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눈송이로 걸어들어가는 아이

한달여 생각하기를 멈췄다. 몇 주는 이사준비에 정신이 없었고, 지금은 정착에 바쁘다. 가재 도구들이 자리를 잡고, 생각없이 물건이 집힐 정도가 되려면 몇달은 더 걸릴 듯 하다. 새집과 관련한 서류작업도 한뭉치이고, 매일매일 물건 사다가 나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이런 때에 나 혼자 고고하게 글이나 쓰고 책이나 읽고 있으면 도리가 아니겠지.

아이와 성경을 읽기도, 엉터리 옛날 얘기도 같이 쉬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이와 꾸준히 해오던 일이었다. 아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실은 세상의 모든 아이가 그러하다. 누구나 어린시절 귀기울여 듣던 옛날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이야기가 현실이고 현실이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나는 티비를 보면서 눈물을 짓거나 무서워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야기는 진짜가 아니란다.”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게 되면서 나는 더이상 이야기에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다. 나같이 메마른 어른들을 위해서 일까. 이야기꾼들은 이야기에 진실성을 부과하기 위해 자꾸만 장치를 가져다가 심어둔다. 요즘에 와서는 그마저도 식상해졌는지 시작부터 대놓고 ‘이 이야기는 실화에 근거했음’을 말하고 시작한다.

너무 딸아이를 방치해두었나부다. 요새 심지어는 imaginary friend를 만들어서 혼자 떠들고 논다. 자기는 imaginary friend가 수십명이 있어서 심심할 일이 없다나? 혼자 침대에 누어서 한시간씩 조잘거리는 대상은 아마도 imaginary friend였나보다. 상상력이 바닥을 기는 나같은 아저씨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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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이어서 발터 벤야민의 글 한구절을 공유한다.

책 읽는 아이 아이들이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씩 받는다. 저학년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지는 못하고 나누어주는 대로 받는다. 가끔씩만 자기가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다. 자기가 탐하는 책들이 다른 아이들 수중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마침내 아이는 책을 받는다. 일주일 동안 전적으로 그 텍스트의 놀이에 탐닉한다. 텍스트는 눈송이들처럼 온화하고 은밀하게, 촘촘하고 끊임없이 아이를 감싼다. 그 눈송이들 속으로 아이는 무한한 신뢰를 갖고 걸어 들어간다. 거듭거듭 유혹하는 책의 고요함! 책의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직은 잠자리에 들면 스스로 이야기들을 지어내는 시절이니까. 거의 사라져 버린 그 이야기들 속에 나 있는 길들을 아이는 추적해간다. 책을 읽을 때 아이는 귀를 닫아둔다. 책은 너무 높은 책상 위에 있고, 언제나 한 손을 책 위에 올려놓는다. 아이는 형상과 메시지를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볼 수있는 것처럼, 주인공의 모험들을 문자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읽을 줄 안다. 아이의 숨결은 책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 속에 있고, 온갖 등장인물들이 아이에게 입김을 분다.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더 가까이 인물들 속에 섞여 들어간다. 아이는 일어난 사건과 주고 받는 말들로부터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받는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이는 마치 손으로 뒤덮인 것처럼 온몸이 방금 읽은 것으로 흠뻑 덮여 있다.(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길, 2007, 109-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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