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렌디한 사람이 아니다. 책도 노래도 예전 것이 좋다. 트렌드야 노상 바뀌는데 거기에 힘을 빼느니 내가 즐기는 일에 좀더 시간을 쓰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세상과 너무 단절되어 살아서 쓰겠나. 가끔은 신문을 뒤적이며 요새 뭐가 핫한가 훓어본다. 뉴욕타임스 Trend section에서 유명인들이 The Trend I Skipped This Year (2015년 12월 17일자 NYT)를 꼽은 걸 보았다. 갑자기 필받아서 작년에 놓친 트렌드를 찾아봤다.
뮤지컬 ‘해밀턴’
작년 하반기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했던 뮤지컬을 꼽으라면 단연 ‘해밀턴’이다. 요즘 가장 표를 구하기도 힘든 공연이기도 하다. 오바마가 두번 관람했다고 해서 유명세가 더해졌다.
줄거리는 미국 건국 아버지 중에 하나인 해밀턴의 이야기다. 10불 지폐에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재무장관 해밀턴의 이민자 시절 이야기, 그의 인생 역정, 그리고 미국 독립 이야기 등등이 잘 버무려져있다.
굳이 따지자면 힙합/랩 뮤지컬 쯤 될텐데, 그렇다고 단순히 랩만하는 뮤지컬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영국 국왕이 부르는 노래는 브리티시 팝이고, 연인끼리는 발라드를 부른다. 흥미로운 장면은 해밀턴과 제퍼슨의 랩배틀 장면이다. 상공업을 중시했던 연방주의자 해밀턴과 농업/남부를 중시했던 반연방주의자 제퍼슨의 논쟁이 랩으로 표현된다. (아래 동영상의 6:46 쯤에서 나온다.)
이 뮤지컬이 핫한 이유 중에 하나는 주인공들이 히스패닉과 흑인이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인들은 여자나 흑인/히스패닉이 주인공이면 모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007 스펙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해밀턴’ 역시 과거 백인이었던 실존 인물들을 흑인, 히스패닉이 연기하는데 그게 랩과 잘 어우러져 트랜디하다는 느낌을 준다.
뮤지컬 소개 자료 (한국어 버전): 음악으로 탄생시킨 인간적인 영웅 이야기 ‘해밀턴’
CBS 뮤지컬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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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리 신작 ‘파수꾼’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가 신간을 발행했다. 1960년대 첫작품 ‘앵무새 죽이기’를 출판하고서 60여년 간 작품을 내지 않았던 하퍼 리 할머니께서 고민 끝에 두번째 작품을 발표하기로 했다고. 출간 되기도 전에 베스트셀러가 확정된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번 째 소설이 아니고 ‘앵무새 죽이기’ 전에 쓰인 소설인데, 유실 되었던 원고가 최근 발견되어 출간까지 되었다. 소설 자체에 대한 매력보다는 팬심으로 글로벌 히트가 되었다. 그놈의 팬심, 참 글로벌 하기도 하여라.
정리의 여왕, 마리에 곤도
정리의 여왕 마리에 곤도가 미국에서 화제이다. 작은 체구의 일본인 여자는 5살 때부터 정리에 꽂혔다고 한다. 그녀는 정리로 학위를 따고 정리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고. 일종의 ‘정리덕후’, ‘정리신동’이다.
2014년 말 미국에서 조용히 출간된 그녀의 책은 (작년 12월 기준) 미국내에서만 150만부가 팔렸고, 월드와이드로는 400만부가 팔렸다. Kondo 신드롬에 대한 Newyorker 기사를 링크한다. The Origin Story of Marie Kondo’s Decluttering Empire (Newyorker 2015년 12월 8일자)
그녀의 책은 작년 미국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의 정리법은 단순히 기술이라기 보다는 삶을 사는 철학으로까지 보인다. 그녀는 보관할 물건과 버릴 물건을 정할 때 그 물건이 ‘spark joy’를 주는가 여부로 판단한다고 한다. 학창 시절, 정리를 하다가 물건을 버리는 것에 너무 집중하여서 그 부정적인 기운 때문에 거실에서 졸도를 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그녀는 정리할 때, 부정적인 관점이 아니라 긍정적인 관점, 즉 사물이 주는 영감의 여부를 기준으로 버릴 물건을 정한다고 한다. 그녀는 이 기준을 물건 정리 뿐 아니라 연애 관계, 직업선택에도 적용한다고.
강연을 보면서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하다보면 철학이 생기고 삶의 자세가 바뀌는 구나 싶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부분에 특히 강점이 있어보인다.
Hoverboard and periscope
신기한 장난감류로 작년에는 호버보드와 페리스코프가 인기였다. 호버보드는 백투더 퓨처 미래편에서 마이클 J 폭스가 타고다니던 바로 그 장난감이다.
페리스코프는 애플 선정 2015년 앱이다. 모바일 동영상 스트리밍 앱인데, 일종의 개인방송 앱이라고 한다. 유사 앱으로 ‘미어캣’이라는 서비스가 있다.
서비스가 인기를 끌자 트위터는 재빨리 페리스코프의 제작사 바운티 랩스를 인수했다. 관심있는 분은 한 네티즌이 정리해둔 포스트를 보길 바란다.
새로운 장난감/서비스들이 으레 그렇듯 논란과 규제도 많다. 호버보드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폭발 위험이 있다고 해서 비행기/대학 캠퍼스에서 반입 금지되는 추세이다.
Game of Thrones
시즌 2까지 열심히 봤던 미드이다. 한두회를 놓치면서 요즘은 잘 안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이 가끔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 이제 HBO 간판 프로그램이 된 듯 하다.
작년 초에 HBO가 HBO go/Now를 출시하면서 크게 광고를 했던 드라마가 Game of Thrones였다. (이제 Game of Thrones을 스트리밍으로 간편하게 보자!!) 미국 방송계는 이제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이다.
주위의 젊은 미국사람들(20~30대)과 이야기 해보면 비싼 케이블 티비를 더이상 신청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드라마와 쇼를 본다.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cord-cutter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미국 스트리밍 시장은 Netflix, Hulu, Amazon Prime, HBO go 등등이 주도하고 있는데,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여담인데, 케이블 시청자가 줄면서 디즈니가 타격을 입었다. 디즈니는 ESPN (스포츠 중계 채널) 수익의 비중이 큰데, ESPN은 비싼 케이블 패키지로 돈을 번다. 그런데 cord cutter의 등장으로 디즈니의 수익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스타워즈가 성공을 거두었지만 (스타워즈의 루카스 필름은 디즈니 계열사이다), 디즈니의 주가는 하락세이다.
몰아보기 같은 시청 패턴도 흔해졌다. binge-watching이라는 유행어가 생겼는데, 원래는 폭식을 뜻하는 binge-eating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시청 패턴은 시즌 에피소드를 한번에 릴리즈 하는 Netflix의 영향이 크다.
테이스팅 메뉴 Tasting menus
최근들어 뉴욕 식당가에는 테이스팅 메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삼백불 정도 가격에 서너 시간 정도 수다 떨면서 수백 가지 요리를 맛보는 식이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한국에도 있다. 역시 이런 류의 유행에서 한국인은 발 빠르다.
제대로 된 식사도 아니고 페북/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이쁘기만 한 장식용 요리들이 비싸기만 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행이란다.
그외에…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미드는 ‘엠파이어’, ‘매드맨’ 파이널 시즌, ‘어페어’, ‘제시카 존슨’, ‘트랜스페어런트’ 였고, 카니예 웨스트가 론칭한 브랜드 Yeezy가 주목을 받았으며, 쿠바여행 자유화, 총기규제, 도널드 트럼프, 소설 ‘Fate and Furies’, 애플와치, 스냅챗, 트랜스젠더 모델 Caitlyn Jenner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