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만든 당근을 개발한 버거 체인점

대체육이 돌풍이다. Impossible Foods는 콩이랑 식물성 재료로 육질은 물론 피를 흘리는 육즙까지 구현했다. 얼마전 뉴욕시장에 상장한 또다른 대체육 기업 Beyond Meat도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Annotation 2019-07-17 131958

반면 Arby’s 라는 버거 체인점은 반대로 고기로 당근을 만들었다. 맛도 당근인지는 한번 먹어봐야 알겠지만, 나름 재미나서 킵.

관련기사: Arby’s Has an Answer to Plant-Based Meat: A Meat-Based Carrot (NYT, 7월 16일자)

버거 체인계에 대체육은 뜨거운 감자다. 버거킹과 화이트 캐슬이 대체육 메뉴를 이미 출시했다. 버거 체인은 아니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인 Cheesecake Factory도 대체육 메뉴가 있다. 맥도날드는 아직 메뉴 출시에는 조심스럽다고 한다.

Arby’s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 한정 메이저로 들어가는 체인중에 하나. 오히려 meat lover를 공략한다면서 반대쪽으로 가는 횡보를 보인다. Arby’s를 최근에 가본 일이 있었는데, 정말 풀 이파리 하나없이 고기로 꽉찬 미국식(?) 버거를 준다. 한국사람 입맛에는 좀 고난이도라는 인상을 받았다.

+ 덧: 확인해보니까 아직 고기 당근이 정식 메뉴로 출시는 안했다네요. 정식 출시 확률은 50대 50이랍니다. 기대해 봅니다. 한정 메뉴라도 출시하면 먹어볼 의향이 있는데 말이죠.

선택과 도전에 관하여

정지우님의 포스팅을 읽고서

http://www.facebook.com/writerjiwoo/posts/2303954116520415

그러게 말이다.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위로가 된다. 나두 어영부영, 어찌저찌 살다보니 40줄까지 왔다. 30대만 해도 삶을 만만하게 봤다. 겁없이 미국왔는데, 그만치 고생도 많았다. 도전은 다시 하라면 못한다. 이제 선택의 폭이 좁다는 걸 매순간 느낀다.

새로운 도전하는 분들을 존경하고, 동시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분들을 더욱 존경한다.

먹방 mukbang의 세계화

지난주에 페북에 올렸던 글 저장.


오늘자 NYT에 미국 먹방 mukbang 유튜버 기사가 올랐다. 이미 많이들 알고 있지만, 다시 설명하자면, 먹방은 이미 고유명사가 되어서 미국에서도 그냥 mukbang이라고 쓴다.

한국은 먹방의 역사가 근 10년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아프리카 tv에서 시작 이미 다양한 먹방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고 그렇다고 들었다.) 원조라 그런지 다양한 취향을 저격하는 먹방이 있다.

미국 먹방이 대단한 건 역시나 스케일. 기사가 소개하는 Gaskin씨는 현재 유튜브 팔로워가 180만 명에 이르고 인스타그램은 90만명의 팔로워가 있다고 한다. (Cardi B도 팔로워라고…) 최근에 스크린샷으로 공개한 바에 따르면 먹방으로 밀리언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ㅎㄷㄷ

그는 2017년 부터 먹방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유튜브에 요리 영상을 올리다가 사람들이 먹방에 더 반응이 좋은 걸 보고 먹방으로 아예 방향을 전환했다고. 남편은 아예 20년 다니던 GE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매니저를 뛰고 있다고. (진정한 셔터맨인가?)

이분은 먹방을 일종의 예배로 생각한다고 한다. 매번 먹기전에 기도하고, 신성하게 ‘쩝쩝’ 거린다. 미국 기준으로는 ‘쩝쩝’ 거리면서 먹는게 무례하지만 먹방은 예외다. 기사는 먹방 현상을 일종의 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로 읽더라.

재미있게 읽은 기사라 공유.

The Queen of Eating Shellfish Online (NYT, 6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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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갑자기 한국가서 치킨 뜯고 싶어져서 올린 양념치킨 이미지.

 

미드 체르노빌 1편 보고 남기는 짧은 감상

2편을 보는 중에 잠깐 첫감상을 남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잘알려진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스포랄 것도 별로 없다. 올해 HBO 대박 드라마 중 하나로 처음엔 기대작도 아니었는데, 입소문이 퍼져서 히트를 쳤다. 왕겜 마지막 시즌에 실망한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선사한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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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때문에 많은 분들이 탈원전 드라마로 생각하기 쉬울 텐데 꼭 그게 메인인 건 아니다. 드라마는 그냥 사건을 드라이 하게 보여준다. 보다보면 당연히 방사능의 무서움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긴 하지만, 아울러서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게되고, 해체 직전 소련의 엄청난 관료주의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드라마는 1980년대 소련 우크라이나 지역을 완벽히 재현했다고 평가 받는데, 정말 그자리에서 같이 있는 것 같다.

재난 상황을 겪고 대처하는 이야기라 (이 미드를 본다면) 어떤 분들은 교훈 같은 걸 현대의 우리가 겪었던 일들에 적용하려고 할 지도 모르겠다. 글쎄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이질적이고 충격이라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연결은 안되더라.

1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원전 폭발을 지켜보던 사람들. 방사능을 제외하면 그 장면은 몹시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리고 그게 더 오싹하다. 이 장면은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의 한 구절을 그대로 재현한 모양이다.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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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은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날 밤에 일어났어요. … 아직도 내 눈 앞에 진홍색 빛이 보이는 듯해요. 원자로가 안에서부터 빛나던 것이 기억나요. 신비로운 색깔이었어요. 그냥 평범한 불이 아니라 광채 같은 것이 났어요. 그 밖의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하면 매우 아름다웠다고도 할 수 있어요. … 우리 집은 9층이라 정말 잘 보였어요. 직선으로 3킬로미터 정도 거리였어요. 베란다로 나가 아이들을 들어 올리고는 “잘 봐! 기억해 둬!”라고 말했어요. 함께 보던 이들은 바로 원자로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어요. 기술자, 직원, 물리 선생님도 있었어요. 까만 먼지를 맞으며 서 있었어요. 얘기했어요. 숨 쉬었어요. 구경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한 번 보려고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차나 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우리는 죽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렇다고 해서 냄새도 안 났다는 건 아니에요. 봄이나 가을 냄새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 지구의 냄새가 아니었어요. 목이 따갑고, 눈물이 절로 흘렀어요. … 아침에 해가 떴을 때 주위를 돌아보자, 뭔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날 후나 지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그때 그렇게 느꼈어요. 영원히 바뀌었다는 기분……. / 나데즈다 페트로브나 비곱스카야, 전 프리퍄티 주민 (pp.263-264)

아 그리고 드라마 트레일러도 같이 첨부한다.

청동기 시대 베이글 발견

지난주 수요일에 페북에 올렸던 잡담.


오늘자 NYT 기사. 고고학자들이 3000년 전, 그러니까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 베이글을 발견했다고. 당연하게도 크림치즈는 없었단다. ㅎㅎ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빵에서 소금/설탕/유제품 같은 성분이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여기서 좀더 진지를 떨어 상상력을 보태보자면, 버터나 유제품류는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음식인데, (로마시대)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게르만족이 먹는 야만인 음식으로 취급되었다. 유적이 게르만 지역인 오스트리아에서 발견 되었으니까 여긴 버터가 있었을 법도 한데.

여튼 이놈의 베이글(엄밀히 말하면 베이글 모양 빵이겠지…)은 아무것도 가미가 안되어 있을테니 맛은 영 뻑뻑하지 않았을까 싶다.

경계인이 바라보는 홍콩

어제 페북에 올린 글을 옮겨 둔다.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치 않다. 일요일만 해도 대규모 시위 정도로 뉴스를 흘려 들었는데, 어제는 최루가스와 물대포가 등장했다. 주말 시위는 규모가 컸고 노인들과 가족들이 주축이었다. 많은이들이 처음 시위에 참여했었다. 반면 어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주였고, 그만큼 과격했다고 들었다.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신분을 숨기면서 최루탄을 대비하고 어느정도 충돌까지 각오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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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BC News)

오늘 아침 NPR 뉴스를 듣는데 감정이 동하더라. 기자가 시위현장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세 소녀를 인터뷰 했다. 기자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혼란스러운 홍콩을 떠날 생각도 있는가 물었다.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이란 생각이 살짝 들었다.) 의사가 되는게 꿈인 그 소녀는 가끔씩 떠날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치만 여기가 내 고향이고.. 그런데 여기. 살기가 참 힘드네요 라고 대답하고 울음을 떠트렸다. 울음을 멈추고서 소녀가 이어서 한말은 베이징 사람들은 홍콩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자유를 맛본 사람들이기에 그럴수 없다. 홍콩인들은 결코 베이징에 복종하지 않을 거다라고 말을 잇는다.

경계인. 어찌보면 나하고 별 상관 없는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내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경계인인 나의 정체성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조금 못되게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제 한국도 조금은 멀어진 경계인이 되어간다. 딸아이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친구들과 있으면 걔네들은 자기가 동양 사람 같다고 하고, 한국에 가면 미국애 같다고 한단다. 딸애 말에는 비감이 1도 섞이지 않았건만 나는 슬프게 들리더라.

홍콩은 참 독특한 곳이다. 이를테면 영국식 ‘tea culture’와 중국의 ‘차 문화’가 짬뽕되어 있다. 호텔 같은 곳에 가면 영국식으로 밀크티에 스콘과 케익을 곁들여서 즐길 수 있지만 바로 길건너 시장만 가도 중국식 차를 길거리에서 딤섬과 먹는다.

공교롭게도 차는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영국사람들은 대항해 시대에 중국이 재배하는 차에 맛을 들였다. 영국인은 차를 대신해서 은을 교환했었다. 그러나 금새 영국 은은 바닥이 났고 대안으로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보급한다. 그래서 시작된 아편 전쟁에서 영국은 승리했고, 홍콩을 중국에서 99년간 빼앗는 조약을 맺었다.

영국인은 홍콩에 영국 문화를 이식한다. 식민지배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겠지만, 100년의 시간은 그들을 중국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닌 홍콩인이 되게 했다.

2002년에 나는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갔었다. 그때의 경험이 나를 일종의 globalist로 만들었다. 나는 마냥 젊었고, 인종/성별/언어/나이에 관계없이 섞여서 어우러지는 그 감흥에 취했다. 그때 알았던 홍콩 출신 게리가 가끔 생각난다. 처음에는 중국 사람들은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북부 출신, 남부 출신, 내륙 출신 모두 달랐고, 대만과 홍콩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홍콩 출신이라면 왠지 모를 세련된 느낌?

홍콩은 이제 예전 같은 위상이 아니다. 한때 아시아의 진주로 불렸던 곳이나, 지금은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서 경제력이 크게 낫지도 않다. 바로 마주보는 선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지금의 홍콩은 시설이 낡고 오래된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9년의 식민지 경험은 홍콩을 독특한 곳, 그러니까 영국도 중국도 아닌 곳으로 만들었다. 홍콩인이 자신을 홍콩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 하게도 5년전 있었던 우산 운동이 계기였다. 우산운동은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실패한 혁명이다. 시위 주동자들은 지금 모두 감옥에 있고, 중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이를 기점으로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홍콩의 중산층이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홍콩대에서 연구한 여론 조사를 본적이 있다. 우산운동 이전까지는 자신을 홍콩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고 답한 사람이 점차 느는 추세였으나, 우산운동을 기점으로 추세가 역전이 되었다.

그리고 홍콩인 들은 천안문 사건을 추모하기 시작한다. 매해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서 촛불을 들고 천안문에서 죽은 학생들을 기억한다. 그 행사는 매년 커져서 수천명이 모이는 행사가 되었다. 정작 중국에는 천안문에 대한 언급 조차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데, 홍콩은 (마카오를 포함) 유일하게 그것이 허용된 곳이다. 지난주에 있었던 30주년 행사도 몹시 컸다. (관련 뉴스 영상 아래) 올해가 마지막 합법적인 행사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더욱 몰렸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추모라는 건 참 우울하기 짝이 없다. 홍콩인들에게 30년전 천안문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찌보면 별 연관이 없다. 그때는 아직 영국의 통치아래 있었거든. 그런데도 그들은 그 사건에 크나큰 동질감을 느끼는 거다. 거대한 중국의 힘앞에서 어찌보면 아무 힘이 없는 저항인데, 그래도 그들은 끝까지 버틴다. 공교롭게도 30년전 6월에 중국 정부는 대학생시위에 군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지금도 동일하게 군대가 진군해 있다. 뭐랄까… 이럴때는 역사가 정말로 반복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언젠가 홍콩인들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인터뷰어가 우산 운동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데, 대답한다.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게 아니라. 그저 저항을 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거라고.

그 많던 imaginary freinds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달에 딸아이 imaginary friends에 대해 포스팅을 한적이 있다.

지난번 포스트 링크

포스팅을 하고서 딸아이에게 (만으로) 5 이야기를 나누던 imaginary friends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기대와는 달리,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딸아이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딸아이와 예전 기억을 되밟아보았다. 그리고 그당시 그림일기를 찾았다. 사진으로 찍어 올려둔다. 딸아이가 말하기로, 상상속의 친구들은 무리로 다녔는데, 같은 그룹은 같은 색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

막 글쓰기를 배우던 때라 스펠링이 재미나다. 들리는 데로 쓴 영어다. 아이가 쓴 ‘Mi imaginere frends lok lic this.’는 ‘My imaginary friends look like this.’ 로 읽힌다.

 

 

의심하는 믿음

오늘 설교는 기적과 신앙에 대해서였다.

아무래도 부활절에 곱씹을 만한 주제여서 예전에 갈무리해두었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칼럼 주제는 의심하는 신앙에 대해서이다. 즐겨읽는 NYT 철학 연작 칼럼 기사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기에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 신앙에서 거리낌이 된적이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관심사인 적도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기적에 대한 각자의 태도가 개개인의 기독교 신앙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글을 갈무리 해둘 그당시 생각을 정리했던 글을 꺼내서 재공유한다. 내가 올렸던 글은 링크에..

신앙과 기적에 관하여 (2018년 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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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도마 사도)

2019년 봄, 뉴욕 트립 메모

바람쐬러 4년만에 뉴욕에 왔다. 처남집에 머물면서, 여기 친구들을 빼곡히 만났고, 틈틈히 관광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4박 5일을 보냈다.

뉴욕은 매번 올때마다 새롭다. 이번 방문에서는 4년전에 왜 뉴욕에 살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는지, 그럼에도 동시에 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가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마침 그 당시 공감하며 읽었던 가디언지 기사 생각이 나서 링크를 남겨둔다.

A tale of two New York Cities: I was rich, my brother was down and out (the Guardian, 2014년 10월 24일자)

 

File:Above Gotham.jpg

센트럴 파크의 봄

몇주전 맨해튼 바람쐬러 갔을 때 남긴 메모.


어제 맨해튼은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은날 센트럴 파크는 산책을 하기도 좋고, people watching을 하기도 좋다.

누군가는 센트럴 파크에서 조깅을 하는게 로망이라, 그꿈을 쫓아서 살다가 보니 뉴욕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내는 맨해튼에서 학교 다니며 5년을 살면서도 1번을 가본게 전부였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마침 화창한날, 놀러나온 센트럴 파크 사람들을, 모자이크처럼 만든 동영상 클립보고서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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