랐다. 이미 많이들 알고 있지만, 다시 설명하자면, 먹방은 이미 고유명사가 되어서 미국에서도 그냥 mukbang이라고 쓴다.

한국은 먹방의 역사가 근 10년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아프리카 tv에서 시작 이미 다양한 먹방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고 그렇다고 들었다.) 원조라 그런지 다양한 취향을 저격하는 먹방이 있다.

미국 먹방이 대단한 건 역시나 스케일. 기사가 소개하는 Gaskin씨는 현재 유튜브 팔로워가 180만 명에 이르고 인스타그램은 90만명의 팔로워가 있다고 한다. (Cardi B도 팔로워라고…) 최근에 스크린샷으로 공개한 바에 따르면 먹방으로 밀리언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ㅎㄷㄷ

그는 2017년 부터 먹방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유튜브에 요리 영상을 올리다가 사람들이 먹방에 더 반응이 좋은 걸 보고 먹방으로 아예 방향을 전환했다고. 남편은 아예 20년 다니던 GE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매니저를 뛰고 있다고. (진정한 셔터맨인가?)

이분은 먹방을 일종의 예배로 생각한다고 한다. 매번 먹기전에 기도하고, 신성하게 ‘쩝쩝’ 거린다. 미국 기준으로는 ‘쩝쩝’ 거리면서 먹는게 무례하지만 먹방은 예외다. 기사는 먹방 현상을 일종의 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로 읽더라.

재미있게 읽은 기사라 공유.

The Queen of Eating Shellfish Online (NYT, 6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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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갑자기 한국가서 치킨 뜯고 싶어져서 올린 양념치킨 이미지.

 

미드 체르노빌 1편 보고 남기는 짧은 감상

2편을 보는 중에 잠깐 첫감상을 남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잘알려진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스포랄 것도 별로 없다. 올해 HBO 대박 드라마 중 하나로 처음엔 기대작도 아니었는데, 입소문이 퍼져서 히트를 쳤다. 왕겜 마지막 시즌에 실망한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선사한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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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때문에 많은 분들이 탈원전 드라마로 생각하기 쉬울 텐데 꼭 그게 메인인 건 아니다. 드라마는 그냥 사건을 드라이 하게 보여준다. 보다보면 당연히 방사능의 무서움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긴 하지만, 아울러서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게되고, 해체 직전 소련의 엄청난 관료주의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드라마는 1980년대 소련 우크라이나 지역을 완벽히 재현했다고 평가 받는데, 정말 그자리에서 같이 있는 것 같다.

재난 상황을 겪고 대처하는 이야기라 (이 미드를 본다면) 어떤 분들은 교훈 같은 걸 현대의 우리가 겪었던 일들에 적용하려고 할 지도 모르겠다. 글쎄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이질적이고 충격이라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연결은 안되더라.

1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원전 폭발을 지켜보던 사람들. 방사능을 제외하면 그 장면은 몹시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리고 그게 더 오싹하다. 이 장면은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의 한 구절을 그대로 재현한 모양이다.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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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은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날 밤에 일어났어요. … 아직도 내 눈 앞에 진홍색 빛이 보이는 듯해요. 원자로가 안에서부터 빛나던 것이 기억나요. 신비로운 색깔이었어요. 그냥 평범한 불이 아니라 광채 같은 것이 났어요. 그 밖의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하면 매우 아름다웠다고도 할 수 있어요. … 우리 집은 9층이라 정말 잘 보였어요. 직선으로 3킬로미터 정도 거리였어요. 베란다로 나가 아이들을 들어 올리고는 “잘 봐! 기억해 둬!”라고 말했어요. 함께 보던 이들은 바로 원자로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어요. 기술자, 직원, 물리 선생님도 있었어요. 까만 먼지를 맞으며 서 있었어요. 얘기했어요. 숨 쉬었어요. 구경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한 번 보려고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차나 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우리는 죽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렇다고 해서 냄새도 안 났다는 건 아니에요. 봄이나 가을 냄새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 지구의 냄새가 아니었어요. 목이 따갑고, 눈물이 절로 흘렀어요. … 아침에 해가 떴을 때 주위를 돌아보자, 뭔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날 후나 지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그때 그렇게 느꼈어요. 영원히 바뀌었다는 기분……. / 나데즈다 페트로브나 비곱스카야, 전 프리퍄티 주민 (pp.263-264)

아 그리고 드라마 트레일러도 같이 첨부한다.

청동기 시대 베이글 발견

지난주 수요일에 페북에 올렸던 잡담.


오늘자 NYT 기사. 고고학자들이 3000년 전, 그러니까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 베이글을 발견했다고. 당연하게도 크림치즈는 없었단다. ㅎㅎ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빵에서 소금/설탕/유제품 같은 성분이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여기서 좀더 진지를 떨어 상상력을 보태보자면, 버터나 유제품류는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음식인데, (로마시대)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게르만족이 먹는 야만인 음식으로 취급되었다. 유적이 게르만 지역인 오스트리아에서 발견 되었으니까 여긴 버터가 있었을 법도 한데.

여튼 이놈의 베이글(엄밀히 말하면 베이글 모양 빵이겠지…)은 아무것도 가미가 안되어 있을테니 맛은 영 뻑뻑하지 않았을까 싶다.

경계인이 바라보는 홍콩

어제 페북에 올린 글을 옮겨 둔다.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치 않다. 일요일만 해도 대규모 시위 정도로 뉴스를 흘려 들었는데, 어제는 최루가스와 물대포가 등장했다. 주말 시위는 규모가 컸고 노인들과 가족들이 주축이었다. 많은이들이 처음 시위에 참여했었다. 반면 어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주였고, 그만큼 과격했다고 들었다.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신분을 숨기면서 최루탄을 대비하고 어느정도 충돌까지 각오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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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BC News)

오늘 아침 NPR 뉴스를 듣는데 감정이 동하더라. 기자가 시위현장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세 소녀를 인터뷰 했다. 기자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혼란스러운 홍콩을 떠날 생각도 있는가 물었다.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이란 생각이 살짝 들었다.) 의사가 되는게 꿈인 그 소녀는 가끔씩 떠날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치만 여기가 내 고향이고.. 그런데 여기. 살기가 참 힘드네요 라고 대답하고 울음을 떠트렸다. 울음을 멈추고서 소녀가 이어서 한말은 베이징 사람들은 홍콩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자유를 맛본 사람들이기에 그럴수 없다. 홍콩인들은 결코 베이징에 복종하지 않을 거다라고 말을 잇는다.

경계인. 어찌보면 나하고 별 상관 없는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내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경계인인 나의 정체성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조금 못되게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제 한국도 조금은 멀어진 경계인이 되어간다. 딸아이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친구들과 있으면 걔네들은 자기가 동양 사람 같다고 하고, 한국에 가면 미국애 같다고 한단다. 딸애 말에는 비감이 1도 섞이지 않았건만 나는 슬프게 들리더라.

홍콩은 참 독특한 곳이다. 이를테면 영국식 ‘tea culture’와 중국의 ‘차 문화’가 짬뽕되어 있다. 호텔 같은 곳에 가면 영국식으로 밀크티에 스콘과 케익을 곁들여서 즐길 수 있지만 바로 길건너 시장만 가도 중국식 차를 길거리에서 딤섬과 먹는다.

공교롭게도 차는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영국사람들은 대항해 시대에 중국이 재배하는 차에 맛을 들였다. 영국인은 차를 대신해서 은을 교환했었다. 그러나 금새 영국 은은 바닥이 났고 대안으로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보급한다. 그래서 시작된 아편 전쟁에서 영국은 승리했고, 홍콩을 중국에서 99년간 빼앗는 조약을 맺었다.

영국인은 홍콩에 영국 문화를 이식한다. 식민지배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겠지만, 100년의 시간은 그들을 중국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닌 홍콩인이 되게 했다.

2002년에 나는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갔었다. 그때의 경험이 나를 일종의 globalist로 만들었다. 나는 마냥 젊었고, 인종/성별/언어/나이에 관계없이 섞여서 어우러지는 그 감흥에 취했다. 그때 알았던 홍콩 출신 게리가 가끔 생각난다. 처음에는 중국 사람들은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북부 출신, 남부 출신, 내륙 출신 모두 달랐고, 대만과 홍콩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홍콩 출신이라면 왠지 모를 세련된 느낌?

홍콩은 이제 예전 같은 위상이 아니다. 한때 아시아의 진주로 불렸던 곳이나, 지금은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서 경제력이 크게 낫지도 않다. 바로 마주보는 선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지금의 홍콩은 시설이 낡고 오래된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9년의 식민지 경험은 홍콩을 독특한 곳, 그러니까 영국도 중국도 아닌 곳으로 만들었다. 홍콩인이 자신을 홍콩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 하게도 5년전 있었던 우산 운동이 계기였다. 우산운동은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실패한 혁명이다. 시위 주동자들은 지금 모두 감옥에 있고, 중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이를 기점으로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홍콩의 중산층이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홍콩대에서 연구한 여론 조사를 본적이 있다. 우산운동 이전까지는 자신을 홍콩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고 답한 사람이 점차 느는 추세였으나, 우산운동을 기점으로 추세가 역전이 되었다.

그리고 홍콩인 들은 천안문 사건을 추모하기 시작한다. 매해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서 촛불을 들고 천안문에서 죽은 학생들을 기억한다. 그 행사는 매년 커져서 수천명이 모이는 행사가 되었다. 정작 중국에는 천안문에 대한 언급 조차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홍콩은 (마카오를 포함) 유일하게 그것이 허용된 곳이다. 지난주에 있었던 30주년 행사도 몹시 컸다. (관련 뉴스 영상 아래) 올해가 마지막 합법적인 행사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더욱 몰렸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추모라는 건 참 우울하기 짝이 없다. 홍콩인들에게 30년전 천안문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찌보면 별 연관이 없다. 그때는 아직 영국의 통치아래 있었거든. 그런데도 그들은 그 사건에 크나큰 동질감을 느끼는 거다. 거대한 중국의 힘앞에서 어찌보면 아무 힘이 없는 저항인데, 그래도 그들은 끝까지 버틴다. 공교롭게도 30년전 6월에 중국 정부는 대학생시위에 군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지금도 동일하게 군대가 진군해 있다. 뭐랄까… 이럴때는 역사가 정말로 반복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언젠가 홍콩인들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인터뷰어가 우산 운동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데, 대답한다.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저 저항을 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