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S 아카이브와 미국 여성

UPS는 역사가 100년이 넘다보니, 회사 아카이브에도 흥미로운 자료들이 가끔 있다. 그중 하나가 아래 자료.

링크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1920년대 이지만, 그렇다고 실제적인 의미에서 평등이 보장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게 반전 된게 알다시피, 2차세계대전. 미국이 참전을 하고 남자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자,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으로 인해 여성들이 공장으로… 또는 UPS 같은 택배 회사로 진출했다. 같은 다이나믹으로 인해 여성들의 근로 여건 또한 대폭 개선된다.

물론 전시상황이 끝나자, 다시 여성에게 전업주부의 역할이 요구되긴 하지만, 이때의 경험이 이어진 60-70년대 여권운동의 기틀을 다졌다고 보는게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 덧: UPS는 사무실 직원도 교육차원에서 상하차 일과 택배 배달을 몇주 시킨다. 물류센터 현장에 가보면 여성들이 간혹 있다. 일을 같이 해보면서 여성이 이렇게 험한일을 어떻게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치만 딱히 여자라고 살살하는 것도 없다. 사실은 터프한 언냐들이 무서웠다는…

 

반독점 규제에 대한 미국 민주당 대권주자들의 입장들

요 며칠 미국 반독점 규제 관련 논란 포스팅을 했는데, 마침 오늘 NYT에 관련 기고문이 올라와서 공유한다. 한참 필받은 김에 메모 차원에서 한번 더…

Antitrust Returns to American Politics (NYT, 3월 13일자)

기고문은 콜롬비아 법대 교수 Tim Wu가 올렸고, 이 사람은 망중립성 논쟁에서 꽤 지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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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 Wu, 1972 – )

Wu 교수가 주장하기로 현재 미국은 1912년 선거 때 대기업의 과도한 독점이 주요 쟁점이었던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내용은 딱히 새로울 건 없지만, 현재 민주당 대권 주자들이 반독점 규제 이슈에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는지 정리하기 좋은 아티클.

이를테면 워렌은 반독점의 운동의 선두주자 격이고, 샌더스는 “break them up”입장이나 다만 테크 기업보다는 그 타겟이 금융권으로 향하고 있다. 뉴저지의 Cory Booker도 대기업 집중 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한바 있다.

반면 아직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바이든은 ‘친기업적’이다. (곧 출마선언을 할 걸로 보이긴 한다.) 아무래도 바이든은 기존의 오바마/힐러리 노선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알다시피 이쪽은 실리콘 밸리 기업인들과 꽤 친하게 지냈고… 먼 옛날의 일이지만 1970년대에도 바이든은 반독점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좀 독특한 사람이 Klobuchar 의원인데, Klobuchar는 보통 중도 라인으로 분류되지만, (이를테면 요즘 민주당에서 인기있는 medicare for all을 실현가능성이 없다며 반대한다.) 반독점 이슈에 한해서는 워렌과 방향을 같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리콘 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인 Harris는 아직 분명한 입장이 없는 상태.

반독점 규제 논란에 대해 추가 설명

한 페친분께서 어제 올린 미국 반독점규제 논란 포스팅에 대해 질문을 해주셔서 답하다가 길어져서 아예 포스팅으로 올린다.

어제 포스트 링크

근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어제 포스팅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내 페북이래야 워낙 한가로운 곳인데, 무슨일인가 생각해보니 한국도 최근 재벌 개혁 문제가 큰 화두였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더랬다.

나는 몸이 외국에 있다보니 한국뉴스를 자세히 보지는 않는 편이다. 딱히 한국 하고 연결점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미국 사는 사람 입장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든 거니까, 물건너 미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게 떨어지지 않으니까 미국 얘기도 전혀 시의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래는 답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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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게 읽어주시고 질문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메모를 남기면서 가볍게 언급했지만 진보측 경제학자들은, 대표적으로 Alan Krueger, 대기업들이 monopsony를 가져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고문 링크는 아래 참조)

Corporate America is suppressing wages for many workers (NYT, 2018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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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Krueger (1960 – )

저는 개인적으로 크루거의 견해에 100% 동의도 반대도 하지는 않지만, 그에 따르면 대기업이 노동시장의 우위를 점하면서, 그리고 노조의 약화와 어우러져서, buying power로 실업률이 최저임에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건 지나치게 거시적이라 긴가민가 하는 편이고, 이렇게 문제를 크게 보면 독점에 대한 논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 같네요. 하지만 테크 대기업의 예로 범위를 좁혀도, 실리콘 밸리에서도 실제로 타기업의 직원을 고용하지 않기로한 담합이 있었다는게 밝혀졌었죠. (물론 이도 독점범주에 들어가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말입니다.)

다른 예로는 아마존이 될텐데, 실제로 2009년에 아마존이 diaper.com을 살때, 아마존에서 기저귀 값을 저가로 내놓고, diaper.com 주가가 떨어진 후에 기업을 샀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아마존의 강점인 저가 공세를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어느정도 시장을 장악한 이후에는 가격을 올리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하고요. 그런 점들이 아마도 말씀하신 당장은 좋아도, 장기적으로는 찝찝한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이게 경제학적으로 보면 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어제 글에서 Bork 교수의 예를 들었는데, antitrust를 판별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Bork가 말한 Consumer welfare 기준은 상황을 좀더 명쾌하게 볼 수 있게 하죠. consumer welfare가 경제학 용어인 consumer utility보다는 좀 애매하긴 합니다만…) 다른 논리로 1970년대 Harold Demsetz 교수가 말한데로 antitrust가 과하게 적용되면 시장에서의 승리를 벌하는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거죠. (이 논리는 지금도 반독점 규제를 반대하는 분들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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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old Demsetz (1930 – 2019)

제 생각으로는 new brandeis movement는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 대기업으로의 지나친 부의 집중이 한편으로 우려스럽지만, 또 아이폰과 페북을 즐겨쓰는 유저이기도 한걸요.

물론 저도 뉴 브랜다이즈 쪽에서 주장하는데로 지나친 기업의 집중이 경쟁을 줄이고 시장경제를 왜곡한다는 말에 솔깃 합니다. 그리고 구글/아마존/페북 같은 기업을 플랫폼 기업으로 보고, 셔먼 액트 시대 처럼 철도등의 인프라를 규제하듯이 규제를 해야한다는 아이디어도 대중에게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을 늘이는게 도대체 뭘 위한 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비자에게 도움을 줄 건데? 철도 처럼 규제하면 결국 대체제에만 (이를 테면 도로망, 수로망) 도움을 주는 역효과 생기는 거 아냐? 하는 질문에는 정확히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정치권은 학계처럼 정밀한 검증이 필수적인 곳이 아니니까 (특히 민주당에서) 이쪽으로 아주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워렌이 있고요. 중도라인으로 Klobuchar도 반독점 법에 대해 손볼 필요가 있다고 한 적이 있죠. 다른 대선 주자 Cory Booker도 독점법이 monopsony 쪽으로는 지나치게 미흡하다는 발언을 한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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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y Klobuchar (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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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y Booker (1969 – )

얘기가 주저리 길어졌는데, 어쨌든 제 생각은 현재의 반독점 규제는 어느정도 수정이 필요하다는데에는 동의하지만 그게 얼만큼인지는 또 수정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고칠 건지 아직도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경제학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 반독점 규제 논란과 그 역사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 중 하나인 워렌 의원이 최근 공약으로 테크 대기업들, 즉 아마존/구글/페북의 분할을 내세워서 화제이다. 심지어는 한국 뉴스에서도 보도를 할 정도.

미국판 재벌개혁워런아마존·페북·구글 분할 (조선일보, 3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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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주제에 다소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핸펀으로 메모를 남겨본다.

기사만 보면 지상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이게 왠일인가 싶지만, 독과점 (특히 테크기업의) 이슈는 최근 미국 경제/정치 쪽에서 이미 상당히 뜨거운 이슈이다. 이쪽으로 급진적인(?) 경제학자들은 테크기업의 모노폴리를 monopsony 수요독점 이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반독점 운동은 소위 New Brandeis Movement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워렌은 New Brandeis Movement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정치인 중에 하나이다.

2016년 워렌이 open market event에서 한 연설은 일종의 New Brandeis Movement의 요약문으로 들릴 정도이다. 참고로 연설문 링크를 남겨둔다. 11페이지 분량이고 주석이 친절하게 달려있어 추가 공부를 하기에도 좋다.

2016 엘리자베스 워렌 반독점 정책 연설 전문 (2016년 6월 29일자)

뉴 브랜다이즈 운동 관련해서 최근 기사는 아래 NYT 기사를 참조하면 될 것 같다. 아래 기사는 독점법 관련 젊은 스타 법학자 리나 칸 (30세)을 소개하고 있다.

Amazon’s Antitrust Antagonist Has a Breakthrough Idea (NYT, 2018년 9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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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독점 관련 논쟁의 역사를 좀 살펴보자. 1890년 루즈벨트의 Sherman Act와 1914년 우드로 윌슨의 Clayton Act를 우선 봐야할 것 같다. Sherman Act는 지금 엑손 모빌의 전신인 스탠다드 오일과 American Tobacco Company를 분할 시키는 근거가 된 법이다. 그리고 그당시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루이스 브랜다이즈 대법원 판사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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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다이즈의 말을 하나 인용해보자면, “We may have democracy, or we may have wealth concentrated in the hands of a few, but we can’t have both.” 이 있다.

2세기 전의 이 말이 현대 미국 젊은이들에게도 상당히 공감을 주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반독점 운동을 ‘뉴 브랜다이즈 운동’이라고 명명한게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셔먼 액트 시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자 반독점의 흐름은 피크를 친다. 기업이 커지면 연방정부가 눈여겨 보기 시작했고, 자영업자 같은 분들이 소송을 걸면 법원은 항상 ‘소위’ 약자의 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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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1966년 von’s grocery case. 60년에 지역 마트를 사서 캘리포니아에 진출한 회사가 반독점법에 걸린다. 합병 이후에도 그회사의 지역 시장 점유율은 7.5%에 불과함에도.

1967년 Utah pie case. 전국구 규모의 냉동 파이 회사가 싼 가격을 무기로 지역 파이 시장에 진출하려 했으나, 동네 파이 가게의 시장을 잠식한다는 이유로 반독점에 걸린다. 물론 소송건 파이가게가 지역독점을 하고 있고 이로 돈을 번다는 건 안 비밀.

판결문 링크
1966 US v. Von’s Grocery Co.
1967 Utah Pie v. Continental Baking Co.

상황이 이쯤 되자 사람들이 반독점 규제에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에 이르자 반독점의 기세는 누그러들었다. 그 기세가 완전히 꺽어진건 1978년 Robert Bork 판사에 의해서다. (참고로 Bork 판사는 DC circuit의 판사로 재직했고 레이건에 의해 대법원 판사 후보에 올랐으나 의회 인준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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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k 판사는 지금까지도 반독점법 관련 고전으로 읽히는 Antitrust Paradox라는 책을 출판한다. 시카고 로스쿨 출신 Bork는 시카고의 밀턴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세운 독점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consumer welfare에 해가 되는가 아닌가였다.

그러니까 현대의 기준으로, 또는 Bork 판사의 기준으로, 브랜다이즈가 주장한 이야기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경제학을 모르는 사람이 할법한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들은 뉴 브랜다이즈 운동을 hipster economy 라며 무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 계속 논란이 되는 불평등의 문제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던 시장경제의 약속은 어디로 가고, 독점 (또는 monoposony) 는 왜 점점 심화되고 있고, 자영업/중소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M&A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실제적인 의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다.

참고로 이건 최근 벌어지고 현상이고 팩트이다. (해결책이나 분석은 자신이 밟고 있는 이념의 토대에 따라 상이할 수 있겠지만…) 관련해서 3년전에 자료를 정리한 적이 있는데 아래 링크를 참조하면 될 것 같다.

커져가는 반기업 정서, 그리고 독과점 이슈 (2016년 9월 29일자)

너무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는데 점심시간도 끝나가니 내 의견을 남기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이런 어려운 얘기에 내가 답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벌려놨으니 아직 정리가 안된 생각이라도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아서.

사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에 들어서 논란이 되는 반독점 규제 이슈는 애매하기 짝이 없고 답도 없다. Antitrust paradox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부분 소비자가 손해보았는가 물어본다면 대답이 어렵다.

소셜 미디어는 (광고를 제외하면) 소비자에게 공짜이기에 페북이 독점한다고 해서 광고가 귀찮은 이상의 어떤 경제적인 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소비자는 페북에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정보라는게 페북수준으로 데이타를 모으기 전까지는 돈되기 힘들고, 그렇게 신경쓰는 사람도 드물다.

비즈니스 모델만 거칠게 보자면 구글도 뭐 매한가지고. 애플/아마존이 독점한다고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야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준다면야 뭐…. (한가지 흥미로운 건 1990년대 독점 논쟁의 중심에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 완전히 이미지를 쇄신했고 심지어는 페이스북/아마존과 비교해 착한 기업 이미지까지 있다.)

결국 현대에서 문제가 되는 독점은 경제학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부의 집중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해 따라오는 권력의 집중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그 옛날 브랜다이즈는 독점의 문제를 민주주의의 문제로 보았었다. 생각해보면 권력을 분리한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미국적이다. 나는 미국 정치철학은 근본적으로 권력을 분리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가끔 실리콘밸리 쪽 분들을 만나면 드는 생각이 이분들은 혁신을 하다보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분들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존경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배배꼬인 생각이 든다. 세상과 동떨어져 보이는 고고한 자태가 어디까지 가능할까. 정치도 규제도 딴 세상 이야기이고 숭고한 혁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듯이 말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배배꼬인 관점이다. 나는 그분들의 열정과 선의를 믿는다. 그리고 그를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서 누리며 살고 있다. 당장 이 메모도 아이폰으로 페북에다 남기고 있는 걸. 그러나 사람과 선의를 믿는 것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제는 주체 못하고 커진 힘에 더이상 책임감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아닐까. 페이스북이 최근 곤혹을 겪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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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 First가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주범일까?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10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문제라는 정의를 따르자면 America First 라는 구호가 무색하다. 그렇지만 트럼프 정부가 최근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유심히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경상수지 적자 기록이 딱히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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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Trump’s Huge Trade Deficit Means America Is Doing Great (Bloomberg 3월 6일자)

트럼프가 주장하는데로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큰 흑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파렴치한 도둑인 것일까?

경상수지 흑자는 사실 경제가 잘 나가는 것과 1도 연관이 없다. Balance of Payment의 관점에서 보면 경상수지 흑자는 국가 경제의 지출이 소득보다 작아서 해외에 저축하는 (바꿔 말하면 경제 규모에 비해 내수가 위축되어 있는) 상태로 보는게 더 정확하다. 현재 미국 경제는 정확히 그 반대의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의 법인세 인하는 국내 경기를 활성화하는 정책이고, 작년부터 꾸준히 있어왔던 강달러와 금리 인상은 자본수지 흑자, 바꿔 말하면 경상수지 적자를 부추기는 일이다.

자세한 설명은 작년 10월에 올렸던 포스팅 참조.

경상수지 흑자의 의미 – 유럽 케이스를 중심으로 (2018년 10월 10일자 포스트)

하우스 오브 카드에 나오는 남부 사투리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면 캐빈 스페이시가 쓰는 영어가 좀 독특하다. 스페이시는 원래는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배역이 남부 출신 정치인이기에 그쪽 사투리를 구사하는 거다. 연기할 때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기에 사투리만큼 효과적인게 없는데, 캐빈 스페이시가 드라마에서 남부 사투리를 이런 용도로 잘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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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쪽 억양에 익숙하다. 좀 나이가 되신 여기 토박이들, 아니면 좀 시골로 가거나 아니면 남부 흑인 영어에서 이와 유사한 억양을 종종 듣는다.

남부에 살기 전에는 여기 사람들은 다 남부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짙은 남부 사투리를 구사하는 분이 별로 없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투리가 점차 사라지는 경향이 있고 애틀란타도 나름 대도시라 토박이가 아닌 사람들이 꽤 섟이기 때문이다.

방금 한 페친과 하오카에 나오는 스페이시 억양가지고 댓글 수다 떨었다. 흥미로워 할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여기다가도 옮겨 둔다.

아래는 해당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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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는 남부 지방 사투리입니다. 캐롤라이나나 조지아쪽의 백인 노인들 또는 흑인들이 쓰죠. Wh 뿐 아니라 r-dropping, ay-ungliding이 특징입니다. 예전에는 (남북 전쟁 시기쯤?) 남부 귀족이 쓰는 말투였다고 합니다. 이를 테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이 r-dropping을 하죠.

기원을 따져보면 18세기 아일랜드계 이주민이 그쪽에 정착을 해서 생긴 영향이라고 합니다. 재미있게도 아일랜드도 r-dropping을 하는 경향이 남아있는데 북아일랜드 출신 배우 리암리슨도 토크쇼에서 그런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하오카 캐빈 스페이시 사투리 관련해서 vox 동영상이 있는데, 영어지만 자막을 활용하면 충분히 소화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미국판 복면가왕

복면가왕 미국판이 반응이 좋다고. 첫방에서 900만 정도가 시청했다고 한다.

뉴요커지 리뷰를 읽어보니, (링크) 미국판은 한국판과 달리 화려한 가면이 더욱 주목을 받는 듯하다. 내 기억에 한국판 복면가왕에서 초반 논란은 막귀 판정단이었다. 실력파 가수들이 떨어지면 매번 논란이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은 공정성 논란이 젤 화력이 세다.

뉴요커지 리뷰어는 다 큰 어른들이 요란한 분장을 한 셀럽들의 공연을 보고 추측게임을 하는게 기묘하다는 평을 내놓는다. ‘블랙미러’ 세대의 예능을 보는 것 같다나. 그도 그럴 것이 미국판은 의상 하나당 수억원의 제작비용을 썼다고 하니, 의상 자체가 볼거리.

아직 안봤는데, 오늘 집에 가서는 한번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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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복면 가왕

주디 해리스 박사

양육가설을 쓴 주디 해리스 박사가 돌아가셨다고. (2018년 12월 30일)

Judith Rich Harris, 80, Dies; Author Played Down the Role of Parents (NYT, 1월 1일자)

그의 가설에 따르면, 아이들은 부모의 양육이 아니고 타고난 유전자와 또래 집단에 영향을 받는다. 책 읽으면서 공감했던 근거 중 하나는, 이민자의 아이들이 부모의 억양이 아닌 또래 집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이야기였다. 그러고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말을 1도 못하는 한인 2세들이 보이더라.

로크의 사상인 blank slate 이론과 계몽주의 교육관의 영향으로 교육/양육의 영향이 강조되었지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는 이야기도 이책에서 읽었던 것 같구.

여전히 논란이 많은 가설이라 얼만큼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으나, 자유방임형 (바꿔말하면 게으른) 아빠인 내게는 꽤 솔깃했던 책이었더랬는데…

책 마무리를 짓지 못했는데, 집에가서 이책이나 다 읽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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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지 선정 2018 올해의 국가

해마다 크리스마스 즈음, 이코노미스트지는 올해의 국가를 선정한다. 선정기준은 원래부터 넘사벽 국가가 아니라 그해에 가장 드라마틱한 성과를 보인 나라이다.

관련 기사

The Economist’s country of the year 2018 (12월 18일자)

연말은 왠지 뭔가를 뽑아야 할 것 같은 때이고, 거기에 올해의 국가 뽑는 거 더하는게 어색할리가 있을까. 그치만 따져보면 올해의 국가를 뽑는 건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다. 국가라는게 한해 반짝 잘됐다고 계속 잘되는 것도 아니고, 한번 크게 삽질했다고 선진국이 갑자기 개도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는게 쉬운일도 아니고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데…

2017년 이코노미스트지는 올해의 국가로 프랑스를 선정했다. 작년 말엔 그만큼 마크롱의 개혁에 거는 기대가 컸었다. 그치만 노란 조끼 운동으로 올 겨울 기세가 완전 꺽인 프랑스(와 마크롱)를 보면, 역시 한두해 반짝 한 걸 가지고 나라를 평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가 실감하게 된다.

작년에 2위에 올랐던건 한국이었다. 작년 세계인의 눈에는 한국의 존재감이 끝장이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박근혜 탄핵, 이재용 수감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문대통령의 외교 점수도 높았는데, THAAD 로 인한 중국의 위협을 최소화하고 트럼프의 한미 FTA 취소 협상을 교묘하게 연기 시킨 것에 큰 점수를 부여했다.

혹시나 오해를 줄이고자 덧붙이자면, 나는 한국 정치를 잘 모르고, 문대통령을 지지도 비난도 안하는 편이다. 대통령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작다. (물론 트럼프는 미국 사는 내게 큰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삶의 기쁨과 고뇌를 한 인물에 투영해서 생각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어떤 인간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

그리고 외신이 한국을 보는 시각도 필요 이상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외부인의 시선이기에 신선하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여지를 던져 주지만, 결국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어쨌든…

작년에 이코노미스트지가 한국 말고 프랑스를 선정한 이유는 여전한 북한의 위협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작년만 해도 남북 관계는 몹시나 험악했다. 뉴스를 볼 때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나더라. 그러던게 신년사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무드가 조성 되었고, 올 상반기는 한국인들이 평화 euphoria를 경험했다. 만약 올해의 국가 선정이 연말이 아니고 여름이었다면, 한국이 선정되었으리라.

그럼 2018년 올해의 국가는 어딜까. (자조 유머의 달인) 영국 사람들 답게, 영국을 뽑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처럼 부유하고, 평화로우며, 안정된 나라도, 순간적인 감정으로 이뤄진, 대책없는 결정으로 나라가 일순간에 헌정 위기의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는 타산지석이 충분한 선정 사유가 된다는 것. ㅎㅎㅎ

영국을 제치고(?) 2018년 올해의 국가로 선정된 곳은 아르메니아다.

아르메니아. 부패가 만연한 가난한 나라에서 올해 무슨 일이 있었나. 독재자 세르지 사르키산이 사퇴를 했다. 사르키산은 2008년 부터 10년동안 대통령을 했다. 아르메니아 헌법상 삼선이 불가능했고, 사르키산은 내각제로 개헌을 하고 총리가 되는 편법을 쓴다. 눈가리고 아웅에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에 사르키산은 하야한다. 이후 선거에서 70%의 지지를 받은 야당 지도자가 총리를 이어받았다. 언론들은 이를 아르메니아 벨벳 혁명이라고 부른다.

물론, 아르메니아는 여전히 쉽지 않다. 열강에 둘러 쌓여 있는데,( 터키/러시아/범아랍권) 그나마 친러시아을 표방하며 생존을 모색하는 가난한 나라이다. 아제르바이젠과의 영토 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이코노미스트지가 아르메니아를 올해의 나라로 선정한 것은, 여러모로 열악한 상황임에도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게 이유이다.

아르메니아 인이여,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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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 신임안 가결

메이 총리가 또 한번 살아났다고. 정책에 동의 여부를 떠나 참 대단한 사람이다.

이번주 영국 뉴스는 정말 드라마틱했다. 그렇지만 따지고보면 영국은 브렉시트 가결 이후 계속 그런 상황아니었는가. 영국 국회가 보인 아마추어리즘은 전세계의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2년 반 동안 영국이 해온 행동의 축약판이었을 뿐이다. 오리려 유럽에서 요즘 위기에 빠진 나라는 프랑스/이태리/독일이 아닐까 싶다. 노란 조끼, 오성운동, 그리고 메르켈 은퇴.

처음 메이 총리가 세워졌을 때, 나는 시큰둥한 편이 였다. 딱히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브렉시트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미션을 이만큼 끌고 온건 메이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꺼라고 본다.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뻔히 욕먹을 자리 총대를 매고 가고 싶은 사람도 보이지는 않고. 개인적으로는 미국으로 보면 하원의장 (예정) 낸시 팰로시가 비슷한 느낌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욕먹은 낸시지만 결국 일일이 만나서 한명씩 설득했다고 한다. ‘그럼 대안이 있는가.’

노딜 브렉시트는 결국 백지에서 국제 관계를 정립하고 조약을 맺는 과정일 텐데, 그렇게 되면 대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경제를 떠나서 국경선을 다시 긋는 문제도 쉽지 않다. 이를테면 당장 런던에서 파리 가는 비행기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지게 되는 거고,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국경이 그어지게 되는 것이다.

90년대 봤던 많은 영화들이 IRA 테러를 소재로 했던게 생각난다. 북아일랜드 독립이라… 참 옛날 얘기다. 결국 IRA 쇠퇴는 영국의 EU 통합과 맞물려 있다. 생각해보자. 북아일랜드나 아일랜드나 EU 깃발아래 하나가 되었는데, 굳이 과격하게 독립을 말할 이유도 없고.

시간은 째깍째깍 잘간다. 내년 3월까지 영국은 또 어떤 드라마를 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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