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말한 심재(心齋) 그리고 바울이 말한 자기 비움과 자족

오늘은 좀 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 이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회 참여/소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론은 기쁨/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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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장자 초상화)

장자의 4편 인간세(人間世)는 공자와 그의 제자 안회의 대화로 시작을 한다. (주: 안회는 공자의 수제자이고 공자의 자는 중니임) 원문: 장자 인간세편

안회가 중니를 만나 여행을 떠나겠다고 청했다. 이에 중니가 물었다.
” 어디로 가려는가?”
” 위나라로 떠나려 합니다.”
” 어째서 위나라로 가려 하는가?”
” 제가 듣기에 위나라 왕은 나이가 젊은데다가 행실이 사나워 나라일을 가벼이 경영하고 자기 허물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백성을 죽도록 함부로 내버려 두어 시체가 흡사 연못에 무성한 파초와도 같이 많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저는 일찍이 선생님께서, ‘잘 다스려지는 나라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들어가라, 어진 의사에게는 환자가 많이 모이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대로 다스리는 방법을 강구하면 위나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니가 말했다.
” 어허! 자네가 가면 필시 형벌을 받을 걸세. 무릇 도란 번거로움을 멀리 해야 되는 법이네. 복잡해지면 마음이 요동하게 되지. 자기 마음이 흔들리면 근심 걱정에서 구해 낼 수도 없다네. 옛 지인(至人)은 먼저 자신이 도를 갖춘 연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갔다네. 자네 자신도 아직 본래 면목을 회복하지 못했으면서 난폭한 사람의 행동을 어느 겨를에 막겠는가?’

그러자 안회는 공자에게 열심히 한결같이 설득하면 안되냐고 묻는다. 공자는 이에 안된다고 한다. 또 안회는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옛성인들의 말에 인용하여 설득하겠다고 하니 공자는 그것도 안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잘 안와닿는 사람들을 위해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어떤 학생이 수업시간에 술담배의 해악에 대해 배우고서 선생님께 묻는다. “선생님, 제 친구는 술담배를 합니다. 제가 오늘 수업시간에 배운대로 술담배의 안좋은 점을 설명하고 진심을 보여주면 친구가 술담배를 끊을까요?” “아니다.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성은 누구나 다 안다. 심지어 담배곽에도 니코틴과 타르의 해악을 경고하고 있다. 진심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애연가/애주가가 술담배를 끊을 것 같으냐? 오히려 건방지다고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술의 해악에 대한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와 독일의 흡연 극복 사례를 기분상하지 않도록 보여주면 그 친구가 마음을 돌이키실까요?” “아니다. 그렇게 하면 친구에게 두들겨 맞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변하지는 않을꺼야.”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안회의 안타까운 마음에 있다. 술담배 같이 문제가 분명한 것은 덜 복잡하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이야기 하거나, 정치를 이야기 하거나, 종교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장자가 살았던 고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안회는 이제 모르겠다고 하고 공자에게 어쩌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이때 바로 공자가 말하는 것이 심재(心齋)라는 것이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비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는 오로지 빈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심재이니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동양 사상에 조예가 없는 내가 심재에 대해 어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렴풋이 내가 이해하기로는 심재의 핵심은 자기를 비운다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장자>의 전체 문맥으로 보았을 때 물흐르는 듯이 사는 삶을 말하지 않나 싶다. <장자>는 물흐르는 듯이 사는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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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렘브란트, 감옥 안의 바울>

이제 바울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바울의 편지 중에 하나가 빌립보서이다. 바울은 평생 열렬한 기독교 전파자의 삶을 살았는데, 처형당하기 몇년 전에 감옥에 갇혀서 쓴 편지가 바로 성경의 빌립보서이다.

바울은 빌립보 편지에서 계속해서 기쁨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자기 속에 있는 기쁨을 묘사하면서 편지를 읽는 사람들에게도 기뻐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기쁨이라는 것은 편한 상황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고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그의 이런 인생의 자세는 흡사 달관한 도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빌립보 편지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의 모습에서 ‘자기 비움’을 발견한다.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그는 예수에 대해 ‘자기를 비웠다고(개역개정)’고 말한다. (영어로는 made himself nothing (NIV)’ 그리스어로는 케노시스(kenosis)라고 한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바울은 케노시스로 이해를 한 것이다.

빌립보서 전체는 바울의 ‘자기 비움’ 또는 ‘달관’의 삶의 자세가 가득차있다. 바울은 다른 예수 전도자들 사이에서도 시기를 받았는데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기와 다툼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릇된 동기에서든 참된 동기에서든 어쨌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므로 내가 기뻐하고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또 바울은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참되고 정결한 삶, 기뻐하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사는 법도 알고 부유하게 사는 법도 압니다. 배가 부르건 고프건 부유하게 살건 가난하게 살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장자 인간세편에서 질문을 던졌고, 바울의 빌립보 편지로 답을 했다. 안회의 이야기를 보면서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람은 옛날에도 많았구나 싶다. 젊은 혈기에 시시비비를 가리려 했다가는 잘난척한다는 소리 듣기 쉽상이다. 모른척 지나가자니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족/사회/국가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한때 사회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은 배신감으로 가득찬 염세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장자의 답변은 ‘심재’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심재’는 빌립보 편지에서 바울이 말하는 ‘자기 비움’이다. 바울은 평생 예수를 전하고 따르는 삶을 살았는데, 그가 전한 예수는 ‘케노시스’였고 그렇게 살다보니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한 것이다.

오늘 여러가지 뉴스들을 보면서 갑갑해진, 젊은 혈기로 가득차 있는 나를 위해 글을 써보았다. 조금 지루한 이야기 일 수도 있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One thought on “장자가 말한 심재(心齋) 그리고 바울이 말한 자기 비움과 자족

  1. Reblogged this on Isaac의 생각저장 창고 and commented:

    어제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몇몇 분들이 많이 속상해 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그 몇몇 분들은 삶과 사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들이기에 안스럽기도 하다.

    그 분들을 보면서 장자에 나오는 공자와 안회의 대화가 생각났다. 예전에 써둔 글이 있어서 재공유한다.

    이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사실은 그분들은 나의 글을 읽고 화가 나거나 욕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아량을 가지고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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